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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리에 비춰 집착을 버리고 정념정행으로 병마를 제거하자

법리에 비춰 집착을 버리고 정념정행으로 병마를 제거하자

작자: 형심(馨心)

[정견망] 병업상태가 나타나는 마난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수련생들이 법에서 아주 많은 진지한 고견을 갖고 문장 교류를 했다. 많은 수련생들이 발정념을 통해 사악의 교란을 제거하고 법에 비추어 안으로 찾으면서 자신을 귀정(歸正)하고 원연(怨緣)을 선해하는 등으로 즉시 병업관을 넘고 몸은 정상 상태로 회복됐다.

하지만 어떤 수련생의 상태는 낙관할 수 없는데 장기적인 병업 상태 속에서 벗어나지 못해 아주 고통스럽고 아주 곤혹스럽다고 여기면서 어쩔 수 없어한다. 이를테면 발정념으로 사악의 교란을 제거하고 안으로 찾으며, 원연을 선해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해도 크게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장기적으로 마난 속에 처한 후에는 사람마음도 점차 갈수록 중해져 어떤 사람에게는 심지어 의심이 생기고, 어떤 사람은 병원에 입원하고 또 어떤 사람은 육체를 빼앗기기도 했다. 이런 현황을 겨냥해 우리 이곳 두 수련생이 마난을 이겨낸 경험과 결합하여 자신이 법에서 깨달은 조그마한 인식을 말해보려 한다.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표면 신체에는 여전히 아직도 병업이 좀 있다. 하지만 요만한 업력은 우리가 오직 심성을 제고하기만 하면 아주 빨리 돌파해 나갈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 마난 속에 처해 있을 필요가 없다. 업력에 관해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것을 무수한 여러 몫으로 나누어 당신이 수련하는 각개 층차 중에 배치해 놓고, 그것을 이용하여 당신의 心性(씬씽)을 제고하게 하고, 당신의 업력(業力)을 전화(轉化)하여 당신의 공을 자라게 한다.”(전법륜-스승은 수련생에게 어떤 것을 주었는가)

하지만 왜 아직도 장기적으로 마난 중에 있는 수련생이 있는가? 원인의 차이가 어디에 있는가? 사부님께서는 설법 가운데서 명확하게 지적하셨다.
“또 하나는 바로 교란당하는 것이다. 교란 당함을, 당신은 늘 누가 교란하면 나는 그것을 소멸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누가 교란해도 다 안 된다고 여긴다.(뭇사람들의 웃음) 그러나 당신은 왜 생각해 보지 않는가. 왜 당신을 교란하는지를, 무엇 때문에 당신을 교란할 수 있는지. 자신에게 무슨 집착이 있는 것이 아닌가? 내려놓지 못한 것은 없는가? 무엇 때문에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가? 진정한 원인은 자신의 이곳에 있기 때문에 그것이 틈을 탈 수 있다!”(대뉴욕지역 법회에서의 설법과 해법)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정진요지 -도법”에서 우리에게 경고하셨다.
“당신들도 “자연(自然)”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필연(必然)”이란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조건 안으로 찾아야 하며 그런 다음 병에 따라 약을 써야 하고 법에서 자신을 귀정해야만 비로소 막다른 골목에도 길이 열리는 정경이 나타날 것이다.

갑 수련생은 전 한 동안 이가 몹시 아파 밥도 먹을 수 없고 잠도 잘 수 없었다. 장시간 발정념을 해도 효과가 보이지 않았고, 원연을 선해 해도 나아지지 않았으며, 안으로 찾아도 자신이 어디에서 잘못하고 있는지 찾을 수 없었다. 남편은 속인인데 외지에서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갑 수련생은 더욱 고뇌하게 된다. 본래 이가 아파서 못 견딜 지경인데 아무 일 없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고, 남편이 속사정을 안 후 대법에 이런 저런 말을 하고 또 병원에 가자고 할까 두려웠다. 하루는 그녀가 우리 집에 와서 이 일을 교류하려고 했는데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아파서 앉아 있을 수가 없었고 이를 악물고 참아도 지탱할 수 없었다. 별 수 없이 얼굴을 찡그리고 말했다. “미안해요, 난 정말 견딜 수 없어요. 나중에 다시 교류하기로 합시다. 난 집에 가야겠어요.”

