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선사(先賜)
【정견망】
수련(修煉)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말하면 아마 ‘대체 누가 수련을 모른단 말인가?’라며 비웃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어리석어서인지 20여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진정으로 수련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하니 여러분들이 농담으로 여기고 들어주기 바란다!
사이트에는 매번 늘 마음을 닦은 체험이 올라오는데 특히 최근에는 끊임없이 안으로 찾는 좋은 심득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이 자리에서 명혜(明慧)와 정견(正見) 동수들에게 감사드리고 또 사심(私心) 없이 수련심득체험을 올려준 여러 벗들에게도 감사드린다!
현재 나는 수련에는 3가지가 포함된다는 것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첫째, 안으로 찾음을 배워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동수들이 언급했고 부끄럽지만 내가 그들만 못하니 새삼스레 여러분들의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 나는 다만 ‘쟁투심(爭鬥心)’에 대해서만 말해보고자 한다.
나는 쟁투심이야말로 만악(萬惡)의 근원임을 절실하게 느낀다. 중국인들은 70여 년 간 공산당 당문화에 물들어 모든 정치운동이나, 교과서, 사이트, 영화, 소설, 거리의 표어나 구호 등 어디서든 전부 투쟁이었다. 하늘과 투쟁하고 땅과 투쟁하며 사람과 투쟁하고 밥과 투쟁하고 술과 투쟁하고 부부간에 투쟁하고 고부간에 투쟁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투쟁하는데 누구를 보든 맘에 들어 하지 않고 누구든 불복하는 등등이다. 도처에서 다 싸움이고 다 투쟁이다.
우리의 사고나 사상 속에서, 언행에서도 곳곳에서 모두 투쟁이 체현되어 나온다. 나는 수없이 많은 꿈에서 억울함을 참지 못해 남과 싸운 적이 있고 심지어 꿈속에서 상대방을 주먹으로 때리거나 또는 침대 가장자리를 부순 적도 있다. 꿈에서 놀라 깨어보면 손이 온통 피투성이였는데 또 두 차례는 잘못해서 아내를 때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쪽에서 표현되는 것은 그리 심하지 않았다.
때문에 자신의 쟁투심을 발견하고 이를 제거할 수 있는가 여부는 확실히 아주 중요하다. 나는 약 20여 년이 걸렸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 쟁투심을 제거했으니 그것의 뿌리가 아주 깊고 해악이 아주 깊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수시로 쟁투심에 주의하며 발정념으로 그것을 제거한다. 그러나 매번 마난(魔難)에 부딪힐 때면 곧 잊어버리고 지나간 후에는 또 후회한다.
수없이 많은 사건들의 단련을 거쳤는데, 남이 나를 나쁘게 대하거나 나를 속이거나 나의 상황을 고자질하거나 나를 욕하거나 하는 등의 모순이었다. 실제 사건을 수없이 겪은 후 나는 문득 깨달았고 최후에는 마침내 수시로 마음속에서 자신이 수행인(修行人)임을 기억하고 자신의 사상과 행위를 닦아야 함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수행(修行)이란 저층차(低層次)의 호칭인데 만약 저층의 수행마저 잘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고층차의 수련(修煉)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쟁투심을 닦아내면 참는 것 역시 기본적으로 문제가 없게 된다. 그럼 자연스럽게 자신을 수행인으로 여길 수 있고 안으로 찾음을 배울 수 있다. 그럼 보다 많은 집착심을 찾아냄을 배울 수 있고 그런 것을 제거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쟁투심은 내가 직접 겪고 감수해보건대, 이는 수련의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대부분의 집착심이 모두 쟁투심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마 많은 동수들에게 있어 쟁투심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닐 수 있고 나보다 더 잘 닦았을 것이다!
당연히 내가 경험한 실제 사례를 거론하지 않아도 여러분 모두 흔히 부딪힐 수 있고, 동수의 문장에서도 늘 언급되며 심지어 매일 실제 사례를 만날 수 있다. 자신이 만난 실제 사례 중에서 넘어갈 수 있어야지만 착실한 수련이다!
