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연교(蓮橋)
【정견망】
수련 도중 신체 소업은 수많은 수련자들을 미혹시켰고 대법 수련에 뼈아픈 교훈을 가져다주었다.
여기서는 개인의 한 차례 소업 경험을 적어 동수들과 함께 제고하길 바란다.
몇 년 전 가슴 부분에 손으로 만져질 정도의 작은 혹이 생겼고 늘 통증이 있었다. 이 상황이 몇 년간 지속되면서 수시로 아팠다 말았다 했다. 한번은 막 통증이 발작했을 때 마침 병원을 지나가는 중이었다. 병원 입구 간판에 커다랗게 부착된 무료 유방암 검사라는 말에 마음이 움직여 집에 돌아온 후 나도 모르게 가족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식구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다.
“당신이 들어가면 아마 나오지 못할 수 있어요.”
나는 속으로 깜짝 놀랐고 사부님의 점화임을 깊이 체험했다. 제때에 연극에서 뛰쳐나오도록 점화해주신 것이다. 이런 “공교로운 일”이 마침 가슴 부분이 불편할 때 다시 일어났다. 이번에는 지난번과 마찬가지의 간판이 아예 아파트 입구에 걸려 있었다.
이 일은 한번이 아니라 수년간의 소업 중에 지속되었다. 어머니도 나와 마찬가지 증상으로 유선암에 걸렸는데 수술을 받은 후 계속 치료 중이다. 얼마 후 이번에는 이모가 어머니와 같은 병에 걸려 같은 나이에 동일한 위치에 같은 병을 앓았다. 두 식구는 놀란 동시에 서로 일깨워 주며 두 집의 딸도 가서 검사받아 보라고 경고했다. 모친은 나에게 부탁하는 동시에 이모의 딸에게도 검사해보라고 강조했다.
어차피 연극이라면 언젠가는 막이 내려갈 때가 있다. 한번은 이렇게 불편하게 지내는 중 꿈에서 한 커다란 손이 내 가슴에서 더러운 혹을 끄집어내는 것을 보았다. 깨어난 후 나는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 신체를 청리해주셨음을 믿었고 몹시 감사드렸다.
하지만 소업은 이게 끝이 아니었고 심지어 더욱 미친 듯이 왔다. 나중에 어느 시간이 지난 후 야간에 계속 아파서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고 가장 견디기 힘들 던 밤 나는 사부님께 부탁하며 반복적으로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難忍能忍)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行能行)”를 외웠다. 다음날 깨어나 보니 마치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아무것도 없었다. 이 연극은 여기서 막이 내렸다.
이번 소업을 통해 나는 몇 가지 계발을 받았다.
“거짓 진실(假真)”과 “거짓 공교로움(假巧)”에 미혹되지 말고 올가미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더욱 진짜 같을 때일수록 더 경계해야 하며 더 공교로울수록 더 냉정해야 한다. 이것은 구세력이 배치한 것으로 연기가 아주 세밀해서 진짜에 가까울 뿐이다.
이렇게 장기적으로 소업과 대결하는 중에 우리는 종종 점차 의지가 닳아버리며 피동적으로 대처하다가 마지막에는 동요하며 의심하거나 두려워하게 된다.
법 공부에서 사존께서는 늘 대법제자가 ‘주역’이 되라고 가르치셨다. 소업 중에서 시간의 길이에 상관하지 말고 우리는 왜 주동적으로 그것을 이용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긴 시간을 이용해 수련자의 의지를 꺾으려는 것이다. 그럼 우리 역시 반대로 법 속에서 의식적으로 자신의 의지력과 결심을 강화해 ‘마난’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반대로 박해자를 동요시키고 시달리게 하며 소훼시켜야 한다.
이 과정 중에 사상에 동요가 나타나는 것은 피하기 어렵고 심지어 잘못을 범할 수도 있다. 이때 풀이 죽지 말아야 하며 제때 바로 잡아야 한다. 또 이것이 바로 수련 과정임을 또렷이 알아야 하며 절대 소홀히 하거나 자만해선 안 된다. 때로는 반복적으로 넘어지기도 하는데 그러면 반복해서 기어일어나라. 이것을 의식하는 그 순간 즉시 수련으로 돌아오며 후회 속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
구세력은 우리가 영원히 그곳에 남아 있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우리 사존께서는 영원히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며 우리에게 영원히 희망을 남겨 주신다. 우리보다 더욱 우리를 소중히 여기신다. 개인적인 깨달음은 좌절 속에서 빨리 청성해져서 회귀하는 것이 오성이 좋고 의지가 굳센 체현이었다. 또한 우리가 마땅히 수련해야 할 한 점이다.
관을 넘는 중에 설사 구세력이 눈을 어지럽게 하는 온갖 연기를 펼쳐도 이 역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다. 혼란 중에서, 미혹 중에 수련자는 사존의 점화・배치・보호를 마음을 두어야 하며 자신의 신심을 강화해야 한다. 사실 매 차례 마난 중에 사존께서는 늘 우리 곁에 계신다.
사존께서는 정법수행(正法修行)을 뚜렷이 알려주실 수 없다. 하지만 각종 방법으로 교묘하게 점화하시고 일깨워 주시며 가지해주신다. 대법제자는 오성을 제고해야 하며 제때 사부님의 힌트를 깨닫고 자신을 바로잡아야 하며, 어리석게도 마난 속에서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
정념(正念)은 시종여일(始終如一)해야 하는데, 해뜨기 직전이 가장 어두운 것으로 소업이든 그 어떤 형식의 수련 속에서든 대법제자는 마땅히 바른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하며 시종 포기하면 안 된다. 정법수행은 오직 사존께서 우리 문 앞까지 보내주신 파룬따파(法輪大法)라는 이 한 갈래 길을 걸을 수 있을 뿐이며 매 하나의 대법수련자로 말하자면 당신이 이 길을 가지 않으면 다른 길은 결단코 없다. 그 어떤 수련자든 자세히 생각해보면 당신이 속인 중으로 돌아가려 해도 돌아갈 길이 없는데 대법의 진귀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절대 쉽게 얻었다고 해서 쉽게 잃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이번 소업에서 나는 자신이 잘해서 큰 걸음으로 단번에 뛰어넘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정반대로 매 차례 고험에는 늘 파동이 있었고 늘 매우 어렵다고 느꼈고 또 억지로 버텨냈다. 동수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은 ‘평탄한 길’을 걷기를 기대하지 말아야하는데 수련이란 바로 고생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가 법을 얻었기 때문에 고난 속에서 견디며 지켜야 하는데 도를 깨닫고 승화할 좋은 기회이다.
“산 첩첩 물 굽이굽이 길이 없는 것 같은(山重水複)” 속에서 수련자가 초심을 지키고 바뀌지 않는다면 “유암화명(柳暗花明)”은 바로 사부님과 대법이 주는 은혜의 필연적인 결과가 될 것이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71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