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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관념을 개변

글/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속인이 중시하는 것이 세간 명리정(名利情)의 득실이라면 수련인은 세간 명리정의 득실을 중시하지 않으며 수련 중의 득실(得失)을 중시한다. 덕(德)을 지키고 무위(無爲)로 속인의 한가한 일에 간섭하지 않아야 덕을 잃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나쁜 일을 해서 업을 짓고 덕을 손실해 심성 척도가 떨어지고 공이 떨어지게 해선 더욱 안 된다. 고생을 겪고 업을 없애는 것은 좋은 일이고, 심성이 제고되어 대법에 동화하는 것은 좋은 일이며, 사악을 깨끗이 제거하고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하며 사명을 완성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른 공간에서 이에 대응하는 것은 주로 업력, 덕, 심성척도, 공기둥의 높이 4가지다. 수련인에게 있어 무엇이 진정으로 좋은 일인가? 그것은 바로 업력이 줄어들고 덕이 증가하며 심성척도가 높아지고 공기둥이 높이 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수련 중에서 부딪히는 일을 보자. 만약 그것이 당신의 신체나 또는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면 당신의 업력을 감소시키고 덕을 증가시킬 수 있다. 또 안으로 찾음을 통해 사람마음을 닦아버릴 수 있다면 심성척도를 제고시켜 공기둥이 위로 자라게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그 어떤 일이든 우리 수련인이 제고하고 원만으로 나아가는데 모두 좋은 일이다.

사람마음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바로 관념과 집착이다. 관념(觀念)은 생활의 실천 속에서 형성된 일체 사물에 대한 인식에서 내원한다. 당신이 좋다고 여기는 것이나 혹은 당신에게 중요한 것을 당신은 마음속으로 그것을 중시하고 내려놓지 못하는데 이를 통해 그것에 대한 집착(執著)이 형성된다. 사람마음을 닦아버리려 한다면 반드시 우선 법공부를 통해 관념을 바꿔야 하며 관념이 전변되어야 한다. 당신이 전에 좋다고 여겼던 것이나 혹은 자신에게 비교적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진정으로 좋은 것이 아니며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어야지만 당신은 비로소 가볍게 그것을 내려놓고 집착심을 제거할 수 있다.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일반적으로 모두 좋은 일을 하려면 마음이 가볍고 즐겁지만 나쁜 일을 하려면 마음이 긴장되고 두려워한다. 만약 당신이 수련 중에 부딪힌 일을 속인의 관념으로 가늠해 그것을 나쁜 일로 간주한다면 그럼 아마 두려움이 생겨날 것이다. 만약 당신이 바른 이치로 문제를 보고 수련 중에 부딪친 일체 일을 모두 좋은 일로 간주하고 대한다면 그럼 당신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사라질 것이다.

“관념이 바뀌고
부패된 물체 없애니
광명이 나타나네”
(《홍음》〈신생〉)

이렇게 되면 당신은 낙천적이고 가뿐하면서도 평탄하게 수련 중의 일체 일을 대하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수련 중에 부딪친 일체 일을 모두 좋은 일로 여기고 대한다면 곧 신심(信心)이 생기고 수련 중에 발생한 일체 일을 마주할 용기가 날 것이며 마난(魔難)을 당신이 수련하는 길에서 걸림돌로 여기지 않게 될 것이다. 일체 마난을 모두 수련의 길에서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으로 삼을 수 있게 될 것이며 이때 그 어떤 관(關)이나 난(難)도 당신의 수련을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당신이 수련 중에 부딪친 일체 일을 모두 좋은 일로 여기고 대한다면 이는 당신이 사부님께서 배치한 각도에 서서 문제를 보는 것을 선택한 것으로 구세력이 배치한 일에 직면하여 당신은 구세력이 배치한 각도에 서서 그것을 박해로 여기거나 또는 나쁜 일로 여기지 않게 될 것이다.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각도에 서서 그것을 좋은 일로 여기고 수련제고와 법을 실증할 좋은 기회로 보고 대한다면 곧 철저하게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하지 않는 것으로 오직 사부님의 배치를 둘러싸고 수련할 것이다. 그럼 구세력이 감히 당신을 건드리지 못하며 곧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고 배제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층의 구(舊) 우주 중에는 상생상극의 이치와 정반(正反) 두 종류의 요소가 있기에, 어떠한 일을 하든지 모두 일반일정(一反一正)이 동시에 나타나는데, 인류 사회가 하는 모든 일을 포함하여 모두 이 두 종류의 요소가 동시에 체현되어 나타날 것이다. 사람이 하는 한마디 말, 한 가지 일, 심지어 일념이 일어나는 것까지를 포함해 모두 정반 두 종류의 요소가 체현될 것이다. 마치 이번의 박해처럼, 그 목적이, 여러분이 다 잘 알듯이 출발점은 역시 매우 사악한 것이었지만, 그것의 결과는 악한 일을 하는 동시에 오히려 대법제자들이 박해를 반대하는 중에서 단련 성숙되게 했다. 게다가 박해가 엄중할수록 대법제자는 더욱더 성숙되는데, 악인은 이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2004년 미국서부법회설법》)

