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수련에 대한 고금의 논설 20: 마주를 통해 신(神)의 귀위를 보다

이각(李覺)

【정견망】

마주(馬周)는 원래 화산(華山) 소령궁(素靈宮)의 선관(仙官)이었다.

당나라가 천명을 받아 천하를 통일할 즈음 태상(太上)은 그에게 칙명을 내려 세상에 내려가 당(唐)을 돕게 했다. 그러나 마주는 세상에 내려간 후 술에 빠져 속세에 묻혀 20년을 지냈다. 고난과 굶주림을 겪으며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세상사에 구애받아 여러 차례 사람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종노릇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촉(蜀 사천) 땅의 원천강(袁天綱)이 진(秦 장안을 비롯한 관중 지역을 말함)에 들어왔는데 그가 관상을 아주 잘 본다는 말을 듣고는 그를 찾아가 자신의 운명에 대해 알아보고자 했다.

원천강이 그를 한참 쳐다보고는 말했다.

“당신은 오신(五神 오장신)이 흩어져 명(命)이 이미 조석에 달렸으니 관상을 볼 필요도 없소이다.”

마주가 깜짝 놀라 죽음을 피할 방법을 물었다.

그러자 원천강이 말했다.

“여기서 동쪽으로 곧바로 가면 소를 타고 가는 한 노인을 만날 것이오. 가서 억지로 말하려 하지 말고 그가 가는 길을 좇아가기만 하시오. 그러면 재앙을 없앨 수 있을 것이오.”

마주는 그가 시킨 대로 했다. 문을 나서기도 전에 과연 한 노인이 소를 타고 성문을 나가고 있었다. 조용히 그 뒤를 따라서 마을길을 굽이굽이 돌아 어느 커다란 산에 올랐다. 마주가 그를 좇아 산 정상에 이르자 노인이 고개를 돌려 그를 보고는 소에서 내려와 나무 아래 앉더니 그에게 말했다.

“태상(太上)께서는 네게 성손(聖孫 노자의 후손인 당황실을 가리킴)을 도와 왕조를 개창하고 세상을 구하라 했거늘 너는 어찌하여 술에 빠져 스스로 고난과 굶주림을 자초했느냐! 오신이 이미 흩어지고 정기도 모두 시들어 조석간에 죽게 되었는데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냐?”

마주는 정신이 멍해졌지만 아직 깨닫지 못했다.

그러자 노인이 말했다.

“너는 본시 소령궁의 선관이었다. 지금 선왕(仙王)께서 사람을 보내 너를 소환하셨다.”

이에 그를 데리고 궁궐로 들어갔다. 여러 겹의 궁문을 지나 대전(大殿) 앞에 이르렀다. 시위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는 것이 마치 제왕의 거처와 같았다. 노인이 그를 데리고 대전 주렴 앞에 서자 한 관리가 선왕의 조서를 크게 읽으며 그를 문책했다.

“명을 받들고도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 소임에서 물러나 옛 관서로 돌아가 스스로 허물을 반성하라.”

노인과 여러 사람들이 마주를 동쪽 관서 밖의 별원(別院)으로 데려갔다. 집이 크고 아름다웠는데 그 문을 보니 마주란 이름이 있었다. 자물쇠를 열고 들어가자 화로와 솥, 침대와 자리 등이 완연해서 마치 최근까지 머물던 곳 같았다. 마주가 묵묵히 생각해보았으나 끝내 깨달을 수 없었다. 문득 다섯 사람이 나타났는데 오방(五方)에 해당하는 색으로 된 복식을 입고 있었으며 모습이 장대하고 위엄이 있었다. 이들이 마주 앞에 서더니 말했다.

“우리는 모두 선생 오장(五臟)의 신(神)입니다. 선생께서 술에 빠져 방탕해 몸을 더럽힌 탓에 우리는 오래 전에 이미 이곳에 돌아와 있었습니다. 하지만 눈을 감으시면 원래 신실(神室 신이 거처하는 곳)로 돌아가겠습니다.”

마주가 눈을 감자 문득 심지(心智)가 밝아졌고 또한 옛 일들이 모두 생각났다. 20여 년간의 고생이 마치 십여 일처럼 스쳐 지나갔다. 다시 문의 빗장을 열고 선왕(仙王)의 대전에 나가 머리를 조아리며 과오를 뉘우치고 다시 명을 받고 장안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마주가 원천강을 찾아가자 원천강이 말했다.

