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석방행
【정견망】
돈황은 중국 고대 실크로드의 요지에 위치한데다가 천년을 이어가며 막고굴을 조성했고 그 속의 동굴 벽화와 채색 소조는 무의식중에 신(神)이 돈황에 모여든 역사와 상태를 견증했다.
동굴 속 신불(神佛)의 그림과 채색 조소는 정말로 다채롭다. 게다가 같은 이름의 신불의 조상(造像)도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른 스타일의 형상으로 그려져 있다. 이 벽화와 조소에는 부동한 시대 부동한 민족의 형상 특징이 드러나 있는데 이 한 점은 매우 얻기 어려운 것으로 후세에 직관적인 사료를 남겨주었다.
공양보살 제285굴 서위(西魏)
공양하는 선비족 사람 제285굴. 서위
여기서는 다만 그 중 몇 장의 그림을 골라 막고굴 벽화의 다양성을 설명하고자 한다. 상술한 회화 그림에서 우리는 부동한 시대의 화공들이 작품에 대해 자기의 이해와 해석이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이해와 해석 중에는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부동한 시대 및 부동한 나라 사람들의 형상과 내포를 드러낸다.
본문에서는 우리가 아는 하늘에서 돈황에 이런 다양한 문화를 배치한 뜻과 대체적인 과정을 말해보고자 한다.
열반경변(涅槃經變) 여러 민족의 왕자들 1. 제158굴. 중당(中唐)
역사상 어느 한 시기 삼계 밖의 비교적 낮은 층 공간 중에서 창세주께서는 수많은 우주 각 종류의 생명 대표들이 잇달아 이곳에 오는 것을 보시고는 그들의 이전 생명 특징과 사명에 근거하여 막고굴을 핵심구역으로 삼아 돈황에 상세한 배치를 하셨다.
열반경변 여러 민족의 왕자들 2, 제158굴. 중당
우리는 돈황 막고굴은 동진(東晉) 시기에 파기 시작해 원나라 말기까지 천여 년이 걸렸음을 알고 있다. 또 돈황 지역은 실크로드의 핵심에 있어서 왕래하는 사람들의 성분이 아주 다양했다. 오늘날 연구자들은 서방의 중앙아시아, 서남아시아 지역 및 한반도 여러 나라와 민족의 형상이 다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돈황 전체의 역사는 한마디로 하나의 농축되고 주문 제작한 중화문명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진한(秦漢) 이전은 문명을 다지는 시기였고, 한나라가 돈황 번영의 서막이었다면, 큰 막은 양진(兩晉) 시기에 열리기 시작해 각 막마다 신앙과 민족문화가 조금씩 나타났다.
신이 사람에게 개창하고 남겨놓은 요소들은 회화와 조소 기법을 통해 오늘날 사람들에게 형상으로 보여준다. 어디서 온 통치자든 이곳에 신앙의 족적과 신의 광채를 남겨놓았다. 명나라와 청나라 중기까지는 봉해놓아 보존한 기간이었고 이후 바닷길이 다시 열리면서 세계 각국 사이의 소통이 점점 많아졌다.
그래서 각 지역을 전전하던 신의 자손들이 다시 한 번 모종의 방식으로 중화 신전문화(神傳文化)를 인식하기 시작했고 청나라 말기 중화민족이 다재(多災)다난(多難)했던 시기에 돈황은 다시 한 번 세계가 주목하는 초점이 되었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은 중화 오천년 문화 중 가장 빼어난 정수는 바로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이념이다. 왜냐하면 본토의 도가, 유가 양대 신앙 체계에서 유래했든 아니면 외래의 불가 신앙 체계에서 유래했든 모두 이 이념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 ‘천인합일’은 ‘천인감응(天人感應)’처럼 그리 간단한 게 아니다. 사람은 더 높은 경지에서 친밀한 연대관계가 있다. 사람은 자연계에서 단순히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막고굴 벽화와 채색 조소로부터 반영되어 나온 문화원소로부터 보자면 시간적으로는 천여 년의 건축 기간을 거쳤고 지리적 각도에서 말하자면 한반도와 남아시아 등 광대한 지역과 관련이 있다. 이렇게 시간을 경도로 하고 지역을 위도로 하여 막고굴 불국(佛國)의 ‘문화구의’(文化球儀 마치 지구의처럼 문화의 지구의를 비유한 말)를 구성한다.