그 어떤 일이든 모두 정반(正反)이 동시에 나온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어떤 일에 직면했을 때 늘 지혜롭게 대하고 그것의 반면(反面)작용을 부정하고 그것의 정면(正面)작용을 이용한다면 일을 좋은 일이 되도록 촉성(促成)할 수 있다.

구세력이 배치한 출발점이 어떻든지 막론하고 일단 그것이 발생했다면 그럼 곧 정반(正反)이 동시에 나와 정반 두 방면의 작용을 동시에 일으킨다. 그것의 부면작용은 바로 박해수단을 통해 대법제자의 수련을 파괴하고 대법제자가 수련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반대로 정면작용이 있으니 바로 대법제자에게 수련에서 자신을 제고할 기회를 제공하고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제도할 좋은 기회를 준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세력의 배치에 직면해 지혜롭게 대하여, 구세력의 배치를 단호히 승인하지 않고 그것의 부면작용을 부정하는 한편 그것이 우리에게 제공한 이 좋은 기회를 이용해 자신을 수련하고 법을 실증하며 중생을 구도한다면 그것의 정면작용을 촉성시켜 최종적으로 좋은 일로 만들 수 있다.

그 어떤 일이든 모두 우리가 수련에서 제고할 좋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으니 그것을 이용해 자신을 수련하는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만약 당신이 특정한 일을 나쁜 일로 여기고 배척한다면 이는 당신이 주동적으로 이 일이 당신에게 제공한 수련 제고할 좋은 기회를 포기한 것이다. 당신은 이 일에서 자신을 수련하지 못하고 제고의 기회를 놓친 것으로, 최종적으로 이 일에서 당신은 제고하지 못했고 수련을 지체한 것이다.

당신이 수련 중에 부딪힌 특정한 일을 나쁜 일로 대할 때면 이는 당신이 이 일의 반면작용을 긍정하고 이 일의 정면작용을 포기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 한 가지 일에서 말하자면 당신은 자신을 진정한 수련인으로 간주하지 못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우리는,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 이 일념의 차이가 부동(不同)한 후과(後果)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나이에 속인이라면 다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녀는 살갗하나 안 다쳤다. 좋고 나쁨은 일념에서 나오는데, 만약 그녀가 거기에 누워서 이렇게 말했다 하자. ‘아이고, 난 안되겠다. 여기도 다쳤고, 저기도 다쳤다.’ 그러면 아마 힘줄이 끊어지고 뼈가 부러져 반신불수가 되었을 것이다.”(《전법륜》)

관건적인 시각에 일념(一念)의 차이로 서로 다른 후과(後果)를 가져올 수 있는데, 한 가지 일이 나타난 후 이 일을 어떻게 대하는 가에 있어 선택이 존재한다. 당신이 그것을 좋은 일로 간주하길 선택하는가 아니면 그것을 나쁜 일로 간주하길 선택하는가에 따라 곧 일의 결과가 달라지게 된다.

만약 당신이 이것을 나쁜 일로 간주하고 대한다면 그럼 곧 당신은 일의 부면작용을 긍정한 것으로 일의 부면결과를 가지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것을 좋은 일로 간주하고 대한다면 그럼 당신은 일의 정면작용을 긍정한 것으로 일의 정면결과를 가지려는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선택했다면 이는 곧 당신이 그것을 가지려는 것과 같고 이것이 곧 일의 향방을 결정한다. 즉 일의 결과는 당신 자신의 선택에 의해 초래된 것이다.

