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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들겨 맞거나 욕을 먹은 후

글/ 육문

【정견망】

동수 원(苑 가명)의 남편은 툭하면 그녀를 때렸는데 심지어 얼굴에 자국까지 난 적도 있다. 남편은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아 아주 고통스러워했다. 그녀는 맞받아치거나 대꾸하지 않았고 오히려 법을 공부하러 갔다. 그녀는 “사실 바로 당신을 도와 소업(消業)해 주고 있지만 그 자신은 모른다. 그는 표면상으로만 당신과 맞서 싸우며 마음속으로는 당신을 아주 좋게 대하는 이런 것이 아니라, 정말로 내심으로 화를 낸다. 왜냐하면 업력이 누구에게로 떨어지면 바로 누가 괴롭기 때문인데, 틀림없이 이러하다.”(《전법륜》)을 배웠다.

그녀는 “업력이 누구에게로 떨어지면 바로 누가 괴로움”을 알기에 자신의 업력이 남편에게 떨어져서 그가 괴로운 것을 알았다. 그녀는 즉시 연민의 마음이 생겨났다.

동수 요(幺 가명)의 남편은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늘 욕을 입에 달고 산다. 심지어 그녀의 부모님께도 욕을 했는데 아주 듣기 거북했다. 동수는 하지만 남편에게 대꾸하지 않았고 오직 선의(善意)적으로 남편더러 이렇게 하면 당신에게 좋지 않고 사람을 욕하는 것은 정말로 당신에게 좋지 않다고 알려주었다. 이 동수 역시 억울함이나 분노, 쟁투를 닦아 버렸기 때문에 남편과 따지지 않았고 더욱이 이에는 이 식으로 욕하지 않았다. 이렇게 내심에서 우러나와 남편을 위했고 남을 욕하면 자신의 덕(德)을 잃는 도리를 설명해주었다.

반면 동수 희(希 가명)는 남편이 욕을 했는데 욕이 너무 듣기 망신스럽고 듣기에 민망했다. 그런데 그녀는 한번 일을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 남편에게 올라타서는 두 차례나 남편의 뺨을 쳤다. 남편을 때린 후 마치 전투에서 승리한 영웅처럼 동수들에게 자신의 승리를 자랑했다. 주변의 어떤 동수는 기뻐하면서 “당신 남편은 맞아도 싸요, 스스로 매를 번다니까, 이제야 마침내 화를 풀었네.”라고 했다. 하지만 또 어떤 동수는 “이건 수련을 헛되이 한 게 아닌가?”라고 했다.

사실 갑작스레 문제에 부닥쳤을 대 우리가 하는 행동이야말로 진실한 심성(心性)의 대폭로다.

어떤 동수는 나는 평소에는 심성을 지킬 수 있지만 그가 심하게 욕하고 사람을 업신여겼다고 변명한다. 사실 만약 수련 중에 모순충돌이 없다면 이는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지 않는 것과 같으니 어떻게 심성을 점검하겠는가?

사부님께서는 “그러나 흔히 모순이 생길 때, 사람의 심령(心靈)을 자극하지 않으면 소용없고 쓸모없으며 제고하지 못한다.”(《전법륜》)라고 하셨다.

어떤 동수는 나는 사실 이 화를 참을 수 없으면 손가락을 상대를 가리키며 욕을 한다고 말한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연공인(煉功人)으로서,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으며, 높은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전법륜》)

“한 연공인(煉功人)으로서 우선 마땅히 해야 할 것은,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을 먹어도 대꾸하지 않으며, 참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을 어찌 연공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전법륜》)

여기서 ‘우선’이란 두 글자에 주목해야 하는데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을 먹어도 대꾸하지 않음”은 가장 낮고 수련에 입문할 때의 표준으로 이 점에 도달하지 못하면 바로 연공인이라 할 수 없다. 욕을 먹으면 대꾸하고 때리면 맞받아치는 것은 속인의 심성으로 덕을 잃고 공이 자랄 수 없다.

어떤 동수는 우리 남편은 입이 거칠고 배운 게 없는데다가 소질이 낮아서 사납게 굴지 않으면 중단하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사실 이 역시 우리 자신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그가 때리는 주먹을 우리가 받아주고 그가 욕하는 말을 우리가 상대했기 때문에 비로소 견디기 힘든 것이다. 만약 우리가 보고도 못 본 척하고 들어도 못들은 척하면서 감수하지 않는다면 그럼 견디기 힘들 게 없다. 한번 생각해보라, 퇴직해서 집밖에도 나가지 않으니 본래 사회의 복잡한 모순을 피하게 되었는데 남편마더 당신을 공경하고 고분고분하다면 그럼 당신이 어떻게 닦을 수 있겠는가!

“듣기 좋은 것만 들으려고 하는데, 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바로 당신이 듣기 싫어하는 것을 말하여 당신의 마음이 움직이는가 안 움직이는가를 본다. 사람이 신에게 뭐라고 말해도 신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당신은 그를 움직일 수 없다. 그는 아예 당신이 하는 일이 그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 느끼지 않으며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를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신은 오로지 사람 마음을 통제하여 사람을 이끌어 어떻게 할 뿐이다. 사람이 신을 이끌려고 하는 것이 어찌 가능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당신이 신이 되고자 한다면 바로 이렇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당신은 그 집착을 내려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사람한테 이끌릴 수 있는 마음을 모두 내려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각지설법 7》〈2006년 캐나다법회설법〉)

노(老) 동수 희의 다리가 줄곧 낫지 않아서 걸음을 걷는 것도 느리고 또 힘들다는 말을 들었다. 이것은 그녀더러 너무 제고가 느리고 줄곧 퇴보하고 있음을 점화해주는 것이 아닌가! 수련에는 표준이 있는 것으로 표준에 도달해야만 진정한 수련인이 될 수 있다.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곧 병이 낫지 않고 또 공(功)도 자라지 않는다.

두들겨 맞거나 욕을 먹을 때 법의 표준에 따라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을 먹어도 대꾸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하며, 동수 원이나 동수 요와 마찬가지로 수련인의 높은 자태와 높은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고인(古人)은 “한 가닥 분노의 마음이 일어나면 불이 공덕(功德)의 숲을 태워버린다”거나 “말 한마디로 평생의 복(福)을 다 잃는다”라고 했다.

두들겨 맞거나 욕을 먹는 가운데 법을 스승으로 삼고 심성을 제고해야만 비로소 진수(真修)할 수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1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