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청풍
【정견망】
《신곡》은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가 1308년부터 1321년까지 13년에 걸쳐 완성한 세계적인 걸작이다. 이 작품에서 단테는 지옥과 연옥을 거쳐 마지막으로 천국에 가서 하느님을 만나기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겪은 일들을 묘사하고 있다. 시의 형식으로 천주교 사상을 분명히 드러내 세인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각종 유혹을 극복하고 자신의 잘못을 참회해야 하며 이를 통해 신의 관용을 빌어야지만 천당에 들어갈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또한 악행을 저지른 자들은 반드시 지옥에 들어가 영원한 징벌을 받아야 한다.
《신곡》의 예술적인 성취는 의심할 바 없으니 그 엄밀한 구조와 형식 및 내용이 완벽하게 통일되어 있다. 서양 문학 및 더 나아가 세계 문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중세문학의 산물인 《신곡》이 묘사하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이야기일뿐 실제로 발생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나는 학창시절 일찍이 이 작품을 본 적이 있는데 당시 작자의 뛰어난 상상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지금 수련의 각도에서 다시 이 작품을 보니 이는 사실 한 부의 진실한 기록임을 알게 되었다. 즉 작가의 원신(元神)이 육신을 떠난 후 실제로 겪은 실제 경험으로 마치 불교의 한 승려가 극락세계를 다녀온 《서방극락세계유람기》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단지 더 복잡하고 우여곡절이 더 많을 따름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시인이 보고 들은 내용은 다 직접 겪은 것으로 최후에 문장으로 완성했을 때 일부 문학적인 변화가 더해졌을 뿐이다.
중세 서양의 도덕관념은 사실 아주 전통적이었고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신(神)을 믿었으며 사회 상태 역시 총체적으로 청정(淸靜)했다. 때문에 일부 근기가 아주 좋은 이들은 특정한 상황 하에서 원신이 육체를 떠나 다른 공간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단테가 바로 그런 인물 중 하나였다. 우리가 알다시피 과거 종교의 목적 중 하나는 바로 신을 믿는 문화적인 분위기를 다지는데 있었고 그 구체적인 방법은 다양하다. 문학을 매개체로 삼는 것 역시 그중의 하나였다. 그러므로 어떤 이들은 전문적으로 이런 일을 하도록 선별되었으니 바로 단테와 같은 이들이다.
사실 《신곡》에서 표현한 층차 역시 아주 제한적인 것으로 그가 경험한 지옥・연옥・천국 역시 무수히 많은 비슷한 것의 하나로 역시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종류의 문학작품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적지 않지만 단지 규모와 지명도 및 영향범위에서 차이가 날 뿐이다. 여기서는 두 가지 중국문학상의 사례를 들어보고자 한다.
첫째는 이백의 《몽유천모음유별(夢遊天姥吟留別)–꿈에 천모산을 노닌 것을 읊고 떠나다》이다.
이에 나는 오월(吳越)을 꿈꾸었으니 어느 밤 달 비치는 경호를 날아갔네.
호수 달이 내 그림자 비추더니 나를 섬계(剡溪)로 보내주었네.
사령운 머물던 곳 지금도 남아 맑은 물결 넘실대며 원숭이는 맑게 우네.
사공(謝公)의 나막신 신고 푸른 구름사다리를 오르나니
산허리에는 바다 위로 뜨는 해가 보이고 허공에는 천계(天雞) 소리 들렸네.
천개 바위와 만개 굽이에 정해진 길 없으니
꽃에 홀려 바위에 기대니 문득 이미 어두워졌네.
곰이 포효하고 용이 울듯 시끄러운 바위샘 소리
깊은 숲을 떨게 하고 겹겹의 봉우리도 놀래키네.
구름은 어둑해져 비가 오려는 듯 물결은 출렁이며 물안개 피어나네.
하늘이 갈라진 틈으로 번개와 우레 치더니 언덕이며 산이 무너지고 꺾여
신선 사는 동천 돌문 우르릉 쾅쾅 열렸네.
푸른 하늘 넓고 넓어 끝도 보이지 않는데
해와 달은 금은대(金銀臺)를 반짝반짝 비췄네.
무지개로 옷 해 입고 바람으로 말을 삼아구름위 신들이 어지러이 내려오는데
호랑이는 비파를 타고 난새는 수레 끌며 신선들이 삼대처럼 늘어섰네.
갑자기 혼백이 놀라 요동치니 멍하니 놀라 일어나 길게 탄식하네.
