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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이 들려주신 이야기

글/ 연(蓮)

【정견망】

모친은 신(辛)씨로 본적은 산동성 해양현(海陽縣) 대신장(大辛莊)이다. 모친의 말씀에 따르면 청나라 때 조정에서 관리를 지낸 조상이 있었는데 나중에 어떤 사람이 일가 중에 한량 자제가 나왔다고 황제에게 상주했다. 그러자 황제가 대노하여 전국 9부(府) 108개 현(縣)에 있던 신 씨들을 전부 산동 해양현에 모아 그곳에 신장(辛莊 역주: 신 씨들로 이뤄진 일종의 족성촌)을 만들었다고 한다.

나중에 인구가 많아지자 또 작은 신장(小辛莊)이 만들어졌다. 조정에서 전문적으로 사람을 파견해 관리했다. 비록 가족들이 가난하진 않았지만 관리가 엄해서 그다지 자유롭지 못했다고 한다. 나중에 모친의 조상은 더 이상 관청의 간섭을 받고 싶지 않아서 네 형제(아마 신사인辛仕仁, 신사의辛仕義, 신사례辛仕禮, 신사걸辛仕傑인 듯)가 몰래 밖으로 도망갔고(장가구張家口 바깥) 그 후 형제들이 헤어졌다.

중화민국 시기 국민당 군관 중에 신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어서 모친과 조상이야기를 하다가 당시 산동에서 온 네 형제 중 한 갈래임을 알게 되었다. 그에 따르면 요령성 노건평(老建平)에 한 갈래, 통요(通遼)에 한 갈래가 있고 또 군관가족 한 갈래가 있었다. 군관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늘 국내에서 부대를 따라 전전했으며 나머지 한 갈래는 아직 찾지 못했다고 했다. 나중에 눈물을 흘리며 이별했는데 계속해서 나머지 한 갈래를 찾겠노라고 했다.

외증조할머니는 청나라 말기 가(賈)씨 성을 가진 관리 집에 태어났는데 나중에 신 씨 가문에 시집가서 네 아이를 낳았다. 외할아버지가 넷째였는데 선천적으로 심장병을 앓았다. 당시 외할아버지의 외삼촌 중 한 분이 저명한 한의사였다. 한번은 이 분이 외증조할머니 집에 오자 조카의 병을 고쳐달라고 부탁했다. 그 분은 치료할 수는 있지만 약을 구하기 어렵고 배합도 어려워 돈이 많이 든다고 했다. 외증조할머니는 괜찮다면서 그에게 1200냥의 은자를 주었는데 3년을 기한으로 약을 조제하되 중간에 재촉하지 않기로 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삼년이 지났다. 외증조할머니는 한의사 형제가 와서 외할아버지의 병을 고쳐준다는 소식을 듣지 못해 외할아버지를 가보게 했다. 외할아버지가 가보니 외삼촌은 집에 없었다. 그래서 그분 제자에게 “외삼촌은 어디 가셨어요?”라고 물었다.

제자가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거의 집에 안 계신다네. 나귀를 타고 여러 지방에 약을 구하러 다니신다네. 약초를 채집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지역, 날씨, 시간 등을 다 따져야 하지. 가령 어느 성, 어느 산, 어느 계절에 구하거나 해가 뜨기 전에 막 나온 싹을 채취해야 하는 등등. 또 이렇게 서로 다른 약초를 채집해 와서는 또 여러 벌레들에게 먹여야 한다네.”

외할아버지는 이 벌레들을 보고는 구역질이 나서 곧 집으로 돌아왔다.

또 매우 긴 시간이 지나 외할아버지의 외삼촌이 약을 보내왔다. 모두 10환이었는데 먹고 병이 나으면 곧 멈추고 더 먹지 말라고 했다. 외할아버지는 6번째 환약을 먹었을 때 완전히 회복되었다.

나중에 외할아버지가 외삼촌에게 물어보았다.

“외삼촌이 주신 약이 대체 어떤 약이기에 이렇게 잘 들어요?”

그가 말했다.

“내가 삼년의 시간을 들여 1년 내내 전국 각지에서 약을 채집했단다. 받은 돈은 주로 길에서 숙식하는데 다 썼고 나는 돈을 번 것이 별로 없다. 만약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내가 고치지 않았을 것이다. 길을 가는 것도 매우 고생이고 승냥이 호랑이를 만나면 생명 위험이 있다. 또 채집해온 약을 벌레에게 먹이고 여러 벌레가 내놓은 배설물을 가지고 환약을 만들었다. 다 합해 열 개를 만들었는데 네가 그것이 벌레 똥인 것을 알면 먹지 않을 것 같아서 네게는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다.”

