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리는 서로 통한다
작자: 북미대법제자
[정견망]
올해 초 션윈 매표에 참가했다. 처음 시작할 때 나는 사상 부담이 비교적 심했다. 작년 8월 매표도 아주 어려웠는데 이번에는 또 가격이 크게 조정되어 마음속으로 자신이 없었다. 매번 상점에 가서 표를 팔 때마다 눈이 빠지게 사람을 기다려도 아무도 표를 사러 오지 않았을 때의 느낌이 여전히 기억났다.
때문에 나는 상점 매표에 대해 약간 저촉하는 정서가 있었고 사실 마음속으로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다. 이런 심태 하에서 3주 연속 표가 한 장도 나가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전법륜”에서도 어떻게 표를 팔 것인가에 대해서는 한 말씀도 하시지 않았잖은가!”라며 하소연했다. 막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한 가지 염두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치는 서로 통하는 것이다(理是相通的).” 이 염두는 내게 아주 큰 촉동을 일으켰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미립자 물질에는 분자・원자・양성자가 있는데, 맨 아래로 캐 내려가, 만약 당신이 매 층마다 이 한 층의 면을 볼 수 있다면, 그래서 한 개의 점이 아니라 분자 한 층의 면, 원자 한 층의 면, 양성자 한 층의 면, 원자핵 한 층의 면을 보았다면, 당신은 곧 부동(不同)한 공간 중에서 존재하는 형식을 본 것이다. 사람의 신체를 포함한 어떤 물체든 모두 우주공간의 공간 층차와 동시에 존재하고 서로 통한다. 우리 현대물리학은 물질의 미립자를 연구함에 다만 미립자 하나를 연구하는데, 그것을 분석하고 분열시켜, 원자핵이 분열한 후 다시 그것의 핵분열 후의 성분을 연구한다.”
과거 수련 중에서 나는 많은 경우 늘 구체적인 사건 속에 매몰되어 마치 하나의 원자나 혹은 분자만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매 하나의 사건 속에서 수련했을 뿐 한 층면에서 수련하고 한 가지 사건을 통해 한 층차의 이치를 보지 못했다. 때문에 수련의 돌파가 아주 늦었고 수련하고 한다는 것이 늘 같은 층면의 부동한 표현 중에서 수련했으며 같은 문제라도 표현형식이 바뀌면 곧 똑똑히 알아볼 수 없었다.
그 후 “전법륜”을 읽자 감수상에서 아주 큰 변화가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많은 이치에 대해 나는 과거에 늘 아주 얕고 제한적으로 이해했을 뿐이다. 가령 션윈매표 과정과 같은 구체적인 일에 봉착했을 때 실제상황을 법리와 연계하기가 아주 어려웠다. 이치는 서로 통하는 것임을 어느 정도 이해한 후 나는 사부님의 설법 중에서 모든 일을 말씀하실 때 심법(心法)을 언급하셨지만 나는 일을 하면서 대부분 방법상에 머물러 있었음을 발견했다.
예를 들면, 나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불성이 나오면 시방세계(十方世界)를 진동한다. 누가 보든지 모두 그를 도와주려 하며, 조건 없이 그를 도와준다.”를 보면서 큰 부끄러움을 느꼈다. 자신의 평소 일사일념을 조사해보니 절대다수 불성(佛性)의 염두가 아니었으며 심지어 대부분 좋지 않은 염두였다. 이런 염두가 어찌 시방세계를 진동시키고 모든 불도신(佛道神)이 돕게 할 수 있고, 어찌 인연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여 표를 사게 할 수 있겠는가?
이 한 층의 이치에서 인식을 제고하자 나는 “전법륜”을 읽을 때 훨씬 집중할 수 있었으며 일부 보다 깊고 보다 넓은 많은 법리에 대해 체험할 수 있었다. 이런 법리적인 인식은 나로 하여금 매표 과정 중의 심태에 큰 조정을 가져오게 했다. 점차 표가 팔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표 값에 대해 나는 마음속으로 늘 불안해했다. 게다가 생활의 경험이 내 마음속에 깊은 낙인을 남겨 돈을 아끼려는 마음이 아주 심했다. 한번은 아주 평범하게 차려 입은 한 흑인 여성이 나를 찾아와 표 값을 물었다. 내가 좌석배치표를 보여주자 그녀는 오케스트라 박스 근처를 가리키면서 이 위치가 좋다고 했다. 나는 황급히 그녀에게 이곳은 300불짜리 좌석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녀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1층 1열의 표가 있는지 물었다. 내가 우리 사이트의 표를 조사해보니 1열에는 표가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제3열의 표는 어떤지 물어보면서 3열의 표를 사면 10%의 수수료를 절약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좋은 자리가 아니면 안 된다고 했다.
