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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도(道) 1–왜 수도서적이 문화의 형식으로 전해 내려왔을까

왕일풍(王一豐)

【정견망】

1. 들어가는 말

대학을 졸업한 어느 여름날, 홀로 가릉강(嘉陵江)가에 앉아 《노자》(《도덕경》이라고도 함) 한 권을 손에 들었다. 정오의 태양이 뜨거운 빛을 발산하는 가운데 저 멀리 푸른 산들을 배경으로, 책을 읽다보니 점차 청량(淸凉)한 세계로 들어가 시간이 멈춰버렸다. 나는 속세를 벗어난 것처럼 지혜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 아주 오래 전 기억이 되살아난 것 같았다. 어느 덧 마치 지혜로운 사람이 시간의 긴 강을 건너온 것 같았는데 마치 푸른 산과 흰 구름 사이가 닿을 듯 떨어질 듯 하는 것처럼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었다. 너무 아득해서 따라갈 수 없었다.

그것은 정말 아름답고 잊을 수 없는 한 차례 경험이었다. 나는 우리가 이렇게 심오하고 초탈한 오랜 지혜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고 한참을 보다 보니 어느 덧 해가 저물었다. 나는 서둘러 교정으로 돌아왔고 이후 내 인생에 꿈이 하나 늘어났는데 그것은 바로 도(道)를 찾고자 하는 몽상이었다.

세월은 순식간에 흘러 손가락 하나 까딱할 사이에, 이미 십여 년이 지나갔고 나는 다시 그 책을 읽어 볼 여가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내 꿈을 잊지 않았다. 내게 이런 행운이 있고 또 그 꿈이 이미 확고한 현실이 되었기 때문에, 다시 이 책을 펼쳤을 때, 나는 자신이 정말 행운이라고 찬탄했다. 왜냐하면 이 꿈을 위하여 그것(《노자》를 지칭)은 이번 차례 인류와 이번 차례 문명을 싣고 이미 수천 년의 세월과 수천 년의 기대를 거쳤기 때문이다.

2. 왜 수도 서적이 문화의 형식으로 전해 내려왔는가

《노자》는 비록 5천언에 불과하지만 후대에 주석서만 천 가지가 넘는다. 주석을 단 사람들은 문인, 명사, 황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했고 역조역대(歷朝歷代)마다 늘 주석을 달거나 또는 주석에 주석을 다는 이들이 있었다. 주석한 문자를 합하면 원래 책보다 수천만 배가 넘는데, 중국에 있는 모든 전적 중에서 이만큼 난해한 책은 없었다. 그리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그에 대한 해석도 거의 멈추지 않고 또 끝나지 않는 것 같다.

사실 《노자》는 신비하지 않다. 이 책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이해하는 소위 정치론, 인생론, 우주관, 철학, 양신(養身) 및 치국(治國)의 술(術) 등등을 논술한 책이 아니다. 그것은 수련 서적이자 수도(修道)에 관한 저작이다. 수련의 이치는 속인 사회 이 층차를 훨씬 뛰어넘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이 제아무리 그것을 연구하고 해설해도 영원히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진 못한다.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을 뿐이다.

노자는 지혜가 열려 개오(開悟)한 각자(覺者)로 속인의 경계(境界)와는 거리가 아주 멀고, 그 이후 나타난 제자백가(諸子百家)는 비록 사람들이 여전히 믿고 숭배하고 있지만, 사실 모두 법(法)을 어지럽혀 사람을 샛길로 빠지게 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왜 이런 것들을 받아들이는가? 왜냐하면 이 한 층차의 소위 철리(哲理)나 사상이 사람의 층차에 가장 가깝기 때문에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노학(老學 노자학)’ 학자들은 무신론의 영향을 받아 사서(史書)에 기록된 노자가 160세를 살았다는 기록마저 황당하다며 일축하니 이들이 어찌 ‘도(道)’를 해석할 수 있겠는가? 사실 《노자》는 저자가 자신이 살던 시대에 당시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와 관심을 갖던 화제[치국(治國), 양신(養身)]를 사용해 수도(修道)의 원리(그래서 오늘날 ‘도리’라는 말이 생겼났다)를 당시 사람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후세인들은 도에서 점차 멀어졌기 때문에 당연히 그 내함(內涵)을 요해(了解)할 수 없고, 그저 글자 표면의 뜻만 파고들었을 뿐이다.

