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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에 대한 고금의 논설 13: 효로 사람을 제도한 소침

이각(李覺)

【정견망】

소선공(蘇仙公)은 계양(桂陽) 사람인데 한(漢) 문제(文帝) 때 도를 얻었다. 선생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고향에서 어질고 효성스럽기로 유명했다. 집이 군성(郡城) 동북쪽에 있었는데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드나들었으며 종래로 음식의 맛을 가린 적이 없었다.

선생은 집이 가난해 일찍부터 소를 쳤는데 마을 아이들과 함께 돌아가며 소를 쳤다. 선생이 소를 칠 때면 소들이 그 옆에 머물며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고 해질 무렵이 되면 몰지 않아도 소들이 저절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이 소를 치면 소들이 도처로 뛰어다녔으며 종종 산을 넘어 위험한 곳으로 가곤 했다.

이에 소년들이 물었다.

“너는 어떤 술법(術法)을 쓴 거니?”

그러면 선생은 “너희들이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또 늘 한 마리 사슴을 타고 다녔다. 보통 어머니와 식사를 했는데 하루는 어머니가 말했다.

“음식에 젓갈이 없으니 언제 시장에 가서 사오너라.”

그러자 선생은 젓가락을 밥에 꽂아 놓고 돈을 꺼내 나가더니 금방 젓갈을 들고 돌아왔다.

어머니가 식사를 마친 후 “어디서 사왔니?”라고 묻자, 선생이 편현(便縣) 시장에 가서 사왔다고 대답했다.

어머니가 말했다.

“편현이라면 여기서 120리나 떨어져 있고 길도 험한데 어찌 이렇게 빨리 다녀올 수 있느냐? 네가 나를 속이는 것이 아니냐?”

그러면서 매를 때리려 하자 선생이 무릎을 꿇고 말했다.

“젓갈을 살 때 외삼촌을 그곳 시장에서 뵈었습니다. 제게 내일 이곳으로 오신다고 했으니 그때 물어 보시면 제 말이 참말인지 아닌지 아실 겁니다.”

어머니는 이에 때리려던 것을 중지했다. 다음 날 아침 과연 외삼촌이 집에 찾아오더니 어제 시장에서 젓갈 사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어머니도 이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랐고 그제야 자기 아들이 신이(神異)함을 알았다.

선생이 일찍이 죽장(竹杖)을 하나 들고 다녔는데 당시 사람들은 “소 선생의 죽장은 사실 용이다.”라고 말했다.

몇 년 후, 선생이 문과 정원을 청소하고 담과 집을 수리했다. 한 친구가 물었다.

“어떤 손님을 맞이하려 하는가?”

그러자 선생은 신선 친구가 내려올 거라고 했다.

잠시 후 서북쪽 하늘에서 자색 구름이 자욱하게 끼면서 십여 마리 백학(白鶴)이 구름 속에서 날아와 그의 문 앞에 내려앉았다. 뜻밖에도 이 십여 마리의 백학은 18~9세의 멋진 소년들로 변했는데 즐겁고 경쾌한 모습이었다.

선생이 정중하게 이들을 영접하고는 바로 어머니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말했다.

“소자는 신선이 되라는 명(命)을 받았습니다. 부르시는 기간이 되었고 또 의장을 갖춘 분들이 이미 도착했으니 이는 더 이상 어머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절을 하고 작별하려 하자 어머니가 말했다.

“네가 떠난 후에 나는 어떻게 살란 말이냐?”

그러자 선생이 말했다.

“내년에 천하에 역병이 유행할 겁니다. 뜰에 있는 우물물과 처마 밑에 있는 귤나무가 저를 대신해 어머님을 봉양할 수 있을 겁니다. 우물물 한 바가지에 귤잎 한 장이면 한 사람의 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그 위에 봉해놓은 궤짝을 놓아둘 것이니 무엇이든 부족한 게 있으시면 이 궤짝을 두드리면서 필요한 것을 말하면 곧 생길 겁니다. 하지만 절대 궤짝을 열어보아서는 안 됩니다.”

말을 마치자 곧 문을 나섰다. 머뭇거리며 뒤를 돌아보다가 결국 몸을 솟구쳐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자줏빛 구름이 그의 발을 떠받들고 학의 무리가 날아돌면서 하늘 높이 올라가 버렸다.