나는 그녀가 아파하는 그 모습을 보고 좀 더 강인하게 조금만 더 참고 교류해 보자고 격려해 주면서 물었다. “기왕 선해도 하고 안으로 찾아도 소용없고 또 이렇게 심하게 아픈데 아플 때 모두 어떤 생각을 했어요?” 그녀가 말했다. “아프기 시작하면 가슴을 파내는 것 같이 고통스러워. 난 아픈 게 너무 두려워, 그건 사실 참을 수 없으니까 아픔이 두렵다고 말하는 거야.” 내가 들어 보니 느껴지는 바가 있어서 잇따라 그녀의 사고를 계발해 주었다. “이 두려움이 집착심이 아닌지 생각해 보세요, 스스로 확고하게 이 두려운 마음을 버리고 다시 자신의 관념을 바꿔서 이 아픔을 좋은 일이라고 여겨 보세요.”

이어서 나는 또 그녀에게 “전법륜-주화입마” 중의 한 단락 법을 암송해 주었다.

“사람이 정말로 기가 통하지 않는 것은 무슨 문제를 조성하지 않는다. 흔히 다 우리 자신들의 정신작용이고, 또 기가 정수리에 올라가면 무슨 편차(偏差)가 나타난다는 가짜 기공사들의 말을 듣고 그는 두려워한다. 그가 이렇게 두려워하면 진정으로 번거로움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당신이 두려워하기만 하면 곧 공포심으로서 그것은 집착심이 아닌가? 당신의 집착심이 나오면 당신의 집착심을 제거해야 하지 않는가? 두려워할수록 더욱 병과 같이 되는데, 당신의 이 마음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되며, 당신에게 이번 교훈을 받아들이게 하여, 공포심을 버리고 제고해 올라오게 한다.”

뜻밖에도 이 단락 법을 다 외우지 않았는데도 그녀가 기뻐서 외쳤다.
“조금도 아프지 않아요! 정말 너무 신기해요!”

수련이란 바로 이렇게 신기하고 이렇듯 초상적이다. 그녀가 집착심을 맞게 찾아낸 후 치통은 기적처럼 나았다. 그야말로 “사람 마음을 덜면 악은 스스로 패하리라”(홍음2)였다!

또 을이라는 수련생이 있는데 이전에는 줄곧 아주 정진하던 것이 지난 해 여름부터 현지의 그녀와 연계 있던 수련생이 사악에게 납치당하자 두려운 마음이 일기 시작해 집을 떠나 와지에 가서 일하면서 장시기 동안 법공부도 연공도 하지 않고 사람을 구하는 발정념도 다 중지했다. 사람마음이 갈수록 중하여 결국 사악에게 틈 탈 기회를 주어 지독한 박해를 당했다. 지난 10월부터 병태가 심각해져 배가 아파 참을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온 후 안으로 자신의 거대한 격차를 찾아내고는 속으로 몹시 후회했다. 수련생을 불러 그와 함께 법 공부를 하고 교류하며 발정념을 돕게 하고 선해하는 등을 했지만 도무지 효과가 없었다.

속으로는 병이 아님을 알면서도 밤낮으로 이어가는 장기간 통증의 시달림을 감당할 수 없었으므로 끝내는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한 가지 일이 끝나자 다른 일이 또 볼가져 나올 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이 증세가 나으니 또 더욱 심한 다른 병이 나타났다. 반년 동안 줄곧 마난의 고통 속에 처해 있었고 선후로 많은 수련생들이 도와주었으나 호전이 없었다. 그녀는 실망과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 번은 또 여러 수련생들이 그녀를 도와 교류와 토론을 했다. 그녀의 상황을 파악한 후 한 수련생이 그녀에게 연공, 가사일, 나가서 사람을 구하는 상황을 물었다. 그녀는 배를 부둥켜안고 쓴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말도 말아요, 아파서 허리도 펼 수 없고, 숨도 쉬기 어려워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나도 끊임없이 발정념으로 사악의 박해를 제거하고 있지만 그래도 소용없어요. 사부님 설법을 나는 다 알고 있고 다 써 봤지만 소용없어요. 난 지금 당초의 누락을 정말 후회해요! 이번엔 잘 됐어요. 나는 정진실수 해야 하겠어요.”

한 수련생이 말했다.
“당신의 분석을 통해 보니 당신은 여전히 박해를 승인하고 있기 때문에 줄곧 낫지를 않는 겁니다.”

