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동진(同真)
【정견망】
사부님의 최근 설법 년 샌프란시스코 법회설법》을 학습한 후 감촉이 아주 깊었다. 처음 느낌은 시간적인 긴박감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전에도 내내 시간이 긴박하다고 하셨지만 이번에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부터 시작하여 당신들의 상태를 좀 바꿔라. 수련인 같지 않다! 나는 일찍이 말한 적이 있는데, 당신들은 또 언제까지 기다릴 셈인가? 당신들은 또 언제까지 기다릴 셈인가?! 시간이 없다.”
두 번째 느낌은 최후로 갈수록 자기 수련을 느슨히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2009년에 “처음처럼 수련하면 반드시 정과를 얻는다(修煉如初 必成正果)”고 말씀하셨는데 이번 설법에서도 “수련을 처음처럼”하는 법리를 언급하셨다. 이는 사부님께서 최근 몇년간 전반적으로 대법제자들의 수련이 처음 상태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보셨다는 뜻이다.
나는 최후로 갈수록 더욱 자기 수련을 느슨히 하면 안됨을 체험했다. 아래에 이 방면의 체험을 이야기 해보겠다.
1. 정의 미혹에서 벗어나다
나의 학창시절은 마침 연애소설이 유행할 시기였다. 당시 중학생들은 오락거리가 별로 없어서 연애소설을 읽는 것이 낙이었다. 당시 나는 잘 썼다고 느껴 책에서 묘사한 감정의 연애 편지내용을 많이 외웠고 머릿속에 정에 대한 내용이 많이 주입되었다.
17년간 수련하면서 이런 것들은 줄곧 내게 큰 교란이 되었다. 당시 머릿속에 주입된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인데 수련 후에도 줄곧 희미하게 남아 사상이 깨끗해지지 않았다. 매번 이런 방면의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면 나는 머릿속으로 하늘을 나는 듯한 상상을 하는데 늘 자신이 남자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수련생이 꿈속에서 색의 관문을 넘기지 못해 후회하는 예를 말씀하셨다. 때로는 나도 꿈에서 색관을 넘는데 늘 꿈에 도취되어 현실 중에는 명백히 할 수 있는 것도 꿈에서는 하지 못한다. 때로는 깨어나서 후회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나중에 사악에 박해받아 감옥에 7,8년 갇혔는데 이 방면에서 수련을 잘하지 못한 것과 큰 관계가 있다.
감옥에서 줄곧 반성했지만 내 상태는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했다. 출옥 후 사부님께서는 어느 기업에 일자리를 안배해주셨다. 그 회사에는 7,80명의 직원이 있었는데 남자는 셋뿐이었다. 하루 종일 여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나는 이것이 사부님의 안배임을 안다. 최후의 색욕지심을 버리는데 하루 종일 여자들 사이에서 행위상 당연히 수련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단속하지만 사상적으로는 허튼 생각을 하곤 한다.
한번은 어느 직원이 아주 괜찮다고 느꼈다. 얼마 되지 않아 그녀가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저는 외로우니 함께 하는 게 어때요?” 나는 이 메시지를 받고 자신의 사상을 검사해보았다.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나타나는가? 반드시 나의 사상이 바르지 않아 초래한 것이다.’ 나는 그녀를 찾아가 진상을 알리고 내 신분을 밝히며 삼퇴를 시켰다. 그리하여 자신을 해탈하고 상대방을 구할 수 있었다.
나중에 또 다른 직원이 내게 애매한 메시지를 보내왔다. 나는 이 방면에 마음이 깨끗지 못함을 의식하고 근원을 깊이 조사하고 정념으로 교란하는 일체 색마를 제거했다. 그러자 이 관은 곧 지나갔다. 현재 나는 어떤 정이나 색 등의 내용에도 전혀 흥미가 없다.
나는 사부님의 안배와 홍대한 대법으로 인해 비로소 정의 진흙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2. 증오하는 마음을 버리다
우리 가족 삼대는 중공의 피해를 입었다. 어려서부터 나는 이 악당(惡黨)에 대해 좋은 감정이 없었다. 학교 다닐 때 특히 “6.4천안문”에서 박해받은 학생을 동정하며 이 악당을 증오했다.
검은 소굴에서 불법으로 잡혀 있을 때 줄곧 모든 경찰을 적으로 여겼다. 한번은 어느 감옥경찰이 《전법륜》을 거두어 갔다. 소굴에서 돌아온 후 이 일을 생각할 때마다 특히 이 경찰을 미워했으며 속으로 속인의 무슨 방법으로 그를 한번 혼내주려고 생각했다.
나중에 이런 염두가 갈수록 강해져서 때로는 가부좌 할 때도 생각이 났고 법을 외울 때도 생각이 났다.
