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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착실히 수련해야만 신이 될 수 있어

글/ 해외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적지 않은 해외동수들이 장기간 일을 하는 속에 빠져 안으로 찾아 자신을 착실히 닦음을 망각한 것을 발견했다. 이는 그들로 하여금 장기간 한 층차 속에 머무르게 만들어 끊임없이 각종 마난(魔難)에 뒤엉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주었다. 이는 단지 진상을 알리고 법을 실증하는데 영향을 받게 했을 뿐만 아니라 어떤 동수는 심지어 수련해서 층차를 제고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신심(信心)마저 잃게 만들었다. 이는 대단히 위험한 것이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 제1강에서 이미 “진정하게 고층차로 사람을 이끌다” “부동(不同)한 층차에는 부동한 층차의 법이 있다”고 분명히 알려주셨다.

내 층차에서 이해하기에 사부님께서는 처음부터 이 두 가지 표제(標題)로 제자들에게 천기(天機)를 알려주신 것이다. 즉 일단 수련을 시작하면 곧 고층차로 끊임없이 우리를 이끌고 올라갈 수 있으며, 사람에서부터 부동한 경지의 신에 이르기까지, 다시 말해 부동한 층차의 신이 마땅히 알아야 할 천기와 법리를 끊임없이 드러내 보이신다.

당신이 만약 착실한 수련을 견지하지 못하고, 부딪히는 모순과 마난을 끊임없이 층차를 승화하고 업력을 제거하며 자신을 깨끗이 정화해, 신(神)과 보다 높은 신으로 나아갈 좋은 기회로 삼지 못한다면, 당신은 장기간 사람의 경지 또는 그중 한 층 신의 경지에 정체될 것이며, 이로 인해 업력이 산처럼 쌓이게 되어 결국에는 뒤얽힌 마난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이는 사부님의 말씀에 따르지 않은 결과다. 수련의 엄숙성 및 대법 수련의 위력과 신성(神聖)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실제적으로는 바로 착실한 수련을 견지하지 못해 조성된 후과이다. 왜냐하면 착실히 수련하지 못하여, 착실한 수련 후 사부님께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열어주시는 각 층의 천기와 법리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법을 실증할 방법이 없고, 자신이 사부님에 이끌려 끊임없이 고층차로 올라가는 과정을 체험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이 때문에 법을 볼 때 그 어떤 새로운 법리의 변화가 없고, 끊임없이 경지를 제고한 후 당신에게 펼쳐주는 각 층차의 법리를 볼 수 없게 된다.

그럼 곧 법에 대한 미혹(迷惑)을 조성하거나 심지어 신심을 잃게 만들 수 있다. 일부 해외제자들은 심지어 국내의 엄혹한 박해환경에서 고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은 높이 수련할 수 없다거나 심지어 자신은 아마도 근기가 차할 수 있다고 여기는데 이는 완전히 대법수련에 대한 오해이다. 사부님께서는 무소불능(無所不能)하고 대법은 법력(法力)이 무변(無邊)한 것으로 그 어떤 작은 일에서든 다 수련할 수 있다. 그 누구든 사람 속에서 당신의 신분이나 학력의 고하를 보지 않고, 또한 당신이 거주하는 곳에서 박해 유무도 보지 않으며, 오직 모순 중에서 당신의 사람마음을 용감히 마주하고 내려놓을 수 있는가 여부만 본다. 사람마음을 용감히 내려놓을 수 있다면 사부님께서 제자를 대함에 차별이 없는 것으로, 대법 중에서 수련하면 층차의 승화가 돌비맹진(突飛猛進)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부동한 층차에는 부동한 층차의 법이 있다’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석가모니는 보리수 아래에서 개공개오(開功開悟)한 후, 단번에 여래 이 층차에 도달한 것이 아니다. 그는 49년간 내내 법을 전하는 중에도 자신을 끊임없이 제고(提高)했다. 그가 매 층차를 제고할 때마다 돌이켜보면 방금 자신이 말한 법이 모두 맞지 않았다. 다시 제고한 후에 그는 말한 법이 또 맞지 않음을 발견했다. 그가 또 제고한 다음에, 그는 방금 말한 법이 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49년간 내내, 그는 모두 이렇게 끊임없이 승화했으며, 매 층차를 제고한 뒤마다, 그가 이전에 말한 법이 모두 인식상에서 매우 낮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이 단락을 깊이 믿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데 이는 또한 내가 다년간의 수련에서 진실하게 체험한 것이다. 많은 제자들도 모두 이런 절실한 체험이 있을 것이다. 법리는 우리의 착실한 수련에 따라 끊임없이 승화되는 것으로 수련을 잘하면 빠르기가 사람이 믿기 힘들 정도다.

