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선장
【정견망】
뒤이어 옥진관(玉真觀)의 금정대선(金頂大仙)이 당승일행에게 대뇌음사로 가는 길을 알려주고 접인불조(接引佛祖)가 일행을 맞이한다.
당승은 마침내 피안(彼岸)에 오를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승 일행은 옥진관에서 목욕을 하고 불지(佛地)에 오를 준비를 한다. 여기서 ‘목욕’이란 한 가지 비유이며 사실 사람은 수련하는 과정 중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사상과 신체를 세척해 좋지 않은 사상과 신체에 지닌 좋지 않는 것들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 이렇게 한 후에야 비로소 불국토(佛國土)에 들어갈 수 있다.
이 점은 사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데, 천국은 극히 아름답고 성결(聖潔)한 곳이라 사람이 더러운 사상이나 좋지 않은 것들을 지닌 채 천국에 들어갈 순 없다. 때문에 줄곧 끊임없이 씻어야한다. 어쩌면 독자들이 들어본 ‘관정(灌頂)’은 사실 상사(上師)가 수련인의 ‘씻음’을 돕는 것일지 모른다. 서방 종교의 ‘세례’ 역시 이런 내함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수련계에서는 또 당신의 뇌 속에 무엇을 담으면 당신은 바로 그것이 된다는 말이 있다. 사상의 정화가 가장 관건적이란 뜻이다.
설사 피안에 오를 때조차도 수련인은 또한 고험에 직면할 수 있다. 무저선(無底船 바닥없는 배)이 어떻게 사람을 제도하는지, 당신이 믿는가 믿지 않는가를 본다.
이때 당승은 자신의 시신을 본다. 이것은 아주 복잡한 문제인데 수많은 수련법문의 특징과 관련이 있다.
석가모니가 전한 법문(法門)에서는 열반(涅槃)을 주장하는데, 이 법문은 수련과정 중에서 사람 육신과 상응하는 위치(다른 물질공간)에 하나의 불체(佛體)를 연마해내는데 원만할 때 불체가 원신(元神)을 싣고 떠나가면서 육신은 버린다. 당승의 시신은 바로 이렇게 버려진 육신을 말하며 이때 당승은 이미 불체로 수련성취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불가(佛家)법문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법문 중에서는 불체를 자신이 연마해내는 게 아니라 상사가 주는데, 사람이 원만할 때가 되면 상사가 와서 맞이할 때 이미 완성된 불체를 직접 주는 방식이다.
이런 것들은 성명쌍수(性命雙修) 법문이 아니다. 성명쌍수 법문은 불가에도 있고 도가에도 있지만 도가에서 더욱 강조된다.
보통의 세인이 지니는 육신(肉身)은 이 세계의 물질로 구성된 것이다. 하지만 성명쌍수 법문에서는 수련자가 수련을 통해 이 육신의 물질기초를 개변시킬 수 있다. 이렇게 하면 표면적으로 보자면 같은 육신처럼 보이지만 본질상 변화가 발생하며, 다른 물질로 구성된 신체는 당연히 다른 물질공간에 진입할 수 있다. 성명쌍수 법문에서는 이런 식으로 도(道)를 얻을 때 불체를 가질 뿐만 아니라 개변된 후의 육신도 갖는다.
석가모니는 사실 육신까지 연마해서 가져갈 수 있을 만큼 완전한 능력을 지녔지만 사람들더러 자신의 신체를 포함하여, 최대한도로 집착을 내려놓도록 하기 위해 열반이란 이런 수련방식을 남겨주었다. 사실 부처의 사리는 바로 물질이 개변된 후의 것으로 일반인의 시신에는 그런 것이 존재할 수 없다.
육신을 연마해 성취하는가, 육신을 지니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 여부는 사실 부동한 천국의 특성에 대응하며 부동한 물질계통에 대응한다.
