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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팔괘와 신전문화 해독 3: 대상무형(大象無形)

도생(道生)

【정견망】

3. 대상무형(大象無形)

중화전통문화의 특징으로 ‘천인합일(天人合一)’ 이념 외에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상(象)’이다. 이 개념을 요해(了解)하는 것은 중화문화를 이해하고 학습하는 데 지극히 중요하기 때문에 반드시 이 기초를 먼저 다져야 한다.

‘상’의 원래 뜻은 코끼리를 가리킨다. 코끼리는 육지에 사는 생물 중에서 인류가 아는 가장 큰 동물이다. 때문에 이 개념을 차용해 만사만물(萬事萬物)의 가장 큰 유별(類別 종류에 따른 분류)을 대표했다.

《주역·계사》에서는 “만물을 같은 종류끼리 모으고 무리를 지어 나눴다[方以類聚,物以群分]”고 했다.

우리는 흔히 주변의 사물을 이렇게 종류를 구별해서 나누는데 이렇게 하면 일목요연하고 조리가 분명해서 사람이 자연만물의 규율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 이는 또한 인류가 자연세계를 인지하는 중요한 방식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서로 같거나 비슷한 특성을 지닌 사물을 하나의 종류로 구별하고 이를 하나의 류(類)라고 한다. 이는 우리 세간(世間)에서의 표면적인 분류다.

만약 고층차에서 만사만물의 규율과 도리에 대해 고도로 개괄하고 정련(提煉)한다면 그럼 그런 심층(深層)에서도 유사한 속성을 지닌 것들을 하나의 큰 류(類)로 귀납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상(象)’이다. 즉, ‘상’이란 세간의 ‘유별(類別)’이란 개념보다 훨씬 큰 것이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중의(中醫)의 중요한 한 가지 원리 중에 장상학(臟象學)이 있다. 쉽게 말하자면 인체의 모든 구조 부위를 전부 오장육부와 대응시키는 것인데, 이러한 대응을 이용해 병을 찾고 병을 치료한다.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는 말한다.

“심(心)은 혀에 개규(開竅) 하고, 비(脾)는 입에 개규 하며, 폐(肺)는 코에 개규 하고, 간(肝)은 눈에 개규하며 신(腎)은 귀에 개규한다.”

다시 말해 심은 혀와 대응하는 일상(一象 역주: 같은 상)이고, 비는 입과 일상이며, 폐는 코와 일상 등등이라는 뜻이다. 때문에 사람의 이목구비(耳目口鼻) 오관에 이상이 생기면 곧 심, 간, 비, 폐, 신 등 오장에 병변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오장육부는 체내에 감춰져 있어 볼 수 없기 때문에 중의에서는 오장육부를 인체의 다른 부위와 대응시켜 그 상태를 요해하는 것이다. 동시에 또 이것들은 음양오행(陰陽五行)과 대응하고 본초(本草) 약성과 대응하며 경혈(經穴) 혈위와 대응하고 오미(五味) 및 오음(五音)과 대응하고 오색(五色) 및 오정(五情) 등과 대응할 수 있다. 이런 대응은 그것들을 심층에서 한 몸으로 드러나 일상(一象)을 이루는데 그런 후에 상(象)을 통해 병을 치료하고 진단한다.

예를 들어보자. 앞에서 간(肝)은 눈에 대응하고, 왼손의 관맥(關脈)에 대응하고, 담(膽)에 대응하고, 간경(肝經)에 대응하고, 근맥(筋脈)에 대응하고, 축시(丑時)에 대응하고, 오행의 목(木)에 대응하며, 천간에서는 갑을(甲乙)에 대응하고, 별자리에서는 세성(歲星 목성)에 대응하며, 봄에 대응하고, 동방(東方)에 대응하며, 오음의 각음(角音)에 대응하고, 오취(五臭)에서는 누린내에 대응하며, 오미(五味)에서 신맛에 대응하고, 오정(五情)에서는 분노에 대응하며, 오색에서는 청색(靑色)에 대응하는 등등이다.

여기서 간, 눈, 관맥, 담, 간경, 근맥, 축시, 목(木), 세성, 봄, 동방, 각음 누린내, 신맛, 분노, 청색 등은 겉으로 보면 아무 관련이 없고 서로 다른 사물이지만 심층(深層)에서는 대응하는 것으로 일상(一象)에 속한다. 중의는 바로 이 상을 통해서 또는 상(象) 사이의 관계를 통해서 진료하고 치료한다.

예를 들어 왼손 관맥을 진맥해 오장에서 간(肝)의 상황을 진단할 수 있고, 눈이나 시력의 변화로 간장의 병변을 알 수 있다. 또 간병이 근맥(筋脈)에 병을 일으켜 허리가 시큰하거나 근육이 뒤틀리는 증상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또 화를 내면 간을 손상하고 봄은 간을 기르기에 적합하며 청색은 간을 치료하는데 유리하고 신맛이 나는 음식이 간을 도우며 족궐음간경(足厥陰肝經)으로 간병을 치료하고 축시에 잘 쉬면 간에 좋은 등등이다.