내 주변에 한 동수가 있다. 작년에 나는 그녀가 가정 모순 중에서 엄격하게 자신을 찾아 좋지 않은 사람마음을 제거하자 법리가 곧 끊임없이 그녀에게 펼쳐졌고 매 한 차례의 마난과 모순에서, 상대방이 제아무리 나쁠지라도, 늘 자신을 찾자, 최근 몇 달 사이에 이르러 빠를 때는 때로 하루에 하나의 층차를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빠름을 보았다. 그녀는 내게 알려주기를 늘 수련에서 안으로 찾고 착실히 수련하는 천기를 알고 있다고 여겼었는데 원래 법리는 캐내는 것이 아니라 착실한 수련 후 사람마음을 제거한 후 사부님께서 펼쳐주시는 것이다. 만약 착실히 수련하지 않는다면 머리가 깨지도록 생각해도 생각해낼 수 없는 것이다.

그녀는 전에 각지설법을 볼 때면 착실히 수련하지 않아도 새로운 법리를 볼 수 있고, 보다 높은 천기를 볼 수 있다고 여겼다. 이는 완전히 호기심으로 사람마음으로 신만이 알 수 있는 내함(內涵)을 얻고자 한 것이다. 생각만 해도 얼굴이 다 붉어진다. 그녀는 몇 차례나 격동적으로 내게 말하길 자신은 수련에 몰두했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단지 자신을 찾고 사람마음을 찾으며 감추지 않고 남편이나 아이를 원망하지 않으면서, 진심으로 안으로 찾는 법리에 따라 하자 사부님께서 그녀에게 법을 보기만 하면 새로운 법리를 보여주셨는데 때로는 전체 책의 내용이 완전히 새로운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녀의 몸에서 점오(漸悟)의 과정이 아주 뚜렷이 드러났다. 그녀는 몇 번이나 내게 말하길, 자신은 마침내 어디서든 다 수련할 수 있고 다 수련 성취할 수 있음을 알았노라고 했다. 법리가 승화되었기 때문에 그녀는 명혜(明慧)문장을 보면 많은 국내 동수들의 마난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 수 있었고, 박해 속에서 어떻게 해야만 비로소 옳은 것인지 알게 되었으며, 설령 문장을 보기만 해도 자신이 승화하고 있고 내심의 신(神)의 상태가 갈수록 더 뚜렷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내게 감격해서 말하길, 수련을 20여 년간 해왔음에도 불과 최근 2년에야 수련을 알게 되었고, 헛되이 낭비한 십 수 년의 시간을 돌아보면 후회가 막급하다고 했다. 때문에 그녀는 사부님께서 여전히 그녀에게 기회를 주신 것과 또 모든 제자들을 위해 결속(結束) 시간을 연장시켜 모두들 사람에서 걸어 나와 신을 향해 걸어가도록 기다려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리고, 앞으로 오직 분초를 다퉈가며 수련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만 사부님의 고심(苦心)한 기다림과 양성에 미안하지 않을 수 있노라고 했다.