법으로부터 나는 나중에야 깨달았다. 경찰이던 공안, 검찰, 법원 계통의 직원이든 그들은 모두 박해받은 대상이며 정법 중에서 구도해야 할 중생이다. 그러나 “증오”의 장난으로 전에 경찰을 보기만 하면 바로 사악을 생각했고 경찰을 사악과 함께 줄을 그었다. 그들을 보통 세인(世人)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에 대해 근본적으로 자비심이 나오지 않았다. 실은 많은 경찰도 사악요소의 통제를 받아 대법제자를 박해한 것이며 우리는 그들 배후의 사악을 제거하면 많은 경찰은 진상을 알 수 있다. 이 미움을 버리지 않아 이 층의 이치를 몰라서 자신의 제고에 영향도 주고 엄중하게 중생 구도의 큰일에 장애가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년 샌프란시스코 법회 설법》에서 “박해에 참여한 그 한 무리, 기만당해 도둑 배를 탄 사람에게도 당신은 그에게 선으로 대해야 하는데”라고 말씀하셨다.
‘증오’의 해로움을 똑똑히 알게 된 후 다시 모든 중생을 보니 무슨 직업이든 모두 불쌍한 중생이고 모두 우리가 구도할 대상이며 사람을 구하는데 분별심이 있을 수 없었다. 법리상에서 명백해진 후 나는 전에 나를 화나게 했던 사람과 일도 다 풀린 것을 발견했다. 마음속으로 모든 중생이 진상을 알고 구도 받을 수 있도록 희망하는 마음이 일어났고 대법의 무한한 자비와 아름다움을 체험했으며 대법에 대한 굳건한 마음이 일어나고 중생구도의 긴박함을 느꼈디.
3.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을 철저히 내려놓다
막 수련을 시작했을 때 나는 자신을 엄격히 요구했다. 다른 사람의 선물은 일체 받지 않았으며 혹 체면 때문에 받을 경우 다른 이에게 주었다. 하지만 근래 자신을 돌아보니 이 방면에서도 완전히 처음 수련할 때의 상태와 같지 않았다. 나는 직장에서 직원들의 복지를 책임지고 있다. 우리 회사는 직원 이동이 비교적 많아 종종 통계를 낼 때 변동폭이 큰 편이다. 가령 어떤 직원은 이미 이직했는데 떠난 직원의 복지비를 사무실에 남겨 놓기도 했다. 최근에 이는 완전히 속인의 교활한 심리임을 인식했다. 왜냐하면 비록 내가 가지지 않고 사무실용도로 남겨놓았다고 하지만 실제로 누가 썼는가? 여전히 자신이 썼고 자신이 다른 모양으로 가져다 쓰는 것과 차이가 없다.
사악에게 잡힌 시간이 길기 때문에 검은 소굴에서 돌아온 후 생활 방면에서 비교적 곤란했다. 이 때문에 “이익지심”이 일어났다. 이때부터 나는 “이익지심”은 본래 변이된 생명이며 세인은 그것의 주재를 받아 미친 듯이 변하고 정법제자는 그것의 교란을 받아 자기 제고에 장애가 되며 사람 구하는 큰일을 놓친다.
우리가 내심에 있는 탐심이 있기만 하면 “이익지심” 이 악마는 용모를 바꾸어 사람의 대뇌를 움직여 사람의 정신을 좌우하며 사람의 정화를 빨아들이고 심지를 삼킨다. 사부님의 《유럽법회설법》에서 말씀하시기를, “어떤 한 가지 것이 이 세간에서 발붙이고 설 수 있고 성립될 수 있으려면 모두 반드시 관건적인 원인이 있어야 한다. 바로 그것이 반드시 이 공간 중에 한 마당을 형성해야 한다. 이 마당은 물질이 존재 하는 것이다.”
수련은 정말 엄숙하다. 우리는 정말 자기의 일사일념을 잘 파악해야 한다. 법에 부합되지 않은 변이된 생각을 발견하면 반드시 제때 발정념으로 제거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재앙의 크기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람과 신은 일념의 차이로 조금만 해이해지면 사람 여기로 끌려온다. 때로 자기를 느슨히 하면 다만 사람의 이쪽으로 조금 가까워지며 아마 이 조그마한 점이 홍수가 터지게 하는 그 개미구멍일 것이다.
인류사회는 대법제자가 수련하는 마당이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인류사회 역시 구세력이 박해하는 요소로 가득 차 있으며 만일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면 인류사회 역시 큰 박해의 장이 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 장에서 걸어나와 자신을 수련하고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 오직 처음 입문시의 수련 열정을 내어 일사일념을 대법으로 가늠해야만 비로소 바른 길을 걸을 수 있다.
사부님의 말씀을 생각해보자.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희망하는데, 당신들이 지금 이 시각의 이 심태를 유지해 나가기를 바라며, 대법제자답기를 바란다. 형세는 사람을 압박하고 있다. 그렇게 많은 생명이 당신들의 구도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매우 조급하다!” 년 샌프란시스코 법회 설법》
내가 처음 대법을 배울 때 경건한 마음을 회억해보며 자기 현재를 대조해보며 최후의 시각에 수련이 느슨해지지 않았는지 생각해보자. 사부님께서 조급해하지 않으시도록 이 시각부터 자신을 개변하고 원만에 이르기까지 처음처럼 수련하도록 하자!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2014/11/02/137476.在最後的時刻,千萬不要放松自身的修煉.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