이것이 바로 상(象)을 통해 한 가지 사물로 만물(萬物)을 알고, 한 가지 사물로 만물에 대응하며, 한 가지 사물로 만물을 움직이는 것이다.

세상 만사만물(萬事萬物)은 겉으로 보면 서로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심층에서는 오히려 인류가 보지 못하는 감춰진 연계를 볼 수 있다. 인류는 이런 지혜가 없기 때문에 이런 대상을 보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이런 연계는 그것들을 심층에서 서로 다른 상(象)으로 귀납시키고 상을 통해 자연・우주・인류 및 만사만물을 심층에서 서로 느끼고 공명(共鳴)하게 해서 신기한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주역·계사하》에서는 말한다.

“천하 만사만물은 비록 과정 속에서 가는 길은 달라도 결국에는 모두 같은 곳으로 돌아가고 같은 근원으로 돌아간다.”[1]

대도(大道)는 지극히 간단하고 지극히 쉽기 때문에 고층으로 갈수록 정련해 내는 상은 더욱 간단하지만 동시에 내함(內涵)은 더욱 커지고, 저층으로 갈수록 정련해 낸 상이 더욱 번잡하지만 내함은 더욱 작아진다. 세간(世間)이란 가장 낮은 층차에 오면 바로 세간 만사만물에 대한 인류의 귀납과 분류가 된다.

이것은 마치 백화문(白話文)을 고문(古文)과 비교하는 것과 유사하다. 백화문은 표현이 아주 번잡해서 한 가지 일을 똑똑히 설명하려면 몇 천 글자를 써야 하지만 내함(內涵)은 비교적 천박하다. 반면 고문은 아주 간결하지만 같은 한 가지 일을 똑똑히 설명할 때 불과 몇십 자면 표현할 수 있지만 내함이 아주 크다.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고 이러한 지혜를 얻어야지만 가능하다.

상(象)은 고문처럼 고층차에 펼쳐진 것으로 아주 간결하지만 내함과 지혜는 대단히 박대(博大)하다. 반면 저층으로 발전하면, 마치 고문을 백화문으로 번역하는 것처럼 갈수록 번쇄하고 복잡해지지만 내함과 지혜는 갈수록 작아진다. 동시에 그것들은 또 관통되고 대응하는데 왜냐하면 같은 사상과 도리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단지 같은 도리가 부동한 층차에서 부동하게 전개될 뿐이다. 어떤 경계(境界)에 이르면 고만한 지혜를 구비하기에 그저 그 경계 속에 펼쳐진 상(象)만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도덕경》에서 노자는 ‘대상무형(大象無形)’이란 한마디를 말했다. 즉 ‘유별’의 어느 정도에 크기에 도달해 생명이 존재하는 층차를 뛰어넘을 때면 곧 ‘무형(無形)’으로 변하는데 즉 ‘대상(大象)’이 된다. 비록 존재하지 않을 때가 없고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지만 그러나 오히려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다.

바로 마치 깊은 우물 속에서 태어난 개구리는 평생 우물 밖을 나가본 적이 없어서 그것의 인식 중에는 우물 안이 전체 세계이고 하늘도 우물 입구 크기에 불과한 것과 마찬가지다. 개구리에게 있어 우물 밖에 존재하는 일체는 모두 ‘무형’이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오직 큰 지혜를 가진 생명이 인류의 층차를 뛰쳐나온 후에라야만 비로소 우주 천지사이에서 ‘상(象)’을 통찰하고 그것의 “모습을 드러낼(顯形)” 수 있다. 이는 일반인은 해낼 수 없는 것이다.

지금부터 대략 2만여년 전에 신령(神靈)이 세상에 내려와 상고 성인(聖人)인 복희씨(伏羲氏)가 되었다. 그는 위로 천상(天象)을 보고 아래로 지형(地形)을 관찰하며 조수(鳥獸)와 만물의 무늬를 보고 가까이는 자신의 몸에서 관찰하고 멀리는 만물을 취해 최종적으로 우주 고층차의 규율을 통찰해냈다. 이에 세간 만사만물의 복잡다단한 이치와 변화를 고층차에서 정련하고 개괄시켜 최종적으로 팔개의 큰 상[八大象]으로 귀납하고 이에 팔괘(八卦)를 창립해 상(象)을 표시했고 이를 통해 천지신령과 소통했다.

상(象)의 운용

어떤 면에서 말하자면 ‘상(象)’이란 중화문화를 건립한 기초의 하나로 각종 부동한 유별(類別)은 모두 ‘상(象)’의 지혜를 운용한 것이다. 인간 표면에서 펼쳐진 내함(內涵)으로는 제대로 펼쳐낼 수 없으니 신령 및 무궁(無窮)무극(無極)한 고층우주와 서로 통하고 서로 대응할 수 없다.