이듬해 과연 그의 말대로 큰 역병이 돌았다. 원근의 모든 사람들이 선생의 모친에게 병을 고쳐달라고 찾아왔다. 모친은 그의 말대로 우물물과 귤잎으로 치료했는데 낫지 않는 경우가 없었다. 또 부족한 물건이 있으면 궤짝을 두드리면 물건이 곧 나타났다.

이렇게 3년이 지난 후 어머니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상자를 열어 보았다. 그러자 백학(白鶴) 두 마리가 날아갔다. 그 후로는 아무리 두드려도 영험이 없었다.

어머니는 백살 넘게 살다가 어느 날 아침 병 없이 죽었다. 마을 사람들이 관례대로 예법에 따라 장례를 지냈다. 장례가 끝난 후 갑자기 마을 동북쪽에 위치한 우비산(牛脾山) 정상에 자색구름에 뒤덮이더니 구름 속에서 곡소리가 났다.

사람들은 이는 소선공이 모친 때문에 우는 것임을 알았다. 태수와 마을 사람들이 산에 가서 조문을 했는데 단지 우는 소리만 들릴 뿐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군수와 마을 사람들이 보고 싶다고 간청하자 공주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속세를 떠난 지 오래되어 모습도 형체도 모두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만약 모습을 나타내면 정말 놀라고 괴상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의 간청이 끊이지 않자 얼굴의 반만 드러내고 한쪽 손만 보였다.

그는 군수와 마을사람들에게 말했다.

“수고롭게 멀리까지 조문을 오셨으니 길이 험하고 막혀 있어 곧은길로 돌아가실 수 있게 하겠습니다. 대신 절대 뒤를 돌아보시면 안 됩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큰 다리가 고개에서 군성(郡城)까지 직통으로 연결된 것이 보였다. 도중에 한 관원이 다리 위에서 조심하지 않고 머리를 돌려보자, 다리가 사라져 강으로 떨어졌다. 한 마리 붉은 용이 발아래에서 꿈틀거리며 가는 것이 보였다.

선생이 어머니를 위해 곡을 하던 곳에 두 그루 계죽(桂竹 대나무의 일종)이 자라났는데 바람이 없어도 아래로 굽어져 아래를 쓸어 지면을 늘 깨끗이 쓸었다. 3년 후 구름 속에서 다시 곡소리가 들렸고 한 마리 백마가 늘 우비산 꼭대기에서 배회하자 사람들은 우비산을 백마령(白馬岭)으로 고쳐 불렀다.

나중에 한 마리 백학이 날아와 성의 동북쪽 성루에 앉았는데 어떤 사람이 활로 백학을 쏘자 백학은 발톱으로 성루의 편액을 긁어 마치 옻칠로 글자를 쓴 것 같았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성곽은 예전 그대로인데 사람은 옛 사람이 아니로구나.
삼백갑자에 한번 돌아온
나는 소선공인데 왜 나를 쏘는가?”

지금까지도 수도하는 사람들은 갑자일이면 소선공의 옛집에 가서 향을 피우며 예를 올린다.

자료출처 : 《신선전•소선공(蘇仙公)》

【평가】

1. 역병은 사람들의 업력 때문

예언(預言)이란 무엇인가? 바로 일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일의 발생을 미리 알 수 있는가? 일이 발생하기 전의 징조(徵兆)에 의거한다.

인류는 시야가 좁아서 그저 눈앞의 것만을 고려하기 때문에 과거와 장래를 보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보다 높은 생명은 그 시야가 세인보다 넓어서 마치 사람이 개미를 보는 것처럼 가계(家系), 종족, 생명과정, 번창하는 방식 등을 아주 똑똑히 안다. 그의 감각은 세인보다 거시적이고 또 미시적이라서 생명의 업력 형상 다시 말해 과거와 미래 악행의 결과를 볼 수 있다.

그들은 역병이란 바로 사람의 집단적인 업력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을 알기에 도덕을 척도로 삼아 세상일의 향방을 판단하고 배치할 수 있다. 우리는 소선공의 사적을 통해 그 단초를 엿볼 수 있다.

