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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비밀 탐구(31): 동대부 지령현

글/ 선장

【정견망】

동대부(銅台府) 지령현(地靈縣)에서 1만 명의 승려들에게 시주할 것을 발원한 구원외의 집에서 당승 일행은 억울한 누명을 썼다가 결국에 누명을 벗게 되는 이 이야기에는 큰 의미가 담겨 있다.

부처님을 믿고 예불하고 공봉(供奉)하며 스님을 모시고 보시하는 등의 이런 것들은 모두 부처님을 공경하는 사람들의 행위로 모두 복을 쌓는 행동들이다. 자신이나 후대를 위해서 복을 쌓는 것으로 장래에는 반드시 복으로 보답 받게 된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향을 사르고 예불하면서 보우(保佑)해주길 원하는 것이다. 사실 신불(神佛)이 마음대로 사람을 보우하는 건 아니며 근본적으로 진정하게 사람을 보우하는 것은 사람 자신이다. 사람이 스스로 덕을 쌓고 선을 행하며 널리 복전(福田)을 심고 신을 공경하고 예불한다면 그 누구라도 사람을 보우할 것이다.

반대로 한 사람이 온갖 나쁜 짓을 다 하면서 부처님께 예배를 올린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악인이 죄를 받는 것은 자신이 지은 허물 때문이며 이것이 바로 인간세상의 법칙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에 대해 의문을 표시한다. 그렇다면 왜 현실생활 속에서 좋은 사람이 고생을 겪고 악인은 잘 사는가? 사실 이것 역시 복덕(福德)이 작용한 결과이다. 사람의 복덕은 일생일세(一生一世)의 것이 아니라 생생세세(生生世世) 연속된 것으로 사람의 원신(元神)을 따라 윤회하기 때문이다. 복을 누리는 것은 자신의 복분(福份)을 소모하는 것이고 고생을 겪는 것은 자신의 빚을 갚는 것이다.

지금 오직 정토(淨土)법문에서만 대업왕생(帶業往生)을 말하고 다른 법문에서는 반드시 업을 완전히 다 갚아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업채(業債 업의 빚)는 더럽고 무거운 것이라 천국으로 가져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정교(正敎)에서 다 덕을 중시하고 고생을 겪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업채를 갚을 수 없고 천국세계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우주법칙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평가하는 표준은 절대 사람의 표준이 아니며 한 사람의 원신이 지닌 덕과 업의 양을 보는 것이다. 덕이 많으면 바로 좋은 사람이며 업이 많으면 곧 나쁜 사람이다. 속인이 진정으로 부처님을 공경하려면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진정으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법칙은 수련인에게는 더욱 중요하다. 수련인이 수련하는 목적은 바로 최종적으로 정과(正果)로 성취되는 것으로 그러자면 반드시 모든 업채를 다 갚아야 한다. 손오공은 그 속의 인과관계를 보았기 때문에 당승이 감옥에 들어가는 재앙을 다 겪은 후에야 비로소 구원에 나선다. 이것이 바로 깨달은 사람이 진상을 보고난 후 일반인과 차이점이다.

만약 손오공이 표면적으로 당승이 감옥에 들어가는 재앙을 피하도록 했다면 실질적으로 당승이 업채를 갚는 것을 교란해 당승의 수련과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는 사실 당승을 해치는 것이다. 속인은 정(情)의 작용 아래 늘 표면적인 득실만을 보기 때문에 배후의 진정한 인과관계를 알기가 매우 어렵다.

수련인의 수련이 일정한 경지에 도달한 후 상사(上師)는 곧 수련인이 점차적으로 각종 속세의 인연을 끝내고 남아 있는 모든 업채를 갚도록 안배할 것이다. 불가(佛家)・도가(道家)에 따라 방법에는 약간 차이점이 있지만 의미는 같은 것이다.

어떤 사람은 정토종에서는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서 대업왕생이 허용된다는 말을 듣고는 이것이 확실히 쉽다고 여길 것이다. 사실 이렇게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업을 지니고 천국에 간다고 하여 직접 복을 누리는 것은 아니며 여전히 꼭 소업(消業) 해야만 가능하다. 아울러 아주 큰 업을 지니고도 왕생이 가능하다는 게 아니며 조건이 따른다. 십악불사(十惡不赦)한 사람이 어찌 직접 천국에 갈 수 있겠는가? 근본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늘 지름길을 찾거나 교묘한 수단을 취하려 한다면 이런 마음으로 어찌 천국에 갈 수 있겠는가?

2. 천국에도 과위가 있는 이와 일반 중생의 구별이 있다. 천국에서 일반적인 중생이 되는 것은 당연히 인간세상보다는 훨씬 좋겠지만 여러분이 상상하는 정말로 자유자재한 그런 보살이나 나한과는 다르다.

3. 우주의 법칙은 성주괴멸(成住壞滅)이며 그중에는 불국(佛國 부처의 천국세계)의 영원함 역시 사람에 대해 상대적으로 한 말이다. 사실은 천국 세계 역시 같은 과정을 겪어야 한다. 왜 지금은 이미 ‘말법(末法)’시기에 들어왔다고 하는가? 바로 원래의 불법(佛法) 역시 안 되기 때문이다. 부처를 믿는 사람이 만약 이런 변화의 대세를 이해할 수 있다면 신우주의 불법 속으로 용해되어 들어가고 말법 속에서 제한받지 않을 수 있는데 그렇다면 천만다행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48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