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섬(纖纖)
【정견망】
사람의 일생 중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아마 많은 분들이 성공해서 유명해지려 한다고 여긴다. 혹은 명예를 추구하거나 이익을 추구하고 또는 정(情)을 추구하기도 한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가? 명대(明代)의 시인이자 대사상가인 왕수인(王守仁 왕양명)의 시 《양지 4수를 읊어 학생들에게 보이다(詠良知四首示諸生) 중 2수》에서 그 답을 찾아보자.
우선 전체 시는 모두 28자다.
그대들에게 묻노니 무슨 일로 매일 동동거리며
번뇌장 속에서 공부를 그르치는가!
성인의 문에 구결 없다 말하지 말라
양지(良知) 두 글자가 바로 그것이로다.
問君河事日憧憧
煩惱場中錯用功
莫道聖門無口訣
良知兩字是參同
“그대들에게 묻노니 무슨 일로 매일 동동거리며
번뇌장 속에서 공부를 그르치는가!”
이 두 구절의 의미는 세상 사람들이 하루 종일 마음이 불안한 이유는 사실 번뇌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번뇌하기 때문임을 말한다. 많은 일들은 이미 정해진 수[定數]가 있기에 얻고자 다툰다 해도 쉽사리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고인(古人)은 “자연스러움에 따르라(隨其自然)”고 했던 것이다.
사실 고서(古書)에는 이에 관련된 내용이 아주 많다. 가령 《추배도》 제2상을 보면 쟁반 하나에 과일이 놓여 있는데 모두 21개다. 이는 당조(唐朝) 21명의 황제와 대응한다. 예언은 이렇게 존재하고 또 아주 정확하다면 그럼 일체는 다 정해진 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왕에 모든 것에 다 정해진 수가 있다면 그럼 또 무엇을 번뇌할 필요가 있겠는가?
“성인의 문에 구결 없다 말하지 말라
양지(良知) 두 글자가 바로 그것이로다.”
이 두 구절의 의미는 성인(聖人)이 우리더러 세상을 살아가는 비결을 알려주지 않은 게 아니라, 양지(良知)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알려준다. 가령 이익을 추구할 때도 고인은 “군자는 재물을 사랑하지만 취하는데 도리가 있고 강도에게도 강도의 도리가 있다.”고 했다. 즉 과거에는 전반적으로 어느 업종이든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이 있었다. 사실 이 원칙이 바로 양지다. 다시 말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상도의다. 그 어떤 업종이든 오직 자신의 양지를 지키고 자기 업종의 상도의를 지켜야지만 지속할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주 빨리 무너질 것이다.
지금은 어지러운 난세(亂世)로 중공은 더욱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학을 지나치게 맹신하고 무신론을 맹신해 양지에 바탕을 둔 상도의를 잃었기 때문이다. 중공의 소위 “흰 고양이든 검은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것에서 시작해 사람들은 점차 일을 하는 원칙을 잃어버렸고 오로지 결과만 중시하며 과정을 따지지 않게 되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더는 신뢰가 없어져 결국 지금처럼 어지러운 상황을 조성한 것이다.
왕수인은 단순한 시인이 아니라 선지자였다. 그의 이 작품은 많은 여운을 남겨 준다. 사람이 일단 양지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으로 아주 빨리 종말로 나아갈 것이다.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2795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