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흑룡강성 대법제자 귀진(歸真)
【정견망】
나는 20여 년을 수련했지만 자신이 원래 정말 닦지 못했고 착실히 수련하지 못했음을 발견했다. 수련이 표면에 떠 있었고 원한심(怨恨心)을 없애지 못했으며 질투심이 매우 강했다. 당문화의 것이 아주 무거워서 강경했고 일을 하려는 마음이 있었으며, 현실과 괴리되어 자심생마만 없을 뿐 이미 아주 괜찮다고 여겼다. 동수에게 훈수 두는 걸 좋아했고 과시심과 자아를 실증하려는 마음이 있었다. 자신을 크게 보았고 자신의 깨달음이 옳다고 여기면서 자아를 견지했다. 끝내 박해를 초래했다.
자료를 배포하러 나갔을 때 모함에 빠져 불법(不法)으로 15일 구류를 당했다. 이번 박해는 나를 맹렬히 각성하게 했고 처음으로 자신을 반성하게 했다. 나는 스스로 잘 닦지 못해 중생을 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중생이 죄를 범하게 했으며, 나의 수련환경에 장애를 초래하고 정체에 손실을 가져다주었다.
아래에서 이 기간에 내가 마음을 수련한 과정을 써내니 동수들이 나를 경계로 삼아 굽은 길을 적게 걸었으면 한다.
아주 오랫동안 나는 법공부가 형식에 치우쳤고 자신을 대조하지 않았으며 아주 장시간 새로운 법리를 볼 수 없었다. 매일 단체법공부에 참가하긴 했지만 법을 배우고 나면 그걸로 끝이었고 법의 내함(內涵)을 볼 수 없었다. 또한 나가서 일을 할 때는 마음이 순정(純淨)하지 못했으며 두려운 물질이 아주 많았다.
사건이 발생하기 며칠 전 사부님께서는 여러 차례 나를 점화해주셨다. 한번은 꿈에 내가 많은 자료를 배포했는데 중생들이 모두 마치 가져가려 하지 않았다. 어떤 동수가 이 많은 자료들을 주워서 모두 내 자리에 놓았다. 나는 이것을 사람을 구하는 법기(法器)로 여기지 못했고 오히려 박해의 증거로 여겼다. 꿈에서 붙잡혔고 그 후 두려운 마음을 줄곧 제거하지 못했다.
박해를 부정하는 것 역시 위사(爲私)하고 자신을 보호하려는 각도에 서 있었으며 사람을 구하는 일을 위법하다고 여겼다. 모두 관념으로 형성되었고 원망이 아주 무거웠다. 자신을 정정당당한 대법도(大法徒)로 우주 중에서 가장 영광스런 생명이자 서약과 사명이 있는 생명으로 여기지 못했다. 법(法)에서 이탈하자 법의 위력이 없었고 사부님께서 옆에 계신 것마저 망각했다.
구류소 안에서 나는 깜짝 놀라 깨어나기 시작했고 자신이 걸어온 수련의 길을 살펴보았다. 자아에 너무 집착했다. 나는 끊임없이 발정념을 하는 동시에 시시각각 〈논어(論語)〉를 반복해서 외웠다. 나는 자신을 반성해보았다. 사실 나는 아주 냉담하고 선심(善心)이 없었으며 다른 동수에게 일이 생겼을 때 마음을 다하지 않았다. 하루 이틀은 그래도 발정념을 견지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태해졌다. 동수의 일을 자신의 일로 간주하지 못했고 아주 자사자아(自私自我)했으며 또 많은 구실을 댔다.
생각해보면,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내게 일이 생겼을 때 동수들도 나와 같을 것이 아닌가? 풀려난 후에야 나는 주변 동수들이 모두 우리를 구하기 위해 아주 많은 노력을 했음을 알았다. 사실 안에 있으면서도 나는 그들의 가지(加持)를 느낄 수 있었고 동수들의 희생에 감사했다.
나는 나와 동수 간의 격차를 보았다. 전에 일에 봉착하면 늘 밖으로 보면서 또 안으로 찾으라고 말했는데 그러나 찾고 찾아도 동수를 도와준다는 미명하에 다른 사람의 옳지 못한 것만 한 무더기 보았다. 사실 동수는 사부님께서 관할하시며 동수의 표현을 내게 보여준 것은 사부님께서 나더러 자신을 잘 닦으라고 하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무나 많은 기회를 놓쳐버렸다.
구류소에서 돌아온 후 내가 첫 번째로 넘긴 관은 가정관(家庭關)이었다. 내가 바르게 걷지 못한 한 가지 원인은 바로 가족에 대한 정이 너무 중했기 때문이다. 집안의 수련환경은 줄곧 좋지 않았다. 앞으로 나는 정정당당하게 수련해야 한다. 나는 남편에게 이 법이 나를 바로잡은 것으로 이는 내가 잘하지 못했고 이 법이 너무나 바르기 때문이니 반드시 잘 하겠노라고 알려주었다. 사실 일체는 다 사부님께서 질서 있게 배치하신 것이니 자연스러움에 따르는 것이 가장 좋다.
