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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야기: 구하려 마음 쓰면 선술(仙術)을 얻을 수 없어

덕혜(德惠)

【정견망】

명대(明代) 회계현(會稽縣)은 오늘날의 소흥(紹興)시 월성(越城)구이다. 이곳에 모(毛)씨 성을 가진 선비가 있었는데 기록자가 일부러 그의 이름을 숨겼으니 그냥 ‘모씨(毛氏)’라고만 하자.

모씨는 성화(成化)·홍치(弘治) 연간(1465~1505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모씨는 평소 각종 신기하고 기발한 것을 좋아했고, 연금술 연마 등을 좋아했으며, 벼슬길에 오른 후에도 여전히 여러 도사들과 자주 왕래하곤 했다.

그가 광동(廣東) 안찰사(按察使)로 있을 때, 한번은 우연히 관아의 옛날 문서를 뒤적거리다가, 그 중 하나가 어느 술사(術士)에 관한 것임을 발견했다. 이 술사는 단약을 만들다 실수로 불을 내서 주변 민가에 화를 입혀 고발당해 사형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모씨는 율법(律法)에 정통해 이 사건은 증거가 불충분한데도 무리하게 죄명을 날조해 술사를 헐뜯은 것으로 이 술사가 억울하게 희생양이 되었음을 알았다.

명대의 사형죄는 ‘진범사형죄’와 ‘잡범사형죄’로 나뉘는데 전자는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형부(刑部)에서 문서를 검토하면 즉시 참수하거나 교수형을 집행할 수 있었다. 후자의 경우는 비록 사형 판결을 받아도 가을 이후로 처형을 연기하거나 또는 사형할 필요가 없으면 종신형이나 노역, 공역(工役) 등으로 대신할 수 있었다. 그가 문서를 보니 술사는 이미 약 20년 동안 수감되어 있었다.

모씨는 조사 결과 이 술사가 아직도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사람을 데리고 나오라고 명령했고, 그와 대화를 나눠보았다. 술사가 말한 것은 모두 모씨가 흥미를 느끼는 일이었다. 그래서 즉시 족쇄를 풀어주고 상빈(上賓)으로 모시며 관아에 들어가 살게 했다.

술사가 내아(內衙)에 도착하자마자 소매에서 가는 붓을 꺼내 벽에 작은 배를 그렸고, 배 위에 한 사람이 돛을 올렸다. 모두들 보면서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모씨는 더욱 깊이 술사를 이해하여, 그가 수감된 20년 동안 몸이 전혀 늙은 기미가 없는 것을 발견하고 점점 더 그를 고인(高人)으로 인정했다.

이에 모씨는 더욱 예의를 갖춰 수시로 절을 올리며 그에게 장생법과 수행의 도를 물었다. 술사가 말한 것은 진인(真人)이 있다는 옥청선경(玉清仙境)이 아니라 바로 해외 선산(仙山)이었고 말하는 것도 아주 생생해서 마치 직접 다녀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한번은 술사가 도포 한 귀퉁이에서 약 한 봉지를 꺼내 모씨에게 주고는 용기에 수은을 담고 가루약을 넣은 뒤 불에 잠시 달군 뒤 다시 용기를 열어보니 수은이 은덩어리로 변해 있었다. 이를 본 모씨는 더욱 흥분하여 술사에게 금과 은을 만들 수 있는 신술을 물었지만 술사는 줄곧 그에게 말하지 않고 “상공은 선골(仙骨)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뜻은 도를 배울 그릇이 아니란 것이다.

한 번은 모씨가 선술을 거듭 추궁하자 술사가 탄식하며 배가 그려진 내아의 벽 쪽으로 물러나 그림 속 배를 향해 말했다. “출선하라, 출선하라” 그리고는 벽으로 몸을 날려 그림 속으로 들어갔다. 모씨가 눈여겨 바라보니 술사는 이미 뱃머리에 서 있고, 작은 배는 돛을 올리고 출범했으며 담벼락에서 이따금 파도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작은 배는 점점 작아졌고 천천히 돛의 한 귀퉁이만 보였고, 이어서 이 귀퉁이마저 점차 사라져 보이지 않았고 벽면은 원상태로 복원되었다.

