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목목(木木)
【정견망】
담순(曇詢)은 속성이 양씨(楊氏)로 홍농(弘農) 화음(華陰) 사람인데 나중에 온 가족이 하동군(河東郡)으로 이주했다. 어려서부터 도를 좋아하였으나 오래도록 속세의 울타리에 갇혀 있다가 22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세속의 일을 버리고 멀리 바위굴에 들어가 숨어 살았다.
그 후 천하를 주유하다 백록산(白鹿山) 북쪽 숲의 낙천사(落泉寺)에 이르러 담준(曇准) 선사를 만나자 곧 머리를 깎았다.
나중에 승조(僧稠) 선사가 창곡사(蒼谷寺)에 거처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을 찾아가 앞으로 나갈 길을 묻고자 했다.
하지만 창곡사까지는 거리가 멀고 길에 인적이 드물었으며 언덕에는 들짐승들이 득실거렸다. 깊은 산 속에서 산 지 이미 오래되어 성품이 세속과 친숙하지 못하였으며 의문되는 점을 물으려고 오갈 때에는 나무꾼이 다니는 지름길로 가지 않고 곧바로 창곡사를 바라보면서 그곳을 목표로 삼고 걸어갔다.
그리하여 가시밭길과 모래 길과 자갈길을 헤쳐가면서도 힘들게 여기지 않았고 바위나 구렁텅이와 같은 험한 장애물을 붙잡고 올라가서도 뜻을 바로 잡았다. 때문에 그는 그릇된 도를 스스로 따르지 않으면서 한편으로는 이로운 도를 펼치기 위하여 굽은 길로 나아가서 막힌 곳을 열었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지금 목표로 삼아서 가려는 곳이 비록 어렵지만 반드시 곧바로 나가서 이룩하고야 말겠다. 이 미묘한 뜻을 가지고 경지에 따라서 마음을 붙인다면 이것 역시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면서 늘 이렇게 말하였다.
“길을 잃었다가 요행스럽게 찾는 것보다도 차라리 정당한 길에서 불행하게 막히는 것이 낫다.”
그런 까닭으로 하여 겹겹이 막힌 장애를 헤쳐 가면서도 궁색한 처지에 빠지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았다.
그 후 세 번째 여름안거가 끝나자 녹토곡(鹿土穀)으로 거처를 옮기고 선정을 닦았다. 때마침 말라 버렸던 샘물이 다시 나오고 사슴과 노루가 선원(禪院)을 맴돌았다. 그리하여 맑은 물과 길들여진 짐승들을 얻어서 날마다 도(道)의 이웃들을 구제하자 그에게서 배우는 제자들이 서로 이 상서로운 현상을 반가워하였다.
당시 어떤 사람이 법문을 요청해 잠시 운문산(雲門山)에 갔는데 음침한 안개가 끼고 어둑한 길을 만나서 길을 잃게 되었다. 그런데 산신(山神)이 길을 가르쳐 주어서 본래의 길을 찾았다. 이것은 바로 그의 교화가 어두운 저승에 감응되어 신명(神明)이 그를 돕고 보호하였기 때문이었다.
한번은 좀도적들이 와서 채소를 도적질을 하고 나서 동산에서 나가려다 벌떼에게 쏘였다. 담순은 “사람 살려주시오”라는 말을 듣고 자비심을 베풀어 그를 치료해 주어 남은 목숨을 보전하도록 하였다.
또 한 번은 조군(趙郡) 사람이 먼 길을 와서 정중하게 절을 하며 말했다.
“저는 병으로 죽었다가 되살아나는 은택을 입었습니다. 제가 죽어서 염라대왕을 만났는데 저의 죄는 지옥으로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담순 선사가 찾아와 목숨을 살려줄 것을 청하자 염라대왕이 살려 주었습니다. 평생 살아오면서 그 까닭을 알지 못하였는데 이제 만나보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어느 날 산길을 가다가 두 마리 범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보았는데 몇 시간이 지나도 그만두지 않자 담순은 집고 있던 석장으로 갈라놓고 몸으로 가로막으면서 말하였다.
“숲 속에서 함께 살면서 크게 어긋날 일이 없다고 생각되니 제각기 길을 나누는 것이 좋겠다.”
그러자 범들이 머리를 숙이면서 명을 받아들이고 곧 숨을 들이쉬면서 흩어져갔다. 그 후에도 자주 곰과 범이 서로 싸우는 것을 목격하였는데 그 일도 이렇게 해결되었다. 그리하여 짐승들이 사는 무성한 수림 속에 담순이 혼자서 들어가도 새들이 흩어지지 않고 짐승들은 친구를 만난 것처럼 기뻐하였다.
이것은 그의 남모르는 덕망이 짐승들의 세계에까지 감응한 것이다. 그의 인자한 성품을 나타낸 것이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는 매번 선정에 들 때마다 7일을 기간으로 정했는데 백호(白虎)가 방에 들어와 그곳을 자기의 굴로 삼았다. 그는 홀로 고요한 사원에 거처하면서 10년 동안 속세에 나오지 않았는데 그가 선정의 자취를 남긴 때로부터 이 사람과 견줄 만한 사람이 드물었다.
이때부터 그의 교화가 하북(河北) 땅에 유포되면서 선문(禪門)을 성대하게 떨쳤는데 지팡이를 짚고 식량을 싸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물고기 비늘처럼 귀의하고 안개처럼 모여 들었다.
수(隨) 문제가 그의 덕망과 명성을 존중해 지성을 다하여 공경하고 3사(司)의 우두머리와 같이 우대하도록 칙명을 내렸으며, 직접 옥새가 찍힌 글을 보내고 아울러 향을 공양하였다.
개황(開皇) 말년(597)에 갑자기 풍병이 심해져 백첨산(柏尖山) 사원에서 생을 마쳤다. 향년 85세였고 법랍(法臘) 50년이었다. 처음에 병에 걸려서 오랫동안 낫지 않자 갑자기 신기한 빛이 촛불처럼 비치고 향기로운 바람이 부채질하듯이 불어 왔으며 목이 희고 몸은 붉은 색깔인 기이한 새가 감응하여 나타나 선원(禪院)을 맴돌며 날아다니면서 애절하게 울었다.
숨소리가 곧 커지면서 멎으려고 하자 새들이 법당 터에 머무르면서 스스로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가까이 접근하였으며 어떤 때는 방문에까지 오고 심지어는 누워 있는 자리에까지 와서 더욱더 슬피 울었고 눈에서는 피눈물이 흘러 내렸다.
이윽고 그가 생을 마치자 새들도 곧 밖으로 날아가 공중에서 빙빙 돌다가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또한 그에 감응하여 사나운 범이 이틀 밤을 슬피 울면서 선원 주위를 맴돌았고 사흘 동안이나 어두운 구름이 덮여 천지가 슬픔에 잠겼다. 게다가 산이 무너지고 바위가 굴러 떨어졌으며 숲속의 나무들이 꺾어지고 개울물이 막혔으며 사람들과 짐승들이 놀라서 일어나 서성거리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슬픔에 감응한 신령스럽고 상서로운 현상은 다 기록할 수 없다.
자료출처: 《신승전》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434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