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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시해(試解) (5)

글/ 탄진(撣塵)

【정견망】

3. 《서유기》에 대한 다각도의 해석

《서유기》에 대한 상술한 분석은 순수하게 개인수련의 기초에서 진행한 해석이다. 다시 말해 표면적으로만 보면 당승 사도가 요마귀괴(妖魔鬼怪)와 싸운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모두 자신의 마성을 청리한 것이다. 이는 순수하게 내수(內修)의 관점에서 본 해석이다. 이런 분석은 이미 사람에게 《서유기》의 내함을 충분히 꿰뚫어볼 수 있는 창구를 준 것으로 다채롭고 신기하며 오묘한 배후는 바로 한 사람이 수심단욕(修心斷欲 마음 닦고 욕심을 끊는)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에게는 또 하나의 관찰하는 각도가 있다. 진수(眞修)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다시피, 진정으로 수련하자면 사부의 가르침이 없고 사부의 돌봄이 없다면 근본적으로 수련성취할 수 없다. 이런 사부는 반드시 지혜와 신통이 큰 각자(覺者)다.

물론 일반 수련인은 근기가 부족하고 도를 구하는 마음이 견고하지 않기 때문에 다만 경서를 보는 수련 중에 있기 때문에 사부가 있건 없건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어느 한 문(門)을 수련하건 그 한 문의 사부는 곧 아는데, 당신이 층차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면 암암리에 당신을 한번 도와준다. 당신이 정말로 된다면 그는 진정으로 당신을 돕는다. 왜냐하면 각자가 사람을 제도함에 그 어떤 조건도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너무나 적고 속인의 관념은 너무나 번잡하기 때문에 수련을 하다가 일단 마난을 만나기만 하면 곧 속인의 마음으로 상대하는데 그렇게 되면 곧 그곳에 정체된다. 때문에 이런 각도에서 보자면 진수하는 사람이 안으로 수련하는 것이 한 방면이고 또한 주요한 방면이지만 사부의 보호와 가지를 떠날 수 없으며 반드시 진정으로 사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진수하려면 반드시 사부가 있어야 하며 사부가 진수자에게 배치하는 길은 모두 개변될 수 있는 것으로 각종 난은 모두 사람의 집착심을 겨냥해 배치된 것이다. 《서유기》 중에도 이것이 체현되어 있다. 가령 35회에서 손오공이 금각대왕, 은각대왕을 정병에 거둬들인 후 태상노군이 찾아와서 말한다.

“이것은 바로 해상보살(남해의 관음보살)이 내게 3번이나 찾아와 저들을 빌려달라고 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관음보살이 저들을 이곳에 보내 요마(妖魔)로 만들어 너희 사도(師徒)가 진심으로 서쪽으로 갈 생각이 있는지 시험한 것이다.”

우리는 당승이 겪은 난은 그 자신의 난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물론 그렇다. 그러나 한 걸음 한 걸음 질서 있는 배치는 오히려 그가 자신에게 배치할 수 없는 것으로 책에서 설명하는 일부 마난은 바로 석가모니불이 배치한 것이다. 이 석가모니불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사람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는 그의 세계 속에 있다. 당신이 진정으로 그가 전한 경(經)을 수련하기만 하면 그는 물론 알게 되며 당신을 관할하는데 사람을 돕는 방식으로 당신에게 수련의 길을 잘 배치해 줄 것이다.

그가 배치한 수련의 길에서 그는 시시각각 늘 당신을 보살피며 보호해줄 것이다. 물론 사람이 수련 중에서 불경(佛經)에 대조해 안으로 닦을 때면 그 자신의 본성(本性)의 일면, 다시 말해 이미 수련 성취된 그 일면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된다. 그러나 단지 어떻게 해야 할 지 아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다른 공간에서 후천적으로 형성된 그런 관념을 보면 모두 아주 완고한 물질이며 사부의 도움이 없으면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왜 일부 나쁜 사람들이 배우려고만 하면 그런 난(難)이 있는가? 왜냐하면 그가 이미 형성된 관념을 제거하지 못하는데 그 관념은 바로 후천적인 자기로 그것이 사람이 반본귀진하는 길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이 역시 현대인들이 쉽게 수련하지 못하는 주요한 원인의 하나다. 물론 만약 이런 각도에 순수한 개인수련의 각도를 결합해서 《서유기》를 해독한다면 그럼 더욱 전면적이 될 것이다.

필자는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게 된 후 리훙쯔(李洪志) 선생님이 말씀하신 사람에겐 주원신과 부원신이 있다는 법에서 다시 《서유기》를 보니 이런 각도에서 당승 사도를 해석하는 것이 아주 합리적임을 발견했다. 물론 주원신은 당승이 되고 나머지 오공, 팔계, 사승과 백룡마는 바로 부원신이다. 수련은 주원신을 위주로 하는데 주원신은 사람이 세상의 미혹 중에 있다. 수련하려고 생각하면 속세를 초월해야 하기에 당연히 난이 아주 많고 고생도 아주 크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는 더 높이 수련할 수 있다. 부원신은 모든 것을 알기에 수련하기가 좀 쉽다. 그러므로 그들 다섯은 비록 함께 한 몸이 되지만 오히려 각기 상응하는 과위를 얻을 수 있었다.

천목 층차가 아주 높은 한 수련인과 교류할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당승이 취경한 이야기는 진실한 것이며 당승 사도의 형상 역시 모두 진실한 것입니다. 단지 다른 공간에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각도에서 말하자면 《서유기》는 다른 공간에서 발생한 수련이야기를 가공하고 정리를 거쳐 우리가 현재 보게 된 이런 작품으로 만든 것이다.

물론 속인의 사상으로는 이런 일에 대한 고층생명의 배치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중에 참여한 고층생명에 대해 말하자면 단지 그들이 스스로 원한다고 해서 이런 이야기를 연역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가령 팔계에 대해 말하자면 속인이 본다면 그 누가 팔계 역할을 하고 싶겠는가? 그러나 만약 인류에게 정통의 신전문화(神傳文化)를 남겨주고 아울러 후세에 정법수련을 위해 길을 깔아주는 이런 각도에서 말하자면 그것은 우주 중에서 영원불멸의 공적(功績)이 되며 수많은 신들마저 동경하는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것은 또 아무 생명이나 이런 역할을 연기하고 싶다고 해서 허락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책에서 보다시피 당승사도가 겪은 마난과 이 일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은 모두 내력이 있는 것으로 일부는 여래나 보살이 직접 배치한 것이다. 일반적인 수련인이라면 이런 마난을 배치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66회에서 미륵불은 “이 일은 내가 부주의해 사람 단속을 못하기도 했지만 너희 사도의 마장(魔障)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온갖 영들이 하계로 내려온 것이니 (너희가) 마땅히 난을 당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128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