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법제자
【정견망 2003년 11월 9일】일부 동수들이 사이트에 발표한 문장을 보게되면, 전체 문장이 마치 사존(師尊)의 말씀을 가지고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관점에 이용하려는 것 같다. 또한 어떤 동수는 동수들 사이에 서로 교류(交流)할 때에도 늘 사존의 말씀을 가지고 자기 개인의 관점을 표현하는 도구로 이용하는데 스스로는 여전히 깨닫지 못한다. 어떤 동수가 상대방에게 문제와 결점을 지적할 때, 상대방은 도리어 사존의 말씀은 어떻다면서 사존께서 말씀하신 이야기를 인용하여 자신에 대한 변명과 해답[辨解]으로 삼고 자신의 근본적인 집착을 엄호(掩護)한다. (당연히 어떤 경우에 동수가 사부님의 말씀을 인용하는 이유는 자신의 말로는 아무리 해도 사존의 원래 말씀보다 더 명확하게 문제의 실질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느끼기 때문임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왕에 “문장을 써낼” 생각이라면 또한 전편 가득 모두 인용문으로 채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법은 박대정심한 내포가 있기에, 우리가 단장취의(斷章取義)하거나 극단적이거나 단편적으로 개인적인 목적과 이익을 위해 사용할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사존과 대법에 대한 불경(不敬)이 된다. 우리가 진정하게 착실히 수련[實修]하는 중에 대법을 실증하는 여정 중에서 사존께서 말씀하신 이야기는 우리를 계오(啓悟)하고, 사존의 말씀은 진실하고 절실하게 우리 생명의 미시적인 곳으로 들어가며, 본질에서부터 우리를 개변시킨다. 우리가 나중에 써내려는 문장에 인용하여 동수를 계오하는 이것을 무조건 나무랄 수는 없지만 그러나 단지 문장을 써내기 위해서이거나,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밝히기위해서 사용한다면 이것의 이면(裏面)의 목적은 곧 순수하지 않게 된다. 사존께서 말씀하신 이야기를 자신의 문장 속에 쌓아두려는 것은 바로 위사위아(爲私爲我)의 체현이며 대법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부님을 존경하고 법을 존경하는 것[敬師敬法]은 단지 말로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며 내심(內心)으로부터 확정되어 실제행동 상에 표현되어 나와 우리의 일사일념(一思一念)이 모두 바르게 되고, 우리의 일언일행(一言一行)을 모두 잘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가장 위대한 법이 만든 생명이자 동시에 사부님의 제자이며, 우리가 현재 인간세상에서 하는 일거일동(一擧一動)에서 대법제자의 형상을 전시해내야 하며, 우리가 현재 하는 일체는 미래 생명의 참조(參照)이고, 우리가 현재 하는 일체는 심원(深遠)한 역사적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대법은 엄숙한 것으로 그 어떤 떠서 움직이는[浮動] 사람의 마음에도 이용될 수 없다. 우리는 대법을 이용하여 우리 자신을 위해 어떻게 할 수 없으며 무조건적으로 대법에 동화되어야 하며, 우리가 걷는 매 한 걸음을 모두 안정적으로 밟아야하며, 매 한 걸음을 모두 바르게 걸어야한다.
발표시간 : 2003년 11월 9일
문장분류 : 정법수련>삼언양어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3/11/9/2443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