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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능으로 법을 실증하는 것에 관한 몇 가지 깨달음

글/ 소련(小蓮)

【정견망】

최근 몇몇 동수들이 나에게 보다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기를 바란다고 희망했고, 이에 대해 자신의 상황과 결합해 여러분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1. 닫혀서 수련하는 동수는 공능이 있는 사람을 이성적으로 대해야

많은 동수들이 닫혀서 수련하는 상태에 있기에 자신이 부딪힌 일의 시작과 결과, 원인을 알고 싶어 한다. 열려서 수련하는 사람을 만나면 이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많은 경우 법에서 가늠하지 못해 쉽게 이끌림으로써 자신을 교란한다.

열려서 수련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해 사부님께서는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오직 이 대법(大法)에 따라 해야만 비로소 옳은 것이다. 남의 공능이라든가 신통이라든가를 보지 말아야 하는데, 일부 것을 보면, 당신은 곧 그를 따라갈 것이고, 곧 이렇게 받아들일 것이다. 당신은 그를 해칠 수도 있는데 그는 환희심이 생겨날 수 있어 최후에는 자신의 어떤 것도 다 잃어버리고 닫혀버려, 결국 떨어져 내려가게 된다.”[1]

사부님께서 기왕 우리를 미혹 속에서 수련하도록 배치하셨다면 이는 우리 자신에게 있어 가장 좋은 배치이며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배치다. 반드시 이 점에 명확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무엇을 말하는 것을 들어도 모두 많이 생각하지 말고 이끌리지 말아야 한다. 진정으로 ‘법을 스승으로 삼는데(以法爲師)’ 도달해야 한다.

2. 공능이 있는 사람은 닫혀서 수련하는 동수를 이성적으로 대해야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공능을 주신 것은 우리더러 동수를 교란하거나 또는 동수들 속에서 명예나 이익을 구하는 데 쓰라고 하신 게 아니라 우리더러 수련의 길을 더욱 잘 걸으라고 하신 것이다. 만약 이런 일이 나타나서 그것이 발전해 내려간다면 아주 번거로워질 수 있고 대법에 죄를 짓고 동수를 교란할 수 있으며 또한 자신에게도 가늠할 수 없는 손실을 끼칠 수 있다.

닫혀서 수련하는 동수와 협력할 때는 반드시 상대방의 상태와 걷는 길을 존중해야 한다. 가급적 상대방의 실제 상황에 근거해야 하며 상대방에게 호기심, 환희심, 바라는 마음이나 혹은 기타 사람 마음이 생기지 않게 하는 상황 하에서 해야 한다. 절대 자신이나 또는 공능 자체를 중시하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자신의 제한성 등 각 방면의 부족함을 인식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과 동수에게 큰 교란을 가져다줄 수 있으며 심지어 보완할 수 없는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간단하게 내가 부딪힌 상황을 말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20여 년간 글을 써왔기 때문에 각지의 많은 동수들이 다 나를 알고 있고 또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 이런 상황에 직면해 나는 인연에 따르며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절대 주동적으로 누구를 만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시간과 기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나는 지금껏 내가 남들과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동수들과의 연분을 소중히 여기며 나의 관념으로 누구를 가늠하지 않는다. 관점이 다르다고 해도 문제는 없고 오직 법에 있기만 하면 된다.

동수들과 접촉한 후 동수들이 준 피드백은 모두 정면적인 것이지만 그 속에는 많은 경우, 또 부러움, 숭배와 호기심과 같은 류의 사람 마음이 섞여 있다. 이런 사람 마음의 표현에 직면해 나는 오직 그들과 접촉하지 않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상대방에게 부족을 지적해주는 것은 한가지 방식이지만 일부 비이성적인 사람에게는 이에 대해 변칙적인 집착을 형성할 수 있다. 때문에 이런 상황에 직면하면 적게 접촉하는 것이 아주 좋은 선택이 된다.)

나는 동수를 교란하는 일이 절대로 나타나게 할 수 없다. 심지어 일부 그다지 이성적이지 않은 동수들에 대해 나는 비록 많이 접촉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묵묵히 내 방식으로 동수의 정념을 가지해준다. 다만 그가 모르게 할 뿐이다.

나는 사부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한다.

“제자들이여, 당신들은 우리가 진수(眞修)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속인의 명(名)ㆍ이(利)ㆍ정(情)을 내려놓는 것으로, 사회의 제도가 어떠하든지 당신들의 수련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집착을 하나도 빠짐없이 수련해야만 비로소 원만할 수 있다!”[주 2]

열려서 수련하는 상태에 있는 수련인은 많은 것을 좀 더 많이 알 수 있다. 만약 이때 일부 문제와 사람 마음을 분명히 알면서도 잘못을 저지른다면 그것은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은 닫혀서 수련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모두 마땅히 자신을 엄격히 요구해야 하고 시시각각 사부님의 관련 설법과 경문을 기억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자신과 동수에 대해 책임지는 표현이다.

