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경(破境)
【정견망】
어떤 말이 승려를 태우고 서천(西天)에 가서 경전을 얻으려 하자 연자매를 돌리던 나귀도 말을 따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 노정에 어려움이 아주 많을 것 같았고 또 자신은 나귀라 말보다 못하다는 생각에 스스로 포기했다. 말은 이렇게 구구(九九) 81난을 거친 후 마침내 진경(真經)을 얻어 돌아왔다.
나귀가 물었다.
“형제여, 고생을 아주 많이 겪지 않았나?”
말이 대답했다.
“사실 자네가 이곳에서 걸은 길이 내가 서천에 가면서 걸은 길에 비해 전혀 작지 않다네. 자네는 또 두 눈을 가리고 사람에게 매질을 당하지 않는가! 똑같은 고생이지만 내가 겪은 것은 성공으로 바뀌었지만 자네가 겪은 고생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네.”
인간 세상에 이와 같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어떤 이는 속세에 미련을 갖고 물욕에 빠져들어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의 온갖 고생을 다 겪는다. 하지만 어떤 이는 인생의 진리를 분명히 알고 세상의 고통을 다 겪으며 마음을 닦고 업을 없애 나머지 많은 욕망과 집착을 닦아버리고 영원히 빛나는 각자(覺者)로 성취된다.
즉,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고생을 겪지만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사람이 만약 고생의 의미를 모른다면 그 고생은 곧 아무런 의미도 없다. 불교에서는 인간세상을 끝없는 고해(苦海)라고 형용하는데 사람은 그 중의 고통을 모른다. 왜냐하면 사람으로 태어나면 모두 이렇게 바쁘기 때문이다. 똥통 속의 구더기는 평생을 그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환경이 더럽다고 여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직 사람이 깨달은 후에야 비로소 이 인간세상이 정말 끝없는 고해임을 발견하게 된다.
만약 고해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그럼 사람이 왜 고해에 왔는지 똑똑히 알아야 한다. 사람의 진정한 생명은 우주 고층에서 온 것으로 표준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 세상에 떨어져 고생을 겪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가에서는 “고해(苦海)는 끝이 없지만 고개를 돌리면 대안이라” 했고 속담에도 “방탕한 자가 회개하는 것은 금보다 소중하다”고 했다.
이는 사람이 생명의 내원을 알고 생명의 의미를 똑바로 알아야지만 고생에 담긴 의미와 오묘함을 알 수 있고 고생 속에서 비로소 도덕이 승화되고 행위를 규범하며 생명을 승화하게 할 수 있음을 안다는 뜻이다.
세상 사람들 중에 선근(善根)을 지닌 사람은 늘 인생의 재난을 겪음으로써 인생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하게 된다.
한 친척이 반평생 고생스럽게 열심히 일을 했다. 이제 퇴직할 나이가 되자 자손이 번창했고 아들은 또 외국에서 일한다. 본래 아들과 같이 외국으로 이민 가서 새로운 생활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검사 결과 암이 발견되었다. 전에 벗과 술을 기울이며 한가하게 즐기던 정취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대도시로 가서 수술받고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의사는 길어야 반년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했다. 아울러 암이 넓게 퍼져서 매달 병원에 가서 화학치료를 받아야 했고 치료비는 그가 받은 퇴직금과 비슷했다.
좋은 생활을 누려보기도 전에 또 자신이 언제 세상을 떠날지도 모르는 상황 하에서 그는 늘 눈물을 흘렸다. 이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인생의 의미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본래 무신론자였든 그가 여러 신들에게 길을 묻기 시작했고 집에서 향불을 피웠다.
기연(機緣)이 있어 내가 그에게 대법진상과 인생의 의미를 알려주고 목숨을 지키는 양생법을 알려주자 그는 몹시 기뻐하며 받아들였다. 내 생각에 만약 이런 변고가 없었더라면 평소 시끄러웠던 그의 마음이 어찌 이런 도리를 들을 여유가 있었겠는가? 의사는 비록 사형을 판결했지만 지금 이미 몇 년이 지났고 진상을 알게 된 그는 아직도 멀쩡히 살아 있다.
복(福)과 재앙(禍)은 서로 의존하는 것으로 고난이 꼭 나쁜 일은 아니다. 지금 중국에서는 어떤 지역은 폭우가 내리고 어떤 지역은 전에 없는 폭염으로 고생하고 있다. 이런 기상이변은 하늘이 내리는 고생으로 그 목적은 인류의 죄업(罪業)을 줄여 인류가 너무 빨리 훼멸되지 않게 하며 인류를 위한 시간을 연장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일종의 경고로서 사람에게 반성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지금 이 사회에 발생한 어떤 일이 사람이 하늘의 뜻을 어긴 것은 아닌가!
만약 어떤 지역의 업력이 커서 사람이 되는 표준에도 부합하지 못한다면 그럼 어떤 일이든 다 발생할 수 있는데 그것은 진실로 두려운 것이다. 마치 압력솥처럼 억지로 배출구를 막아놓으면 언젠가는 크게 폭발할 수 있다.
수련인에게 있어 고생이란 수련의 조력(助力)이다. 고생 때문에 생명은 늘 하늘 밖의 고결함과 불국(佛國)의 아름다움을 그리워한다. 고생 때문에 고생 속에서 차분함과 자성(自省)을 배우고 양해와 관용을 배워, 곤란에 부딪혀도 더이상 도피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평온하고 활달한 심태로 마주할 수 있다. 수련인은 마난을 겪는 과정 중에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을 제거해 선천의 진아(真我)의 일면을 볼 수 있다.
고생은 진정한 복의 전조이자 달콤함의 근원이다. 위로 향상하려는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고생이든 안일이든 자신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붙들어 매는 그것이야말로 바로 진정한 고생이다! 수련자에게 대해 말하자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생사의 고해 속에서 몰락하게 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78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