더 깊은 내용은 말로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독자 여러분들이 신기하다고만 보지 말고 직접 자세히 체험해보길 희망한다. 인류의 역사와 문화의 축적은 다 아무런 이유나 연고가 없는 게 아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신(神)은 높고 높은 위에 계시며 자신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여길지 모른다. 사실 광대한 우주 중에서 보자면 삼계 내의 인류사회는 단지 한 알의 미세한 먼지에 불과하다. 이것을 제외한 보다 많은 것들은 오히려 다 신의 세계이다. 또한 인류사회 속에서도 수많은 수련인들이 도를 얻은 후 부처가 되거나 신이 되거나 신선이 된 사례들이 있다. 다시 말해 신은 바로 우리 주변에 있을 수 있지만 단지 사람의 육안과 범태로는 인식할 수 없을 뿐이다.
사람이 이런 환경 속에서 생활하면서 사람을 만들고 보호해주는 신이나 주변의 이런 신성한 일들에 대해 과연 얼마나 이해하고 알아차릴 수 있을까? 어쩌면 당신 자신에게도 신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할지 모른다.
피안에 오르면 바로 여래를 볼 수 있다.
불국(佛國) 성지는 물론 인간세상과는 모습이 달라서 비할 바 없이 수승(殊勝)하며 인간의 언어로는 묘사할 방법이 없다. 수많은 불경에서도 불국토를 묘사하고 있는데 일반인에 대해 말하자면 정말이지 상상조차 하기 힘든 것이다. 인간세상은 천당이 아니며 인간세상에 천당처럼 아름다운 사회를 세우기란 근본적으로 실현할 수 없다.
여래는 당승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대가 온 동토(東土)는 바로 남섬부주(南贍部洲)라 하늘이 높고 땅이 두터워 물산(物産)도 많고 사람들도 빽빽하지만 탐욕과 살생, 음란과 거짓, 사기와 속임수가 많구나. 불법(佛法)을 따르지 않고 선한 인연을 추구하지 않으며 삼광(三光 해 달 별)을 무시하고, 오곡을 중히 여기지 않는도다. 충성스럽지도 효성스럽지도 않고, 의롭지도 어질지도 않으며, 자기 마음을 속이며 크고 작은 싸움이 끊이지 않고 살생을 저질러 한없는 죄업을 짓고 있으니 죄악으로 가득 차 지옥의 재앙에 이르게 되었도다.
그리하여 영원한 어둠에 떨어져 찧어지거나 갈리는 수많은 고통을 받고 가죽이나 뿔이 나는 축생으로 변해 몸으로 빚을 갚으며 남의 먹이가 되었도다. 영원히 아비지옥에 떨어져 뛰쳐나오지 못하는 것은 모두 이런 이유 때문이니라.”(서유기 제100회)
이것이 바로 인류세계 근본법칙의 체현이다.
여래는 당승을 만나 당승이 가져온 통관문첩(通關文牒)을 살펴보았다. 수련인은 수련의 길 위에서 하나하나의 관을 넘어야하는데, 매 관은 수련인에 대해 말하자면 마난이나 고험이다. 오직 이 고험을 통과해야만 한 관을 넘을 수 있고 비로소 계속해서 전진할 수 있으며 모든 관을 다 넘어야만 최종적으로 공을 이룰 수 있다. 수련 원만하려면 반드시 이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통상적으로 직접 위로 들려 올라갈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수련자는 곧 거대한 위덕(威德)을 구비할 수 없게 되며 신계(神界)에서 매우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것인데 심지어 창피해서 스스로 내려가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수련에는 지름길이 없다고 말한다. 무슨 ‘절묘한 동작(高招)’이나 ‘기교’가 있다고 말하는 것들은 바로 사문왜도거나 방문좌도이며 어쨌든 대도(大道)는 아니다.
그러므로 수련 중에서 가장 관건적인 것은 바로 백번 꺾여도 좌절하지 않는 항심(恒心)이다.
(English Translation: http://www.pureinsight.org/node/5043)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7/9/17/4839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