“그대에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이미 병이 다 나았군요. 60일 안에 하루에 9번 승진하고 100일 뒤에는 재상의 자리에 오를 것이니 부디 자애하시오.”

과연 정말 그의 말대로 되었다. 당태종 정관(貞觀) 연간에 문무백관에게 나라를 다스릴 방책을 바치라는 조칙을 내렸는데 마주가 바친 헌책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 그날로 습유(拾遺) 및 감찰어사(監察御史)에 제수되었다. 이때부터 여러 차례 막중한 임무를 맡았고 나중에 재상이 되어 중서령을 지냈다.

수년 후 어느 날 낮에 여러 신선들이 그의 집에 내려와서는 말했다.

“진인께서 명하신 나라를 돕는 공을 이뤘으니 이제 물러나도 됩니다. 태을진인(太乙真人)께서 부르시니 더 머물러선 안 됩니다.”

이튿날 마주는 아무 병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황제는 그에게 ‘충공(忠公)’이란 시호를 내렸다. 그는 국정을 보필하는 많은 공업(功業)을 세워 열전이 있지만 정사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지 않다.

자료출처: 《신선습유(神仙拾遺)》

【평가】

1. 신을 잃음과 신의 귀위(歸位)

마주는 원래 천명을 받들어 세간에 와서 배역을 맡았다. 하지만 일단 육신(肉身)을 지니고 인류사회 미혹 속에 떨어지자 세파에 흔들리며 근본을 망각했다. 그러자 그의 신체 미시적인 공간에 있던 그의 오장신(五臟神)들은 그가 악세(惡世)에 오염되어 이미 인생의 의미를 상실했음을 똑똑히 알았다. 이에 신들이 하나하나 그 직책을 떠나 선천(先天)에 있던 곳으로 달아났다.

오장이 신을 잃자 관상에도 드러났으니 원천강이나 소를 탄 노인이 보기에 마주는 “오장이 이미 흩어져” 조만간 죽을 목숨이었다. 다행히 마주는 신이 사람에게 정해준 법칙을 알았고 천명(天命)을 믿었으며 또 원천강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에 비로소 자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은 다른데, ‘무신론(無神論)’의 독해를 받았으니 원천강의 말을 믿고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에게 ‘곧장 동쪽으로 가라’고 한들 따를 수 있겠는가? 우리가 보기에 마주는 생활이 곤경에 처해 거의 노비와 같은 상황에 처해서야 원천강을 찾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원천강, 소를 탄 노인, 선왕의 반복적인 꾸짖음에도 여전히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몰랐다. 원래 살던 집에 돌아가 오장신을 만나고 직접 옛 광경을 본 후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오장신이 귀위(歸位)하고 나서야 마음이 트여 크게 깨달았다. 다시 인간 세상에 돌아와 사명을 완수했다.

이 과정은 우리에게 스스로 속세의 일을 간파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준다. 왜냐하면 미혹 때문에 신(神)을 잃었기 때문이다. 진상이 눈앞에 있어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니 어찌한단 말인가? 마주 한 사람을 위해 신은 또 온갖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오늘날 말겁 시기에는 천만의 마주가 세상에 내려와 있는데 이들이 모두 다시 천당으로 되돌아가 자신의 상황을 똑똑히 알고 나서 다시 세상에 내려오기란 불가능하다.

“세간에 미혹되어 근본을 잊으니 광풍이 일 때 따라서 나빠지누나”(《홍음 2》〈갚아라〉)

구우주 성주괴멸(成住壞滅)의 단점이 남김없이 드러난다.

마주가 겪은 일에서 우리가 이미 보았다시피, 사람이 세간 미혹 속에서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신을 잃게 된 근본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법(法)에 따라 수련해 심지가 열리면 지혜로워져 귀위할 수 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은 진선인(真善忍) 대법으로 우리의 심성을 제고해 확실하게 수련인들의 심성을 정체적으로 제고시킬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편리한가! 우주중의 그 어떤 방법이 이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

2. 인체 ‘소우주’의 ‘신(神)’을 말하다

인체라는 소우주에는 층차가 극히 많다. 직관적으로 보자면 다음과 같다. 세간의 사람은 표면 분자층(分子層)의 육신 및 이 층 입자보다 작은 층층의 분자로 구성된 신체가 있고 더 나아가 이 생명의 본원 미시적인 곳까지 층층의 정체(整體)가 있다. 층층의 정체는 상대적으로 인체의 각 계통과 층층으로 대응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기관, 세포, 세포내 소기관, 유전자, 폴리펩티드, 아미노산 등등이다.

