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24년간 대법을 수련했는데 법을 얻은 처음부터 수구(修口) 문제에서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늘 어떻게 하는 것이 사부님의 법에서 요구하는 수구인지 명백하지 못했다. 때문에 늘 자신의 입을 잘 다스리지 못한다고 여겼고 《전법륜》을 공부하다가 8강 ‘수구’ 절에 이르면 반복해서 여러 번 읽으면서 가급적 법의 요구에 따라 하고자 했다. 하지만 늘 제 위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최근 내게 발생한 한 가지 일을 통해 자신이 수구 문제에서 돌파가 있음을 느낀다. 최근 동수의 결점과 부족을 보면서 늘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내게 이런 생각이 있자 곧 다른 공간의 생명이 무한히 확대되었고 아울러 갈수록 이 문제가 더 커져서 늘 상대방이 그야말로 맞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느껴졌다.
사부님의 말씀을 생각해보았다.
“대법제자는 어떤 일을 대하든지 모두 마땅히 긍정적으로 대해야 하며 다른 사람의 좋지 않은 일면을 보지 말고 늘 다른 사람의 좋은 일면을 보아야 한다.”(《2003년 정월대보름설법》)
나는 관념을 전변시켜 상대방의 부족을 보는 습관을 내려놓고 오직 그의 장점만을 보았다. 그는 법을 많이 배우고 사람을 구하는 일도 지금껏 나태하지 않으니 그럼 충분한 게 아닌가? 이와 비교해보면 그의 부족은 모두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좋지 않은 염두는 여전히 뒤집혀 나왔고 나는 정념(正念)으로 그것을 제거했다. 그것이 다시 나오면 다시 청리했다. 그러자 그것이 아주 빨리 소실되었고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시 상대방을 보니 마음이 아주 편안해졌고 마음속에 일종 초연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수련이 어디 그렇게 가볍게 관을 넘길 수 있는가? 최근에 발생한 한 가지 일에서 나는 또 이 입을 잘 닦지 못했다.
지금 사람들은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한 태도가 그의 미래를 결정한다. 나는 뉴욕 요고대 멤버라 늘 각지를 다니며 퍼레이드에 참가하곤 하는데 우리의 공연은 큰 환영을 받았다.
최근에 다른 주에서 열린 대규모 퍼레이드 행사에 참가했는데 길이 아주 먼데다 초가을 무더운 날씨가 더해졌다. 퍼레이드는 정오에 시작되었고 대원들은 뜨거운 햇볕 아래 요고를 치며 행진했다. 한 시간 넘게 행진하자 모두들 다 피로해져서 당장이라도 차에 올라가 쉬면서 물을 마시고 뭘 좀 먹고 빨리 집에 가고 싶어졌다.
우리 차는 종점에 있었는데 매번 퍼레이드가 끝나면 차를 운전하는 동수가 늘 웃으면서 우리를 환영하곤 했다. 그리고는 우리를 차량이 주차된 곳까지 데려가 집에 가는 차에 타게 했다. 이번에 내가 그에게 연락하자 그는 나더러 누구 말을 들어야할 지 모르겠다면서 동수 A에게 전화해 보라고 했다.
나는 아주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퍼레이드는 끝났고 집에 가는 차를 찾아서 타면 되는게 아닌가! 마침 운전기사 동수와 통화하고 있는데 동수 A가 우리 차량 두 대가 주차된 곳으로 찾아왔다. 운전기사 동수가 A에게 전화를 걸자 그녀는 우리에게 앞으로 꽤 먼 길을 더 걸어가서 어느 곳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우리는 나중에야 그녀가 자기 차에 탄 사람들을 우리 차량에 태워 출발점으로 함께 돌아가게 하려는 것임을 알았다. 우리 차량 두 대로 그녀들을 데려다주고 돌아오는데 차가 막혀서 우리는 길가에서 30분을 기다려야 했다.
우리 차량 두 대는 나와 함께 왔으니 내 책임이다. 본래 우리는 모두 이미 차에서 아주 멀리 걸어야 했고 동수 A는 또 다른 차량 한 대를 운전했다. 만약 우리 원래 차량에 동수들을 모두 태우고 그녀들을 출발점으로 보낸 후 우리는 곧바로 차를 타고 집으로 출발하면 되는데, 아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이렇게 복잡하게 만든 것이다.
나는 속으로 불평했다. 당신이 이렇게 하려면 미리 나와 상의를 했어야 하지 않는가? 이는 최소한의 예절이다. 속인도 일을 이렇게 처리하진 않는다. 앞으로는 그녀가 이런 일을 하라고 하면 협조하지 않겠다. 나는 속으로 화가 났다.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자 입으로도 말이 나왔다. 이때 나는 수구를 생각하지 못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나는 수련인이고, 이는 사람을 구하는 일이 아니가, 한 가지 사소한 일 때문에 소극적이 되어선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사람을 구할 수도 없고 법을 실증하는 일도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나는 동수가 대법 일을 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을 자격이 없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모순에 봉착하면 자신을 찾으라고 하셨다. 나는 생각해보았다. 자신을 찾는다고 하는데 어떻게 찾는가? 나는 잘못이 없고, 다른 사람을 고려하지 못한 그녀의 방법이 우리에게 이렇게 큰 곤혹을 만들어준 것이다. 그래도 나는 자신의 잘못을 찾아야 하는데 이 수련은 정말 쉽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생각이 내가 안으로 찾는 것을 가로막았다.
이튿날 법을 공부하다가 《정진요지》〈경지〉에서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악자(惡者)는 질투심의 소치로 자신을 위하고, 화를 내며, 불공평하다고 한다.”
안으로 찾음은 무조건적인 것으로 시비득실을 따질 수 없다. 이는 나의 이 질투심, 쟁투심, 원한심이 모두 올라온 것이 아닌가, 나 이것은 악자가 된 게 아닌가, 나는 원만해서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데 이는 절대 작은 일이 아니다! 이는 전부 사람마음으로 이런 것을 가져서는 뭘 하는가?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
자신의 집착을 찾으니 마음이 활연히 밝아졌다. 나는 늘 자신의 입을 잘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는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았고 다른 사람과의 대화 역시 가뿐해졌다.
나는 수구(修口)란 바로 수심(修心)임을 깨달았다. 당신에게 그런 마음이 없다면 자연히 입에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이 입을 다스릴 수 있다.
수련 중에서 개인의 작은 체회(體會)로 부족한 곳이 있다면 시정해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85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