그녀가 막 떠나려할 때 나는 케네디 센터 사이트를 검색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붙잡아두었다. 다행히 1열 정중앙에 2장의 표가 남아 있었다. 그녀는 매표 과정에서 40불의 수수료(극장 예매 수수료)에 대해서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나는 마음속으로 그녀의 돈을 아껴주려는 생각에 어디 식당에 주차하면 주차비 7불을 아낄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내 말에 기뻐하지 않으면서 그곳에 차를 대면 차도를 건너가야 하는데 만약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해요? 케네디 센터가 돈을 비싸게 받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고 했다.
나는 당시 사부님께서 그녀의 입을 빌려 돈을 아끼려는 나의 집착심이 너무 강하다고 점화해주시는 것임을 알았다. 전체 매표과정에서 비록 이 마음을 제거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지만 깨끗이 제거하지 못했다. 때문에 고가 티켓이 많이 나가지 않았다.
몇 차례 매표과정 중에서 피로감이 갈수록 심해졌다. 코스트코 앞에서 매표할 때를 생각해보면 하루 종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먹거나 마시지 않았어도 그다지 피곤을 느끼지 못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끊임없이 표가 나갔고 정신도 비교적 활달했다. 나중에 다른 상점에서 매표를 했는데 내가 있는 상점은 유동인구가 비교적 적어 표도 적게 나갔다. 그러자 나는 더욱 피로함을 느꼈고 그곳에 서 있으면서 끊임없이 시간을 확인했다.
어느 날 사부님의 설법 한 단락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과거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를 침대에 묶어 놓고 그의 팔을 잡고는 그의 피를 뽑겠다고 했다. 그런 다음 그의 눈을 가리고 그의 손목을 한 번 긋고는(전혀 그의 피를 뽑지 않았음), 수도꼭지를 열어 그에게 똑똑똑 소리가 나는 것을 듣게 했다. 그는 자기의 피가 아래로 떨어지는 줄로 알고 잠시 후 이 사람은 죽어버렸다. 사실 그의 피를 전혀 뽑지 않았으며 흘린 것은 수돗물로서, 그의 정신이 그를 사망하게 한 것이다.”(전법륜)
나는 단번에 사실 정말 피곤한 것이 아니며 나의 사상 부담이 너무 심해 늘 “자신의 피가 아래로 떨어진다”고 느낀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더 나아가 머릿속에 번잡한 잡념(雜念)이 너무 많은 것을 발견했다. 가령 매 하나의 염두에 모두 일정한 무게가 있다면 이를 다 더하면 마땅히 아주 무거울 것이다. 그때부터 시작해 나는 의식적으로 좋지 않은 염두를 청리했으며 대뇌를 가급적 청정(淸淨)하게 유지했다. 그러자 심신의 상태에 전반적으로 적지 않은 변화가 발생했으며 일하는 것도 전보다 훨씬 빨라졌다.