소선공이 효자로 유명했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의 효도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때문에 소선공의 효의 일면이 더욱 두드러졌던 것이다. 사실 그는 본래 도(道)를 얻은 사람이었다. 장차 역병이 발생할 것임을 미리 알려주고 집안에 있는 우물물과 귤잎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과연 큰 역병이 돌았고 또 그의 말대로 따르자 모친의 병이 나았다. 마치 신선이 예고한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역병을 통해 사람들에게 선생의 행동을 회억하고 잘못을 고치게 한 것이다.

우선 그를 공경하던 사람들은 역병이 발생하기 전에 이미 자신의 행실을 바로잡아 역병 중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다음으로 병에 걸린 사람들 중에 그의 예언을 듣고 그를 믿어 소공의 보우를 받은 이들이 있다. 또 그 다음으로 주변 사람들은 모친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사실 이들은 모두 소공과 인연 있는 사람들이다. 이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소공의 행동에 따라 자신을 바로잡았기에 비로소 병이 없거나 또는 병이 좋아진 것이다. 반면 인연이 없는 사람들은 절반가량 사망했다.

물론 효행(孝行)은 도덕표준의 하나일 뿐이다. 역병의 내원은 단지 효가 무너졌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도덕의 패괴(敗壞)에 달려 있다. 그러나 효가 무너진 것을 통해 도덕이 전체적으로 미끄러져 내려갔음을 볼 수 있다.

수백 년간 사람들은 단지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올릴 줄만 알았지 자신의 행위를 점검하지 못했다. 근대에 이르러 더욱 철저히 신을 믿지 않게 되었는데 상술한 현상을 모두 미신으로 치부해버리고 제멋대로 행동한다.

우리는 사유와 행위를 잘 다스려야 한다. 부동한 층차 생명의 도(道)와 덕(德) 표준에 부합하면 비록 예언이 있다 해도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도덕표준이 제고되어 도덕이 패괴됨으로써 생긴 배치를 개변시켰기 때문이다. 즉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때문에 진상을 아는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알려줄 책임이 있는데 얼마나 구할 수 있으면 그만큼 구해야 한다.

이런 도리를 안다면, 우리는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덕을 입었으니, 이는 신(神)이 인류 말겁 시기에 가장 편리한 문을 열어놓은 것이다. 부디 소중히 여겨야 한다!

2. 소치기와 사유 통제

사람의 말과 행동은 자신이 통제한다. 한 가지 작은 실험을 해보자. 당신이 화를 낼 때 웃으려고 시도해보라. 당신은 해내기가 아주 어려운 것을 발견할 것이다. 왜 그런가? 왜냐하면 사람의 상상과는 정반대로 신이 일체를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이 당신의 과거 업력을 이용해 당신이 화나게 할 때면 당신은 억눌려서 정서가 통제되어 있는데 어떻게 웃을 수 있겠는가?

사람에게는 정(情)이 존재한다. 정을 따르면 울어야 할 때 울고 웃어야 할 때 웃게 된다. 이는 고층 생명이 사람에게 정해준 규범이다. 그러므로 “정에서 우러나와 예에서 멈추는 것”을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의 희로애락(喜怒哀樂) 칠정육욕을 신은 틀렸다고 간주한다. 신이 보기에 당신의 정서는 모두 인과가 있는 것으로 그 결과는 또 다른 시비(是非)를 불러일으킨다. 사람이 배불리 먹고 할 일이 없으면 굳이 찾아서 일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은 시비를 일으키지 않는다. 시비를 일으키지 않으니 청정무위(清淨無爲)하고 상화(祥和)롭고 원명(圓明)한 장을 형성해 불량한 정서가 모두 사라져 편안하고 마음이 상쾌해진다.

소들이 선생의 말을 따른 원인 중 하나는 선생이 도를 얻어 몸에 업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즉, 각 공간의 생명이 모두 무조건 그를 도와준 것이다. 그가 소더러 뛰지 말라고 생각하면 비록 말을 꺼내지 않아도 고층생명이 이를 아는데 그 소가 뛸 수 있겠는가? 이런 도리를 사람은 이해할 수 없다. 때문에 목동들에게 “너희들은 알 수 없다”고 말했던 것이다.

한 수련자로서 당신은 어떻게 하고자 하는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51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