여기서 나는 다만 아직도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모르는 동수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한다. 내가 장기간 승화(昇華)가 늦었던 이유가 바로 이 관건적인 부분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여러분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써내는 것이다.
두 번째는 ‘생사를 내려놓는 것’이다. 공포심과 두려움은 생사를 내려놓는 첫 번째 관(關)이다. 공포심과 두려움을 지녔다면 그럼 아무것도 아니며 심지어 속인만도 못한 것이다. 동수들의 심득체험 속에서 늘 이 문제를 언급하는데 그것은 사심(私心)의 초급적인 체현이자 사람과 신(神)의 근본적인 구별이다. 그해에 나는 천안문에 가서 현수막을 펼치는 것은 생사를 내려놓았기 때문에 사존(師尊)의 가호를 받을 수 있었고 5박6일간의 생사를 건 마난의 여행을 거치고 무사히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감옥을 나오던 날 새벽 감옥 창밖에 갑자기 전에 없던 새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즉시 내가 위험에서 벗어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 날 한 법학석사가 몇 시간 동안 나를 전향시키려 설득했는데 그 가운데 나는 단지 한 마디만 물었다.
“중국 법률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입니까?”
그러자 “헌법이 가장 중요합니다”라고 했다. 헌법이야말로 모든 법의 모법(母法)이고 형법(刑法)은 자법(子法)이다. 나는 “그럼 파룬궁은 합법적이고 내가 현수막을 든 것 역시 합법적이니 무슨 법을 위반한 게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나를 전향시키려던 사람이 여기까지만 하자고 말하면서 떠날 준비를 했다. “지금 마침 식사시간인데 식사를 하겠습니까?” 내가 밥을 먹을 수 있는지 묻자 그는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식사를 마친 후 감옥 친구들과 작별하고 그들 여러 날 돌봐주어 고맙다고 했다. 아울러 만약 내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다른 세인(世人)들에게 나는 절대 분신이나 자살로 죽지 않을 것이니 틀림없이 악경(惡警)들에게 살해된 것임을 알려달라고 당부했다.
이어서 경찰이 나를 재촉했고 경찰차는 교외 들판에 차를 세우더니 나더러 내리라고 했다. 또 방향을 알려주면서 이곳에서 북경으로 가는 차를 기다리라고 했다. 십여 분을 기다리다 차에 탔는데 차 위에서 갑자기 태양이 나타나는 감각이 있었다. 고개를 돌려 저녁노을을 보니 오색 무지개가 석양을 에워싸고 있었는데 마치 서쪽 하늘에 올라가는 다리가 걸린 것 같았다. 나는 즉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사존의 가호와 격려에 감사드렸다.
집에 돌아온 후 원래는 가부좌를 반시간만 해도 아파서 견디지 못했었지만, 다시 가부좌를 하니 한 시간을 해도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는 천리(天理)를 실증한 것이다. 고생을 겪고 상처 받으면 확실히 업을 없앨 수 있고 또 가장 빠르고 가장 직접적으로 업을 없애고 집착을 제거할 수 있다.
우리는 비록 박해에 반대하고 구우주(舊宇宙) 신들이 배치한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에 반대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사존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사존 외에 그 누구도 대법제자에게 무엇을 배치할 수 없다. 우리는 절대 승인할 수 없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박해를 감당하면 가장 빠르게 생생세세 지은 업을 제거할 수 있고 빚이 없으면 온몸이 가벼워지며 승화되어 신선이 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닌가. 그런데 무슨 두려울 게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모두들 귀(龜 거북)와 귀(歸)가 발음이 같고 뜻이 다른 글자임을 알 것이다. 거북이는 위험을 느끼면 머리와 꼬리 및 다리를 움츠리는데 만약 머리를 움츠리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장기간 움츠리면 더욱 집으로 ‘돌아갈(歸)’ 수 없는데 이것이 바로 여러분들이 잘 아는 ‘숙두오구(縮頭烏龜 직역하면 머리를 움츠린 검은 거북으로 흔히 겁쟁이라는 뜻으로 쓰인다)’다.