노자는 21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도라고 하는 것은 다만 황(恍)하고 홀(惚)하며 또 홀(惚)하고 황(恍)하니, 그 안에 상(象)이 있다. 황하고 홀하니 그 속에 물(物)이 있다. 그윽하고 어슴푸레하니, 그 안에 정(精)이 있다. 그 정은 매우 참되어 그 안에 믿음이 있다….”

과거에 이 단락에 대한 해석은 이 단락이 모두 도(道)란 무엇이며 어떤 물건인지 말했지만, 왜 이렇게 구체적이고 명확한 묘사를 왜 또 황(恍)하고 홀(忽)하다고 했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도(道)’란 이런 것은 없으면서 있는 것이고 진실하면서 거짓이라고 말하는데 말을 하면 할수록 더 허황해졌다. 이는 사람들이 모두 단지 글자의 표면에서 추측했을 뿐 저자의 경계와 감수를 전혀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수련하는 사람이 어느 정도 층차에 도달하면 천목(天目)이 열릴 수 있는데 천목이 열린 후에는 자연히 다른 공간의 일부 광경들을 볼 수 있다. 아울러 다른 공간은 사람 공간보다 층차가 높기 때문에 현현(顯現)되어 나오는 광경이 더욱 실재적이고 더욱 또렷하다. 이것을 가리켜 “도라고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 안에 상이 있는데” 상(象)이란 그림을 말하며 “그 안에 정이 있는데” 정이란 바로 정령(精靈) 내지는 다른 공간의 생명체를 말한다.

이런 것들은 모두 저자가 어떤 한 상태에서 진짜로 본 것이다. 말하자면 수도(修道)할 때 나타나는 한 가지 상태인데, 아주 명확한 것인데 왜 황홀하다고 하는가? 과거 수도인은 모두 사람의 부의식(부원신)을 수련했는데 어떤 상태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주의식(주원신)을 마취상태로 만들어야 했다. 때문에 주의식이 황홀(恍惚)할 때면 곧 부의식이 다른 공간의 광경을 볼 수 있다.

과거 도가(道家)에서는 수도할 때 잠을 자거나 술에 취하는 것을 중시해 주의식이 지각(知覺)을 잃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만약 수련하지 않거나 노자의 경계에 도달하지 못하면 책에서 무엇을 말했는지 똑똑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수련중의 경계는 속인 층차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것을 속인 사회 속으로 가져올 때면 그것은 곧 내함(內涵)이 극히 거대한 위력을 드러낸다. 정치인이 여기서 보는 것은 바로 치국(治國)의 술(術)이고, 철학자는 영원히 초월할 수 없는 철리(哲理)의 근본을 보고, 인생의 경계를 추구하는 사람은 ‘인생관’이나 ‘우주관’을 읽어낸다. 이처럼 대대로 전해져 내려가면서 중국인들은 《노자》에 나오는 불후의 명언들을 말해 왔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천장지구(天長地久)”
“대기만성(大器晩成)”
“출생입사(出生入死)”
“상사(上士)가 도를 들으면 부지런히 행하고… ” 등등이다.