집에 돌아온 당일 내가 원래 다니던 직장에서 전화가 와서 나더러 일이 많지 않으니 반나절 반으로 출근하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진지하게 법을 공부할 시간이 생겼다.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경사경법(敬師敬法)으로 결가부좌를 틀고 한 글자 한 구절씩 정성을 들여 법을 배우고 자신과 대조했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마음을 고친 것을 보시고는 끊임없이 법리를 펼쳐보여주셨고 날마다 법리를 깨달을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원만은 불과(佛果)를 얻나니 고생을 낙으로 삼노라”(《홍음》〈마음고생〉)라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이전에 고생을 겪기를 거부하고 안일을 구했다. 또 아주 많은 원망이 생겨나왔고 사람의 이치로 가늠하면서 자신이 너무 억울하다고 여겼고 가족이 내가 넘을 관(關)을 주면 나는 또 질투심과 쟁투심이 생겨났다. 그들은 내게서 상화로움과 대법제자의 선(善)을 볼 수 없었다.
동수가 나와 교류하면서 “당신은 오늘 웃었는가?”라고 했다. 선(善)의 힘은 무궁한 것이다. 내가 시험 삼아 미소를 유지해보니 정말로 마음에서 자비가 우러나오는 그런 느낌이 아주 좋았다. 많은 좋지 않은 염두들은, 나의 미소와 동시에 나오는 선이 힘으로 그것들을 모두 해체해버렸다.
그때 시댁에서 모임이 있었다. 남편이 또 습관적으로 나를 야단치자 시댁 식구들이 모두들 남편에게 뭐라고 했다. 나는 웃으면서 부끄럽지만 저이가 의도적으로 그러는 게 아니라 습관이 되어서 그렇다고 했다. 남편이 웃자 가족들도 모두 따라서 웃었다. 그때 이후 남편이 나더러 뭐라고 하는 말이 아주 적어졌고 또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전에 나의 위사(爲私)한 뿌리를 보았다. 전에 직장에서 나는 늘 자신이 옳게 했으며 명리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여겼었다. 사실은 명리심이 아주 강했지만 단지 속인보다 나았을 뿐이며 수련인의 요구와는 차이가 아주 멀었다. 상사와 근무시간에 대해 따지곤 했는데 구실은 내가 바른 일을 하고 법을 공부할 시간을 뺏긴다는 것이었다.
총체적으로 나를 앞에 놓았고 다른 사람의 감수를 고려하지 않았다. 수련인은 곳곳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망각했다. 전에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진상을 알려도 모두들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이 대법제자의 선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 나는 상사가 어떤 일을 배치하면 곧 그 일을 하는데 시간이며 돈을 따지지 않는다. 자신이 한 일이 옳다고 느끼든 틀리다고 느끼든 상관하지 않는다. 상사가 무엇을 말하든 즐겁게 받아들인다. 상사의 뜻에 따라 하면서 더는 자신을 고집하지 않는다. 동료들은 내가 날마다 마음을 열고 유쾌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좋다고 말한다.
예전에 나는 마음을 열지 못했고 자아를 너무 고집했다. 자신의 견해에 따라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자신에게 부합하지 않으면 곧 배척했다. 사람을 구하는 일을 줄곧 해오긴 했지만 사아(私我)를 위한 것으로 무사무아(無私無我)에 부합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떨어져내려갈까 염려하고 자아를 실증했다.
사실 모든 것은 다 사부님의 질서 있는 배치가 있으니 법(法) 속의 한 입자가 되어 착실하게 자신을 잘 닦고 자아를 내려놓고 순정한 심태로 사람 구하는 일을 잘하면 된다.
사부님께서는 “그에 동화하면 당신은 바로 득도자(得道者) ⎯⎯ 신(神)이다.”(〈논어〉)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대궁(大穹) 깊은 곳에서부터 험악한 인간세상으로 걸어오는 과정에 줄곧 사부님의 가호가 있었다. 내가 잘못해서 넘어지면 사부님께서는 나를 부축해 일으켜주셨고 나더러 잘 걸어가도록 격려해주셨다. 사존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앞으로 남은 날 속에서, 법에 부합하지 않는 자신의 모든 것들을 닦아 버리고 법속에서 바로 잡으며 정성껏 법을 배우고 일마다 대조할 것이다. 모든 것은 사부님의 배치에 따라 앞으로의 길을 잘 걸어갈 것이며 법에 동화된 한 입자가 되어 서약을 실현할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219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