대법 수련자라면 마땅히 수사자처럼 용맹정진(勇猛精進)해야 한다. 수사자는 또 집안에서 싸우거나 불복하지 않는다. 때문에 두려움이 존재해선 안되며 두려움이 있다면 신계(神界)로 진입할 수 없다.
이렇게 법을 실증하는 일 속에 나는 법률(法律)의 중요성과 중요한 힘을 깊이 체험할 수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중공이 비록 법률을 중시하진 않지만 속인은 법률과 도덕을 중시하며 민중들 특히 대다수의 민중들은 법률을 중시한다. 우리가 구하려는 대상은 바로 법률을 중시하며 맹목적으로 중공을 추종하진 않는 사람들이다. 법률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데 근거이자 의지가 될 수 있다. 소위 도리를 따지고 이치를 따지는 사람들에겐 믿을만한 근거가 있어야지만 비로소 설득시킬 수 있다.
나는 모든 대법제자들이 법률을 이해하고 또 헌법 제35조에서 39조 및 5조와 41조를 기억했으면 한다. 아울러 또 말하고 싶은 것은 진상(眞相)이란 오직 여러 사람들이 모르는 사건을 드러낸 것이라 믿고 안 믿고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이것은 절대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것과는 다른데 진상을 알리고 권(權)하려면 믿을만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법률과 도덕이 바로 근거가 된다.
그러므로 나는 대륙 및 해외 대법제자들이 모두 이 점을 진정으로 알았으면 한다. 또 대면 진상이나 관광지 진상 및 속인에게 배포하는 전단지나 자료 속에도 모두 법률근거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냥 말로만 하지 말아야 한다. 법률근거가 포함된 진상자료를 국내외 모든 사람들이 다 알게 된다면 아마 사람을 구하는 작용이 전과는 달라질 것이다.
사존께서는 《생사의 고비에서 벗어나라》에서 “두려운 마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릇된 일을 할 수 있게 하며, 두려운 마음은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기연을 잃게 하며, 두려운 마음은 사람이 신을 향해 나아가는 데 있어서 생사의 고비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두려운 마음이 있다면 자신이 일반인이나 속인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수행자가 아니며 수련인의 자격은 더욱 없다. 사부님께서 어떻게 온몸에 업채(業債)가 가득한 일반인을 보호하실 수 있겠는가? 사존께서 배치하신 호법(護法)이 어떻게 집착심이 가득한 한 속인을 보호할 수 있겠는가? 물론 내가 직접 체험한 것처럼 생사를 내려놓는다고 해서 죽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법에 두고 자신이 어떤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는지 찾아서 제거하지 못했다면 빨리 제거하면 되는 것이다.
감옥에서 생사에 직면했을 때 당시 내가 떠올린 것은 속인 소설 속의 영웅인물이었다. 그들은 속인임에도 죽음 앞에서 굴하지 않았고 위기 앞에서도 약해지지 않았다. 하물며 나는 사부님께서 보호하시고 법(法)이 보호하는 수련인이 아닌가? 설사 정말로 죽는다면 나를 죽인 사람이 나를 대신해서 생생세세 지은 업을 갚고 나는 원만해서 귀위(歸位)하는 것이니 왜 즐겁게 하지 않는단 말인가? 당시에 나는 정말 이렇게 생각했다.
또한 대법을 수련하는 매 사람마다 모두 특이공능이 있는 것으로 금종조(金鍾罩), 철포삼(鐵布衫)도 모두 사용할 수 있다. 오직 마음이 바르기만 하면 폭행을 가하는 자에게 고통을 전이하거나 또는 자기들끼리 서로 때리도록 바꿀 수 있다. 끊임없이 악(惡)을 제거하는 구결을 외우면서 마음에 대법을 담고 견정하게 신사신법(信師信法)한다면 넘기지 못할 고생은 아무것도 없다.
살고 죽는 것은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 또 처음에 생사관을 넘기지 못한 사람이 교묘하게 이 겁난을 피해가려 해도 그 구세력이 당신을 놓아줄 수 있겠는가? 뒤로 갈수록 더해진 난이 더욱 커져서 더욱 넘기 어려워지니 정말로 목숨을 걸어야지만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른다.