특히 구세력의 배치에 직면해 만약 당신이 그것을 나쁜 일로 간주하고 대한다면, 이는 곧 당신이 나쁜 일을 원한 것과 같으며 또한 당신이 박해를 원한 것과 같다. 본래 구세력의 배치가 발생한 원인은 바로 당신에게 사람마음과 누락이 있는 동시에 당신이 박해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 구세력은 곧 당신을 박해할 명분이 생긴 것이라 사부님과 호법신(護法神)이 옆에서 보며 아무리 조급해도 당신을 도울 방법이 없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은 자신의 이러한 고통이라든가 당신 자신의 마난이라든가를 모두 나쁜 일로 여기는데, 그렇다면 바로 속인이다. 고통은 업력의 빚을 갚는 것이며, 마음에 못마땅한 일은 心性(씬씽)을 제고할 수 있다. 속인으로 말한다 해도 사실 역시 이 이치이다. 모두 업을 없애고 있으며, 업을 없앰으로써 좋은 다음 일생이 있다. 단지 사람이 모를 뿐이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업력을 없애버리고, 수련 중에서 心性(씬씽)이 제고되어 올라와 최후에 원만을 이룬다. 대법제자로 말하면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법리이며,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몇 년이 지나갔는데도 아직도 근본적으로 관념을 개변하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해를 수련했는가? 아직도 이처럼 문제를 보지 못하며 아직도 바른 면(正面)으로 문제를 보지 못하고 있다.”

(《각지설법 8》〈2008년 뉴욕법회설법〉)

당신이 어떤 한 가지 일을 나쁜 일로 대하고 간주할 때면 스스로 재수 없음을 구한 것으로 이 일에서 당신은 자신을 속인으로 간주한 것이다. 당신이 사람마음으로 이 일을 간주한다면 이때 당신의 생각이 바르지 않기에 사부님께서도 당신을 도와줄 명분이 없다.

당신이 어떤 한 가지 일을 좋은 일로 대하고 간주할 때면 이 일에서 당신은 자신을 진정한 수련인으로 간주한 것으로 정념으로 이 일을 대한 것이다. 이럴 때면 사부님께서 당신을 도울 수 있다. 사부님께서 당신을 돕는다면 결과는 반드시 좋은 일이 된다. 때문에 당신이 그것을 좋은 일로 생각한다면 최종적으로 곧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수련인에게 있어 말하자면 정말로 “좋고 나쁨은 일념에서 나온다”(《전법륜》)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으니”(《전법륜》) 심성(心性)수련은 당신 자신이 해야 하는데 만약 당신이 닦는 문제에서 잘할 수 있다면 자신의 이 마음을 바로 놓은 것으로 정념(正念)으로 문제를 본 것이다. 그럼 사부님께서는 곧 당신을 위해 일체를 바로 잡아주실 수 있으며 다른 일은 사부님께서 모두 당신을 위해 잘 배치하실 수 있는데 최종결과는 틀림없이 좋을 것이다.

