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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갑이 노자에게 품삯을 요구한 계시

소양춘(小陽春)

【정견망】

원조의 유명한 화가 조맹부(趙孟頫)가 그린 《노자도(老子圖)》

진대(晉代) 갈홍(葛洪)이 쓴 《신선전》 1권에는 노자가 서쪽으로 함곡관(函谷關)을 나설 때 서갑(徐甲)이 품삯을 달라고 요구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는 후세 수행자들에게 많은 계시를 준다.

먼저 원문을 살펴보자.

노자가 장차 주나라를 떠나 서쪽으로 관문을 나가 곤륜산에 오르려 했다. 관령(關令) 윤희(尹喜)가 바람의 움직임을 점쳐서 신인(神人)이 지나갈 것을 미리 알았다. 이에 그를 맞이하기 위해 40리나 되는 길을 청소했다. 노자를 보고는 바로 이 사람임을 알았다.

노자가 길을 나선 후 중원에 있을 때는 누구에게도 도를 전수해주지 않았으나 윤희만은 이 도를 얻을 운명이 있음을 알고는 이에 그곳 관에서 머물렀다.

노자에게는 서갑(徐甲)이란 하인이 있었는데 젊어서부터 노자 밑에서 일을 했다. 하루에 약 100전(錢)을 받기로 하고 고용살이를 했기에 노자는 서갑에게 모두 720만 전을 빚졌다.

서갑은 관문을 나가 멀리 여행하려는 노자를 찾아가 빚진 돈을 갚으라고 했지만 받지 못했다. 그러자 사람을 시켜 고소장을 만들어 관령인 윤희에게 노자를 고소하게 했다.

고소장을 작성하던 사람이 서갑이 이미 노자를 200여 년이나 따른 것은 모르고 오직 서갑이 받을 돈이 많은 것만 계산하여 자기 딸을 서갑에게 줄 것을 약속했다. 서갑은 여자가 아름다운 것을 보고 몹시 기뻐하며 윤희에게 고소장을 전하게 했다.

윤희가 이 고소장을 보고는 깜짝 놀라 노자를 만나게 했다.

노자가 서갑에게 말했다.

“너는 오래 전에 마땅히 죽었어야 할 사람이다. 내가 예전에 너를 고용한 것은 관직도 낮고 집이 가난해 심부름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현청생부(太玄清生符)’를 네게 주어 오늘까지 살아 있게 된 것이다. 네가 나에게 무슨 할 말이 있느냐? 나는 너에게 안식국(페르시아)에 도착하면 마땅히 황금으로 그 품삯을 계산해 모두 주겠다고 했는데 너는 어찌하여 기다리지 못하는 것이냐?”

말을 마치고 서갑에게 입을 크게 벌려 땅을 향하게 하니 태현진부(太玄真符)가 곧장 땅으로 나왔는데 붉은 글씨가 마치 새로 쓴 것과 같았다. 한편 서갑은 한 무더기의 마른 뼈로 변했다.

윤희는 노자가 신인이라 서갑을 다시 살릴 수 있음을 알고 서갑을 위해 노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목숨을 구해달라고 빌었다. 또 노자 대신 돈을 지불해주기로 했다.

이에 노자가 다시 태현부를 던지자 서갑은 다시 살아났다. 윤희는 돈 2백만 전을 서갑에게 주어 돌아가게 했다.

아울러 노자에게 제자의 예를 갖췄다. 그러자 노자가 장생(長生)에 관한 일을 윤희에게 자세히 전수했다. 윤희가 또 가르침을 청하자 노자가 오천마디 말을 했다. 윤희가 물러나 이를 글로 기록하고는 《도덕경》이라 이름 지었다. 윤희가 노자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니 역시 신선이 되었다.

송말원초(宋末元初) 화가 안휘(顏輝)가 그린 《소를 탄 노자》
서비홍(徐悲鴻)이 그린 《노자가 서쪽으로 함곡관을 나가다(老子西出函穀關圖)》

이상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 계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사람마다 근기와 오성이 서로 다르다. 서갑은 근기가 얕고 오성이 차(差)했지만 윤희는 근기가 좋고 오성도 높았다.

둘째, 돈오(頓悟)와 점오(漸悟)의 구별이다. 앞서 보았다시피 윤희는 돈오에 속하는 인물이라 “상사(上士)가 도를 들으니 근면히 행했다.” 하지만 서갑은 점오에 속하는 인물이라 다시 말해 “중사(中士)가 도를 들으니 있는 듯 없는 듯 했다.”

《태평광기(太平廣記)》 및 《태평어람(太平御覽)》의 기록에 따르면 서갑은 결국 노군의 점화(點化)를 받아 마음을 되돌렸고 교훈을 받아들여 사욕(私慾)을 포기하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수련해 역시 열선(列仙)의 반열에 올랐다. 도교 전설에서 말하는 소위 ‘백골진인(白骨真人)’이 되었다.

셋째는 재물에 대한 탐욕과 색의 해로움이다. 한 수행자로서 각종 유혹과 고험을 거치지 않으면 심성이 견정하지 못해 설사 아무리 오랜 기간 수련했다 해도 헛수고에 불과하다. 서갑은 노자를 200년 넘게 따랐음에도 속세와 명리를 간파하지 못했고 결국에 재물과 색에 연루되어 하마터면 천년 수도의 기연(機緣)을 놓칠 뻔했다. 때문에 여동빈(呂洞賓)이 “차라리 동물을 제도할지언정 사람을 제도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수 문제 시기 해남(海南) 정해사(靜海寺)에 담과(湛果)라는 노(老)선사(禪師)가 있었다. 그는 불문(佛門)의 후대를 양성하기 위해 산골에서 남자아이를 하나 데려와 길렀다. 10여 년간 아이에게 단 한 발자국도 절을 나서지 못하게 했다. 또 날마다 경전을 읽고 참선하는 외에도 한 폭의 아름다운 미녀 그림을 보여주면서 그림 속 미녀는 사람을 잡아먹으면 뼈도 뱉어내지 않고 온갖 악을 한 몸에 결집한 마귀(魔鬼)라고 알려주었다.

18년 후 노선사는 제자의 근기가 이제는 아주 든든해져서 속세의 유혹에 물들지 않을 거라 여겼다. 이에 산을 내려가 탁발을 하게 했다. 제자가 사찰에 돌아온 후 노스님이 물어보았다.

“말해 보거라 산 아래에 가니 어떤 게 가장 좋더냐? 네게 가장 좋았던 게 무엇이더냐?”

그러자 소화상이 두 손을 합장 하고는 눈을 감고는 대답했다.

“사부님, 산 아래에서 마귀가 가장 좋았습니다! 저는 마귀가 가장 좋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100년간 속세의 고통을 간파하지 못하면 한 번만 부주의해도 속세에 떨어진다.”는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8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