외할아버지는 이 말을 듣고 매우 감동했고 또 감사드렸다. 외할아버지는 그중 남은 약을 두 알을 스승의 친구에게 주었다. 이 친구 분은 유(劉)씨 성을 가진 선생님이었는데 학생 때문에 심장병이 났는데 약 두 알을 먹고 좋아졌다. 나머지 두 환은 각자 다른 친구들에게 하나씩 주었다. 모두 심장에 약간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는데 다 좋아졌다.

외할아버지는 학식이 있어서 고향 공립학교에서 교장을 지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또 자녀들에게 금기시서화(琴棋詩書畫 거문고 바둑 시 서예 그림)를 가르쳤다. 또 아무리 큰 압력을 받아도 딸이 전족하는 것을 금지하셨다.

이 때문에 90세 된 모친은 발이 정상이다. 또 장기를 둘 줄 알고 퉁소도 부신다. 외할아버지의 교육을 받아 별자리도 보신다. 외할아버지 가정은 전통문화 영향을 깊이 받아 부자 사이에 효도하고 남을 선하게 대하는 것으로 멀리까지 소문이 났다. 외할아버지의 집이 있는 곳은 교통 요지여서 적지 않은 관원이 이곳을 지나가며 외할아버지는 집에 들러서 쉰다. 외할아버지의 요리사 역시 청나라 상서(尙書 역주: 지금의 장관에 해당)집안 요리사의 제자로 솜씨가 일품이었다. 귀한 손님이 오면 모두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한 귀빈은 “장성 밖에 이런 우아한 집이 있다니!”라며 찬탄했다.

외할아버지가 24살이 되었을 때 한 살 위인 장학량(張學良 역주: 장쉐량으로 중화민국 시기 만주 군벌) 장군도 이 집에 손님으로 온 적이 있다. 동북 전쟁 때는 오패부(吳佩孚 중화민국시기 군벌)는 더 자주 오는 손님이었다. 조상 대대로 후손들이 관직에 나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할아버지는 많은 승진 기회와 돈 벌 기회를 거절하고 교육자이 되기로 선택했다.

빈부를 가리지 않으셨고 진지하게 배우러 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있는 힘을 다해 지도해주셨다. 공부를 싫어하는 한 학생이 몇 명 선생님을 화나게 하여 떠나보낸 적이 있다. 나중에 누가 그를 외할아버지에 부탁했다. 외할아버지가 무엇을 가르쳐도 배우려 하지 않았다. 나중에 외할아버지는 그가 집을 나가 중의사가 될 생각을 하는 것을 알고 시험 삼아 그에게 의서(醫書)를 가르쳤다. 뜻밖에도 이번에는 잘 배웠고 마침내 매우 유명한 중의사가 되었다. 전 열하성(熱河省) 성장과 큰 종합병원 원장이 모두 외할아버지 제자였다.

모친은 늘 자기가 어렸을 때 먹은 다시마는 손바닥만큼 두꺼웠고 참새우는 한 근이나 먹었다고 했는데 모두 외할아버지의 제자들이 나중에 돈을 번 후 찾아뵐 때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외할아버지는 인품이 선량하셨다. 1949년 공산사당이 정권을 빼앗자 한 군인 지도원이 외갓집 양치기에게 쓰라린 과거를 회상하라고 하면서 앞장서서 외할아버지를 비판하라고 시켰다.

양치기가 연단에 올라가 자기는 외할아버지 집에서 양을 키운 후 비로소 배부르고 따뜻하게 지내게 되었고 자신을 매우 잘 돌봐주었다고 했다. 그러자 말을 마치기도 전에 연단에서 쫓겨 내려갔다.

이번에는 다른 여자 요리사에게 비판하라고 했다. 그녀는 성이 냉(冷)씨였는데 외할아버지 집에서는 전혀 그녀를 하인으로 대한 적이 없고 밥을 먹을 때도 그녀와 그 집 어른들과 함께 밥을 먹었고 외할아버지의 식구들은 그녀에게 반찬을 가득 채우고 밥도 더 주었다고 했다. 이렇게 되자 더 이상 비판을 할 수 없었다.