당신이 수련 중의 일체 일을 모두 좋은 일로 대할 수 있을 때 당신은 매 하나의 일이 당신에게 가져다주는 수련 제고할 좋은 기회를 소중히 여길 것이다. 설령 몸이 모순 속에 있을지라도 또한 주동적으로 안으로 찾고 자신을 닦을 수 있으니 밖으로 보면서 다른 사람의 부족을 찾진 않을 것이다. 또한 마음속에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질투심이 없을 것이며 남에게 불만이나 원한을 품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남을 비난하거나 배척하지는 않을 것이며 남을 해칠 수 없다. 당신이 마음속으로 다른 사람이 자신을 나쁘게 대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수련제고를 돕고 있는 것을 아주 청성하게 안다면 당신은 내심에서 우러나와 그를 이해할 수 있고 그에게 감사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수련 중의 일체 일을 모두 좋은 일로 대할 수 있을 때면 당신이 보는 이 세상이 상화(祥和)할 것이며, 당신이 누구를 보든 다 마음에 들고 어디를 보든 다 편안할 것이다. 당신의 마음속으로 모든 세인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세인의 표현에 개의치 않게 될 것이다. 당신에 대해 잘하고 못하는 것을 포함해 대범하게 관용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포용하고 남을 선하게 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대인지심(大忍之心)을 품을 수 있고 그 어떤 고난도 당신의 마음이 움직이지 못할 것이며, 마난(魔難)을 마주해 웃을 수 있고, 전력을 다해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수련 중의 일체 일을 모두 좋은 일로 대할 수 있을 때면 세상 모든 이들이 다 당신의 수련제고를 돕는 사람이 되며 당신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할 것이다! 또한 내심에서 우러나와 그들을 구도하러 갈 것이며 수련인의 자비를 펼쳐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수련 중에 직면하는 첫 번째 선택은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믿는가 여부를 선택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법을 믿는 것을 선택했다면 법에 따라 행동할 수 있고 이렇게 하면 이미 자신을 수련하는 것이자 또한 법을 실증하는 일을 잘할 수 있고 최종적으로 사명을 완수해 원만으로 나아갈 수 있다.

만약 당신이 법을 믿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면 그럼 당신은 자신을 잘 수련할 수 없으며 또한 법을 실증하는 일을 잘할 수 없고 최종적으로 수련에 실패할 것이다. 그러므로 신사신법(信師信法)은 수련 성패의 관건이다.

기왕 사부님께서 이미 “수련하기에 어떤 일도 모두 좋은 일이다.”(《세계 法輪大法의 날 설법》)라고 말씀하셨으니 만약 당신이 일에 부딪쳤을 때 여전히 나쁜 일로 간주한다면 이는 당신의 속인관념이 아직 전변되지 않았음을 설명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위로 수련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법을 실증하는 일을 잘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앞으로의 수련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해야 한다.

“수련하는 사람은 바른 이치(正理)에 따라 수련해야 한다. 고생을 겪고 난을 당하는 것은 업력을 제거하고 죄를 없애 버리며 인체를 정화(淨化)하고 사상경지를 제고하며 층차를 승화시키는 아주 좋은 기회로서, 이는 대단히 좋은 일이며 이것이 바른 법리(正法理)이다.”(《정진요지 3》〈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

그 어떤 일에 부딪치든 당신의 첫 일념은 바로 그것을 좋은 일로 확정짓고 그런 후에 다시 일을 처리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진정한 수련인이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에 부딪쳐 우선적으로 그 일을 좋은 일로 확정하는 이것은 수련인이 일에 직면하는 첫 번째 정념이다! 이런 정념이 있는 기초 하에서 다른 정념이 곧 끊임없이 나오게 되며 그럼 쉽사리 법을 실증하는 일을 잘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당신은 수련의 길에서 곧 한 걸음 한 걸음 위로 올라갈 수 있고 최종적으로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바로 하늘처럼 크고 좋은 일인 원만(圓滿)이 된다!

“관념이 바뀌고
부패된 물체 없애니
광명이 나타나네”
(《홍음》〈신생〉)

당신이 속인 중에서 형성한 나쁜 일이란 관념을 전변시켜 일체 일을 다 좋은 일로 여기고 대한다면 당신이 보기에 이 세상은 완전히 변할 것이며 시야와 흉금도 넓어질 것이다.

과거에 나는 속인이 좋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을 볼 때면 눈에 거슬려 했고 속으로 반감도 있었다. 지금은 다른데 지금 내가 보는 것은 바로 그의 고충이다. 세인은 미혹 속에서 법(法)을 모르기 때문에 도덕이 붕괴된 이 혼란한 세상에서 세파에 휩쓸리며 반대로 된 이치에 따라 나쁜 일을 저질러 업을 짓고 덕을 손상시킨다. 남을 해칠 뿐만 아니라 자신을 해치는데 이는 무지하게 어리석은 일을 하는 것이니 진실로 가련하지 않은가!

지금 나는 누가 나를 나쁘다고 해도 속으로 그를 원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그의 입장에 서서 그를 양해할 수 있고 포용할 수 있으며 내심에서 우러나와 그를 구도하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때로 나는 속으로 생각하는데 중생이 구도 받을 수 있다면 나는 자신의 일체를 다 버릴 수 있다.