나의 수련 중에서는 무슨 언급할만한 가치가 있는 큰일이 없었다. 사람 속에서 내 신분은 바로 아이를 키우는 가정주부다. 또 편집 업무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정황에서 나는 바로 생활 속 작은 일에서 자신을 닦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부님께서는 내가 엄격하게 자신을 찾을 때마다 마찬가지로 곧장 업력을 제거하고 고층차로 밀어주셨으며 신적(神跡)을 펼쳐내주셨고 고층의 법리를 펼쳐내 주셨다. 앞서 동수가 언급한 책 전체의 내함이 완전히 변한 것 같은 감수가 최근에도 늘 발생하는데 갈수록 더 명확해짐을 느끼는데, 대법의 위대함은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다.

아주 작은 예를 하나 들어본다. 딸은 이미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나더러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 많이 간섭하지 못하게 한다. 현대관념과 법률이 이러하기 때문에 나 역시 그녀를 존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엄마로서 자식에 대한 정이 있기 때문에 나는 늘 그녀가 도덕이 타락한 남자친구를 사귈까 걱정하곤 했다. 물론 이런 일이 실제로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그때 나는 이런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다.

어느 날 딸아이가 외출하는데 아주 잘 차려입었고 내게 아무 말도 없이 나갔다. 나는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온갖 상념이 일어났다. 어떤 남자를 만나기로 약속한 게 아닐까? 다른 사람에게 속으면 어떻게 하지? 하고 생각했다. 딸은 수련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나는 자신의 두려운 마음이 나온 것을 의식하기 시작했고 단번에 자신에게 이것은 사람마음이고 자녀 정을 닦는 것이니 반드시 내려놓아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마음속으로 또 끊임없이 이런 두려운 마음을 끊어버렸다. 전에는 이렇게만 해도 곧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나에 대한 사부님의 표준이 이미 변했음을 나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단지 이렇게 하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았다. 이번에 나는 완전히 이 두려운 마음을 없애버릴 수 없었다. 단지 끊임없이 자신에게, 사부님의 법리는 우리더러 사람은 각자 명(命)이 있으며 모든 것은 다 잘 정(定)해져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분명히 알려주지 않았는가? 마땅히 일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면 그럼 일이 생길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또 자신이 이미 수련했다고 여겼다. 이는 과거 나의 수련경험과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깨닫지 못한 것을 보시고 동수더러 전화를 걸게 하셨다. 나는 동수에게 자신이 근심한 과정과 어떻게 닦았는지 과정을 말했다. 그러면서 동수가 나더러 제때 자신을 찾고 두려운 마음을 닦아버렸다고 칭찬해줄 거라 여겼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녀는 한마디 말로 나의 문제를 일깨워주었다.

“당신은 제고해야 하며 늘 원래의 방법에 정체되어 있어선 안 됩니다. 당신이 만약 신(新)수련생이라면 분명 당신을 인정했겠지만 당신은 이미 노(老)제자랍니다. 또 이렇게 법을 깨닫는 것은 너무 차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두려운 마음을 위로하면서 두려운 마음을 내려놓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이는 당신의 두려운 마음이 사부님의 법리를 찾아내 그것을 위로하는 것으로 당신이 수련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아직도 발견하지 못했나요? 이 문제에서 당신 자신의 두려움이 닦고 있는 것으로 당신이 닦는 게 아닙니다. 때문에 당신의 두려움이 늘 제거되지 않는 겁니다. 당신은 지금까지도 그것을 자신과 분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두려움 속에서 두려움을 닦으면 영원히 두려움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진정한 생명은 신(神)으로 근본적으로 두려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두려움은 당신이 아니며 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신이 아닙니다. 이는 당신의 가아로 한층 신체가 당신의 몸에 달라붙은 것으로 빨리 그것을 분리시켜야지만 사부님께서 당신을 도와 그것을 제거해주실 수 있습니다.”

