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조원(照遠)
【정견망】
7. 역도(易道)의 전개형식
《주역》이란 책은 역대로 점복(占卜)의 서(書)로 간주되어 왔는데 사실 점복은 역도 기능의 한 가지 존재형식에 불과할 뿐이다. 왜냐하면 천도(天道)를 세상에 남겨 후인(後人)들에게 전해야 했기에 세인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드러내야 했기 때문이다.
후세의 역학 연구자들은 공자(孔子) 이후 주희(朱熹)에서 또 지금에 이르기까지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모두 유가(儒家)의 인식인, 유가의 사유방식으로 역도를 해석했기 때문에 세인들이 보기에 《주역》은 점점 더 오늘날 문사철(文史哲 역주: 문학 사학 철학)의 학문과 비슷하게 변했다. 물론 역도 속에는 분명히 이런 학문들을 포괄하고 있지만 그러나 《역전(易傳)》에서 보자면 공자로 대표되는 고대 성현의 《역경》에 대한 인식은 또한 매우 높아서 이미 도가(道家)의 인식과 아주 유사하다.
이외에도 역도 속에는 또 시간공간(時間空間) 및 만물중생(萬物衆生)의 내재적인 구조와 운행법칙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사유방식은 곧 도가에 속한다. 가령 이순풍(李淳風), 소옹(邵雍 소강절), 유백온(劉伯溫 유기) 등의 역도에 대한 이해와 운용은 모두 도가 범주에 속한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말을 해도 《역경》 자체는 바로 음양의 도를 말하는 것으로 유가와 도가는 일음일양(一陰一陽)으로 아주 높은 경계에서 보자면 모두 대도(大道)의 표현형식의 하나다. 때문에 유도(儒道) 양가의 인식이 모두 정확하지만 단지 도가의 인식이 보다 높고 구체적이기 때문에 세인들이 이해하기가 더욱 어려울 따름이다.
필자는 역도(易道)에 대한 인식의 관건이 건(乾 ☰)과 곤(坤 ☷) 두 괘에 대한 이해에 달려있다고 본다. 이는 학자들이 역도를 속인의 학문으로 보는지 아니면 초상적인 학문으로 보는지 경계선이 된다.
건괘는 순양(純陽)이고 곤괘는 순음(純陰)으로, 건괘는 천도(天道)를 상징하고 곤괘는 지도(地道)를 상징한다. 여기서 천(天 하늘)과 지(地 땅)의 함의는 세인들이 이해하는 하늘, 대지, 천체, 지구 등의 함의 외에도 천지의 진정한 내함은 바로 시간과 공간이다. 다시 말해 건괘는 시간을 대표하고 곤괘는 공간을 대표한다.
우리 이 공간 속에서 시간의 직관적인 표현은 바로 태양의 운행이다. 때문에 ‘시(時)’‘간(間)’이란 두 글자의 구조 속에 모두 ‘일(日)’이 들어 있다. 속어에서 우리가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을 “날을 보낸다(過日子)”고 하는데 천(天)이 바로 일(日)이고 바로 시간이다. 그렇다면 건괘(乾卦) 역시 태양을 상징하는데 《역전》에서는 건괘를 ‘대적(大赤 역주: 크게 붉은 색을 말한다)’이라 부르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편 지(地)의 함의에는 대지(大地)나 지구 외에도 또 공간을 가리킨다. 우리가 곤괘의 괘상(☷)을 보면 텅 비어 걸림이 없고 아무런 물건도 없음을 대표한다.
건괘는 시간을 대표하고 태양을 대표하기 때문에 시간의 운행은 영원히 끝이 없는 것으로 태양은 시시각각 늘 운동 속에 있다. 때문에 건괘의 특성은 강건하고 용맹하며 정진하며 그치지 않는 것이다.