며칠 뒤 남창(南昌)에 출장을 다녀온 심부름꾼이 보고했다.

등왕각(滕王閣)에서 그 술사를 만났는데, 술사가 모씨에게 “나으리의 취미가 이러하니 돌아가도 좋다”고 전해달라고 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어떤 사람이 말했다.

“술사에게 신통이 있다면 왜 20년 동안 억울한 감옥살이를 했느냐?”

어떤 이는 아마 술사가 세상에 이런 신적(神跡)을 남기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때 모씨는 이미 “서글프고 황홀하여 마치 미친 것처럼” 깊이 뉘우치고 있었다. 자신이 술사를 더 잘 모시지 못한 것을 깊이 후회했다. 아울러 술사를 위해 판결을 바로잡은 후 더 이상 벼슬할 마음이 없어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향에 돌아와 술사가 남긴 약가루로 수은을 정제하여 은으로 만들고 가산을 늘렸다. 그러나 약이 다 떨어지자 수입이 크게 줄어 결국 우울증에 걸려 죽었다.

이 이야기를 처음 봤을 때는 신적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술사가 왜 모씨에게 선술을 전하지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선골이 없기 때문’ 인 것 외에도 모씨의 마음 씀이 바르지 않기 때문이다. 모씨는 한 지방을 책임진 관료로서 억울한 사건을 발견했다면 응당 먼저 판결을 바로잡아 술사의 억울함을 풀어주었어야 한다. 그러나 모씨는 사적인 권리를 이용해 먼저 술사를 데려왔고, 술사가 흥미 있는 일을 말한 것을 보고 비로소 족쇄를 풀고 상대방을 초대했다. 내아에서 선술에 대해 물었지만, 줄곧 결백을 증명하고 억울함을 씻는 일을 말하지 않았고, 술사가 마침내 신통으로 떠난 후에야 후회하고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가 이렇게 한 의도는 관장의 습관적인 이익 교환에서 나온 것 같다. 즉, 네가 나에게 선술(仙術)을 전수해주면 내가 당신의 억울함을 바로잡아 준다는 것으로 이것을 조건으로 삼거나 심지어 협박하려 했다. 혹은 문객을 기르려는 마음에서 술사더러 그것을 쓰도록 하겠다는 뜻일 것이다.

그는 또 벼슬을 그만둔 후, 술사가 준 약으로 은을 만들었다. 그래서 자기 재산을 늘인 걸 보면 그는 근본적으로 돈 욕심이 많은 이기적인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술사도 마지막에 “나으리의 취미가 이러하니 돌아가도 좋다”고 평가했던 것이다.

술사가 20년 동안 감옥에 있었던 것은 확실히 기적을 남기려는 의도가 있었을 수도 있고, 인연이 있는 사람을 기다리며 시험해보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결국 모씨의 마음이 바르지 않고, 사심이 있으며, 구하려는 마음이 너무 무거운 것을 발견한 후 비로소 떠났을 것이다.

여기까지 말하면서, 내가 개인적으로 깨달은 수행인(修行人)이 어떻게 스승과 법을 대해야 하는지 말해보겠다. 수행인이 스승과 법을 대하는 것은 반드시 지극히 정성스럽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며,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신앙하고 수호하며 귀의해야 한다. 사부가 어떻게 말했다면 그대로 받들어 실천해야 하며, 사심 없고 무조건적이며 남김없이 스승과 법을 섬기며 스승을 위하고 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모씨처럼 구하는게 있거나 조건이 있고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당시 모씨는 선술을 구하려다 실패했는데, 이는 다른 각도에서도 수련해서 법을 얻기란 어렵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법을 얻기가 정말 어려웠지만, 오늘날 세상에는 대법 수련이 널리 전해지고 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널리 전해진 파룬궁(法輪功)은 기공의 형식으로 전해진 불가(佛家)의 수련대법(修煉大法)으로 천년에도 만나기 힘든 정도대법(正道大法)이다.

당신이 진정으로 법을 얻는다면 그 속에서 과거 수련계에서 줄곧 천기(天機)로 여겨졌던 수많은 것들을 알 수 있고 깨닫게 될 것이다. 오늘날 인연이 있고 또 수련하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 모두 법을 얻을 수 있는 기연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7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