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의(來儀)
【정견망】
노자는 이름이 중이(重耳) 자는 백양(伯陽)이며 초나라 고현(苦縣) 곡인리(曲仁里) 사람이다. 전설에 따르면 그 모친이 큰 유성(流星)을 보고 감응해서 임신했다고 한다.
비록 상계(上界)의 신령(神靈)한 기를 받았지만 이(李) 씨 집안에 나타났기 때문에 이 씨를 성으로 삼았다.
어떤 사람은 노자는 천지가 개벽되기 이전에 생겼다고 하고 혹은 하늘의 정백(精魄)으로 신령(神靈)에 속한다고 했다. 또 어떤 이는 모친이 72년을 임신한 뒤에 출생했다고 하는데 태어날 때 좌측 겨드랑이를 찢고 나왔는데 나면서부터 백발이라 노자라 불렸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노자의 모친이 마침 오얏나무 아래에 이르러 노자를 낳았는데 나면서부터 말을 했고 오얏나무를 가리키면서 “이것으로 내 성씨를 삼겠다.”라고 했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노자는 상삼황(上三皇)시대에는 현중법사(玄中法師), 하삼황(下三皇)시대에는 금궐제군(金闕帝君), 복희 시기에는 울화자(鬱華子), 신농 때는 구령노자(九靈老子), 축융(祝融) 때에는 광수자(廣壽子), 황제 때는 광성자(廣成子), 전욱(顓頊) 때에는 적정자(赤精子), 제곡(帝嚳) 때는 녹도자(祿圖子), 요임금 때는 무성자(務成子), 순 임금 때는 윤수자(尹壽子), 우임금 때는 진행자(真行子), 상나라 탕왕 때는 석칙자(錫則子), 주나라 문왕 때는 문읍(文邑)선생 또는 왕실 문고의 수장사(守藏史)였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월(越)나라에는 범려(范蠡), 제(齊)나라에는 치이자(鴟夷子), 오(吳)나라에서는 도주공(陶朱公)이었다고도 한다.
이런 말들은 모두 여러 책에 나타나지만 신선의 정경(正經)에는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
사실 근거로 삼을 만한 게 없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는데 왜냐하면 진진가가(真真徦徦)는 깨달음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역대로 도가에서는 사부가 도제를 찾지 도제가 사부를 찾지 않았다. 오성이 좋지 않은 사람은 사부의 전수를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또 “주 문왕 때는 수장사(守藏史 왕실 서고 책임자)가 되며 무왕 때는 주하사(柱下士 진한시기의 어사에 해당)가 되었다. 당시 사람들이 그가 이렇게 장수하는 것을 보고는 그를 ‘노자(老子)’라 불렀다.
대체로 사람이 천명을 받음에 본래 멀리 꿰뚫어 보는 신통을 가진 이가 있다면 부여받은 자질이 보통사람과는 다르니 마땅히 도주(道主)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천신(天神)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여러 신선들이 따르는 것이다.
노자가 세인을 제도한 방법에는 9가지 단(丹)과 8가지 돌이 있고 금주(金酒)와 금액(金液) 등 선약(仙藥)이 있었다. 이외에도 수신양성(修身養性)하고 재앙을 없애고 사기를 피하며 초탈하게 변화하는 법술 등이 있었다.
노자는 성품이 고요하고 욕심이 없었으며 오로지 장생에 힘썼기에 주(周)나라에서 오랫동안 있었음에도 관직에 변화가 없었으니 그가 시종일관 세상과 다투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련에 성공한 후 신선이 되어 떠나가 천계(天界)에 들어 선인(仙人)이 되었다.
공자가 일찍이 노자를 찾아가 예에 대해 묻고자 하여 자공(子貢)을 먼저 보내 살펴보고 오게 했다.
자공이 이르자 노자가 그에게 말했다.
“그대의 스승 공구(孔丘)는 나를 3년 동안 따른 후에야 가르칠만하다.”
이에 공자가 노자를 보자 노자가 말했다.
“훌륭한 상인은 아무것도 없는 듯이 깊이 감추며 군자는 성스러운 덕이 있어도 어리석은 것처럼 한다. 그대의 교만한 자만심과 많은 욕심, 넘치는 욕망을 제거하시오. 그것들은 모두 그대에게 도움이 되지 않소.”
어느 날 공자가 책을 읽은 것을 보고 노자가 물었다.
“무슨 책이오?”