세 번째는 색마(色魔)를 제거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지극히 중요한 문제이다. 나는 이렇게 다년간 줄곧 제거해왔음에도 깨끗이 제거하지 못했다. 최근 동수의 문장 《나의 윤회수련이야기: 생생세세 고진감래로 금생에 다시 만나다(五千歲元神 生生世世苦甜與今世相連)》을 읽던 도중 문득 사존의 점오(點悟)를 받았다.
우리는 생생세세 윤회 중에서 각기 다른 역할을 맡아왔다. 대왕이 되거나, 황후, 비빈, 태자, 왕자, 공주, 대신, 강도, 도적, 거지, 사찰에 들어가서 승려나 도사가 되거나 아니면 비구니나 수녀가 된 적도 있다. 또 남편이나 처자식이 된 경우도 있었고 때로는 남자 때로는 여자로 태어난 적도 있다. 물론 동물 종류로 연기한 적도 있다. 다시 말해서 금전권력을 누가 태어날 때 가져오고 죽을 때 가져갈 수 있었는가? 명예와 이익을 누가 태어날 때 가져오고 죽을 때 가져갈 수 있었는가? 생각해보라, 당신의 세포 속 분자 안에 있는 입자 위의 성구(星球)에 그렇게 풍부한 재보(財寶)가 있다한들 당신이 가져갈 수 있는가? 그곳에 그렇게 미녀와 미남이 많다 해도 당신이 따라갈 수 있는가?
우주 중에서는 또 복식(服飾 의복과 장신)을 입지 않는 신(神)의 경계가 있는데 속인수련 중에서 색심을 제거하지 못했다면 당신이 그곳에 갈 수 있겠는가? 절대로 안 되는 게 아닌가?
내가 이 심득을 써낼 때 사존께서는 이미 나를 도와 색욕심(色慾心)을 제거해주셨다. 이는 나 자신의 공로라 할 수 없고 사존께서 내가 온갖 방법을 강구해 이 마음을 제거하려는 강렬한 바람과 결심이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도와 이런 더러운 것들을 제거해주신 것이다. 여기서 사존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하지만 더 높은 경계에서는 여전히 무슨 마난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만약 색심의 나머지를 더 제거하려 한다면 나는 더 이상 종전과 같은 그런 난을 넘기진 않은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깨달을 수 없다. 색욕심을 제거한 당일 저녁 꿈을 꾸는데 꿈에 시험장에 들어가 문제를 읽어보니 내가 공부하지 않은 것이라 아예 손을 댈 수 없었다. 내가 막 조급해하는데 새롭게 사로(思路)가 정리되더니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깨어난 후 나는 건물을 올라가는 계단 입구를 찾았음을 깨달았다. 한 층을 올라가면 과거의 것들은 모두 적합하지 않아 새롭게 수련해야 하며 마땅히 더욱 용맹정진 해야 한다.
이 체험을 써내는 것은 다만 아직도 어떻게 닦아야 할지 모르는 그런 동수들, 수련이란 마천루의 입구로는 걸어 들어왔지만 1층에서 배회하면서 위로 올라갈 계단 입구를 찾지 못해 나처럼 마난과 유사한 것을 겪으면서 여전히 기초만 다지며 넘어가지 못하는 그런 동수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수련의 준비과목에 해당하는 이상 3가지 마음에서 다그쳐 수련을 잘하고 실천 속에서 이 세 가지를 잘 하면 진정으로 수련이란 마천루에서 위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를 찾을 수 있고 비로소 진정한 수련으로 칠 수 있을 것이다. 계단을 오르는 것이 비록 고생스럽고 아주 길긴 하지만 성공에 가망이 있을 것이다! 여러분들이 사존의 고심(苦心)한 구도를 저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다그쳐 이 세 가지를 잘하고 이 세 가지 집착심을 제거해 수련이란 마천루에서 정상을 향해 올라갑시다! 좀 더 힘을 냅시다!
다시 한 번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98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