창세주께서는 부동한 천국에서 온 생명을 부동한 시간에, 부동한 특징을 구비하도록 배치하셨는데 여기서는 부동한 민족 화공의 손을 통해 나타내신 것이다. 이것은 극히 대략적으로 말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서위 시기의 한 화공이 법을 찾으러 다닌 경험을 통해 이 일을 설명해보겠다.
이 화공(가명: 상익常益)은 천계에 있을 때 보살이었다. 그녀는 비범한 지혜와 미모를 갖추었다. 나중에 창세주를 따라 그 한 층차로 내려왔다. 당시 창세주께서는 인간 세상에 신의 상태를 풍성하게 하고 드러내기 위해 질서 있게 부동한 시기에 따라 인간 세상에 어떤 형상과 옷차림을 지닌 부동한 방면의 사람들이 나타나도록 배치하셨다. 특히 중토(中土) 주변은 더욱 상세하게 배치하셨다.
우주 중의 부동한 신불(神佛)의 세계는 그야말로 셀 수 없이 많다. 부동한 신은 모두 인간 세상의 화면에 한 획을 “그리고” 싶어 했다. 왜냐하면 어떤 일은 신들 사이에 협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 상익보살과 다른 4,5명의 불타, 보살 등은 함께 서위 시기 사람의 형상과 복식을 배치했다.
남녀노소의 머리 장식 의상에서 심지어 얼굴형, 생활 관습에도 매우 자세한 배치를 했다. 배치를 마치자 도자기를 구워내는 것처럼, 만들어진 것은 (굽지 않은) 토우였으므로 불로 구워 형을 굳히는 과정이 필요했다. 다시 말해 많은 배치는 실천 중에 외재적 환경을 통해서 “소조”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두 번째 공정이었다. 부동한 성질의 배치는 부동한 차이점이 있어야 했고 다른 시공에서 이 시공으로 들어온 후에는 이곳에서 발을 딛고 펼쳐내는 과정이 있어야 했다. 물론 이런 것은 모두 사람의 사유와 결합해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
상익은 서위 시기에 자신의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북방을 전전하며 많은 곳을 돌아다녀야 했다. 북방은 유목 민족 지역에 속하는데 오래전부터 유목민족은 생활과 외부 환경 및 사람들과 사귀는 중에서 중원과는 다른 습관과 풍속이 생겨났다. 사실 이것 역시 창세주께서 배치하신 것으로 바로 인간세상의 방식을 통해 신의 요소를 펼쳐낸 것이다.
서한(西漢) 시기 그는 장안에 전생(轉生)했다. 그 생에 그는 화공이었으며 궁궐에서 직책을 맡았다. 나중에 신의 점화를 받아 궁정을 떠나 사방을 떠돌아 다녔으며 많은 중원지역의 풍습과 인정을 알게 되었다. 당시 비단길이 막 개통되었으므로 이방인들이 점점 많아졌고 그는 이역에서 온 사람을 통해 그들이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신앙이라는 두 글자에 대해 초보적인 인식이 생겼다.
어느 날 그가 어느 저택의 정원 밖에 도착했는데 이 집은 마침 집을 짓고 있는 중이었고 집이 매우 멋있었다. 그는 이것을 보고 그곳에서 그 집을 화폭에 담았다. 이때 그 집의 소저의 하녀가 물건을 사러 나왔다가 그가 밖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당시 40대였는데 인물이 아주 잘생겼고 또 아직 미혼이었다.
하녀가 돌아와서 소저에게 말했다.