반면, 곤괘는 공간을 대표하는데 공간의 주요 특징은 바로 ‘공(空)’이란 한 글자에 있다. ‘공(空)’하여 한 물건도 없어 광대무변(廣大無邊)하기 때문에 공간의 주요특성은 고요해서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또한 만물을 싣고 포용할 수 있다. 고인(古人)이 하늘은 움직이고 땅은 조용하며(天動地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天圓地方)고 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여기서 ‘원(圓)’은 원통(圓通)해서 걸림이 없음을 가리키고 ‘방(方)’은 광대무변한 것을 가리킨다.
공간은 물건이 없기(無物) 때문에 조용히 그쳐 움직이지 않을 수(靜止不動) 있으며, 물건이 없기 때문에 만물을 가득 채울 수 있다. 공간의 본질은 바로 하나의 거대한 그릇과 같으며 시간이 그 속에서 운행되는데 끝나는 지점이 없다.
곤괘는 순음(純陰)이니 음(陰)이란 은(隱 숨거나 은거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공간 자체는 그 속의 중생은 영원히 볼 수 없다. 공간의 특성은 공(空)이지만 공간 자체는 오히려 물질존재이다. 앞 문장에서 언급했다시피 이 공간의 본질은 바로 물(水)이니 공간의 물질구성이 바로 물이다.
공간은 물(水)을 체로 하고 공(空)을 용으로 한다. 이 물은 인류사회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그런 물이 아니고 선천일기(先天一炁)의 극단표현의 하나인 물이다. 이 물은 전체 공간에 두루 퍼져 있고 전(全)방위에 입체적으로 존재하는데 오행 속의 만물중생은 모두 물 속에 있다. 이 물이 바로 오행 속의 만물중생의 생존기초이자 활동장소가 되는데 만물의 어머니이자 생명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곤괘는 또 모친이 된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상선(上善)은 물과 같으니 물은 만물을 잘 이롭게 하며 다투지 않고 뭇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처하니 도에 가깝다(上善若水,水善利萬物而不爭,處眾人之所惡,故幾於道)”고 했다. 노자가 여기서 말하는 물은 이미 미시적인 물이자 우리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물인데 이 두 층의 의미가 모두 있다.
《역전(易傳)》에서는 “땅의 형세가 곤(坤)이니 군자는 이로써 덕을 두터이 하고 만물을 싣는다(地勢坤,君子以厚德載物)”라고 했다. 이곳의 땅(地)은 바로 공간이나 대지라는 뜻이다. 세(勢)는 법(式)이니 상태, 모델, 상황 또는 형세란 뜻이다. 공간이든 아니면 대지든 모두 곤도(坤道)의 체현이며 곤괘의 원칙에 부합하기에 모두 만물을 싣고 포용할 수 있다. 군자라면 마땅히 곤도를 본받아 관대하고 두터운 인덕(仁德)으로 만물을 포용하고 중생에게 자비로워야 한다.
건도(乾度)의 체현은 바로 시간이다. 우리 이 공간에서 시간의 표현형식이 바로 태양이며, 건도는 또 만물의 정신을 대표하며 만물중생이 발전하고 운동하는 에너지의 근원이다. 가장 근본에서부터 말하자면 건도는 바로 천도(天道)이고 무극대도(無極大道 창세주)의 의지가 체현된 것이다.
건괘는 순양(純陽)인데 ‘양(陽)’이란 글자는 바로 회의문자로 ‘阜+昜’이다. 여기서 부(阜)는 대륙을 가리키며 또한 왕성하고 장대(壯大)하며 풍요롭다는 뜻이 있다. 양(昜)은 ‘日+一+勿’의 결합이다. 여기서 일(日)은 시간이고 일(一)은 전부이며 물(勿)은 물(物)과 통한다. 그러므로 양(陽)이란 글자의 본래 의미는 시시각각 늘 새로 생겨나는 사물이며 또한 만사만물이 시시각각 변화하고 갱신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소위 역도(易道)란 그 가장 본질적인 내함이 바로 건도(乾道)이니 바로 변화의 도다. 《역전》에서 말하는 “낳고 낳는 것을 일러 역이라 한다(生生之謂易)”고 한 것도 이런 이유이다.
