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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인사회 속 수련에 대한 나의 견해

글/ 중국 청년 대법제자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에게 기존 수련과는 전혀 다른 한 갈래 길을 배치하셨으니 바로 속인 사회 환경 속의 수련이다. 대법은 홍대(洪大)하고 포함하지 않는 것이 없고 빠뜨리는 것이 없다. 속인 속의 수련은 보다 착실하게 각종 사람마음과 집착을 닦아 버릴 수 있는 것 외에 또 분명 우리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아주 많고 많은 원인과 사부님의 배치가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로선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최대한도로 속인사회 형식에 부합해 수련”(《오스트레일리아법회설법》)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늘 하는 말이 우리가 속인 속에서 수련하면서 최대한도로 속인의 형식에 부합되게 수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간단한 한마디 말이 아니며 당신의 사업을 평소대로 했다고 해서 나의 이 한마디 말의 표준에 도달했다는 것도 아니다. 여러분 곰곰이 생각해 보라, 그것은 당신들 수련의 여러 면에서 체현되는 것이다. 당신이 만약 속인같이 속인 사회 중에서 수련할 수 없다면 당신은 바로 속인 사회의 이런 형식을 파괴하는 것이다.”(《오스트레일리아법회설법》)

한 가지 평범하고 작은 속인의 일을 겪은 후 나는 대법제자가 어떻게 속인 사회 속에서 이 상태에 보다 잘 부합해서 수련해야 하는지 새로운 깨달음이 생겨났다.

이전 한동안 나는 감정의 기복이 심했지만 각종 정황에 직면해 아무리 생각해도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 한동안 조정한 시간을 거치고 정(情)에 집착하는 자신의 사람마음을 내려놓은 후 또 다른 집착 속에 빠져 들어갔다. 자신이 이 단락의 감정을 새롭게 직면하고 정시(正視)할 것이 걱정되었고 또 잘 파악하지 못해 정 속에 빠져 들어갈까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도양단(一刀兩斷)식의 방법은 또 너무 극단적이고 이기적이라고 여겨졌다.

이것은 자신이 잘 닦지 못할까 두려워 자신을 보호하려는 염두가 나온 것으로 수련인의 정념과 자비에서 우러나온 게 아니었다. 또 한 단락 시간 끊임없는 법 공부를 거친 후 자신의 정념이 점차 올라오기 시작했고 나는 자신이 수련인이 마땅히 제고해야 할 필요가 있는 요소들을 정면(正面)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의 정 속에 빠질까 두려운 것은 수련인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마음이 아니다. 사람마음의 집착을 내려놓고 정정당당하게 가서 직면하고 내가 만난 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잡으며, 자신이 대법 속에서 닦아낸 순진(純真)・상화(祥和)・자비(慈悲)로 내 주변의 모든 중생에게 복과 은혜를 주어야 한다.

이런 정념이 솟아난 후 나는 시간을 배치하고 비행기 표를 샀다. 전에 어찌할 줄 모르던 미망(迷茫)의 상태에서 취한 극단적인 행동에 대해 여자 친구에게 사과하고 아울러 그녀에게 내가 오게 된 의도와 내 생각을 알려줄 요량이었다. 당시 마음속의 생각은 비록 아주 올발랐고,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여겼지만 마치 아직 무언가 차이가 좀 있고 또 생각이 잘 통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제자는 중생에 대한 정과 사람마음을 내려놓고자 합니다. 인연이 있든 없든 제자는 모두 사부님의 배치를 따르겠습니다. 제자는 그 어떤 결과에도 집착하지 않을 것이며 만약 방금 전에 내린 계획이 옳다면 이번 여행이 순조롭고 아무 걸림이 없도록 해주십시오.”

이 일념을 움직인 후 나는 그리 많은 생각이 없었고 예정된 스케줄에 따라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면서, 매일 평소처럼 법공부와 연공하면서 일상생활 속의 각종 일들을 처리했다.