“아가씨, 아침에 어젯밤 꿈에 대해 말씀하셨죠. 꿈에서 오늘 화가가 한 사람 올텐데 아가씨께서 그가 혼인의 인연이 있고 또 그를 도와 어떤 일을 완성해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소저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그러자 하녀가 아주 신비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 사람이 바로 밖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어젯밤 꿈에 아가씨가 본 그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소저는 그 말에 일어나 직접 나가서 확인하고 싶었으나 다시 생각하니 좀 신중하지 못한 것 같아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리고 하녀를 불러 말했다.
“네가 그 사람을 마당 안으로 불러 물을 좀 따라드려라.”
하녀가 소저를 쳐다보자 소저는 얼굴을 붉히며 꾸짖듯이 말했다.
“빨리 가 보거라!”
하녀는 눈치 있게 재빨리 마당을 나가서 상익을 집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물 한바가지를 길어주고는 마시라고 했다. 소저는 문 뒤에 서서 그를 훔쳐보았다. 보니 꿈에 본 그 사람이었다.
상익이 물을 다 마시자 소저는 하녀에게 부친을 불러오게 하고는 연유를 상세히 말했다. 다행히 부친도 매우 개방적인 사람이라 밖에 나가 상익을 객실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상익에게 일부 집안 상황과 현재 정황에 대해 묻자 상익은 있는 대로 다 대답했다. 소저의 부친은 인근에 유명한 목장(木匠)이었고 솜씨가 좋기로 아주 유명했다. 소저의 부친은 상익의 그림 솜씨를 한번 시험해보려고 목재를 몇 개 가져온 다음 정자(亭子)를 하나 지으려고 하는데 이 목재들을 이용해 최대한 정확한 도안을 하나 그려보라고 했다.
하지만 상익은 이런 도안을 그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곤란에 처했다. 이때 하녀가 그가 난처해하는 것을 보고는 소저를 찾아가 도와달라고 했다. 소저는 어려서부터 부친이 도안을 그리는 것을 도와왔기 때문에 이 방면에 기초가 탄탄했다. 본래 상익을 대신해서 한 장 그리려고 했지만 부친이 알아챌까봐 다만 가장 초보적인 초안을 그려 상익에게 주고는 무슨 양식의 정자가 보기 좋은지 또 어떻게 해야 최대한도로 이들 목재를 이용할 수 있는지 알려주었다.
하녀가 이 초안을 상익에게 전해주며 말했다.
“이건 우리 집 아가씨께서 그리신 것이니 한번 참고로 하세요.”
상익은 매우 고마워했다. 그가 이 초안을 자세히 연구해보자 그의 머릿속에 갑자기 신계(神界)의 상황이 떠올랐다.
그곳의 누대 정자는 모두 빛을 내고 있었고 다른 정자는 다른 기능과 문화 내포가 있었다. 어떤 정자는 심지어 그 경지의 아주 많은 요소들과 연대되어 있었다. 정자의 처마와 기둥은 매우 정교했는데 기둥 자체도 하나의 생명이었다. 그는 심지어 정자의 건축 과정을 보기도 했다.
그는 원래 화가였기 때문에 머리가 아주 잘 돌아갔다. 소저와 신이 이렇게 짚어 주자 그의 사로가 활짝 열렸다. 그는 곧 정자의 도안을 그려냈는데 매우 다채로웠고 매 기둥과 연결부분 등에 길상(吉祥)도안을 그려 넣었다. 이것은 소저와 부친을 매우 기쁘게 했다. 나중에 관청의 관리가 소저 부친에게 집과 정자를 지어달라고 부탁했을 때 상익이 늘 따라다녔고 그들은 많은 돈을 벌었다.
반년 정도 지나 상익과 소저는 혼례를 올렸다. 가정을 이룬 후 소저는 상익이 그림을 그릴 때 어떻게 하면 더 정확히 그릴 수 있는지 도와주었다. 오래지 않아 상익은 소저와 시녀가 사실 한때 하늘이 그의 회화 솜씨를 성취하도록 의도적으로 배치한 신(神)임을 알았다. 하지만 불행히도 상익은 그 생에 수명이 길지 않아서 2년 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대체적으로 배웠지만 정확하게 그리는 정도에 이르지는 못했다.