전에는 잡념이 많아서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생각만 해도 이미 피곤했다. 이런 상태가 속인의 업무를 하는 중에도 마찬가지로 체현되어 업무효율을 떨어뜨렸다. 잡념이 감소됨에 따라 매표과정 중에서 심태(心態)가 갈수록 가벼워졌으며 몸도 자연히 갈수록 가벼워졌다. 나는 조율을 맡은 협조인에게 더 많은 상점에 가서 표를 팔 수 있게 해달라고 건의했다. 어떤 경우에는 하루에 상점 2곳에 가서 표를 팔았고 마지막에는 일주일 내내 6일 동안 표를 팔았지만 그다지 피곤을 느끼지 않았다. 간혹 피곤하다는 염두가 나오면 머릿속에서 자조적인 생각도 나와 또 “자신의 피가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태의 개변은 나로 하여금 속인 업무의 효율도 훨씬 높아지게 했다. 평소 머릿속 염두가 줄어들고 아주 청정해졌으며 종종 지혜가 나왔다. 나는 각 상점 쇼윈도에 전등케이스를 장식하는 일을 하는데 일하는 과정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다. 상점에서는 쇼윈도를 손상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고 또 튼튼하면서도 아름다워야 한다. 한번은 내가 작업을 끝냈지만 한밤중에 상점에서 전화가 왔다. 전시대를 몇 바퀴 돌려야 하는데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머리를 비워다. 그러자 얼마 후 완벽한 방안이 떠올랐다. 나는 속인의 업무 중에서 몇 차례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으나 이런 상태 속에서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때문에 전체적인 매표과정 중에 속인의 업무로 시간을 지체하지 않을 수 있었으며 오히려 생각지도 못한 진전이 있었다.
법리는 서로 통하는 것이란 인식에서 약간의 제고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매표과정 중에서, 정법 일 중에서 어떤 역할을 맡든 아주 담담해질 수 있었다. 무슨 일을 하든 모두 마찬가지이며 다만 표현형식에 불과하다.
비록 상태가 어느 정도 개선되긴 했지만 여전히 표가 많이 나가진 않았다. 때로는 하루에 유동인구가 만 명이 넘는 상점에 가서 표를 팔 때도 있었지만 늘 표가 몇 장 나가지 않았다. 당시 사상 중에서 속인의 한 무더기 구실이 떠올랐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만약 속인의 이 한 층 이치가 나를 제한한다면 이는 나의 심성이 바로 속인의 상태이기 때문에 이 층의 이치가 비로소 나에 대해 제약작용이 있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나는 나의 공을 내가 데리고 있는 제자에게 매 사람마다 한 몫씩 나누어 주었는데, 모두 백여 종의 공능을 합성한 에너지덩이였다.”라고 말씀하셨다. 이치는 서로 통하는 것이다. 매표 과정도 마찬가지인데 사부님께서 우리더러 표를 팔라고 하셨으면 사실 이미 우리에게 상응하는 능력과 지혜를 주신 것이다. 다만 나의 사람 관념이 능력과 지혜의 발휘를 장애했을 뿐이다.
매표가 너무 느려지자 나는 속으로 줄곧 아주 조급해졌고 자신의 수련에 대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당시 한 가지 염두가 나왔는데 매일 상점에 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치 자신이 전력을 다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이때 한 구절의 법이 내 머리에 떠올랐다. “중국 농민은 매우 고생스러운데 마땅히 모두 대기공사여야 하지 않겠는가?”(전법륜)
나는 단순히 고생을 겪는 것만으로는 표를 팔 수 없으며 반드시 심성(心性)에 공력을 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계속해서 안으로 찾자 내가 비록 십수 년간 수련을 해왔음에도 줄곧 자비심을 닦아내지 못하고 중생을 구도하고자 하는 원력(願力)이 아주 약한 것을 발견했다. 때로는 매표과정에서도 정말 직장에 출근하듯이 일종 일을 하는 상태에 처해 있었지 사람을 구하는 상태가 아니었다. 나의 마음은 근본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표가 나가지 않을 때면 여전히 어떤 좋은 방법이 있을까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이 공능이 없으면, 당신의 손이 어떤 재간을 피운다 해도 그것은 역시 소용이 없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초상적인 일이며 속인의 방법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마치 양의의 방법이 근본적으로 병을 치료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매표를 시작하기 전에 나는 속인의 세일즈 기술 관련 책을 여러 권 읽었다. 읽고 난 후 꽤 도움이 된다고 여겼지만 매표과정 중에서 속인의 이치는 아주 낮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책들은 대부분 방법론상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돌파가 있으려면 반드시 심법(心法)에 공력을 들여야 한다. 그러나 이런 심성수련 방면에서 나 역시 매표가 끝날 때까지 줄곧 크게 돌파하지 못했다. 눈앞에 수만 명의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도리어 그들이 구도 받을 기연(機緣)을 붙잡도록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최근 어느 날 사부님의 한 단락 법이 내 머리에 떠올랐다. “집에 막 들어서자마자 당신의 배우자가 당신에게 욕을 한바탕 퍼부을 수 있는데, 당신이 만약 참고 지나갔다면 오늘 당신은 공(功)을 헛되이 연마(煉)하지 않았다.”(전법륜)
