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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체회: 함과 해냄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99년 이전에는 모두들 아주 진지하게 자신을 닦고 좋은 사람이 되고 더욱 좋은 수련인이 되려고 했으며 자신의 집착심을 제거하려 노력하면서 정력을 집중해서 자신을 닦았다. 그러나 99년 이후 전반적인 큰 환경이 변화하면서 정말로 고험이 거대해졌다. 이어서 많은 동수들이 아주 다 잘했고 특별히 잘했다.

하지만 나 자신은 뒷길에서 비틀거리며 걸어오면서 구세력의 영향을 받아 정념이 부족해졌고 걷는 것도 몹시 고생스러웠다. 자신을 수련함에 있어 점차적으로 99년 이전처럼 그렇게 집중해서 하지 못했고 많은 관(關)과 고험을 근본적으로 넘기지 못해 마치 속인처럼 처리했다. 나중에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잘하지 못했음을 알았지만 다시 일어나기란 쉽지 않았다. 심지어 세 번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같은 관을 넘기지 못한 적도 있다. 늘 뭔가 마비된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자신의 이런 상태는 안 된다고 느껴 스스로 자문해보았다.

‘너는 대체 수련할 생각이 있는가?’

내심 깊은 곳에서 나는 아직도 수련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럼 결정했다. 나는 수련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수련하려 한다면 대체 무엇이 수련인지 알아야 한다.

이에 나는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대체 수련이란 무엇인가? 살면서 수련하는 것인가 아니면 수련을 위주로 해야 하는가 그것도 아니면 오직 수련만 해야 하는가? 여기에는 무슨 구별이 있는가?’

개인적으로 수련을 생각해보면 자신을 승화시켜 사람에서 신(神)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은 어떠한가? 신은 인간세상에서 머물지 않을 것이며 인간의 이치는 신에게 아무 소용도 없는 게 아닌가? 신은 사람을 초탈해야 한다는 등등.

기왕 그렇다면 나 역시 마땅히 더는 사람의 그 어떤 이치도 따르지 않아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배우는 것은 대법이 아닌가! 오직 대법에 따라 해야만 비로소 진정한 수련의 길이다. 그런데 나는 대법이 무엇인지 아는가? 어떻게 따라야 하는가? 그러자면 배워야 한다! 사부님께서 설법을 하셨으니 개인적으로 진지하게 배워야 한다! 오직 법을 배워야만 비로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나는 이렇게 많은 생각을 했다.

이에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단번에 마치 완전히 새로 법을 배우는 것처럼 아주 많은 법리들을 비로소 인식할 수 있게 되었고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집착심을 버리는 것은 그저 인식만 해서는 안 되며 또 실제로 제거해야만 한다. 가령 과시심을 예로 들어보자. 이것을 찾아냈다면 그럼 이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찾았다면 그걸로 끝인가? 아니다. 찾아낸 후 대체 어떤 원인 때문에 나타난 과시심인지 생각해 보고 이 일 속에서 과시심이 어디에서 표현되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만약 이 일이 이미 지나갔다면 자신이 어떻게 해야 과시심 없이 잘했다고 할 수 있는가? 또는 과시심이 없다고 말하려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명백해졌다면 관련된 일에서 아직 어느 곳에 과시심의 표현이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모두 제거했다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정확히 대할 수 있는가?

나는 이 과정 속에서 ‘함(做)’과 ‘해냄(做到)’이 완전히 다른 것을 발견했다. 함이란 그냥 하는 것으로 그중 아주 많은 다른 요소들이 당신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만약 자신이 확고할 수 없다면 다시 말해 그냥 한번 해본 것에 불과할 뿐이다. 결과적으로 아주 많은 일에서 여전히 과시심이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해냄이란 다른 것이다. 해냄이란 과시심을 지닌 매 한가지 일을 생각해 냈다면 단호하게 그것이 더는 과시심을 지니지 못하게 해내는 것이다. 조금도 남기지 않아야 한다! 이는 아주 어려운 것으로 사실 실제로도 아주 어렵고 아주 어렵다. 만약 아주 견정한 마음이 없다면 정말 어려운데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생각했으면 바로 수련해야 한다고 여겼다. 수련이란 이런 집착심을 제거해야 하는 것으로 무슨 말이 필요 없고 끝까지 깨끗이 제거하는 것이다.

함과 해냄의 전체 과정 속에서 갈수록 잘하게 되면 법 공부 역시 완전히 새로운 감수가 있을 수 있고 법 역시 갈수록 더 명확해지며 깨달음도 갈수록 더 깊어질 것이다. 집착심을 하나하나 제거함에 따라 진지하게 찾고 진지하게 제거해 이 집착심을 제거함에 이르러야 한다. 집착심을 제거하는 전반 과정 속에서 나는 법을 공부하면 할수록 더 법을 배워낼 수 있음을 발견했다. 또 갈수록 더 사존의 은혜에 감사드리게 되었다.

진정으로 법을 배우니 개인적으로 법의 무변(無邊)함을 느낄 수 있었고 수련의 길이 아주 분명하고 잘 소통했다. 내가 깨달은 법리는 오직 법속의 극히 일부에 불과할 뿐이며 “법(法)을 가장 크게 보아야 하며”[1] 신사신법(信師信法)은 반드시 생명의 가장 근본에서부터 따라야 한다. 이는 수련의 길을 잘 걷는 근본이다. 다시 말해, “법(法)을 가장 크게 보다(以法為大)”[1]라는 이 네 글자는 우리가 마음과 성의를 다해 깨달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 4글자를 깨닫는데 약 이틀이 걸렸다. 어느 날 잠시 생각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날마다 늘 생각해야 하는데 밥을 먹거나 일을 하거나 잠을 자거나 늘 생각해야 하며 반드시 명백해질 때까지 생각해야만 된다.

정말로 투철하게 통했다면 완전히 명백해졌다는 그런 감수가 있을 것이다. 아주 조금만 차이가 나도 그런 감수가 없을 것이다. 사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모두 개인이 정말로 “법을 가장 크게 봄(以法爲大)”[1]을 생각하려 하고 해내려 하는지에 달렸다. 아울러 정말 그렇게 큰 공력을 들여 생각하고 해낼 수 있어야만 최후에 사부님의 점화 하에서 그 속의 함의를 진정으로 분명히 알 수 있게 된다. 그런 정도에 도달하지 못하면 안 되는 것으로 일체는 다 자신이 진정하게 공력을 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사부님께서 우리를 점화하고 해주시는데 다 사부님께서 해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 집착심을 찾는 것은 첫걸음에 불과하며 결심을 내려 고쳐야 하며 개인이 평소 어떤 곳에서 이런 마음이 있는지 명백해지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 후 어떻게 해야 없앤 것으로 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또 해내야만 한다. 그렇게 해야만 진정으로 이런 마음을 제거했다고 칠 수 있다. (사실 그런 물질과 요소를 제거하는 것은 전부 사부님께서 해주시는 것이다.

이상은 개인의 체회에 불과하니 여러분들이 서로 토론해 보고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설법:《각지설법 2》〈2002년 보스턴법회설법〉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85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