을은 그의 견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수련생은 이어서 말했다. “당신은 불복하지 마세요. 당신은 방금 소개에서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행위상에서 그것을 승인한 것입니다. 당신이 비록 사상 중에서 발정념으로 교란을 부정하지만 행위상으로는 오히려 그것을 자양하고 있는데 어찌 제거할 수 있겠습니까. 또 당신의 진정한 수련에는 조건이 있는데 반드시 나은 다음에야 정진실수 한다는 것입니다. 왜 우선 정진실수를 하지 않습니까? 이는 “전법륜” 중에서 언급한 “내 병이 나은 다음 나는 수련하겠다”는 그 사람과 무슨 구별이 있어요?” 이어서 수련생은 그녀에게 사부님의 한 단락 법을 암송해 주었다. “나는 리훙쯔(李洪志)의 제자이다. 다른 배치는 다 필요 없고, 모두 승인하지 않겠다. 그러면 그것들은 감히 하지 못하므로 모두 해결될 수 있다.”(2003년 정월대보름설법)

을 수련생은 그 수련생이 아직 다 외우지도 못했는데 다그쳐 말했다.
“나도 늘 그 단락 법을 외우고 있어요, 그래도……”

수련생은 을 수련생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
“당신이 늘 암송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당신은 진정으로 법의 요구대로 하지 않았으므로 당신은 교란 박해를 배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방금 하신 그 설법에 이어서 말씀하셨어요. “만일 당신이 정말 할 수 있다면,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할 수 있다면 사부는 반드시 당신을 위해 처리해 줄 것이다.”(“2003년 정월 대보름 설법) 그렇다면 물어봅시다, 당신은 행동으로 했나요? 당신은 행위상 이것도 하지 못하겠다 저것도 못하겠다고 하는데 사부님께서 어떻게 당신을 위해 처리해 줄 수 있나요? 사부님께서 조급해 하셔도 방법이 없죠. 사악의 교란을 배제하려면 반드시 실제 행동을 보여 주어야 해요. 밥을 해야 한다면 밥을 해야 하고, 연공을 해야 할 것이면 연공을 해야 하고, 사람을 구해야 한다면 나가서 사람을 구해야 하지요. 총체적으로 말하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이면 무엇을 해야 하며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잘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처하기 위해 하는 건 아니지요.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정념정행해야 합니다.”

이어서 수련생은 또 사존의 관련 설법을 다시 외웠다.
“수련인이 중시하는 것은 정념이다. 정념이 아주 강하면 당신은 무엇이든 모두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신은 수련인이고 당신은 신의 길을 걷는 사람이며, 당신은 속인 요소와 저층 법리에 통제당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로스앤젤레스시 설법),

“수련이란 곧 어려운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든지, 사악이 미친 듯이 박해하든지, 생사에 관계되든지를 막론하고, 당신이 여전히 수련의 이 한 갈래 길을 확고하게 걸어가면서 인류사회 중의 어떠한 일도 수련의 길에서 행보를 교란할 수 없게 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정진요지2- 길)

“진정한 겁난(劫難) 중에서 또는 관(關)을 넘는 중에서 당신은 시험해 보라. 참기 어려운 것을 당신은 참아 보고, 보기에 안 되고 행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을 그러면 당신이 한번 시험해 보라. 도대체 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만약 당신이 정말로 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로 고난 속에 광명이 있음(柳暗花明又一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전법륜) 등 대법 내용이다.

사부님 법리는 정말로 마음 속 매듭을 풀어주고 집착을 타파하는 황금 열쇠다. 교류를 통해 을 수련생은 사부님 법리와 대조하면서 진정으로 자신의 부족한 곳을 찾아내고 마음속으로 부터 우러나와 법에서 자신을 귀정하고 앞으로 정념정행으로 행동 상에서 사악의 교란과 박해를 부정하며 용맹정진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하여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신성한 사명에 어긋나지 않겠다고 표시했다. 을 수련생은 이때부터 말한 대로 했고 얼마 안 되어 정상 상태로 회복됐으며 조사정법, 중생구도의 길에서 자신의 서약을 실현하고 있다.

실로 병태를 조성하는 마난의 원인은 천차만별이라 절대 일률적으로 논하지 말아야 한다. 상술한 두 가지 예는 벽돌을 던져 구슬을 끌어들이려는 것으로서 근본적인 의도는 사고의 방향을 제공하고 설명하려는데 있다. 즉 마난은 두려울게 없으며 오직 우리가 법리에 비추어 안으로 찾아보며 진정으로 법에서 자신을 귀정하고 근본 집착을 버리기만 하면 마난은 저절로 풀릴 것이며 심지어 스스로 파탄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법의 위력이고, 사부님의 자비이며, 불법의 신기하고 초상(超常)함이다.

바로 사부님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정진요지2 -교란을 배제하자). 하지만 이 일체의 일체는 모두 전제가 있는바 다만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에게만 소용 있는 것이다. 대법 원칙을 위배하고 행동하거나 이름만 걸어놓고 전혀 실제로 수련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따로 논의해야 할 것이다.

개인의 조그마한 인식이니 부당한 곳은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발표시간: 2012년 10월 12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113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