전에 사람을 볼 때면 늘 그의 표면행동이 좋고 나쁜가를 봤지만 지금은 아예 그의 표면행동을 보지 않으며 그의 본질을 보고 그의 생명을 본다. 그는 일찍이 한 위대한 신(神)이었으며, 인간세상이 이토록 험악하고 또 미혹과 고생이 심하며 또 더럽고 어지러운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우주정법(宇宙正法) 중에 보탬이 되기 위해 동시에 또 자기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모든 공(功)이 사라질 위험을 무릅쓰고 신(神)의 일체를 버리고 정의를 위해 인간세상이란 이 더러운 똥통 속으로 뛰어 들어올 수 있었다. 아울러 정법을 위한 길을 다지기 위해 윤회전세(輪回轉世)하면서 생생세세 늘 고생을 겪으며 수많은 대가를 치렀으니 그야말로 온갖 고난을 다 겪으며 오늘까지 걸어왔다고 할 수 있다. 이 얼마나 소중한 생명인가!

바로 이런 이유만으로도 그는 마땅히 구도 받아야 한다! 금생금세(今生今世)에 때로 표현이 좋지 않은 그것은 구세력이 육성한 중공사당(中共邪黨)의 독해를 받은 것으로 그것은 단지 한 생명의 일시적인 표현일 뿐이다. 전반적으로 보자면 그는 또 하나의 아주 소중한 생명이며 우리가 구도할 가치가 있는 생명이다. 그러므로 나는 마음속으로 매 하나의 생명에 대해 모두 아주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는데 나는 그들 모두에게 아름다운 미래가 있기를 바란다.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협력 중에서 만약 모순에 부딪쳤을 때 여러분이 모두 그것을 좋은 일로 여기고 대할 수 있고 수련제고의 좋은 기회로 여기고 대할 수 있다면 그럼 주동적으로 안으로 찾을 수 있고 법 속에서 자신을 바로잡을 수 있으며 모순이 곧 해소될 것이다.

만약 그것을 늘 나쁜 일로 여기고 그것을 수련 제고할 좋은 기회로 여기지 못한다면 그럼 곧 안으로 찾을 수 없게 되고 밖으로 상대방의 부족을 보면서 상대방을 배척하면 간격이 형성될 것이다. 그럼 하나로 힘을 합쳐 법을 실증하는 일을 잘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이 속인 속에서 형성한 나쁜 관념을 전변시켜 수련 중의 일체 일을 모두 좋은 일로 간주하고 대한다면 누가 당신이 나쁘다고 하거나 당신의 명성을 손상시킬 때에도 당신은 곧 그것을 좋은 일로 간주하고 대하는데 이렇게 하면 당신은 곧 명(名)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다.

또 누가 당신의 이익을 차지해도 당신이 그것을 좋은 일로 간주하고 대할 수 있다면 당신의 이익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다.

또 누가 당신의 체면을 상하게 하고 자존심에 상처를 주어 감정이 상했을 때 당신이 또 그것을 좋은 일로 간주하고 대할 수 있다면 그럼 정(情)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당신의 속인관념이 전변된 후에 전면적으로 명리정(名利情)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사람 속에서 걸어 나올 수 있다.

한번은 내가 문밖을 나서면서 속으로 ‘앞으로 더는 남의 단점을 보지 않겠다’는 일념(一念)을 발했다. 내가 거리를 걸어갈 때 갑자기 모든 소리가 사라진 느낌이 들었는데 여전히 사람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았지만 장면이 아주 상화롭게 느껴졌는데 예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 역시 나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좋고 나쁨은 바로 우리의 일념(一念)에 달린 것임을 알게 했다.

당신이 수련 중의 일체 일을 모두 좋은 일로 간주하고 대할 수 있을 때면 당신은 남이 당신에 게 잘하든 못하든 의식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면 곧 세간의 득실(得失)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이때가 되면 그 누구도 당신을 움직일 수 없으며 수련과 법을 실증하는 길이 곧 막힘없이 잘 통하게 될 것이며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반드시 위대한 원만일 것이다!

이상은 개인의 현 단계 수련 속에서 작은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3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