그런데, 내가 막 공항으로 떠나려던 그 날 마침 이모가 찾아왔다. 전날 모친(동수)이 이모에게 내가 XX시로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가려한다고 말하자 이모도 마침 이곳으로 놀러오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모가 우리 집에 오게 된 것이다. 이모는 대법을 수련하진 않지만 대법을 크게 인정하는 편이다. 엄마는 이모에게 내 문제에 관해 언급했다.

오후에 이모는 내게 큰 관심을 보이면서 말했다.

“네 문제에 관해 이모하고 말 좀 할 수 있겠니? 이모가 문제 해결을 도와줄게.”

당시 나는 이모를 신뢰하는 마음이 크게 일어났고 일의 자초지종을 상세히 말해주었다. 그러자 이모는 나더러 지금 떠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자신의 견해를 말하면서 건의했다.

처음에 나는 내가 떠나는 것을 찬성하지 않는다는 이모의 말에 속으로 거부감이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이 다 준비가 잘 되어 있고 또 저녁에 비행기를 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모의 말을 서서히 들으면 들어볼수록 아주 도리가 있었다. 나는 이모의 말에 도리가 있고 현재 이 문제에 대한 처리방식에서 그렇게 하는 것만이 비로소 진정으로 나와 상대방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자, 이 도리야말로 지금의 감정문제를 대하는 이성적인 방식임을 발견했다.

나는 여태껏 이런 일을 겪어보지 못했고 다시 말해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이전의 나의 계획과 방법은 이론상으로는 옳을지 몰라도 단지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만 알았을 뿐이며 또한 청년이라 경험이 부족해 투철하고 성숙한 식견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바로 내가 처음에 느꼈던 뭔가 부족한 부분이었음에도 해결방안을 생각해내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갑자기 몸에 진동이 왔다. 나는 사부님께 만약 이번에 내가 찾아가는 행동이 옳다면 이번 여행이 순조롭고 막힘이 없도록 해주십사 부탁드렸던 일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내심으로 사존께 대해 비할 바 없는 감격을 느꼈고 사부님께서는 너무나 자비로우시고 제자에 대한 가호가 너무나도 주도면밀하신 것을 느꼈다.

비행기 표를 취소하고 나자 내심으로 아주 착실하고 가뿐한 느낌이 들었다. 또 수련 중에서 크게 진보한 일종의 희열(喜悅)이었다. 집을 나와 걷으면서, 이렇게 오래 지나서야 마침내 수련 중의 한 단계를 넘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산책하면서 이번 일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생각해보았고 이번 경험 속에서 나는 사부님의 단계적인 배치와 이 일에서 내가 얻은 수확을 느끼고 깨달을 수 있었다.

마음속으로 또 사부님께 대한 감격이 솟구쳐 올라왔으며 사부님께서 이모를 보내 내게 이런 도리를 알려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렸다. 이것은 또한 내가 줄곧 고민해왔으면서도 해결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사부님의 설법이 떠올랐다.

“당신이 한 일 자체가 수련은 아니다. 당신이 회사를 꾸리든 당신 대법의 항목이든 당신이 무엇을 하든, 이 자체는 수련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이 일을 하는 태도, 이런 문제를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는 대법제자 수련인의 표준으로 그것을 대하고 그것을 잘 처리해야 하는데, 이것이 수련이다!”(《2019년뉴욕법회설법》)

이는 바로 현재 나의 상태가 아닌가? 남녀가 사귀고 연애하는 것 자체는 수련이 아니고 이 일 자체는 한 젊은이가 속인의 정상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한 단계일 뿐이다. 단지 수련인에 대해 말하자면 구체적으로 이 일을 마주하면서 대법의 표준으로 요구하고 자신을 단속해야 할 따름이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문득 사부님께서 대법제자들이 매체를 꾸리는 문제에 관해 하신 설법들이 생각났다.

