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순임금 (하)
(1) 어진 사랑으로 나라를 다스려
3년 후 요임금이 순에게 선양하려 했다. 순은 정월 따로 길일(吉日)을 잡아 요임금의 태묘(太廟)에서 선양받았다. 순은 하늘에 제위를 계승한 일을 보고하고 천지(天地)와 사시(四時) 및 산천과 뭇신(衆神)들에게 제사를 지냈다. 아울러 사방 제후들의 알현을 받고 그들에게 규옥(圭玉 옥으로 만든 홀)을 나눠주었다.
이어서 순이 정사를 주관하기 시작했고 제후들이 천자를 알현하는 예법(禮法)을 만들고 인재를 선발했으며 전형(典刑)을 제정했다. 상고(上古) 시기에는 백성들이 순박하고 단순해서 나라에 법률이 따로 없었고 당시에는 오직 5가지 형벌로 악인을 다스렸을 뿐이다. 여기서 5가지 형벌이란 묵형(墨刑), 의형(劓刑), 월형(刖刑), 궁형(宮刑), 대벽(大辟)으로 주로 도덕에 의존해 사람마음을 단속시켰다.
순은 몹시 관대하고 어질어 비록 오형(五刑)이 존재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을 시켜 오형을 기물(器物)에 그리게 하여 백성들이 경계(警戒)로 삼게 했으며 설사 부득이하게 형벌을 시행해야 할 때면 가급적 신체를 해치지 않는 유배방식으로 오형을 대신했다. 순은 공공(共工)을 유주(幽州)로 유배하고, 환두(驩兜)를 숭산(崇山)에 유배했으며, 삼묘(三苗)를 삼위산(三危山)으로 몰아냈다. 또 자기 주장만 강하고 하늘의 법을 어긴 곤(鯤)을 우산(羽山)에 유배보낸 후 주살했다. 이 4명의 악인을 유배 보낸 후 천하의 민심이 크게 복종했다.
《여씨춘추》에 따르면 요임금이 순에게 제위를 선양하자 곤의 질투를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지위와 능력이면 마땅히 삼공(三公)의 지위에 있어야 한다고 여겼고 반면 순은 서인(庶人)이라 제왕의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다. 때문에 곤은 요임금의 선양에 찬성하지 않았고 또 요에게 자신을 삼공에 봉해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원하던 직위를 얻지 못하자 곧 불처럼 화를 냈고 그 후 순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으며 병사를 일으켜 모반하려 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징벌을 받은 것이다.
이외에도 전설에 따르면 황제(黃帝)에게 불초한 후손이 있었는데 후세인들이 혼돈(混沌)이라 불렀고, 소호(少昊)에게도 불초한 자손이 있어 궁기(窮奇)라 불렸으며, 전욱(顓頊)에게도 불초한 자손이 있어 세상에서 도올(檮杌)이라 불렀다고 한다. 여기에 진운씨(縉雲氏)의 불초한 자손 도철(饕餮)을 더해 이 네 악한 무리를 천하인들이 모두 두려워해 사흉(四凶)이라 불렀다. 순은 사흉을 가장 궁벽하고 먼 곳으로 유배 보내 사방의 요마(妖魔)를 방어하게 했고 이때부터 사문(四門)이 청정해졌고 천하에 악인이 사라졌다.
(2) 능력에 따라 인재 발탁
악인들이 징벌을 받자 천하의 인심이 진심으로 복종했다. 이에 순임금은 어진 인재들을 선발하기 시작했는데 오직 그 사람의 덕(德)만 보았다. 곤의 아들 문명(文命)이 재주와 덕을 겸비하자 순은 요임금에게 그를 추천해 부친의 뒤를 이어 물을 다스리게 했다. 문명은 바로 우리가 잘 아는 대우(大禹)로 하(夏)왕조의 개창자이다. 우는 곤이 실패한 교훈을 받아들여 전국의 지리와 지형을 자세히 관찰하고 지세(地勢)에 근거하고 오행에 순응해 주로 물을 소통시키는 방법으로 물을 다스렸다. 우는 치수(治水)에 나선 지 13년간 안위(安危)와 노고(勞苦)를 따지지 않았고 악천후에도 중단하지 않았으며 3차례나 자신의 집 앞을 지나가면서도 집안에 들어가지 않았고 마침내 치수에 성공했다.