중화문화에는 중요한 특징이 하나 있는데, 바로 매사에 ‘의경(意境)’을 중시하고 ‘내함(內涵)’을 중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무용에서는 신운(神韻)을 중시하고, 음악에서는 현외지음(弦外之音), 그림을 그릴 때는 화외지경(畫外之境 그림 밖의 경계), 시사(詩詞)·곡부(曲賦)에서는 언외지의(言外之意)를 중시하는 등등이다.

의경(意境)이란 중화문화의 경계(境界)가 있는 곳이자 중화문화의 경계를 가늠하는 중요한 표준이다. 이 의경 역시 상(象)에 대한 운용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의경이란 인간세상 표면에 드러나지 않으며, 세간 만물 밖의 내함이지만, 세간에서 구체적인 사물 사이의 대응과 투영을 통해 심층에서 표현되어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상(象)의 운용이다.

《역경・계사상》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문자로는 마음속의 말을 완전히 표현할 방법이 없고, 말로도 그 뜻을 완전히 표현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성인(聖人)의 뜻을 볼 수 없다는 것인가? 공자는 말했다. 성인이 이에 상(象 64상)을 세워 그 뜻을 완전히 표현하고 괘를 베풀어 실정을 다하며 사(辭)를 달아 그 말을 다하고 변하고 통하며 이로움을 다했으며 그것을 고무시켜 신묘함을 다했다. 성인은 이에 상(象)을 만들어 사상과 의경을 완전히 표현했다.”[2]

이것은 《역경》에서 ‘상’의 작용을 논술한 것으로 이를 이용해 인류 표면에서는 표현할 수 없는 사상과 의경 등을 표현한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당대(唐代)의 저명한 서법가(書法家 서예가) 장욱(張旭)은 공손대랑(公孫大娘)의 칼춤을 보고 서법의 도를 깨달아 자신의 서법을 승화시켰다고 하는데 이 역시 상(象)에 대한 운용이다. [3]

상(象)은 부동한 유별(類別) 사이에서 촉류방통(觸類旁通 한 가지 사물에 대해 터득한 후 다른 사물에 대해 미루어 아는 것)하고 서로 응하고 공명(共鳴)함으로써 그 뜻을 얻고 그 형태를 초월한다. 이것이 바로 고인이 말한 “뜻을 얻으면 형체를 잊는다(得意而忘形)”는 것이다.

동시에 동일한 층차에 있는 서로 다른 상(象) 사이에도 긴밀하게 서로 연계되어 있다. 가령 음양(陰陽) 이상 사이에는 상생상극(相生相克)의 관계가 존재해 한 몸으로 관통되어 나타난다. 주역 64상 역시 상호 영향을 주고 서로 의존해서 함께 일체를 이룬다. 이에 만사만물(萬事萬物)이 모두 상(象)을 통해 전식(全息 홀로그램)의 대응을 형성하며 서로 감응하고 공명해 하나의 정체(整體)로 관통되는데 이것도 또한 ‘천인합일’ 사상을 표현한 것이다.

‘상’은 어느 한 사물을 구체적으로 가리킬 수 없지만 상(象) 속에는 만사만물을 포함하며 상이 대표하는 것은 우주 만사만물 사이의 대응과 연계다. 동일한 상(象) 속에서 사물은 심층에서 대응하고 관통하는 것으로 피차간에 서로 심층에서 감응하고 공명하며 하나의 체계를 이룬다.

‘상’에 대한 운용에는 여러 방면이 있는데 비교적 전형적인 것은, 상(象) 속의 한 물건을 취해 전체 상(象)을 표현하고, 한 물건을 서로 감응시켜 만물이 공명하게 함으로써 전체 상(象) 속의 내함이 구체적인 사물과의 공명을 통해 표현해내는 것이다. 가령 중화문화에서 ‘의경’이 표현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또 상(象) 속에서 한 물건을 이용해 다른 물건을 알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점(點)에서 면(面)을 알 수 있고, 나뭇잎 하나로 가을을 알며, 한 방울의 물에서 큰 바다를 알 수 있다. 또한 상 속의 한 물건을 사용해 다른 물건을 움직이거나 또는 하나를 발동시켜 전신을 움직일 수 있는 등이다.

이처럼 상의 내함은 무궁무진하고 현묘막측(玄妙莫測)해서 매 사람마다 그저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 뿐이다. 이는 매 사람의 지혜와 경계에 따라 결정된다.

주:
[1] 《周易·系辭下》:“天下同歸而殊途,一致而百慮。”

[2] 《易經•系辭上》:“子曰,書不盡言,言不盡意。然則聖人之意,其不可見乎?子曰,聖人立象以盡意,設卦以盡情偽。”

[3] 《新唐書.張旭傳》:“旭自言,始見公主擔夫爭道,又聞鼓吹,而得筆法意,觀倡公孫舞劍器,得其神。”

(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39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