나중에 그는 또 북량(北涼)에서 환생했다. 그곳에서 그는 직접 북조(北朝)의 문화, 민속 등 각종 분위기를 체험했다. 동시에 막고굴에 가서 ‘참관’도 했다. 본래 붓 솜씨를 좀 나타내려 했으나 현재는 아니다, 현재는 그림을 그려도 남겨놓을 수 없고 전체적인 안배를 혼란시킬 것이다는 어떤 음성이 들렸다. 그래서 돌아가서 계속 그의 그림을 그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에 그는 또 일부 인도에서 서역을 거쳐 전해온 불가(佛家) 신앙에 대해 좀 알게 되었다. 이전의 근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또 신선계(神仙界)의 일을 좀 알았고 점점 신불(神佛)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시기 그는 유목민족으로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그 민족의 일부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나중에 그는 어느 귀족에게 그림을 그려주었는데 그 귀족이 당시 매우 기뻐했다. 그때 그는 다른 사람이 그에게 쓴 편지를 봤는데 편지에서 그를 매우 화나게 하는 일이 있었다. 그 귀족은 즉시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부하가 그 말을 듣고 두말 않고 그를 끌고 나가 머리를 잘랐다.
나중에 그 귀족이 그가 생각이 나서 상으로 1백 냥의 은자를 주라고 말하자 하인이 대답했다 “방금 죽여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그의 머리를 잘랐습니다.” 귀족은 그 말을 듣고 매우 놀랐다. 자신이 실언해서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임을 알았다. 하지만 사람이 이미 죽었으니 그를 후히 장사 지내주라고 했다.
그는 서위(西魏) 시기에 소원대로 화가로 태어났다. 이때 이곳에서는 ‘한화(漢化)’ 양식이 이미 열린지 제법 되었다. 하지만 이 역사 시기의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막고굴의 벽화와 채색조소는 비록 중원문화의 특징이 있었지만 여전히 북조의 민속 색채가 아주 짙었다.
이 시기에 그는 단지 화가였을 뿐만 아니라 또 “영혼과 소통하는 자”로서 직접 신령의 지시를 듣거나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듣고 보는 범위는 단지 회화와 관련된 범위에 국한되었다.
그는 누가 자신과 마찬가지의 사명을 가졌는지 알면 곧 그를 찾아갔고 그 사람이 그림에 기초가 있으면 그와 함께 그림을 배웠고 그에게 기초가 없으면 그 사람이 배우도록 했다.
비록 마음은 아주 좋았지만 필경 그는 듣고 보는 데 제한성이 있었다. 그래서 가끔 우스꽝스런 일도 있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당시 나이가 이미 70대인 한 할머니가 있었는데 신이 상익에게 이 할머니도 역시 장래에 막고굴에서 그림을 그릴 고급생명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러자 그는 억지로 할머니더러 그림을 배우게 했다. 하지만 노인은 눈이 어두워 색깔을 잘 구별하지 못했다. 그는 어쩔 수 없어 그만 두는 수밖에 없었다.
상익 역시 완고한 사람이라 이 때문에 신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신은 그에게 수백 년 후에 노인이 40대의 모습으로 변해 막고굴에서 그림을 그리는 장면을 나타내주었다. 그는 자기가 본 것을 사람들에게 말했고 모두들 하하 웃었다.
웃고 난 후 상익은 이런 경험을 종합해 더는 강제로 다른 사람을 끌고 와서 그림을 배우라고 하지 않았다. 나중에 그는 서위와 이전의 북위(北魏) 내지 북량(北涼) 시기의 벽화와 채색 조소의 특징이 표면적으로 사람 중에서 어느 지역의 문화요소와 대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이런 요소는 천계에서 어느 신의 요소가 함께 협력해서 완성한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당시 그에게는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무엇 때문에 이런 부동한 신들을 배치해 모두 막고굴에서 그들 각자의 상태를 나타내게 하는가? 이런 벽화는 아마 매우 오래오래 남아 있을 것 같은데.”
