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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야기: 신선의 음식은 맛있고 한번 먹으면 30년간 배가 고프지 않아

글/ 원귀(遠歸)

【정견망】

당나라 문종(文宗) 말년 건주(建州)자사 엄사칙(嚴士則)은 본래 목종(穆宗) 때 상의봉어(尚衣奉禦)란 관직에 있었다. 그는 신선과 도술(道術)을 아주 좋아했다. 하루는 종남산에 약을 캐러갔다가 길을 잃고 암석 사이를 배회했다. 며칠 후 가져온 건량이 다 떨어졌고 사방을 바라보아도 민가는 없었다. 그 길을 추측해보니 경성에서 5-600 리는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는 깊은 숲속이며 조용하고 경치가 아름다웠다. 갑자기 몇 칸 초가집이 소나무 숲 사이에서 나타났는데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칡덩굴이 감겨져 있었다. 엄사칙이 문을 두드렸으나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마당을 엿보았더니 한 사람이 석상(石床)에 누워 책을 읽고 있었다. 엄사칙은 문을 밀고 들어가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 사람은 그때서야 의복을 고치며 일어났다.

엄사칙이 예를 올리고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 사람은 그를 석상에 앉게 하고는 경성의 일을 물어보았다. 또 천자가 계승한 지 몇 년이 되는지 물었다. 그 사람은 안사(安史)의 난 이후 이곳에 와서 지금까지 지낸다고 했다. 엄사칙은 그에게 자기가 이곳까지 올라오게 된 사정을 설명하고 양식이 떨어져 배고파 죽겠으니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하였다.

은자는 “나는 산속에 들어온 이래 불을 지펴 밥이나 찬을 한 적이 없으며 해갈될만한 것만 있소이다. 먼 곳에서 여길 왔으니 쉽지 않겠군요.”라고 했다.

그는 기둥에서 포대를 하나 꺼내어 여는데 그 속에는 일백여 개의 백편두 모양의 것이 있었다. 그는 엄사칙에게 약실(藥室)에 가서 가마솥을 꺼내오라고 하여 장작과 물을 길어 한 알을 가마 속에 넣고 오래 끓였다. 향기가 좀 났는데 다시 보니 손바닥 크기로 커져 있었다.

그가 말했다.

“이걸 먹어도 되며 목마르면 가마솥의 국을 마시면 됩니다.”

엄사칙이 반을 먹자 배가 불렀다.

그 사람이 또 말했다.

“당신이 이곳에 온 것은 연분이니 지금부터 삼십 년 안으로 더는 배고픔이나 갈증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점점 속세의 생각을 담담하게 여길 것입니다. 나중에 당신의 관위는 지방장관이 될 것이며 그 지방은 나부산(羅浮山)에서 멀지 않습니다. 만약 속세의 영화를 떨쳐버릴 수 있다면 장생(長生)의 도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집을 떠난 지 오래되었으니 돌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엄사칙이 그와 작별하고 돌아가려 했으나 길을 잃을까 두려워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염려마세요, 여기서 이삼리만 가면 나무꾼을 만날 텐데 그를 따라 돌아가면 됩니다. 여기서 경성은 그리 멀지 않습니다.”

엄사칙이 길을 나선 후 과연 나무꾼 한명을 만났는데 그 은자의 성명을 물었지만 나무꾼은 의외로 산속으로 돌아가며 답을 하지 않았다. 엄사칙은 이틀 후 번천(樊川) 들판에 도착했다. 천자의 곁에 돌아온 후 그는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으며 날이 갈수록 기력이 세지고 정신이 맑아지며 신선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는 짧은 옷을 입고 등나무 줄기로 만든 지팡이를 짚고 늘 바위 절벽 옆에 기대어 있었다. 그의 직위는 수로복야(守盧仆射)였으나 오히려 조용하고 무위를 좋아했으며 신인(神人)을 만나고 싶어 했다.

그가 한 도사에게 이유를 상세히 설명하자 도사는 그를 문하의 제자로 거두었다. 그가 또 지방 장관을 지낼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자 그를 처사(處士)의 신분으로 궁궐에 보고했다. 이에 그는 또 관리가 되었고 재주별가(梓州別駕)로부터 건계태수(建溪太守)에 이르기까지 관직을 역임했다. 당시 그는 이미 구십 세가 되었다.

그가 군수가 된지 만 1년이 되자 벼슬에서 물러나 나부산으로 들어갔다. 위주(韋宙) 상공(相公 역주: 재상을 지낸 사람에 대한 존칭어)이 강남태수로 부임하자 사람을 보내 그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는 그때도 여전이 산속에 있었다.

선종(宣宗)황제 대중(大中) 14년, 엄사칙이 건안에 부임할 때 강남을 지나간 적이 있다. 당시 소상공(蕭相公 역주: 소씨 성을 가진 재상)이 마침 절강 동쪽에서 민심을 관찰하고 있을 때여서 계루(桂樓)에서 연회를 열어 그를 초대한 적이 있다. 그는 단지 몇 잔의 술만 마시고 다른 것은 아예 먹지 않았다.

자료출처: 《극담록(劇談錄)》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68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