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아(允兒)
【정견망】
나는 청년 대법제자로 1996년 부모님을 따라 법을 얻었고 지금까지 이미 26년이 지났다. 수련 중에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약간의 심득이 있어 여러분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처음 법을 얻었을 때는 나이가 어려서 부모님을 따라 연공장에 가서 연공하고 법공부 팀에 가서 법을 공부했다. 1999년 중공이 파룬궁(法輪功)에 대한 박해를 발동했을 때 나는 마침 중학생이었다. 현지 파출소와 거민위원회에서 여러 차례 찾아와 소란을 피우거나 부모님을 납치해서 세뇌반과 간수소에 감금한 적이 있었다. 나중에 부모님이 북경에 상방하러 갔다가 현지 정법위(政法委)와 파출소에 인계되었다. 이 때문에 부친은 불법으로 노동교양을 당했고 모친은 세뇌반에 감금되었다.
사부님의 자비하신 가호 하에 우리 일가족은 그 어두운 시절을 지나왔다. 이 기간에 내 생활도 몹시 곤란해서 집안 친척의 보살핌을 받았는데 고생이 아주 많았다. 나는 부모님이 하신 일이 옳은 것이며 천안문에 가서 현수막을 펴는 것은 대법제자가 조사정법(助師正法)하는 것으로 대법 수련은 잘못이 없으며 중공이 수중의 권력을 이용해 선량한 수련인들을 박해하고 탄압하는 것임을 알았다.
나중에 아버지가 석방되어 집에 돌아오신 후에야 집이 안정되었다. 이 몇 년간의 박해로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나는 아버지의 권유로 몇 차례 기술을 배우는 일을 했지만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집에 머물렀다. 부모님은 나더러 오랫동안 보지 않았던 대법서적을 보도록 권하셨고 이후 나는 부모님을 따라 매일 연공하고 발정념을 하면서 일부 법을 실증하는 일을 했다.
그러던 2011년 어느 날 한 무리 경찰이 우리 집에 침입해 불법으로 집을 수색하고 집안에서 자료를 만드는데 사용하던 컴퓨터와 프린터 및 일부 재물을 불법으로 약탈해갔다. 나는 부모님과 함께 파출소에 불법으로 1박2일간 감금된 후 나중에 현지 간수소로 보내졌다.
간수소에 있으면서 나는 법공부와 연공환경을 잃었고 수련인의 정념이 없었다. 매일 수감자들이 하는 속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부모님이 돈이 없으면서 자료를 만들다 납치되었고 또 돈을 써서 빼내줄 사람도 없다고(돈을 써서 사람을 빼내는 것은 수감자들에게 들은 말이다) 원망했다.
사악의 박해를, 사람에 대한 사람의 박해로 여겼고 자아를 실증하려는 마음이 강렬했으며 사악에게 머리를 숙일 수 없다는 명예를 구하는 마음이 수련인의 정념을 점거했으며 ‘영웅’이 되려는 생각이 자라났다. 법정에서 자신과 부모님을 위해 정면으로 변호했고 당장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판결이 내려지자 우리 가족은 모두 항소했고 상소장을 쓰는 기회를 이용해 현지 중급(中級)인민법원에 진상을 알렸다. 간수소에서 몇 달을 머문 후 중급법원에서도 원래 판결을 유지했다. 우리는 불법으로 다년간 판결을 받았다. 나와 어머니는 같은 여자감옥의 서로 다른 구역에 감금되었고 아버지는 남자 감옥에 수감되었다.
감옥에 들어간 후 나는 한 형사범(감옥에서 전문적으로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는 죄수)에 이끌려 한 감구(監區 수감자 구역)에 들어갔는데 전문적으로 대법제자를 박해하기 위해 만든 곳이었다. 나는 집에 있을 때 본 간수소에서 대법제자에 대한 잔혹한 박해를 떠올리고 두려움이 일어났다. 내가 대법을 수련한 원인은 결국 부모님의 수련을 따른 것이다.
몇 년간 불법으로 감금된 후 나는 부모님보다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과거 집에 있을 때 정진하던 상태를 되찾으려고 했지만 오히려 교란이 아주 심했고 발정념을 할 때도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앉아있을 수 없었다. 연공할 때는 중간에 참지 못하고 화장실에 갔으며 연공 동작에도 잘못이 나타났다. 몇 년간 줄곧 이렇게 정진하지 못하는 상태에 처해 있었다.
다행히도 자비하신 사부님께서는 변변치 못한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부모님이 집에 돌아온 후 나는 책을 들고 연공하면서 동수들의 격려 하에 발정념을 시작했다. 상태는 하루하루 좋아졌고 나는 안으로 자신의 부족을 찾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처음 법을 얻을 때 나이가 어려서 부모님을 따라 법을 배우고 연공했기에 단지 대법이 좋다는 것만을 알고 매일 세 가지 일을 했을 뿐 대법에 대한 이성적인 인식이 아주 적었다. 천목(天目)과 느낌을 추구하길 좋아했고 법속에서 나의 기호에 부합하는 것을 추구하길 좋아했다. 또 결속(結束)시간에 대한 집착도 있었다.
간수소에 납치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시간에 대한 집착이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진상을 잘 알리고 중생을 구하는 일과 배치됨을 인식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정진하지 못했고 과거의 아름다운 생활과 기억을 되찾는 것에 집착했다. 시간이 이미 지나갔고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올 수 없음을 발견했을 때 나는 소극적이고 나태한 가운데 떨어졌다.
나는 자신이 마땅히 독립적인 대법제자가 되어야 하며 부모 동수에게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부모님이 나를 수련으로 끌어들인 것은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연분이지만, 잘하고 못하는 것과 수련을 착실히 하는가 여부는 나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지금 나는 매일 법공부와 연공 및 발정념을 견지하고 있으며 일사일념(一思一念)에서 대법의 표준으로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하며 이성적으로 법을 인식하고 더는 표면에 흐르지 않고 착실하게 수련할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3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