“여기까지 말한 김에 매체를 좀 말해 보겠다. 과거에 매체의 몇몇 책임자가 나에게, “우리는 어떻게 해야 우리의 매체를 잘할 수 있습니까? 속인과 구별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아주 간단하다고 말했는데, 당신은 속인 사회의 매체에 따라하며 닮으면 닮을수록 좋다고 했다. 그들과 같이 양성 순환, 양성 운영하는, 바로 한 속인 회사이다. 한 가지는, 당신은 당신이 대법제자라는 것을 알면 된다. 그러므로 어떻든지 막론하고, 당신은 수련에 느슨해서는 안 된다.”(《세계 法輪大法의 날 설법》)

“실천이 증명하다시피, 사람의 경영방식은 매우 효과적이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왜 그렇게 하지 않는가? 이 방면의 곤란을 해결하도록 하라.”(《각지설법 9》〈2009년 대뉴욕국제법회설법〉)

갑자기 이번 일의 전반적인 경위에 대해 새로운 깨달음이 생겨났다. 처음에 나는 이 일에 대한 의혹이 있었고 나중에 이모가 온 것이다. 이전의 나는 이런 일종 상태에 있었고 사상이나 방법에서 좀 극단적이었다. 일에 부딪쳤을 때 주변 일부 속인들의 건의와 견해를 들으면 그건 사람의 고만한 이치라고만 여겼다. 때문에 구체적으로 일부 일을 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이 방면에서 잘한 속인을 찾아가 그들의 경험과 건의를 듣지 않았는데, 자신이 굽은 길을 걸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깨달았다. 우리 자신의 심태가 바르다면, 속인 중에서 일부 속인의 일에 부딪혔을 때 괜찮은 그런 속인들과 교류할 수 있으며 또는 전문가를 찾아가 그들의 경험을 학습할 수 있다. 최대한도로 속인사회 형식에 부합해 수련하자면 우리는 또 마땅히 그들이 일부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나 경험, 기교 등을 알아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가 소위 속인의 방법과 경험에만 의지해서는 우리가 봉착한 곤란과 번거로움을 해결할 수는 없다. 또는 속인더러 와서 우리를 도와달라고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 일은 표면적으로는 아주 평범한 한 속인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오히려 한 수련인이 수련과정 중에서 자신을 제고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이 역시 대법제자가 자신의 위덕(威德)을 건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매체에서 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속인의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 우리의 전업수준을 제고할 수는 있지만 어떤 속인이 이 방면에서 제아무리 우수하고 성공했다 해도 이 일은 우리더러 완성하라고 준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구체적으로 한 가지 일을 마주하거나 또는 한 가지 항목을 완성할 때 효과적으로 속인의 경험과 방법을 이용할 수 있다. 동시에 이 과정에서 수련인의 심태로 마주해야 하며 대법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정정당당하게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한 갈래 수련의 길을 걸어야 한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문득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현관(玄關)에 관해 하신 설법이 떠올랐다. 우리는 속인 사회에서 수련하기에 자신(自身)이 바로 하나의 아주 큰 현관과 같으며 마땅히 자신의 천체(天體) 세계 속의 요소들이 모두 속인사회 수련과정 중에서 한 세트의 완정한 것을 형성해내도록 들어와야 한다고 여겨졌다.

대법은 박대정심(博大精深)한 것으로 천체의 위에서 아래에 이르기까지, 거시적인 것에서 미시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층차든 모두 대법이 육성한 것이다. 그럼 대법 속에서 정법정각(正法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하는 대법제자라면 매 한 층차에서 법(法)의 조화(造化)가 개인의 수련과정 중에 끊임없이 자신의 세계를 충실히 하도록 해야 하는 게 아닌가? 겉으로는 속인 속의 수련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또 끊임없이 자기 세계 속의 만사만물(萬事萬物)과 그들이 존재・생장・번영하는 일체 조화를 충실 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수련과정 중에 부딪치는 각양각색의 번거로움, 만남, 즐거움, 기쁨, 매 하나의 크고 작은 사건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속인사회 속의 아주 평범하고 평범한 일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수련인의 태도로 그것을 마주할 때면 층층 공간 속 우리의 천체세계와 우리 자신의 본체(本體)는 바로 천지가 뒤집어지는 거대한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