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북 대법제자 여심(如心)
【정견망】
어머니는 중국 북방 농촌의 가난한 집에서 맏이로 태어났다. 아래로 여동생 하나와 남동생 하나가 있다.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아름답고 총명하고 사랑스러웠다. 또 손재주가 뛰어나서 어떤 일이든 금방 배워 집안 어른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매년 설을 맞아 친척을 방문할 때면 집안 어르신이 엄마를 데려가곤 하셨다. 또 어머니의 점을 봐줄 사람을 따로 찾아갔다. 점쟁이는 어머니가 벼슬할 팔자라고 했는데 나중에 단장(團長)이 될 거라고 했다.
과연 어머니는 자라서 지방 부대에 입대했고 1949년 군대를 따라 남하해 대도시에 들어가서 일했다. 어머니는 어려서 공부를 하지도 않았지만 나중에 군정(軍政) 간부학교에서 몇 년을 공부해 간단하게나마 책을 읽고 신문을 읽을 수 있었다. 비록 벼슬길은 순조로웠지만, 어머니의 몸은 줄곧 병치레가 잦았다.
서른 살에 갑자기 전신마비로 병상에 누워 고생했는데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 외에는 모두 감각이 없었다. 나중에 중의(中醫)에서 여러 가지 치료를 받고, 침을 맞고, 약을 먹고 몇 년 후 서서히 건강을 회복했다. 하지만 나중에 메니에르 증후군, 경추병, 류머티스 관절염, 간장 질환, 녹내장 등을 잇달아 앓았다.
1949년 이모도 이모부와 함께 지방 부대를 따라 북경으로 북상했다. 북경성에 들어간 후, 이모는 베이징의 한 의류 공장에서 공장장 겸 당 서기로 일했고, 어머니는 퇴직 후 북경 여동생 집에 가서 잠시 머물렀는데 이때부터 어머니의 운명이 완전히 변했다.
그때 마침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중국 대륙에서 널리 전해질 때였다. 1997년 어머니와 이모가 함께 법을 얻어 수련했는데, 당시 북경에는 곳곳에 대법 연공장이 있었다. 매일 아침 공원에서 동수들과 함께 연공하고 법을 공부했으며, 보도원이 무료로 다섯 가지 공법을 가르쳐 주었다. 게다가 《전법륜》을 배우자 자매는 온 몸에 병이 없이 홀가분해졌다.
어머니는 매우 감격하여 내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대법은 병 치료와 건강에 기이한 효과가 있고 사람에게 선을 가르치는 고덕대법(高德大法)이니 나더러 빨리 연공장을 찾아가 대법을 수련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2년이 지나서야 현지 대법 연공장을 찾았고 대법수련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도 곧 온몸에 병이 없는 건강한 상태에 이르렀고, 이미 3년 동안 병가로 쉬고 있던 직장에 다시 복귀했다.
그러나 좋은 세월은 오래가지 못했다. 당시 1억 명이 파룬궁을 수련하자 강택민(江澤民)은 파룬궁 사부님에 대한 개인적인 질투로 1999년 파룬궁에 대한 잔혹한 박해를 일으켰다. 가장 애석한 것은 어머니와 이모가 사당의 박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련을 중단한 것이다.
반면 나는 여러 차례 북경에 들어가 법을 수호하다 사당(邪黨)에 의해 불법 노동교양, 세뇌반에 감금되거나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당시 아들은 아직 초등학생이었고, 남편 직장은 파산해서 수입이 없었다. 내 월급 역시 회사에서 무리하게 지급이 중단되었다. 어머니는 당시 이미 80세의 노인이었지만, 퇴직한 당 간부였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 직장에서 차를 요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직장 상사는 어머니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딸을 만나러 간다는 이유를 들어 완강하게 차를 보내주지 않았다.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노교소로 나를 만나기 위해 2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오셨지만, 노교소 경찰로부터 무자비하게 거부당했다. 어머니는 무더위를 무릅쓰고 교도소 철문 밖에 서서 기다리며 애지중지하는 딸을 보지 못해 애간장을 태웠다.
나중에 큰올케가 한 말에 따르면 어머니는 당시 노교소에 다녀온 뒤 며칠간 통곡한 뒤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셨다고 했다. 어머니는 평생 선량하고 남 돕기를 좋아하셨다. 아랫사람이 그녀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일이 있으면, 가령 아이가 학교에 가거나, 직장을 구하거나, 집을 분배하는 일 등, 그녀는 반드시 응해서 최선을 다해 잘 해 주곤 했다.