나는 그제야 크게 깨달았다. 원래 이랬었구나, 사부님께선 동수의 입을 빌려 내게 점화해주신 것이다. 이와 동시에 나는 온몸이 가벼워졌고 신체가 변화하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이어서 법공부의 내함이 완전히 변했으며 모든 마음을 마땅히 어떻게 제거해야 할지, 완전히 새로운 이해가 생겼으며 층차의 승화도 아주 확실히 체험할 수 있었다. 원래 모든 정서적인 감수는 다 나 자신이 아니었다. 과거 사람이 사람마음을 보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사람 층차의 것이 아주 분명히 보였고 더는 자신을 쉽게 이끌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또 나더러 이런 인식에 정체되지 말라고 하셨고, 아주 빨리 원래 모든 사람마음과 가아(假我)의 형성은 전부 구세력(舊勢力)의 배치이며 생생세세 배치 속에서 누적되어 내려온 것으로, 완전히 구세력이 억지로 더한 것이다. 어느 한 마음의 출현도 배치기제 하에 정해지지 않은 것이 없으며 언제 어떤 마음이 나올 것인가 역시 모두 구세력이 원래 잘 설계한 것이었다. 때문에 진짜 자신은 하나도 없었고 내재적으로 자신의 인체에 원래 있었던 집착심이든, 각종 부면(負面) 정서든 아니면 외래 교란이든, 다시 말해 천목으로 본 사악한 생명이 당시 우리에게 나온 사람마음이 있다는 구실로 틈을 타서 교란을 조성했다는 느낌은 전부 다 자신이 아니었다.

이번 역시 한 가지 작은 일에서 안으로 찾아 명백해진 것이다. 다시 말해 이때 이후로 나는 집착심에 대한 이해가 더욱 명확해졌고 구세력의 박해를 철저히 부정하는 것에 대해 더욱 명백해졌다.

안으로 찾아 형성한 기제(機制)는 나로 하여금 언제 어디서든 자신을 제고할 수 있게 했고 법리도 따라서 승화할 수 있게 했다. 이후 나는 아주 단호하게 이런 사람마음들을 대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일단 나타나기만 하면 곧 명백해졌다. 이는 나의 사람마음이 아니라 구세력 그것들이 일찍이 배치한 내 육체상의 것을 쳐서 나오게 하여 나더러 느끼고 승인하게 한 후 내 마음이 흔들리면 곧 더욱 가중(加重)한 후 뒤이어 일찍이 잘 배치된 난(難)을 내 몸에 더하려 한 것이다.

그것들의 수법을 간파하고 나는 단호히 부정했다. 모든 사람마음은 전부 내가 아니며 기회를 노려 나쁜 짓을 할 생각을 단념하라. 그러자 사람마음이 갈수록 더 옅어졌다. 일단 조짐이 나타나기만 하면 즉시 잡아서 그것을 해체했다. 이렇게 할 수 있게 되자 장기간 착실한 수련에 점차적으로 도달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지 못하면 당신이 사람마음을 감수하기만 하면 고통 등의 정서를 전부 자신으로 여긴다. 설령 법리(法理)가 그것들은 당신이 아니라고 알려준다 해도 단지 이런 설명이 있다는 것을 알뿐 진정으로 믿지 못한다.

물론 나의 층차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매 사람이 제고하는 상태가 똑같을 순 없다. 나 역시 단지 한 가지 작은 사례를 들 수 있을 뿐이며 게다가 단지 나의 개인적인 길에 불과할 뿐이다.

내가 절실히 깨달은 것은 고층 법리의 천기(天機)는 오직 착실한 수련 후에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착실히 수련하지 않으면 영원히 사람 층차를 벗어날 수 없다. 사부님께서 펼쳐주시는 고층의 법리가 없으면 그럼 고층 법리의 지도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신(神)으로 나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수련은 대단히 엄숙한 것이다. 오직 착실히 수련해야만 비로소 신이 될 수 있다. 우리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다그쳐 모순 속의 기회를 소중히 여기며 다그쳐 제고해 올라가도록 하자.

개인 층차에서의 작은 감수와 깨달음이니 옳지 못한 곳이 있다면 시정해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64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