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은난망(師恩難忘)
―사부님께서 금주에 법을 전하신 16주년을 기념
【정견망 2010년 4월 7일】 1994년 4월 5일은 위대하신 사존께서 금주(錦州)에 오셔서 법을 전하신 날이다. 우주에서 가장 영광스런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는 4월 5일을 “금주대법의 날”로 정했다. 역시 이날부터 나는 운 좋게 반본귀진의 길로 들어섰다.
1. 법을 얻다
나는 올해 66세이다. 내 인생의 길은 매우 험난했다. 세 살 때 모친이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 언니, 오빠와 의지하며 어렵게 살았다. 당시 집안이 가난해 내일을 기약할 수 없었다. 내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목숨을 유지하기가 어려워 부친은 나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보낸 몇 군데에서 나는 머물지 못했고 부친의 다리를 잡고 울었으며 부친은 방법이 없어 나를 안고 돌아왔다.
어느 해 동짓날 매우 추웠다. 부친이 나를 안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이미 얼어서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당시 삼촌이 나를 품에 넣어 따뜻하게 덮혀주셨다.
7,8살 때는 외할머니 집에서 놀다가 2시경 돌아왔다. 큰 강을 건너야 했는데 가까운 길을 찾다가 강을 건너기로 했다. 처음에는 물이 얕다고 생각했는데 안으로 몇 걸음 들어가자 깊어졌다. 나는 단번에 미끄러져 들어갔고 필사적으로 버틸 때 반대편에서 마차를 타고 가던 큰 아버지가 보고 나를 끌어 올렸다. 그 일 이후 어른들은 내가 재난은 많으나 명이 길다고 하셨다. 이제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받은 고생은 모두 내가 오늘 법을 얻기 위한 기초를 닦은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일찍부터 나를 관여하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15살 때부터 일을 하기 시작했다. 방직 여공(女工)들은 3교대를 했는데 잘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게다가 가정 조건도 열악해 노동의 피로가 쌓여 병이 되었으며 갑상선기능항진증, 심장병, 위염, 정맥혈관 경화증 등 각종 질병을 앓았다. 매일 약을 한 웅큼씩 먹었으나 전혀 차도가 없었다. 이때 내가 겪은 고생은 말로는 다 할 수 없다. 나중에는 직장에도 다닐 수 없어 집에서 8년을 쉬었다. 병을 고치기 위해 각종 기공을 연마해 보았다. 어떤 것은 3년을 했는데 병이 낫지 않고 새로운 병이 생기기도 했다.
1994년 4월 5일 사부님께서 금주에 오셔서 법을 전하셨다. 나는 한번 시험해본다는 생각으로 학습반에 참가했다. 학습반에 참가한 후 사부님께서 신체를 청리해주셨는데 느낌이 매우 편안했다. 8월 경 나는 또 하얼빈에 가서 설법을 들었는데 이때도 신체를 정화해주셨다.
학습반에서 돌아온 후 내 병은 씻은 듯 사라져버렸다. 1994년부터 지금까지 나는 한 알의 약도 먹지 않는다. 법을 얻기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고 실제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 자전거를 타고 농촌에 대법자료를 보내고 진상을 말하느라 왕복 5,60리 길을 걸어도 피로를 모른다. 큰 포대의 자료를 지고 먼 지경으로 도보로 40여리의 길을 왕복 네 시간에 돌아온다. 일체는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며 나는 사부님과 대법에 감사드린다.
2. 견정하게 호법하다
1999년 7.20 강택민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했을 때 당시 중국대륙은 온통 붉은 공포였다. 중공은 또 “천안문분신자살 사기사건”으로 전 세계를 독해시켰다. 나는 마음이 급해 천안문에 달려가 사부님과 대법의 결백을 실증했으며 자료를 나눠주면서 중생을 구도했다.