중국 전통이념에는 “사람에겐 정기신(精氣神) 삼보(三寶)가 있다”고 했다. 만약 ‘정(精)’을 구체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에너지 등급이라고 말한다면, ‘기(氣)’는 거시에서 미시적으로 층층 및 그것들 정체적인 ‘정(精)’의 ‘장(場)’ 범위를 말한다. 또 ‘신’이란 바로 구체적으로 이들 크고 작은 ‘장(場)’을 지휘하는 속에서 인체 ‘정(精)’의 에너지등급으로 체현되는 지혜생명이다. 이는 또 ‘삼위일체(三位一體)’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런 지혜생명들은 단지 인체 소우주 중의 ‘신(神)’ 또는 ‘영(靈)’이란 일종의 이념에 불과할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인체 소우주 정체 생명군 중 각급의 지휘자로 홍대한 대궁천체와 대응한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보자. 의식을 주관하는 ‘신’이 제 위치에 없으면 정상적인 사유를 지닌 사람이 보기에 이 사람은 곧 ‘바보’거나 ‘치매’가 된다. 의학계에서는 병인이나 나이에 따라서 또 선천성 정신박약, 정신분열, 노인성 치매 등으로 분류한다.

또 의식을 주관하는 ‘신(神)’이 제 자리에 없으면 그 하급의 ‘신(神)’도 제 자리에 없게 되는데 사람들은 그를 좀 모자란다고 할 것이다. 정신과에서는 통칭해서 정신이나 인격이 완전하지 않다고 한다.

또 팔다리 운동을 주관하는 ‘신’이 제 자리에 없으면 이 공간에서 ‘편마비’ 증상이 나타나는데 중의학에서는 음양오행의 각도에서 ‘풍’질(風疾) 또는 속칭 중풍이라 한다. 서양의학에서는 동맥경화나 색전증, 뇌혈관질환 또는 허혈성 뇌졸중 등이라고 한다.

이처럼 매 한 가지 병에는 수많은 설명이 있고 병인이나 병리도 아주 복잡하다. 어느 설명이 더 정체적이고 더 과학적인가?

하나의 ‘신(腎)’이 다양한 방면의 복잡다단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현대과학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포함한다. 만 가지 현상이 하나로 귀일하는데 생명의 도(道)와 덕(德)이 정(正)에서 부(負)로 하나의 윤회를 걷는다. 인체의 ‘신’을 얻었다가 다시 잃는다. 이에 사람의 육체 역시 한 차례 생로병사(生老病死)를 거친다.

간단히 말해서 생명이 사람 이 층의 도덕표준에 부합하면 출생하고 사람 표준에서 어긋나면 사망하며, 생생세세 덕(德)을 잃으면 병을 앓으며 어려움 속에서 소업(消業)하면 병이 낫는다.

그럼 왜 나쁜 일을 하면 ‘신’이 제 위치를 벗어나는가? 생명의 내원에서부터 말해보자.

“이 우주 중에서, 우리가 사람의 생명을 보면, 속인사회 중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진정한 생명의 생성(産生)은 우주공간 중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이 우주 중에는 생명을 만들어내는 많고 많은 각종 물질이 있기 때문에, 이런 물질의 상호운동하에 생명이 생겨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최초 생명은 우주 중에서 온 것이다. 우주공간은 본래 선량한 것이고, 真(쩐)ㆍ善(싼)ㆍ忍(런),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사람이 태어나서는 우주와 동성(同性)이었다. 그러나 생명체가 많이 생겨나자 일종의 군체(群體)적 사회관계가 발생했다. 그중에 일부 사람들은 아마 사심(私心)이 증가됨으로써 그들의 층차가 서서히 낮아져 이 한 층차 중에 있을 수 없게 되었으며, 그들은 곧 아래로 떨어져야만 했다. 그러나 다른 한 층차 중에서 또 그다지 좋지 못하게 변해 그들은 또 있지 못하게 되었고, 계속 아래로 떨어져 최후에는 인류 이 한 층차 중까지 떨어져 내려왔다.”(《전법륜》)

신(神)이 보기에 생명이 가장 낮은 충차인 사람 속에 떨어지고 또 계속해서 떨어진다면 인체를 관장하는 신(神 고층 생명의 눈에는 신으로 인정하지 않음)이 곧 제자리를 떠난다. 그들 역시 한 가지 일을 만나 단번에 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고층생명이 아래로 내려오는 것처럼 모두 하나의 과정이 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자신의 일을 나쁘게 할 때면 주의식은 늘 사유가 발버둥치는 과정이 있다.