외할아버지는 젊었을 때 기인(奇人)을 만나 기서(奇書)를 한 권 얻었는데 이 책을 볼 때 탁자에 놓고 손으로 쳐서 어느 면이 펼쳐지면 그 면을 보셨다. 만일 다른 사람이 이 책을 보면 반드시 태워버려야 한다고 했다. 모친의 사촌 언니가 이 책에 대해 호기심이 많아 할아버지가 서재를 비웠을 때 모친을 데리고 이 책을 찾으러 갔다. 모친은 어렸을 때는 한 번 보면 잊어버리지 않아 한쪽을 보고는 몇 구절 대략적인 뜻을 알았다.

국민당은 백만 대군을 가졌으나 마지막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헛수고다. 하지만 사당(邪黨) 역시 60여 년의 천하만 있다(아마 이 예언은 정법正法의 수요에 따라 변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보지 않았는데 외할아버지가 돌아오셨다. 멀리서 문 입구를 보시고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을 알고서 기침 소리를 몇 번 내셨다. 우리가 몰래 떠나자 비로소 들어가셨다. 누군가 기서를 건드린 것을 아신 외할아버지는 약속대로 눈물을 머금고 책을 불태우셨다.

외할아버지도 기인이셨다. 외할머니가 외삼촌을 낳을 때 외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이 아이는 문무(文武)에 다 능한데 내가 이 큰 사당 뒤편의 꽃봉오리에 싸서 내가 안고 온 것이다. 내가 아이를 안고 달릴 때 한 사람이 뒤에서 나를 쫓아와서는 이 아이는 당신 아이가 아니니 아이를 내려놓으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지 않고 아이를 안고 돌아왔다.”

이 외삼촌이 12살 때 큰 병이 났는데 곧 세상을 떠날 것 같았다. 외할머니는 다급했으나 외할아버지는 꼼짝도 않으셨다. 그러면서 말씀하셨다.

“죽지 않고 다른 사람과 혼을 바꾸어 올 것이오.”

이렇게 혼이 바뀐 아이는 굶어서 얼굴이 누렇게 뜨고 수척했다. 이 아들은 이후에 아주 착실하긴 했지만 아무 능력이 없었다.

외삼촌의 일생은 정말 그랬다. 한번은 외할아버지가 깨어나 외할머니께 말씀하셨다.

“누님이 돌아가시겠어!”

외할머니는 어제 큰 손자가 고모할머니가 멀쩡한 것을 봤는데 무슨 헛소리냐고 했다.

그러자 외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어젯밤 잠이 들었을 때 한 사람이 나를 데리고 어느 사당으로 갔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내 앞에 책상 하나를 놓았소. 잠시 후 한 사람을 데려왔는데 보니 큰 누님이셨소. 내가 즉시 누님 하고 소리쳐 불렀는데 그때 누군가 탁자를 치며 여기 무슨 누님이 있느냐! 고 했소.”

다음날 정말 누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공산사당이 정권을 잡은 후 외할아버지는 전통이 파괴되는 것을 발견하고 늘 몇 세대의 사람을 박해한다며 탄식하셨다. 이때부터 말씀이 많이 줄어드셨다.

1960년대에 외할아버지는 침실에서 앉은 채 돌아가셨다. 그 후 어느 날 80대의 큰 이모가 병이 났을 때 며칠간 의식이 없었다. 깨어난 후 모친에게 외할아버지를 뵈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큰 사당의 관리로 계셨는데 나를 보고는 매우 놀라시더니 이곳은 네가 올 곳이 아니다, 아직 올 때가 안 되었다.”

그러면서 사람을 시켜 말에 태워 돌려보내셨다. 내가 말을 타고 가다보니 말이 큰 구덩이에 떨어졌는데 이때 깨어났다고 했다.

모친은 지금 90대신데 전통문화의 훈도(薰陶)를 받아 남을 먼저 생각하고 늘 좋은 것은 남에게 양보하신다. 자녀들에게도 남을 너그럽게 대하고 자기를 엄격히 하라고 가르치셨다. 속인의 눈으로 보면 바보지만 수련에서 말하는 도를 닦지 않아도 도(道)속에 있는 분이다. 모친은 1995년 법을 얻었으며 수련을 시작한 이래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다.

어느 대법제자가 내게 말했다.

“기억하세요, 한 집에 대법제자가 있으려면 최소한 십대 조상이 덕을 쌓아야 한답니다.”

나도 대법제자이니 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28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