《역전(易傳)》에서는 또 “하늘의 운행이 굳세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스스로 힘쓰며 쉬지 않는다(天行健,君子以自強不息)”라고 했다. 여기서 건(健)은 건(乾)이니 천도의 운행법칙이 바로 건도(乾道)이고 건도는 강건하고 용맹함을 상징하며 적극적이고 진취적이고 영원히 쉬지 않는 것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마땅히 건도를 본받아 “종일 부지런히 노력하고 저녁에 두려운 듯이 한다(終日乾乾,夕惕若厲)”는 것이 시시각각 늘 관념을 갱신하고 지식을 수확해야 하며 조심하고 근신해서 절대 해이해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생명이 영원할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한 사람의 가장 성대한 덕행(德行)이다. 그러므로 《역전》에서 “날로 새로워지는 것을 일러 성대한 덕이라 한다(日新之謂盛德)”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건도의 체현이 변화의 도(道)이기 때문에 건도의 본질이 바로 만물중생이 발전・변화하는 순서인데 이 순서를 또 정수(定數)라고 하고 또는 천수(天數)라 한다.
반면, 곤도가 체현하는 것은 바로 공간의 구조 특징이다. 왜냐하면 우리 이 우주시공 일체는 모두 팔괘가 변화한 것이기 때문에 건도(乾道)의 순서를 64괘로 표시할 수 있고 곤도(坤道)의 공간구조 및 물질과 생명의 분포 역시 64괘로 표시할 수 있다. 만물중생의 신체구조, 사유방식 및 생명운동의 궤적 역시 64괘로 표시할 수 있다.
만약 하나의 도형으로 이 이념을 완벽하게 표현하려 한다면 바로 북송 초기 대역학자 소강절 선생이 전한 《선천64괘방원도(先天六十四卦方圓圖)》가 되는데 아래의 그림과 같다.

이 도형에서 밖의 원(圓) 부분은 천도(天道)를 상징하고 안의 사각부분은 지도(地道)를 상징하는데, 만물중생에 대해 말하자면 밖의 원이 상징하는 것은 생명의 발전순서 또는 정신상태이고 안의 사각부분이 상징하는 것은 그 구조와 운동방식이다.
《역전》에서는 “하늘에서 상(象)을 이루고 땅에서는 형(形)을 이루니 변화가 드러난다(在天成象,在地成形,變化見矣)”고 한 것은 인류사회 속에서 그 어떤 사회형세든 고층공간에 있는 상응하는 천상(天象)에 의해 촉성된 것이다.
여기서 천상(天象)이란 고급생명이 시간 속에 설정한 순서인데, 이 순서는 바깥 원의 64괘로 표시할 수 있고 인류사회의 전체적인 정세는 내부 사각형의 64괘로 표시할 수 있다. 천상과 인류의 사회형세가 서로 대응할 때 이 두 괘가 바로 같은 괘가 된다. 마치 우리가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데 스크린은 공간과 같고 영사기와 렌즈는 시간과 같으며 필름에 나오는 화면내용이 바로 천상변화다. 이 화면이 스크린에 펼쳐진 것이 바로 구체적인 사회형세다.
이런 비유를 통해 보자면 인류사회 속의 일체 발전은 모두 천상의 체현으로 다시 말해 일찌감치 잘 정해진 운행순서가 있으며 일체는 다 정수(定數)가 있다. 그러므로 역대 조대(朝代)에서 역도에 정통한 이들은 거시적으로는 인류사회의 발전변화를 미리 알 수 있었고 미시적으로는 개체 생명과 일사(一事)일물(一物)의 발전궤적을 미리 알 수 있었다. 이런 사례는 수없이 많으며 정사(正史) 속에서도 많은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상 건곤(乾坤) 두 괘에 대한 해독은 오행 속에서 역도(易道)의 체현이다. 만약 수련계의 말로 하자면 바로 세간법(世間法) 속에서 역도의 체현이다. 오행의 경계를 초월해서 대각자(大覺者)나 대도(大道)의 각도에서 보자면 오행으로 구성된 전체적인 이 시공이 바로 곤도(坤道)의 체현이다. 앞 문장에서 언급했다시피 오행을 뛰쳐나온 생명이 보자면 오행의 본질은 바로 토(土)이니 즉 땅이다. 토(土)의 수(數)는 오(五)이고 그 색은 노랗기 때문에 곤괘의 육오 효사에 “누런 치마면 크게 길하다(黃裳,元吉)”고 한 것이다.