마주에 대해 말하자면 그는 술에 대한 욕망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거듭 술을 탐닉해 재난을 당했고 결국에는 신(神)을 잃었다. 마주의 신체 안에서 오장신이 흩어지는 것에도 앞뒤로 순서가 있는데 오행과 대응하고 인과관계에 따라 하나씩 떠나간다.

오늘날 우주는 정법(正法) 중에 있고 생명 역시 모두 매 한가지 일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놓고 있다. 나쁜 일을 했어도 과정 중에서 회개할 수 있다면 신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진수자(真修者)에게는 반본귀진(返本歸真)할 기회를 줄 것이다.

우리는 사존을 통해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입자는 모두 진선인(真善忍) 특성의 존재를 지니고 있음을 안다. 이는 생명의 등급을 가늠하고 층층 도덕표준과 대응하는데 각 층차의 신은 이를 행위준칙으로 삼는다. 사람 이 한 층차 도덕규범에 부합하면 신이 그 자리에 이르러 건강한 인체를 지닐 수 있는데 또 죄를 갚으면 원래의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음양이 변화하면서 평형을 유지해야만 비로소 생명이 그 한 층차 속에서 존재함을 유지할 수 있다. 음양이 평형을 잃으면 이 생명은 마땅히 종말을 향해 나아간다. 한 생명의 종말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의미한다. 생로병사는 이렇게 반복적으로 순환한다. 이 층차의 한 생명이 패괴(敗壞)되어 아래로 내려가면 고층에서는 또 한 생명이 이 층차로 떨어져 태어난다.

생명이 층층 아래로 내려가면 얼마나 비참한가! 마주의 술에 대한 탐닉은 단지 인체가 보는 작디작은 한마디에 불과하다.

3. 신이 돌아가는 길

전통이념 속에서 부처님은 다양한 신통을 지녔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없는가? 왜냐하면 사람이란 생명이 있는 층차가 그의 능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반드시 손발을 움직여야 하지만 신은 그곳에 앉아서도 할 수 있다. 표면공간에서 보자면 인체 분자보다 더욱 작은 분자입자(같은 층차에서 크기가 다른 입자)로 구성된 개미는 손발을 움직여도 사람의 일을 할 수 없다.

우리는 사존을 통해 생명이 층층 아래로 걸어오게 된 원인을 알고 있는데 바로 생명이 기나긴 흐름 속에서 거쳐 온 생생세세 ‘연극’의 기초를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수련 속에서 층층마다 신(神)이 돌아가는 과정은 ‘숙명통’ 공능이 돌아옴에 따라 우리는 곧 진실하게 우리 자신 특정한 한 생명이 우주 중의 내력을 보고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2번째 부류의 제자로 아득히 먼 대궁(大穹)에서 세간에 와서 천만다행으로 사존을 만났다. 첫 세(一世)에 숭배했고 두 번째 세(世)에 도움을 받았으며 세 번째 세(世)에 원하는 대로 사존의 제자가 되었다. 이후 무수한 세상의 부침 속에서 사부님께서는 여러 차례 나를 찾으셨고 나를 위해 수기해주셨으며 내가 잃어버린 수련의 마음을 찾도록 도와주셨다. 동시에 또한 많은 동수들 및 가족 친구들과 인연을 맺게 하셨다. 수련의 인연, 가족의 인연, 각종 은혜와 원한 등이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다음 한 가지 일에 대해 들려주고 싶다.

2006년 여름 나는 불법(不法)으로 체포되었다. 체포 당일 나는 본래 운남(雲南) 여행을 하려 했지만 갑작스레 일정이 연기되었고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사전에 나는 이번 재앙을 보았고 또 자신이 아주 장시간 감금된 것을 보았다.(철저히 부정하지 못한 것은 정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일찍이 도피하려(이 마음은 바르지 않다) 했지만 사람마음의 집착을 제거함을 늦추자 겁난을 만났다. 이렇게 해서 나의 운남 여행은 강제로 2달 뒤로 미뤄졌다.

이번 운남 여행에서 평소 장신구를 좋아하지 않던 나는 비치색 옥팔찌를 보고는 마음속에 환희심이 생겼다. 쇼핑 도우미가 내 앞에서 유리 상자 속에서 다양한 모양과 색상의 옥팔찌를 보여주었는데 유일하게 꺼낸 것은 바로 가장 싼 이것이었다. 또 유리로 옥을 두드려보고 그어보면서 이것이 진품이라고 알려주었다.(옥이나 비취는 경옥에 속해 유리보다 경도가 단단하다) 그중에 비취색 옥팔찌가 있었는데 기어이 내게 팔려 했다.