이렇게 이유를 알든 모르든 대를 이어가며 전해져 내려왔다. 그 현묘하고 현묘한 도(道)는 바라볼 순 있어도 닿을 수 없는 아름다운 경지로 영원한 철리(哲理)의 빛으로 가득하고, 진정한 식견과 간결한 이성과 지혜가 풍부해서 중국인은 물론이고 전 인류의 사상에 녹아들었다. 또한 사면팔방으로 널리 전파되어 심지어 미국 대통령이 시정 연설에서 “큰 나라를 다스림은 작은 생선을 요리하는 것과 같다”[그가 어떻게 이해했는지는 하늘은 아실 것이다]는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이 얼마나 기이한 현상인가! 도가에서 수도하려면 반드시 사부가 구전심수(口傳心授)해주는 진기(真機)를 얻어야 한다. 또한 도가에서는 역대로 사부가 도제(徒弟)를 찾아 일맥(一脈)으로 단독 전수했으며, 중생을 널리 제도함을 말하지 않았다. 노자는 개오한 각자(覺者)로서 분명히 이 점을 잘 알았을 것이다. 또한 일단 이 책이 전해져 나오면 반드시 난법(亂法)이 될 것임을 잘 알았을 텐데, 왜 또 이 오천 언을 남겼을까?

이번 차례 인류문명에서 노자와 거의 같은 시기에 세상에 내려와 사람을 제도한 두 분의 각자인 석가모니와 예수는 모두 직접 글을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 이 두 분은 모두 중생을 널리 제도함을 강조했다. 유독 도가의 개산조(開山祖)인 노자만이 무려 오천 언을 남겼다. 이는 후인들에게 일종의 경전(經典)이 되게 했고 또 백세(百世)에 길이 남는 문화와 사상이 되어 단지 전체 중국문화에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대양 멀리까지 전파되었다. 설마 역사가 농담을 한단 말인가? 당연히 그럴 리가 없다.

역사에 그 어떤 우연도 나타날 수 없으며 역사는 단지 역사의 필요에 따라 배치된 것이라 암암리에 모든 것이 다 정해져 있다. 대(代)를 이어가며 도를 찾는 꿈이 있었고, 도(道)에 있는 생명의 대자재와 인생의 귀의처를 찾았으며, 그 깊고 심오한 지혜의 근원을 찾아왔다. 깊이를 알 수 없고, 아득히 멀어 도달할 수 없었던 ‘도’는 마치 때때로 드러나는 맥(脈)처럼, 전체 역사 속에서 중국인들의 운명을 연결시키면서 계속 이어져왔다.

인류는 마침내 1992년 파룬따파(法輪大法)가 널리 전해지는 시대를 맞이했다. 이는 인류 역사의 대사건이다. 《전법륜(轉法輪)》 첫머리에서 리훙쯔(李洪志) 선생님은 이 천고의 수수께끼인 ‘도’에 대해 남김없이 풀이하셨다.

“그는 우주특성 쩐싼런(真善忍)의 부동한 층차에서 부동한 논술(論述)로 다시 말해 도가에서 말하는 ‘도(道)’이자 불가에서 말하는 ‘법(法)’이다.”

그 후 도를 추구하던 수백, 수천만 명이 직접 실천을 통해 ‘파룬따파’야말로 도(道)를 찾는 이들이 진정한 귀착점임을 실증했고 생명에서 우러나와 진정한 감탄을 했다.

“진도(真道)를 이미 얻었으니 이 얼마나 행운인가!”

여기에 이르러 노자가 한 일의 모든 진상이 밝혀졌다. 중국 즉 동토(東土)에서 우주대법이 널리 전해지게 되는데 그는 바로 이 우주대법이 널리 전해지기 위한 포석을 깐 것이다. 그의 ‘도(道)’, 그의 ‘이(理)’, 그의 사상의 정수, 그가 의도적으로 후세에 논쟁이 끊이지 않도록 남겨놓은 오묘한 비밀들은 사실 모두 대법이 널리 전해지는 이날을 위해 길을 닦아준 것으로, 모든 생명이 태어나면서부터 추구하던 것들이 이때에 이르러 완벽한 결말과 답안을 얻게 했다.

이에 《노자》는 마침내 아름다운 종지부를 찍었고 역사는 그것의 이 부분 막을 내리게 했다. 나는 대법 수련자가 《노자》를 읽는다면 더는 얼떨떨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진 않을 것이며 오히려 “높은 산에 오르면 주변의 모든 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처럼 분명하리라 확신하는데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고 또 왜 그렇게 말해야 했는지 아주 똑똑히 알게 될 것이다.

(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16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