어머니는 성격이 강해서 비록 많은 전우들이 성(省) 위원회 서기부터 각 청장(廳長)에 이르기까지 두루 포진해 있었지만 누군가를 구해달라며 고개를 숙인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나를 구하기 위해 여러 방면에서 연줄을 찾아 굽실거렸고 매일 노교소 대대장에게 전화를 걸어 나를 때리지 말라고 했다.(내가 노교소 경찰에게 각종 고문을 당해 양쪽 견갑골이 검게 손상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 직장 보위처(保衛處)에서 어머니에게 대법서적을 제출하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내심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기에 내 책을 어머니 집에 숨겨 두고 잘 보호했다.
2002년 내가 불법 감금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후 나는 어머니에게 다시 공법을 가르치려 했지만 어머니는 법을 배우려 하지 않았다. 속으로 여전히 사당의 박해가 두려웠던 것이다. 어머니는 경찰이 문을 두드리는 것을 가장 두려워해서, 노크 소리를 들으면 큰소리로 문을 열지 말라고 소리쳤다.
때로 나는 어머니에게 사부님 설법 녹음을 들려주었다. 어머니의 몸은 다시 서서히 회복되어 80세가 넘은 노인은 매일 6층을 오르내릴 수 있었다(당시 우리 집은 6층에 살았고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어머니가 86세 때 우리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로 이사했다. 어머니가 90세가 되던 해, 나는 국가보안 경찰에 의해 불법적으로 체포되어 사악한 성(省) 세뇌반에 들어갔고, 어머니는 ‘610’ 사무실 요인을 찾아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 악인을 고발하는 편지를 썼다. 2015년 전국 20만 명의 대법제자들이 강택민을 실명으로 고소할 때 어머니는 이미 93세의 고령임에도 나와 함께 실명 고소에 동참했다.
어머니는 80세 때 녹내장으로 오른쪽 눈이 갑자기 실명되셨다. 나는 어머니에게 빨리 사당(邪黨) 조직을 탈퇴해 평안을 지키라고 권했다. 왼쪽 눈도 녹내장이 있었지만 삼퇴한 후 왼쪽 눈은 멀쩡해졌다.
어머니는 93세 되던 해에 넘어져 요추가 골절되었고, 통증으로 소리를 지르셨다. 입원 후 의사는 CT 검사에서 뇌종양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의사는 뇌종양이 혈관위에 자라서 수술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요추골절은 집에 가서 그냥 3개월 동안 누워 있어야 한다고 했다.
집에 돌아온 후 내가 사부님의 설법을 틀어드리자 일주일 후 어머니는 더는 허리가 아프다고 하지 않았고 걸어 다닐 수 있었다. 나중에 또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어머니의 뇌종양이 석회화됐다면서 할머니는 정말 운이 좋다고 했다. 어머니는 천성이 선량해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저녁이면 같은 병실에 환자들에게 가부좌 연공을 가르쳐주었다. 내가 병원에 문병 가서 어머니를 뵈었을 때, 나더러 빨리 연공을 가르쳐 달라고 하셨다.
2020년 무한 폐렴이 발생해 곳곳이 폐쇄되자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에서도 전문 간병인만 간호하게 하고 환자 가족들이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게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내 꿈에 나타나셨다. 꿈에 한 남자 의사가 내게 “당신 어머니의 병은 완전히 다 나았습니다.”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어머니의 피부가 희고 윤기가 나는 것을 보았다.
다음날 어머니는 또 내 꿈에 나타나 지금 살고 있는 곳을 보여 주셨다. 놀랍게도 그것은 꽃으로 가득 찬 큰 정원이었다. 인간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과 색깔이었고 흰 양옥(洋屋 서양식 집)은 백악관보다 더 아름다웠다.
나는 꿈에서 깨어난 후 어머니가 이미 천국세계로 되돌아가셨음을 알았다. 향년 98세셨다. 비록 어머니의 일생은 고생이 많았지만 그래도 만년에 우주대법을 수련했기 때문에 자비로운 사부님과 대법이 어머니에게 가장 아름다운 인생의 귀결을 하사하셨으니 바로 천국세계로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우리 가족 중 최초로 사망 후 천국세계로 되돌아가신 분이다. 이모는 올해 이미 96세인데 마찬가지로 대법을 수련해서 유방암을 이겨내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 계신다.
세상의 인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전법륜》이란 천서(天書)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는 당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으며 당신을 지옥에서 천국세계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 그것은 당신이 세상의 올 때의 오랜 소원으로, 다시 말해 당신이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것이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대법에 감사드립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2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