나는 우연이란 없음을 알기에 그것을 구매했다. 돌아오는 길에 사부님께서 내게 8백만 년 전에 그것의 내 신체의 일부임을 보여주셨다.

옥석(玉石)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알다시피 옥을 매매할 때는 한가지 규칙이 있다. 옥석을 절단한 후 운기(運氣)를 보는 것이다. 옥석 단면에서 중앙 부분이 가장 좋은 옥이고 변두리리로 갈수록 잡질(雜質)이 많이 섞인다.

내 팔찌는 변두리 부분에서 취한 것이다. 나는 이 일을 통해 사부님께서 내게 수련도 마찬가지로 변두리로 갈수록 소도(小道)가 되고 층차가 낮아지며, 수련에서 더욱 정진하지 못할수록 잡질이 더욱 많아지고 당신의 신체(神體)가 더욱 불순해지며 장래 당신의 세계가 더욱 장구(長久)하지 못하다고 알려주신 것임을 안다.

8백만 년 전에 내 신체(神體)는 이미 금(金)의 층차에서 비취옥석의 층차로 떨어졌고 인간 세상에 내려와 이곳에서 법을 얻었다. 그런 후 선천의 가장 좋은 상태로 되돌아갈 것이다. 이 일을 통해 사부님께서는 내게 기연(機緣)이란 얻기 어려움을 알려주셨다. 마치 지금 이 곳에서 이 옥을 만난 것과 같다. 우선 인연이 있어야 하고 또 여행팀이 꾸려져야 하며 거시와 미시 및 시방(十方)의 인연이 서로 만나야만 이런 우연한 만남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인연 있는 가이드가 있어야 하고 또 자신이 원해야 하며 경제적으로 조건이 있어야 한다. 그 어느 하나도 쉬운 게 없다. 수학적인 확률로 계산한다면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아마 이 만남을 위해 내가 체포되었던 것은 아닐까? 왜 그랬을까? 나는 이 배치야말로 내게 가장 좋은 것임을 안다.

이 한 차례 난속에서 나는 또 진정으로 많은 것을 얻었으며, 내 층차에서 마땅히 버려야 할 집착을 제거했고 또 이 옥을 획득할 자격을 얻었다. 속인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그저 볼품없는 하품 옥에 불과하지만 신(神)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늘 사부님께 말씀드린다.

“마땅히 와야 할 거라면 모두 오게 해주시고, 오직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면 원하며 제가 원하는 것은 필요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있는 층차에서는 또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한 ‘좋음(好)’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수련 중에서 수없이 정확하게 걸어간 후에야 비로소 그것이 가장 좋은 것임을 알게 된다.

정진할 수 없는 수련자는 스스로를 그르치는데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데 또한 우리 자신이 오성(悟性)이 있어야 하고 또 그곳까지 걸어가야만 한다.

우리 사부님의 당부를 기억합시다.

“고금에 있어본 적 없으나
장래는 천지가 영구하리라
영원무궁할 큰 창궁을 보고
누가 감히 또다시 아래로 내려갈쏘냐”

(《홍음 2》〈대궁을 구하다〉)

사람은 자신이 믿지 못하는 사물에 대해 자연히 각종 의문이 존재하기 마련인데, 이런 생각은 마주의 오장신이 귀위(歸位)하기 전과 같다. “이게 무슨 헛소리란 말인가? 모두 미신이다.”

그러나 신이 귀위한 후 마주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사람마음으로 문제를 보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신(神)으로 성취할 수 없는 근본원인이다.

당시 마주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내심에 고만한 정념(正念)이 있어서 운명을 믿고 원천강을 믿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 부친과 같은 많은 사람들은 무신론의 독해를 받아 세간에서 이런 기회를 상실했다. 단순히 생명이 날 때부터 지니고 온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인체를 잃었다.

우리는 다른데, 우리는 수련 중에서 수많은 기이한 경험을 통해 “믿지 못하면 곧 배척하는 것”이야말로 인식론의 비애임을 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모두 마주와 마찬가지로 고층(高層)에서 온 것으로 우리는 사람들이 정념을 지니고 겁난을 지나고 사명을 완수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시리즈 종결]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56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