나는 단번에 “참음(承受)”이란 두 글자의 무게를 체험할 수 있었다. 사실 수련 중에서 옳고 그른 것은 중요하지 않으며 “감당(承受)”이야말로 근본이다. 내가 전에 일부 관을 넘길 때면 아주 고통스러웠는데 고통의 근본은 감당하지 않으려는 생각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참아낼 수 있었지만 마음속으론 감당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많은 일에서 사람의 이치를 사용해 옳고 그름을 따졌으며 여전히 감당하려 하지 않았다. 관을 넘는 가운데 소침한 표현은 여전히 감당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감당하려 하지 않으면 곧 일부 관과 난을 오래 끌게 된다. 만약 배우자가 한바탕 욕을 퍼붓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나 혹은 다른 일이 내게 닥친다면 이치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감당해냈다면 공을 헛되이 연마하지 않은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기사가 차를 빨리 몰았지만, 그가 일부러 사람에게 부딪치려고 했겠는가? 그는 본의 아니게 한 게 아닌가? 그러나 우리 지금의 사람은 바로 이러하다. 만약 그에게 돈을 좀 뜯어내지 않으면 이 구경꾼들조차 마음속으로 불만스러워한다.”
속인의 이치로 말하자면 기사가 잘못이지만 수련의 각도에서 보자면 자신이 틀린 것이다. 비록 자신이 사고를 당했지만 그러나 구체적인 모순에 봉착했을 때 첫 일념이 그 기사의 잘못을 찾는데 이는 모두 습관이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이 방면에서 또 한 번 나로 하여금 과거 수련 중에서 표면적인 것에 너무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고 사람 이 한 층차에서 너무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음을 일깨워주셨다. 표면을 투과해 수련의 근본을 보지 못했으며 서로 통하는 법리를 보지 못했다. 감당할 수 없고 감당하려 하지 않는다면 자비심은 아예 언급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매표 과정이거나 어떤 정법 일을 하거나 모두 감당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이 방면에서 나는 실로 너무나 부족한 것이 많았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내가 다년간 자비심을 닦아내지 못한 원인의 하나일 것이다.
최근 며칠 사부님의 또 다른 단락의 법이 내 머리에 떠올랐다.
“어떤 사람들은 다리를 틀지만 아픈 것이 두려워서 내려놓으며 견지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다리를 튼 시간이 조금만 길어져도 견뎌내지 못한다. 일단 다리를 내려놓으면 연마(煉)는 헛된다. 다리를 틀어 아프기만 하면 얼른 좀 움직인 다음 다시 틀지만, 우리가 볼 때 이것은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나는 그 어떤 정법 일을 하건 모두 견지(堅持)함을 소중히 여겨야 하며 다리가 아픈 과정을 거칠 수 있지만 절대 다리를 내려놓지 말아야 하며 견지해나간다면 이 관은 분명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션윈 매표과정 역시 마찬가지다. 비록 우리가 좌절에 봉착했을지라도 반드시 견지해야 하며 다리를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
션윈 매표가 끝난 후 내 마음속에 한 가지 염두가 떠올랐다. 그다지 바쁘지 않고 학위과정을 하나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논어”의 한 구절 법이 떠올랐다. “”불법(佛法)”은 가장 정심(精深)하며, 그는 세계 모든 학설 중에서 가장 현오(玄奧)하고 초상(超常)적인 과학이다.”
그렇다, 만약 이 세상에서 가장 현오하고 초상적인 과학을 투철히 연구한다면 다른 모든 일은 곧 쉽게 해결될 것이다. 만약 시간이 있다면 “전법륜”을 잘 읽고 연구해보라. 만약 법리에서 인식을 제고할 수 없다면 일을 해도 법력(法力)이 없을 것이며 다음 번 매표 역시 여전히 큰 돌파가 없을 것이다.
발표시간:2011년 3월 22일
정견문장: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11/3/22/7295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