대우를 등용해 치수에 성공한 외에도 순은 또 어진 덕을 지닌 팔개(八愷)와 팔원(八元)을 등용했다. 전욱에게 어진 덕을 지닌 8명의 자손이 있었는데 세상에서 이들을 가리켜 팔개로 불렸고 제곡(帝嚳)에게도 8명의 아주 어진 덕을 지닌 자손이 있어 팔원이라 불렸다. 이들 16명은 모두 아름다운 덕행을 지녀 천하 백성들의 칭찬을 받았다. 순은 이에 팔개를 등용해 그들에게 후토(后土)의 직책을 맡아 각종 사무를 처리하게 하자 각종 사무가 조리 있게 처리되었다. 순이 또 팔원을 천거해 천하에 오교(五敎)를 널리 선양하게 하자 가정이 화목해지고 천하가 크게 순종했다.

순은 30세 때 요임금을 처음 알현했고 33세 때 요임금의 선양을 받아 섭정했으며, 50세 때 천자의 직무를 전적으로 수행했다. 58세 때 요임금이 붕어하자 순은 3년간 복상했다.
3년 복상이 끝난 후 순은 제위를 요의 아들 단주(丹朱)에게 주고 자신은 도성을 떠나 남하(南河)의 남쪽으로 피했다. 하지만 천자를 알현하러 오던 제후들이 모두 단주에게 가지 않고 순이 있는 곳으로 왔으며 소송을 하는 사람들도 모두들 단주를 찾지 않고 순을 찾아왔다. 사람들이 모두 순의 공덕을 찬양했고 단주를 칭찬하는 사람이 없었다. 순은 이것이 하늘의 뜻이라 어길 수 없음을 알고 이에 다시 도성으로 돌아와 정식으로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
순이 막 제위에 올랐을 때 부친인 고수(瞽瞍)는 아직 살아 있었다. 순은 늘 천자의 수레와 복식을 갖추고 부친을 찾아뵈었으며 예전처럼 공경하게 모셨다. 순이 제위에 오른 후 많은 어질고 덕이 있는 사람들을 등용했으니 팔원과 팔개 및 우 외에도 고요(皐陶), 설(契), 후직(后稷), 백이(伯夷), 기(夔), 용(龍), 수(倕), 익(益) 등을 등용했다.
우(禹)에게 사공(司空)을 맡겨 토지를 관장하고 물과 땅을 다스리게 했으며, 기에게 후직을 맡겨 농업을 책임지고 백성들에게 온갖 곡식의 파종을 가르치게 했다. 또 설을 사도(司徒)에 임명해 교화(敎化)를 주관하고 오교(五敎)를 널리 선양하게 했으며, 고요를 사(士)로 삼아 사법(司法)을 주관하게 했다. 또 수(倕)를 공공(共工)으로 삼아 장인들을 총괄하게 했고, 익(益)을 우(虞)로 삼아 산택(山澤)을 주관하게 했다. 백이를 질종(秩宗)으로 삼아 제사와 예의를 주관하게 했으며 기(夔)를 전악(典樂)으로 삼아 음악을 관장하게 했다. 또 용(龍)을 납언(納言)으로 삼아 임금의 명령을 전달하고 민정(民情)을 보고하게 했다.
이렇게 어진 덕이 있는 많은 이들의 보좌를 받자 천하는 갈수록 더 잘 다스려졌다. 순은 또 관원에 대한 심사제도를 만들어 3년에 한 번씩 심사하게 했으며 9년에 3차례 심사를 해서 합격하지 못한 관원은 파면하고 어질고 능력 있는 관원을 발탁하자 천하가 밝고 맑아졌다.
