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며칠 전 동수 집에 갔더니 남편과 아들 모두 집에 없었다. 전체 집 면적이 50평이 못되는데 그녀 혼자 북쪽 방에 있었다.
내가 그녀를 도와 문서를 전달하려고 하자 그녀는 침대 밑에서 노트북을 꺼내고 또 주방에서 작은 책상을 가져왔다. 그리고는 방문에 자물쇠를 채웠는데 이렇게 해야만 바람에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는 이렇게 오고 가면서 자물쇠를 열고 잠그고는 다시 열고 채우고 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한겨울이라 방문과 창문을 다 꼭꼭 닫았는데 집안 어디서 바람이 불어온단 말인가?’
생각해보니 동수는 분명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대화 소리가 복도에서 걸어가는 사람이 들을까 두려워 이렇게 했을 것이다.
교류를 통해 알게 된 것은 그녀가 다른 부부동수 집에 가보니 부부가 집안에서 말을 하는 것조차 아주 작은 소리로 조심스럽게 했고 목소리가 조금만 커져도 사악이 들을 수 있다고 두려워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집 거실에 공유기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 공유기가 마치 도청기처럼 언제 어디서나 집식구들이 하는 말을 기록해 사악에게 보고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나는 문득 수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당시 우리 지역에서 한차례 대대적인 체포가 나타나 몇몇 동수들이 불법으로 감금되었다. 이 소식이 전해진 후 사람마음이 당황한 나머지 모두들 집에 있는 컴퓨터와 대법서적 등 관련 물건을 옮기거나 감춰 손실을 피하려 했다.
이 소식을 들은 후 내 마음 역시 요동을 쳤다. 집안의 컴퓨터야 내가 움직이지 않는다 해도 소중한 대법서적을 마땅히 감춰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한 순간이 내게는 마치 100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내게 있어 그것은 마치 생(生)과 사(死)를 겪는 것처럼 힘겨운 선택이었다. 마치 태산이 몸을 짓누르는 것 같았고 그 일사일념(一思一念)이 모두 생사의 큰 관문이었다.
대법서적은 바로 내 생명과 같은데 내가 어디로 숨는단 말인가? 우리 집 차고에 숨길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 집에 숨기는가? 나는 왜 숨어야 하는가? 내가 어디에서 잘못을 했는가? 진지하게 사색해보니, 나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고 대법을 수련한 것 역시 아무런 잘못이 없다. 대법서적은 마땅히 정확한 위치에 놓여 있어야 하며 마땅히 신성한 곳에 놓여야 하니 나는 숨을 수 없다.
나는 사부님께 내게 힘과 용기를 내도록 도와달라고 청했다. 나는 대법을 수련하며 사악의 박해는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발정념으로 동수와 세인들에 대한 사악의 박해를 해체하는 것이었다.
내 마음은 이미 정해졌고 그 어떤 힘도 이를 개변시키거나 동요시킬 수 없다. 내가 진념(真念)을 정하고 자신이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았을 때 눈물이 흘러나와 온 얼굴을 적셨다.
사부님께서는 《2005년 캐나다법회설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99년 7.20 이전에 우리 토론토의 법회를 바로 여기에서 열었다는 것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열렬한 박수) 당시 사악한 중공의 탄압박해가 시작되려고 할 때 나는 여러분에게 한마디 말을 했었다. 하나가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만 가지 움직임을 제약할 수 있다(一個不動能制萬動)! 라고. (열렬한 박수) 물론 어떤 수련생들은 이해할 수 있었고, 어떤 사람은 곧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아무것도 실행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사부님 웃음) (뭇 사람 웃음) 움직이지 않는 것이란, 바로 견정(堅定)한 정념과 바른 신념(正信)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지, 대법제자가 중생을 구도하는 책임과 마난(魔難) 중에서 자신을 제고하는 수련의 길을 모두 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어찌 될 말인가? 어떻게 하든지를 막론하고, 수련이기 때문에 매 개인은 모두 같지 않은 인식을 하고 있으며 또 속인 중에서 같지 않은 정도의 집착을 가지고 대법으로 걸어 들어온 사람도 있다. 수련과정 중에 많은 사람 마음 역시 제거하기가 몹시 어려우며, 이 때문에 법에 대한 이해 상에서, 인식 상에서 같지 않음을 조성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한 차례 마난 중에서 또한 대법에 대한 수련생들의 같지 않은 인식이며, 집착심의 다소(多少)를 충분히 표현해내었는데, 박해 중에서 각양각색의 표현 상태를 여러분 역시 모두 보게 되었다. 이 한 차례 박해는 우리에게 강제로 강요된 것이며, 이는 승인할 수 없다. 그러나 박해 중에서 역시 수련 중의 부족(不足)을 확실히 보게 되었고, 대법제자의 대단한 일면 역시 보게 되었다. 사부를 따라 오늘까지 걸어올 수 있으며 박해 중으로부터 걸어올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대단한 것이다! (열렬한 박수)”
우리는 대법제자로 우리의 사명은 바로 조사정법(助師正法)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다. 법에 부합하지 않는 그런 일사일념은 모두 사악이 강제로 더한 것이니 우리는 승인할 수 없고 또한 그런 가상에 속박되어 우리를 땅에 가둬두고 우리가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을 저애하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오직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걸어갈 뿐이다.
우리 함께 손을 잡고 공동 정진하며 법에 부합하지 않는 그런 일사일념을 함께 제거하고 우리의 사전(史前) 큰 소원을 완수합시다. 사부님의 은혜를 저버리지 말고 우리에 대한 중생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맙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37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