공자가 대답했다.
“《주역》입니다. 성인들도 이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노자가 말했다.
“성인이 읽는 것은 괜찮지만 그대는 어째서 읽는 것이오? 요지는 무엇이오?”
공자가 말했다.
“요점은 인의(仁義)입니다.”
노자가 말했다.
“지금 인의라는 것이 혹독하게 인심을 구속시키니 이보다 혼란한 것이 없소. 마치 밤에 모기에 물려 잠을 자지 못하는 것과 같소. 고니는 날마다 목욕하지 않아도 희고 까마귀는 날마다 염색하지 않아도 검으며 하늘은 스스로 높고 땅은 스스로 두터우며 해와 달은 저절로 빛나며 별은 본래 스스로 하늘에 나열되어 있으며 초목에는 진실로 구별이 있소. 그대가 만약 도를 닦아 나아간다면 장차 거기에 도달할 수 있을 터인데 인의라는 것이 무슨 필요가 있겠소? 그것은 마치 북을 치면서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과 같소. 그대는 자연의 법칙을 파괴하고 사람의 본성을 혼란케 하는구려.”
노자가 또 공자에게 물었다.
“그대는 이제 도를 얻었소?”
공자가 대답했다.
“27년간 구했지만 아직 얻지 못했습니다.”
노자가 말했다.
“만약 도를 남에게 바칠 수 있다면 군주에게 바치지 않을 자가 없을 것이며, 도를 남에게 드릴 수 있다면 부모에게 드리지 않을 자가 없을 것이며, 도를 남에게 알려줄 수 있다면 형제들에게 알려주지 않을 자가 없을 것이며, 도를 남에게 전할 수 있다면 자식에게 전하지 않을 자가 없을 것이오. 허나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마음속에 도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없어서 도가 그의 마음속에 머물 수 없기 때문이오.”
공자가 말했다.
“저는 시, 서, 예, 악, 역, 춘추를 연구하고 선왕의 도(道)를 외우며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의 사적을 분명히 하여 70여 명의 군주에게 등용되길 구했지만 등용되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자 노자가 말했다.
“대체로 육예(六藝)는 선왕의 진부한 발자취이니 어찌 선왕이 말한 것이겠소? 지금 그대가 익히는 것은 모두 진부한 흔적의 발자취일 뿐이오. 원래 발자취란 발로 밟아서 나오는 것이니 어찌 다를 리가 있겠소?”
공자가 돌아와서 3일 동안 말하지 않았다.
자공이 이상하게 생각해 물었다.
그러자 공자가 말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생각이 나는 새와 같으면 정신을 집중해 활이나 쇠뇌가 되어 그것을 쏘아 일찍이 맞추지 못한 적이 없었다. 또 다른 사람의 생각이 사슴과 같다면 내가 정신을 집중해 사냥개가 되어 쫓아가면 일찍이 잡아채지 못한 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 깊은 못의 물고기와 같다면 나는 정신을 집중해 낚시 바늘과 줄이 되어 이것을 물에 던져 일찍이 낚아 올리지 못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용의 경우는 구름을 타고 태청(太淸)에서 놀기에 내가 쫓아갈 수 없구나. 지금 노자를 만나 보니 그는 마치 용과 같구나. 내가 입을 벌린 채 다물 수 없고 혀를 내밀어 집어넣을 수 없으며 정신이 혼란해서 머무를 바를 알지 못하겠구나.”
이것이 바로 사람을 제도하는 각자와 세상 속에 사는 사상가의 근본적인 구별이다!
양자(陽子)가 노자를 만나니 노자가 그에게 말했다.
“호랑이나 표범의 얼룩무늬와 원숭이의 민첩함 때문에 활을 맞는 것이다.”
양자가 말했다.
“현명한 군왕의 다스림에 대해 묻고자 합니다.”
노자가 대답했다.
“현명한 군왕의 다스림은 공(功)이 천하를 덮을 정도라도 스스로 자기 때문이라 여기지 않는다. 또 만물을 교화시켜도 백성들이 자신에게 의지하지 않게 하며, 덕이 있어도 그 이름을 칭하지 않게 하며, 몸이 헤아릴 수 없는 높은 지위에 있지만 아무 것도 없는 세계에서 노니는 것이다.”