나중에 그의 솜씨가 날마다 성숙해짐에 따라(그 자신과 그 시대에 상대해) 마음속 불국 세계에 대한 그리움도 갈수록 강렬해졌다. 한번 그가 저녁에 잠을 잘 때 어떤 매우 아름다운 불국 세계에 도착했고 나중에 어느 대전에 도달했다. 몇 명의 천신(天神)들이 거기에서 이야기 하고 있었다.
한 신이 말했다.
“우리들의 법왕(法王)께서 창세주를 따라 인간 세상에 내려간 지 매우 오래되었는데 그가 지금 창세주와 인연을 맺었는지 모르겠네요?”
그러자 다른 신이 말했다.
“그럼 한번 봅시다.”
그래서 그들은 신통을 움직여 지상의 어린이 모양의 사람이 어느 부인의 품속에 안겨 있는 것을 보았다. 그의 이전을 보니 정말 창세주와 인연을 맺은 것 같았다. 상익은 그 어린이가 누군지,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싶었으나 곧 깨어났다.
이 꿈을 통해 그는 자기도 아마 창세주를 따라 인간 세상에 내려온 것이 아닌가 알게 되었다. 그럼 자기도 그 창세주를 따라 인간 세상에서 인연을 맺어야 한다. 이 생각이 들자 다른 문제가 나타났다.
“뭇신들은 무엇 때문에 인간세상으로 내려오는가? 인연을 맺는 것은 무슨 목적인가?”
그는 신선들에게 물어보았는데 그 신선들은 웃기만 할 뿐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는 아마 내가 이 두 가지 일을 알 때가 아직 안되었나 보다 생각했다,
나중에 그와 여러 사람들은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상을 만들수록 점점 더 신불(神佛)의 자비 상태를 깨닫게 되었다. 나중에 한동안 상익의 신체가 매우 괴로워 그림조차 그릴 수 없게 되어 집에 누워서 쉬어야 했다.
어느 날 밤 멀리서 어느 노파가 왔는데 그녀는 중앙아시아 사람 같았다. 머리는 은백색이고 지팡이를 짚었다. 노파는 침상에 와서 그의 병세를 자세히 관찰하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당신은 신선들이 왜 분분히 내려와서 창세주 및 신선들과 연을 맺으려는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소?”
그 말에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노파는 느긋하게 말했다.
“천상에서는 마치 당신의 신체가 괴로운 것처럼 모두 나쁜 요소가 침입하였고 당시 뭇신들이 해결할 수 없었는데 그들이 창세주를 만난 후 서약하고 내려온 거라네. 이것은 바로 창세주와 연을 맺은 후 자기의 경지를 바로잡고 다시 만들기 위해서라오.”
상익은 이 말에 머리가 좀 열리는 것 같았다.
“그럼 창세주와 인연을 맺으면 생명과 경지를 새로 빚는 효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노파가 웃으며 말했다.
“연을 맺는 것은 하나의 과정이고 그때가 되어 생명이 창세주께서 말씀하신 것에 따라 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네.”
상익은 그 말을 듣자 조급해서 말했다.
“그럼 창세주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제게 반드시 알려주세요.”
노파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도 잘 모른다네.”
상익은 풀이 죽어 별 말이 없었다.
노파는 그런 그를 보고 천천히 말했다.
“나도 지금은 정확히 모르는데 그것은 매우 오랜 이후의 일이기 때문이라네. 단지 그 때 창세주께서 인간 세상에 대법을 널리 전하시는 방식으로 생명이 알게 하실 것이며 오성이 있는 사람은 창세주의 요구에 따라 하면 진정한 구도를 받을 수 있다는 것만 알고 있다네. 구체적인 것은 나도 모른다네.”