我欲因之夢吳越,一夜飛度鏡湖月。
湖月照我影,送我至剡溪。
謝公宿處今尚在,淥水蕩漾清猿啼。
腳著謝公屐,身登青雲梯。
半壁見海日,空中聞天雞。
千岩萬轉路不定,迷花倚石忽已暝。
熊咆龍吟殷岩泉,栗深林兮驚層巔。
雲青青兮欲雨,水澹澹兮生煙。
列缺霹靂,丘巒崩摧。
洞天石扉,訇然中開。
青冥浩蕩不見底,日月照耀金銀台。
霓為衣兮風為馬,雲之君兮紛紛而來下
虎鼓瑟兮鸞回車,仙之人兮列如麻。
忽魂悸以魄動,恍驚起而長嗟。
시를 보면 알 수 있다시피 이백은 전혀 무슨 꿈을 꾼 게 아니며 일체는 다 실제적인 것이다. 단지 이쪽의 신체는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단지 꿈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 하나의 전형적이면서 또 흔히 많은 사람들의 오해를 받는 작품인 백거이의 《장한가(長恨歌)》 뒷부분을 보자.
임공(臨邛)의 도사로 도성에 머무는 길손 있어
정성으로 혼백을 불러들일 수 있다고 하는구나.
황제의 잠 못 드는 처지가 가련하여
마침내 방사(方士) 시켜 은근히 찾아보게 하였네.
구름에 올라 기(氣)를 부리니 번개처럼 빠르고
하늘에 오르고 땅에 들어가 두루 찾아보았다네.
위로는 하늘 끝 아래로는 황천(黃泉)까지 찾았으나
두 곳이 너무 망망해 어디서도 찾지 못했네.
바다 위에 신선이 사는 산이 있다는 말 들었으나
아득한 사이에 산은 텅 비어 있었다.
영롱한 누각에 오색구름 피어나고
그 안에 아름다운 선녀들이 많이 있었네.
그 중에 한 사람 태진(太真)이 있었으니
눈 같이 흰 피부, 꽃 같이 고운 얼굴이 양귀비를 닮았네.
황금 대궐 서쪽 행랑에서 옥대문을 두드려
여종인 소옥(小玉)에게 전하여 쌍성(雙成)에게 알렸네.
황제의 사신이 왔단 말 전해 듣고
아홉 겹의 깊은 휘장 속에서 잠자던 혼이 놀랐구나.
옷을 잡고 베개 밀어 제치고 일어나 배회하다가
주렴과 은병풍이 스르르 열리더니
구름 같은 머리 반쯤 기운채로 막 잠이 깨어
화관(花冠)도 정제하지 못한 채로 방에서 내려왔네.
바람 불어와 신선의 소맷자락 날리니
예상우의곡 춤을 추는 듯하였다네.
옥 같은 얼굴에 고독이 깃들어 눈물 그치지 않으니
배꽃 가지가 봄비에 젖은 듯
정을 품고 눈물을 머금고 임금께 감사드렸네.
한번 이별 뒤에 아련해진 황제의 음성과 얼굴
소양전 안에서의 임금의 은혜 끊어진 뒤로
봉래궁전 안에서의 세월은 길기만 하였답니다.
고개 돌려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니
장안은 보이지 않고 티끌과 안개만 자욱합니다.
오직 지난날 쓰던 물건 가져다 나의 깊은 정 보이려
자개함과 금비녀를 부쳐 보내려합니다.
비녀 한 개와 함 한 쪽을 증거로 남기려
비녀는 황금을 쪼개고 상자는 자개를 나누었다.
우리 마음 금비녀와 금 상자처럼 굳게 가져서
천상과 인간세상에서 서로 만나보려 합니다.
臨邛道士鴻都客,能以精誠致魂魄。
為感君王輾轉思,遂教方士殷勤覓。
排空馭氣奔如電,升天入地求之遍。
上窮碧落下黃泉,兩處茫茫皆不見。
忽聞海上有仙山,山在虛無縹渺間。
樓閣玲瓏五雲起,其中綽約多仙子。
中有一人字太真,雪膚花貌參差是。
金闕西廂叩玉扃,轉教小玉報雙成。
聞道漢家天子使,九華帳裡夢魂驚。
攬衣推枕起徘徊,珠箔銀屏迤邐開。
雲鬢半偏新睡覺,花冠不整下堂來。
風吹仙袂飄飄舉,猶似霓裳羽衣舞。
玉容寂寞淚闌干,梨花一枝春帶雨。
含情凝睇謝君王,一別音容兩渺茫。
昭陽殿裡恩愛絕,蓬萊宮中日月長。
回頭下望人寰處,不見長安見塵霧。
惟將舊物表深情,鈿合金釵寄將去。
釵留一股合一扇,釵擘黃金合分鈿。
但教心似金鈿堅,天上人間會相見。
이 시 역시 마찬가지로 무슨 상상해서 쓴 것이 전혀 아니며 원신이 육체를 떠나 겪은 진실한 경험을 적은 것이다. 예전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보면 아주 똑똑히 알 수 있었지만 현대인들은 신을 믿는 기점이 너무 낮아서 어찌된 일인지 모를 뿐이다.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2518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