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목목(木木)
【정견망】
석법희(釋法喜)는 해남(海南) 사람이다. 외모가 추해서 겉으로 보면 40대로 보였다. 당시 광동 광서 일대의 노인들은 어릴 때 그를 본 적이 있는데 지금도 외모가 전혀 변하지 않고 그대로라고들 했다. 민간에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법희는 당시 이미 3백 살이 넘었다고 한다.
법희는 또 자신이 여산의 혜원(慧遠)법사를 안다고 했고 또한 진(晉)나라와 송(宋 남조 유씨의 송나라)나라 왕조의 일을 직접 겪었노라고 했다. 평소에는 조용해서 아무 말도 없었지만 일단 말을 꺼냈다 하면 의미가 자못 깊었다. 당시 사람들은 그가 직언으로 재앙이나 악행을 지적할까 두려워 그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진조(陳朝)의 마정(馬靜)이 광주(廣州) 자사로 막 부임했을 때 법희가 직접 주부(州府 주자사가 머무는 관아)로 찾아갔다. 대청 땅 위에 말머리 모양을 만들어 그 아들에게 보여주고는 떠났다. 마정은 본래 명문가문 출신인데다 무략(武略)이 많았다. 광주에 있을 때 갑사(甲士) 수만을 거느리고 각조 깃발과 무기로 위엄을 과시했다. 이렇게 사치스럽고 분수에 넘게 참월(僭越)하다 누군가에게 모반죄로 고발당했다. 진나라 황제가 임여후(臨汝侯)를 파견해 그의 재산을 몰수하고 참형에 처했다. 법희의 예견이 이와 같았다.
[역주: 말머리는 마두(馬頭)로 바로 마정의 목이 여기서 떨어진다는 의미]
나중에 수나라 양제(煬帝)가 황제가 되기 전 법희에게 특이한 능력이 있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파견해 양주로 데려와 궁궐에 머물게 했다. 당시 궁내에 새로 대청을 만들었는데 법희가 와서 보고는 깜짝 놀라며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면서 고개를 돌려 말했다.
“하마터면 압사당할 뻔했구나.”
이날 밤 하늘에서 큰 비가 내려 건물이 무너졌고 수십 명이 압사당했다.
법희가 나중에 궁궐을 돌아다니며 양의 머리를 구했다. 양제가 이 말을 듣고는 법희에게 염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가 말을 함부로 한다고 여겨 명령을 내려 한곳에 가두게 했다. 며칠 후 어떤 사람이 법희가 시장에서 한가하게 놀고 있는 것을 보고 양제에게 보고했다. 양제가 법희를 감금한 곳을 조사해보게 하니 문과 자물쇠는 그대로였고 호위병도 “스님은 방안에 계십니다”라고 했다.
이에 여러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가서 보니 가사 아래에 한구의 백골만 남아 있었는데 뼈 사이는 갈고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양제가 의심이 나서 장사(長史) 왕환(王恒)을 파견해 진짜인지 확인해보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에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했다. 저녁이 되자 법희가 방안으로 돌아와서는 뭐라고 말을 하거나 또는 웃었다. 수위가 상부에 보고하자 양제가 그를 석방시켜 원하는 곳으로 가게 했다. 나중에 양제는 강도(江都)에서 피살당했다. 사람들은 그제야 비로소 법희가 양머리를 구한 의미를 알게 되었다.
[역주: 양(羊)머리는 양(楊)씨의 머리 즉 수양제의 머리를 의미한다.]
때로 하루 수십 곳에서 공양을 했는데 법희는 모두 참가했고 또 술도 마시고 고기도 먹었다. 얼마 후 그의 몸에 병이 생기자 사람을 시켜 침대 아래에 숯불을 놓게 하고 자신은 침대 위로 올라가서 누웠다. 불이 법희의 신체를 태웠다. 사람들이 그를 향산사(香山寺) 아래 장례 지냈다.
수나라 양제 대업 4년 남해군에서 법희가 그곳에 나타났다고 상주했다. 양제가 명령을 내려 법희의 관을 열어보게 하니 관이 텅 비어 아무것도 없었다.
자료출처: 《신승전》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43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