한번은 요녕성 호도로(葫蘆島)에 가서 자료를 나눠주다가 현지 파출소에 잡혀 간수소에 들어갔다. 간수소에 들어간 후 나는 박해에 반대하고 단식했다(당시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깨달았다) 노란 조끼를 입지 않고 감옥 규정을 외우지 않으며 연공을 견지 했다. 나중에 불법으로 재판이 열리자 나는 법정에서 진상을 알렸으며 대법을 실증하다가 4년 형을 언도받고 2004년 말 불법으로 요녕 여자감옥에 보내졌다.
감옥에 도착하자 사람 마음이 중하고 법리가 분명하지 못해 굽은 길을 걸었다. 사부님의 점오하게 나는 곧 깨났고 우리는 박해 중에서 수련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나는 자료를 가지고 감옥경찰에게 진상을 말하며 사악을 폭로했다. 어느 여자 경찰이 진상을 알고 난 후 다시는 악행을 하지 않았고 나중에 전근해서 떠났다. 또 한사람이 왔는데 나는 즉시 엄정성명을 써냈다. 나는 정정당당한 대법제자가 되려고 한다. 사부님과 대법의 결백을 돌려다오, 악경은 각종 잔인하고 비굴한 방법으로 내게 박해를 진행하여 나는 온갖 수난을 겪었으나 나는 대법을 수련하려는 결심을 동요하지 못했다.
“대각자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거늘
의지는 금강으로 만들었구나
생사에 집착이 없으니
정법의 길은 탄탄하여라” <홍음2>
나는 사부님과 법이 있음을 굳건히 믿고 반드시 이 난관을 걸어 나갈 것이고 조사정법하며 중생을 구도해 사전의 소원을 실현할 것이다.
3. 최후의 길을 잘 걷다
출옥한 후 2개월 집에서 법공부하며 심성을 제고했다. 그러나 내가 사부님의 법상을 볼 때 사부님이 대법제자에게 동시에 세 가지 일을 하라고 요구하셨으므로 나는 사부님이 안배하신 길을 걸어야 했다. 처음에 두려운 마음과 체면 때문에 감히 밖에 나가서 말하지 못하고 집안에서 가족과 친척 친구들에게만 말했다. 나중에 고향에 친척들을 찾아뵙는 기회 혹은 혼례에 참가하는 기회에 자료, 디스크를 가지고 가서 친구들에게 진상을 했는데 효과가 좋았다. 점차적으로 나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 자기를 잘 수련하는 과정임을 깨달았다.
사부님의 보호 아래에 나는 농촌의 큰 시장으로 가서 중생을 구도하기 시작했다. 내가 사용하는 자료의 양이 많기에 자료점의 동수는 힘들어 했고 그래서 나는 내가 스스로 자료를 만들 생각을 했다. 남편과 상의하여 컴퓨터를 사서 가정 자료점을 세웠다. 나는 인터넷에 연결하고 다운받고 자료 만드는 법을 배워 자료점의 꽃이 갈수록 잘 피고 자기의 수요를 만족시키며 다른 동수의 급한 자료를 해결할 수 있었다.
농촌에 가서 진상을 잘할 수 있도록 자전거를 사려고 했다. 남편과 말을 하니 남편은 곧 자전거 한 대를 사주었다. 일체는 사람이 하는 것 같지만 모두 사부님이 안배해주신 것이다. 왜냐하면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린 것”<전법륜>이기 때문이다. 현재 나는 버스를 타던 물건을 사던 가는 곳마다 진상을 말한다. 정부 관리이던, 불구자건, 거지건 모두 나의 구도대상이며 나는 그들에게 “파룬따파하오, 진선인 하오”를 알게 하며 대법의 아름다움을 세인들에게 가져다준다.
사부님은 제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셨는데 갚을 길이 없다. 자신을 잘 수련하고 세가지 일을 하여 사전 서약을 실현하여 보답하는 길밖에 없다.
층차가 유한하여 타당치 못한 곳이 있으면 자비롭게 시정해주기 바란다.
발표시간:2010년 4월 7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10/4/7/6539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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