대도(大道)의 각도에서 보자면 이 전체 오행이 바로 지(地)이고 오행의 경계보다 높은 것이 바로 천(天)이다. 건도가 바로 대도(大道)로 곧 천도(天道)이며 오행이 바로 곤도(坤道) 즉 지도(地道)다. 건도는 순양(純陽)으로 체(體)가 되고 곤도는 순음(純陰)으로 용(用)이 된다.
곤도 속 일체 존재는 모두 건도의 의지를 체현한 것으로 모두 건도의 쓰임이다. 오행보다 높은 건도 속의 일체 생명과 물질은 모두 건괘의 특징에 부합해 모두 금강불파(金剛不破)하고 생명이 영원하며 복(福)이 무한하고 지혜가 무한한 대광명(大光明)하고 대자재(大自在)한 상태이기 때문에 건괘에서 용구(用九)를 말하면서 “나타난 뭇용이 머리가 없으면 길하다(見群龍無首,吉)”고 했고 그 상사(象辭)에서는 “천덕(天德)은 머리로 삼을 수 없다(天德不可為首也)”고 했다.
오행 중의 만물중생은 모두 곤괘(坤卦)의 특징에 부합하는데 다시 말해 이 일체 존재의 본질이 모두 토(土)로 모두 흙속에 묻혀 있다.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만약 오행을 벗어나지 못하면 곧 영원히 흙속에 매몰되는 것으로 최종적으로 또 우주먼지로 변할 뿐이다. 오직 천도(天道)에 순응(順應)해 각고의 수행(修行)으로 정진을 멈추지 않아야지만 비로소 해탈할 희망이 있고 오행을 벗어나야만 비로소 곤도(坤道)에서 벗어나 승화하고 최종적으로 천도(天道)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곤괘에서 용육(用六)에 “영원히 곧으면 이롭다(利永貞)”고 한 것이다. 여기서 정(貞)은 정(正)이다. 상사(象辭)에서는 “육을 씀에 영원히 곧으면 크게 마친다(用六永貞,以大終也)”고 했다.
한편 오행 속에는 아주 관건적인 두 가지 괘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감괘(坎卦 ☵)와 리괘(離掛 ☲)다. 감괘는 오행에서 수(水)가 되고 리괘는 오행에서 화(火)가 되는데 우리 이 공간의 본질이 바로 물(水)이고 시간의 본질이 바로 불(火)이다.
그러므로 태극원리 속 순양(純陽)을 상징하는 건괘(乾卦)가 오행 속에서 직접 체현된 것이 바로 리괘가 되고 순음을 상징하는 곤괘(坤卦)가 오행 속에서 직접 체현되는 것이 바로 감괘가 된다. 이런 각도에서 보자면 건곤 2괘와 감리 2괘는 바로 도(道)와 기(器)의 관계, 다시 말해 체(體)와 용(用)의 관계가 된다. 건괘(乾卦)는 체가 되고 리괘(離掛)는 용이 되며 곤괘(坤卦)가 체가 되고 감괘(坎卦)는 용이 된다.
태극 속의 양(陽)과 음(陰)은 선천적인 경계 속에서는 건곤 2괘가 되지만 오행 속에서 응용할 때는 리괘와 감괘가 된다. 그러므로 대각자가 보기에 오행 속의 생명환경은 실질적으로 바로 깊은 물과 뜨거운 불(水深火熱 역주: 모진 고난과 재난을 의미)이니 다시 말해 끝없는 고해(苦海)인 셈이다.
(계속)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2621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