상익은 이번에 명백해졌다.
노파가 떠나기 전 지팡이로 상익의 다리 부분을 세 번을 세게 때렸고 상익은 그 당시 매우 아팠으나 하루가 지나자 몸의 불편한 증상이 다 사라졌다.
몸이 나은 후 상익은 또 동굴로 돌아가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릴 때 그는 곧 후회했다.
“어째서 나는 노파에게 금생이나 장래에 어떻게 해야 창세주를 만날 수 있는지 물어보지 않았을까?”
그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그는 많은 신들이 분분히 이곳으로 오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마치 법회를 열려고 하는 것 같았다.
문득 어느 신이 북량 시기에 판 동굴을 보고는 말했다.
“속의 그림과 조각을 보니 이것은 우리 몇몇 신의 요소를 융합해 만든 동굴 같구려.”
다른 한 명의 신은 북위(北魏)시기에 판 여러 동굴을 가리키며 천상의 신과 신의 세계 요소의 연대관계를 일일이 설명했다. 심지어 어떤 많은 신들은 절벽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이것은 우리가 장래 여러 해 이후에 사람의 손을 거쳐 우리 천국 신(神)의 요소를 나타낼 곳이라고 했다. 많은 신들이 다 이렇게 말했다.
이때 상익은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
‘이 모든 것이 신이 나타낸 것이며 아울러 매우 오랜 시간을 끄는데 최종 목적은 때가 되어 창세주께서 인간 세상에 대법을 널리 전하는데 사용하기 위해서라고?’
그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뭇신들이 그곳에 꿇어앉아 창세주께서 이곳에 강림하시는 것을 보았다. 창세주께서는 부동한 천국세계 신의 상태를 나타내셨고 현재와 장래에 돈황에 굴을 (막고굴, 유림굴 등 부근에 판 굴과 회화 조소 등) 파는데 참여한 신들에게 다시 한 번 창세주의 자비와 지혜를 깨닫게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창세주께서는 뭇신들에게 반드시 이 일을 잘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이때 상익이 다급히 말했다.
“존경하는 창세주시여, 당신께서는 장래 어느 때 인간 세상에서 대법을 널리 전하십니까?”
창세주께서 자비롭게 말씀하셨다.
“황사로 묻힌 장경동(藏經洞)이 열려 돈황의 이름이 외국에 전해질 때이다.”
말을 마치신 창세주께서는 다시 한 번 뭇신(衆神)들에게 반드시 이곳의 일을 잘해야 한다고 당부하고 떠나셨다.
상익은 그 일생 동안 막고굴에서 신의 상태를 나타내는데 온 힘을 다 했고 나중에 그 공덕으로 천계로 돌아가 한동안 머물렀다. 또 몇 차례 전생을 거쳐 1950년 대 산서(山西)에서 태어났다.
성장한 후 그는 돈황 막고굴이 천년에 걸쳐 건축되었고 명나라 때 피폐해졌으며 장시간 황사에 묻혀 있다가 청나라 말기에 장경동이 발견되어 돈황의 이름이 세계에 떨쳤다는 것을 알았다. 이때 그는 내심으로 생명의 의의를 찾기 시작했다. 나중에 그가 파룬궁 창시인 리훙쯔(李洪志) 대사의 서적 ‘전법륜(轉法輪)’을 보았을 때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찾으려던 진법(眞法)임을 알았다. 이때부터 그는 반본귀진(返本歸真)의 길에서 매우 정진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일일이 거론하지 않는다.
바로 다음과 같았다.
뭇신들이 일제히 막고굴에 모이니
천국의 성스런 경지 현묘하고 수승하구나.
약속을 실천하기 위해 몇 차례나 윤회했던가
금조에 법을 들어 속세를 벗어나네!
眾神齊聚莫高窟
天國聖境玄妙殊
輪回多次爲踐約
今朝聞法紅塵出!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636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