(3) 악무 창작
천하게 크게 다스려진 후 순은 사람을 시켜 《대소(大韶)》라는 음악을 창작하게 했다. 《대소》는 6대(代) 악무의 하나로 모두 아홉 장으로 구성되어 《구소(九韶)》 또는 《소소(簫韶)》로 불렸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순이 사람들에게 《대소》 악무를 연주하게 하자 9장 공연이 끝난 후 봉황이 날아와 춤을 추며 알현했고 온갖 짐승들이 이 음악을 들은 후 모두 따라서 춤을 추었다고 한다.

공자가 제(齊)나라에 있을 때 일찍이 《대소》를 듣고는 마음을 빼앗겨 석 달 간 고기 맛을 모를 정도였는데 당시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음악이 이런 경계(境界)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해보지 못했노라!”
이것이 바로 《논어》에 나오는 저 유명한 공자가 석 달 간 고기 맛을 몰랐다는 일화다. 공자는 또 이 음악을 평가하면서 “진미(盡美)하고 또 진선(盡善)하다”고 했다.
이를 통해 상고시대 음악의 고심하고 박대(博大)한 내함(內涵)과 경계를 알 수 있으니 듣는 이로 하여금 마음이 깨끗해지고 욕심이 줄어들면서 수신양성(修身養性)하고 도덕을 제고시키고 심령(心靈)을 정화시키며 내심 깊은 곳에서 천지와 신령에 대해 공경하게 만든다. 이는 마땅히 음악의 진정한 의미와 작용이라 할 수 있지만 애석하게도 이들 상고 악무는 지금 모두 실전되어 전해지는 것이 없다.
이외에도 순은 5현으로 된 거문고를 연주하면서 《남풍가(南風歌)》를 지었다고 한다.
“훈훈한 남쪽 바람 솔솔 불어와(南風之薰兮)
우리 백성들의 맺힌 앙금 다 풀어주겠네(可以解吾民之慍兮)
남쪽 바람 때맞춰 솔솔 불어오니(南風之時兮)
우리 백성들의 재물이 늘어나겠네(可以阜吾民之財兮)”
한편 순의 누이 과수는 부모와 형제들이 서로 다치지 않도록 도와주어 후세에 찬양을 받았다. 그녀는 또 그림에도 조예가 아주 깊어 이번 차례 인류문명 노정 중에서 최초의 회화의 역사에 오른 인물이 되었다. 즉 그림의 시조라는 의미에서 화조(畫祖)라 불리는데 또는 화루(畫嫘)라고도 한다. 《열녀전》에서는 그녀에 대해 “마음에 조화가 있고 별도로 신의 기교를 갖췄다(造化在心,別具神技)”라며 찬양했다.
(4) 하늘이 상서(祥瑞)를 내리다
순이 재위할 당시 천하가 아주 잘 다스려졌기 때문에 하늘에서는 끊임없이 상서(祥瑞)를 내렸다. 《송서(宋書)》 기록에 따르면 순이 제위에 있을 때 명협(蓂莢)이 계단에서 생겼고 봉황이 정원에 둥지를 틀었으며 온갖 짐승이 춤을 추었고 경성(景星)이 방수(房宿)에 나타났으며 지상에서는 신령하고 상서로운 말인 승황(乘黃)이 나타났다. 아울러 곤륜산의 서왕모가 찾아와 알현하고 순에게 백옥 반지와 옥결(玉玦)을 선사했다고 한다.

《죽서기년》에도 순임금 때 서왕모가 와서 백옥반지와 옥결을 선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순임금 때 하늘에서 경운(卿雲)의 상서로움이 나타났고 이에 순이 백관들과 함께 서로 노래를 주고받으며 경운을 찬양했다고 했다.
순이 먼저 노래했다.
“찬란한 경운이여
광휘가 넘쳐흐르는구나!
해와 달의 빛이여
밝고 또 밝구나!”