노자가 장차 주나라를 떠나 서쪽 관문을 나가 곤륜산에 오르려 했다. 관령(關令) 윤희(尹喜)가 바람의 움직임을 점쳐서 신인(神人)이 지나갈 것을 미리 알았다. 이에 그를 맞이하기 위해 40리나 되는 길을 청소했다. 노자를 보고는 바로 이 사람임을 알았다.
노자가 길을 나선 후 중원 있을 때는 누구에게도 도를 전수해주지 않았으나 윤희만은 이 도를 얻을 운명이 있음을 알고는 이에 그곳 관에서 머물렀다.
노자에게는 서갑(徐甲)이란 하인이 있었는데 젊어서부터 노자 밑에서 일을 했다. 하루에 약 100전(錢)을 받기로 하고 고용살이를 했기에 노자는 서갑에게 모두 720만 전을 빚졌다.
서갑은 관문을 나가 멀리 여행하려는 노자를 찾아가 빚진 돈을 갚으라고 했지만 받지 못했다. 그러자 사람을 시켜 고소장을 만들어 관령인 윤희에게 노자를 고소하게 했다.
고소장을 작성하던 사람이 서갑이 이미 노자를 200여 년이나 따른 것은 모르고 오직 서갑이 받을 돈이 많은 것만 계산하여 자기 딸을 서갑에게 줄 것을 약속했다. 서갑은 여자가 아름다운 것을 보고 몹시 기뻐하며 윤희에게 고소장을 전하게 했다.
윤희가 이 고소장을 보고는 깜짝 놀라 노자를 만나게 했다.
노자가 서갑에게 말했다.
“너는 오래 전에 마땅히 죽었어야 할 사람이다. 내가 예전에 너를 고용한 것은 관직도 낮고 집이 가난해 심부름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현청생부(太玄清生符)’를 네게 주어 오늘까지 살아 있게 된 것이다. 네가 나에게 무슨 할 말이 있느냐? 나는 너에게 안식국(페르시아)에 도착하면 마땅히 황금으로 그 품삯을 계산해 모두 주겠다고 했는데 너는 어찌하여 기다리지 못하는 것이냐?”
말을 마치고 서갑에게 입을 크게 벌려 땅을 향하게 하니 태현진부(太玄真符)가 곧장 땅으로 나왔는데 붉은 글씨가 마치 새로 쓴 것과 같았다. 한편 서갑은 한 무더기의 마른 뼈로 변했다.
윤희는 노자가 신인이라 서갑을 다시 살릴 수 있음을 알고 서갑을 위해 노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목숨을 구해달라고 빌었다. 또 노자 대신 돈을 지불해주기로 했다.
이에 노자가 다시 태현부를 던지자 서갑은 다시 살아났다. 윤희는 돈 2백만 전을 서갑에게 주어 돌아가게 했다.
아울러 노자에게 제자의 예를 갖췄다. 그러자 노자가 장생(長生)에 관한 일을 윤희에게 자세히 전수했다. 윤희가 또 가르침을 청하자 노자가 오천마디 말을 했다. 윤희가 물러나 이를 글로 기록하고는 《도덕경》이라 이름 지었다. 윤희가 노자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니 역시 신선이 되었다.
한대(漢代)의 두태후(竇太后)는 노자의 가르침을 신봉했고 효문제(孝文帝)와 그 외척인 두씨들도 모두 이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었으니 읽은 후에 모두 큰 이익을 얻었다. 그래서 문제와 경제의 세대에 천하가 평온했고 두씨도 3대에 걸쳐 부귀했고 황제의 은총을 받을 수 있었다.
태자태부(太子太傅) 소광(疏廣) 부자는 노자의 뜻을 깊이 깨달아 공을 이루면 물러나야 한다는 도리를 알았다. 이에 같은 날 관직을 버리고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가 돈을 풀어서 널리 은혜를 베풀어 그 청귀(淸貴)함을 지킬 수 있었다.
또 후대의 많은 은사(隱士)들이 노자의 도를 따라 모두들 밖으로 부귀영화를 버리고 안으로 생명을 길렀기 때문에 험난한 세상에서 곤궁에 처하는 일이 없었다.
그 거대한 원천으로부터 장구히 흘러 윤택하게 한 것이 이처럼 큰 바다와 같으니 어찌 하늘과 땅이 정한 만세(萬世)의 사표(師表)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후세에 도를 닦는 장주(莊周 장자)의 무리들 가운데 노자를 종사(宗師)로 삼지 않는 자가 없었던 것이다.
자료출처: 《신선전》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2416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