3. 법에서 상호 협력

내 생각에 우리는 법에서 모두 명백히 아는데 어떤 종류의 부동한 수련 상태에 처해 있든지 막론하고 오직 자아관념을 품고 있지 않을 때면 아주 쉽게 상호 협력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서로 법에 있지 않으면서 표면적으로 너무 많이 접촉하면 서로에게 오직 교란과 상처만 가져다줄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 집착이 알아차리기 쉽지 않도록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사례를 들어보자. 한 동수가 내게 무엇을 해야 돈을 벌 수 있는지 봐주길 원했다. 나는 당신은 법을 이용하고 동수의 공능을 이용하는 것으로 이는 신에 대해 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한번 말하자 그는 분명히 알게 되었고 더는 이런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며칠 간격으로 나를 찾아와 대화하곤 했다. 다른 일을 언급하지 않았고 단지 내가 생각나서 보러 왔고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만 했다. 나는 당신은 사실 뼛속 깊은 곳에서 나의 공능을 이용하려는 마음을 아직 제거하지 못했고 다만 형태를 바꾸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다면 나를 보거나 또는 내 목소리를 들어서 무엇을 하겠는가!

닫혀서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열려서 수련하는 사람을 숭배하지 않는 것 외에 더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열려서 수련하는 사람에게도 부동한 정도의 제한이 있고 일부 일의 효과는 꼭 표면으로 반영되어 나오지 않는다. 아울러 닫혀서 수련하는 사람의 수련내용이 열려서 수련하는 어느 사람에게 ‘포함’되기란 불가능한데 그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열려서 수련하는 사람을 포함해 역시 부동한 정도의 미혹이 있고 설사 철저하게 개오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전체 우주천체의 모든 일을 장악하고 알기란 불가능하다. 내가 이해하기에 한 생명은 오직 자신이 있는 층차에서 인식한 것만을 알 수 있다. 또 아무리 인식이 높아도 모두 법의 전부를 알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우주 속의 중생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반드시 똑바로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열려서 수련하는 동수가 무엇을 말하든 표면공간에서는 효과를 볼 수 없는데 이럴 때 원망하거나 의심하지 말고 이성적으로 대해야 한다. 물론 전제는 열려서 수련하는 사람이 한 것이 모두 법에 있어야 하며 허황된 것을 하거나 또는 일부 소도(小道)의 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자신을 해치고 남을 해치는 범죄행위이다!

열려서 수련하는 사람은 앞에 언급한 일부 주의사항 외에도 또 한 가지 반드시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 어떤 때라도 자신의 능력을 중시하지 말아야 한다! 설령 직접 공능을 사용해 일부 일을 처리할 수 있고 또 그 효과가 즉시 나타난다 해도 마찬가지다.

몇 가지 작은 사례를 들어보자.

한 동수가 아주 엄중한 병업가상 상태에 처해 심지어 생명마저 위험했다. 이때 한 능력이 있는 사람을 만나 그를 도와 난관을 넘어가게 했다. 이때 만약 그 사람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이 동수는 아마 매우 위험했을 거라고 간주한다면 우리는 최소한 자신의 위치를 바로 놓지 못한 것이다. 설사 사실이라 해도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일찍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 동수가 병업이 위급한 상태에 처해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출현과 공능으로 도와준 동수는 모두 사부님의 장악 속에 있는 것으로 우리는 이때 오직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원용할 뿐이다.

만약 이 과정에서 우리의 사람마음이 증가한다면 그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하물며 이런 종류의 일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속한다.

만약 우리가 평소 모든 동수를 생각하고 보다 많은 관심을 갖고 법에서 공동으로 정진했다면 이런 일은 아마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를 잃고 나서 외양간을 잘 고치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우리는 한 마리 소도 잃지 않아야 한다. 외양간을 자주 잘 검사해 아주 튼튼하게 만들어 한 마리 소도 잃지 않는다면 이 얼마나 좋은가!

내가 한 말이 좀 절대적이고 객관적이진 않지만 많은 때에 우리의 사유가 늘 병업 동수를 위해 발정념을 하거나 또는 이럴 때만 동수를 도와 법에서 제고하고 안으로 찾게 하는데 머물러 있다면 이는 너무 피동적이다. 우리는 평소 동수의 상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아주 많은 후속 일들을 피할 수 있다.

나 개인을 말하자면 나는 동수와 협력해 한 가지 일을 완성한 후 나의 사유는 즉각 그 일과 단절시키고 더 이상 그 일 자체를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그 가운데서 경험과 부족을 총결할 뿐이다. 진정으로 자신을 조용히 한다.

개인적으로 표면적으로 동수가 내게 집착이 있는 것을 볼 때면, 나는 동수와 아주 드물게 접촉하며 상대방이 나의 협력을 이성적으로 법에서 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영원히 늘 동수와 함께 있다. 어느 계층이든 또는 어느 나라나 인종이든 막론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 부의 대법을 같이 수련하고 있는 동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우리의 힘이 더 크게 발휘되고 영향 역시 더 심원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법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필요한 교류와 참여는 나 역시 정상을 참작하고 고려한다. 내가 어떻게 하든 늘 동수에게 영향을 주거나 교란하지 않기를 희망하고 동시에 또 우리 함께 이 만고의 기연(機緣)을 소중히 여기를 바랄 뿐이다.

간단하게 개괄적으로 약간의 것을 써서 이런 종류의 상황을 만난 동수들에게 참고로 제공할 따름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수련은 정치가 아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64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