(卿雲爛兮 糾婆漫兮 日月光華 旦複旦兮)
그러자 여러 신하들이 화답했다.
“밝고 밝은 하늘이여
별들이 찬란히 늘어섰네.
해와 달의 빛이여
한 분으로부터 펼쳐지네”
(明明上天,爛然星陳,日有光華,弘於一人)
그러자 순이 또 노래했다.
“해와 달의 운행에 질서가 있어
별들도 정해진 궤도를 운행하네
사계절의 변화가 도를 따르니
만백성이 성실하구나
나보다 음악을 더 잘 다스려
하늘의 뜻에 배합하네
성현에게 제위를 옮기면
천하에 따르지 않는 자가 없도다
북을 울리고 춤을 추어라
정력과 재주가 이미 다했으니
물러나고자 하노라”
日月有常 星辰有行 四時從經 萬姓允誠
於予論樂 配天之靈 遷於聖賢 莫不咸聽
鼚乎鼓之 軒乎舞之 精華已竭 褰裳去之
이것이 바로 역사적으로 아주 유명한 《경운가(卿雲歌)》이다. 이 노래는 중화민국 시기 2차례 수정되어 중국 국가(國歌)가 되었다.
(5) 제위를 선양한 순
순의 정비인 아황(娥皇)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여영(女英)이 상균(商均)을 낳았으며 그 이외에 또 8명의 서자(庶子)가 있었다. 하지만 이들 모두 도(道)나 덕(德)을 언급할 나위가 없었다. 때문에 순은 천명을 받들어 치수에 큰 공을 세우고 천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우에게 제위를 선양했다.
《송서‧부서지(符瑞志)》에는 순이 전에 요임금이 했던 것처럼 황하 강변에 제단을 설치했다고 한다. 제사를 마치고 어둑해질 무렵 사방에서 상서로운 기운이 올라오더니 한 마리 황룡(黃龍)이 그림을 지고 제단에 나타났다. 그림은 폭 32자에 너비가 9자로 붉은색 글씨로 마땅히 우에게 제위를 선양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에 순은 과거 요임금이 선양했던 도리를 본받아 천명(天命)・덕행(德行)・재능(才能) 3가지를 겸비하고 천하를 위해 희생한 대우에게 제위를 넘겼다. 즉, 순임금의 나이 83세 때 후계자로 우를 천거했고 95세 때 우에게 선위해 섭정하게 했다. 그해 정월 초하루 우가 요임금의 태묘에서 순임금의 선양을 받았다. 마치 순이 처음 요임금의 선양을 받을 때와 같았다. 순은 제위를 넘긴 5년 후, 즉 100세가 되었을 때 천하를 순시하던 도중 창오(蒼梧)에서 붕어했다. 창오산 남쪽에 장사지냈다.
순의 두 비 아황과 여영은 순이 붕어했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상강(湘江)까지 달려갔으나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다 죽었다. 그녀들의 영혼은 상수(湘水)의 신(神)이 되었고 세상에서는 ‘상군(湘君)’ 또는 ‘상부인(湘夫人)’으로 불렸다. 그녀들은 순임금을 위해 흘린 피눈물이 대나무 위에 떨어져 대나무에 반점이 생겨 오늘날 ‘반죽(斑竹)’ 또는 ‘소상죽(瀟湘竹)’ 또는 ‘상비죽(湘妃竹)’이라 부르는데, 순임금에 대한 두 부인의 깊은 정과 의리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증명이 되었다.
참고서적:
1. 《상서》
2. 《여씨춘추》
3. 《사기》
4. 《강감이지록》
5. 《태평어람》
6. 《논어》
7. 《시자(屍子)》
8. 《화진(畫塵)》
9. 《화사논요(畫史會要)》
10. 《송서(宋書)‧부서지(符瑞志)》
11. 《죽서기년》
12. 《제왕세기》
13. 《열녀전》
14. 《박물지》
15. 《산해경》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15586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