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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한 얕은 깨달음

영춘(迎春)

【정견망】

나는 명혜 문장 《사와 ‘나’는 주된 장애물이다(私与“我”是主要障碍)》에서 “이틀 전 ‘파룬좡파’를 연마할 때 통증이 또 시작되었다. 애써 견디는데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졌다. 이때 문득 깨달았다. ‘이 고통을 참으며 연공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지?’”를 읽을 때 내심이 진동했다.

‘그것’은 내(我)가 아니고 ‘그것’은 사(私)다! 이때 또 나는 단번에 ‘그것’이 구우주의 본성임을 깨달았다! 구우주의 일체 생명요소는 모두 이 ‘사(私)’에서 내원한 것으로 이는 매 수련인이 주요한 집착이 아닌가! 사존께서 법에서 일찍이 하신 말씀인데 동수의 교류에 감사하고 사존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이는 사존께서 제자를 점화(點化)하신 것이다!

사존께서는 《전법륜》 첫 부분에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고층차로 사람을 이끈다”고 알려주셨다.

또 《북미순회설법》에서는 “나는 1999년의 7.20에서 7.20 이전의 수련생들을 전부 제 위치로 밀었는데 당신들의 가장 높은 위치로 밀어 올렸다.”라고 말씀하셨다.

사존께서는 또 《각지설법 14》〈2016년 뉴욕법회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사실, 내가 매 수련생을 모두 제 위치로 밀어주었는데, 진실한 것으로, 당시 여러분들이 모두 느꼈으며 또 일부분은 보았다.”

개인적인 이해로 사존께서는 대법제자들 모두를 매 생명의 가장 높은 경계(境界)로 밀어주셨고 대법제자는 사존께서 배치하신 길을 걸어가고 있다. 우리는 사존께서 갱신하고 다시 만드신 신우주의 생명으로, 다시 말해 대법제자의 주원신(主元神)은 이미 그 한 층차의 법과 한데 용해되어 이미 완전히 새로운 생명이자 법입자(法粒子)가 되어,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일체 신통법력(神通法力)을 지니고 있어 이전보다 더욱 완벽하고 신성하며 위대하며 당연히 불가능이란 없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어느 한 점든 잘하지 못했다면 아마 그 때 주원신이 대뇌를 주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즉 주의식(主意識)이 강하지 못해서 구우주 속 사람마음・관념 또는 외래 정보가 대뇌를 주재해 조성된 것이다.

우리의 진정한 사유는 모두 주원신이 내보낸 것이고 사존께서 구도하신 것은 바로 우리의 주원신이다. 이때의 주원신이 어디 또 ‘내’가 연공하려 한다거나 ‘내’가 제고해야 한다거나 ‘내’가 관을 넘어야 한다거나 ‘내’게 어떤 사람마음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대법제자는 역사적으로 모두 수련 성취한 적이 있다.

개인적인 이해에 따르면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수련은 마땅히 사존께서 우리를 제 위치로 밀어주신 주원신이 청성하게 대뇌를 주재하는 것으로 일상생활과 업무에서 시시각각 안으로 찾고 두뇌속의 매 하나의 사유・염두가 법에 부합하는지 똑똑히 가리고 선택하는 것이다. 무릇 ‘사(私)’와 ‘나’에 부합하는 사람마음・관념・집착은 모두 구우주 범위 내의 이치로 모두 구세력이 배치한 세부적인 것으로 이는 모두 자신의 주원신이 내보낸 것이 아니다. 그럼 곧장 부정하고 배척하고 청리해야 한다.

구우주의 그 어떤 생명이든 사존께서 배치하신 길을 걸어가는 대법제자를 관할할 자격은 없고 이 한 갈래 길에서 구우주의 일체 이치, 일체 생명요소는 자연히 대법제자를 건드릴 수 없으며, 상생상극(相生相剋)의 이치는 자연히 변화가 발생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시기 대법제자의 주의식은 이미 부동한 층차의 법속에 용해되어 법의 입자가 되었기에 자연히 법의 힘이 그곳에 있어 자연히 불광(佛光)이 널리 비추니 예의가 원만하고도 밝아지고, 자연히 중생을 구도하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 이때 나는 “대학 교과서”의 한 층 내함(內涵)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전 수련 중에서 나는 비록 사존께서 이미 대법제자를 제 위치로 밀어주신 것을 분명히 알았음에도 늘 제 위치에 도달한 그 원신(元神)은 시시각각 자신의 대뇌 속에서 주체(主體)를 주재하게 하지 못하고, 마치 늘 자신의 주체 아주 높은 어느 한 층 공간의 높은 곳에 있는 것 같았다. 이것이 어찌 사존께서 말씀하신 “신신합일(身神合一)”(《대원만법》〈2. 동작도해〉)의 상태인가? 이는 대뇌를 사람마음・관념 및 외래 요소에게 주재하게 한 것과 같은 것이 아닌가? 이는 인위적으로 난(難)을 증가시킨 것이 아닌가?

만약 대법제자가 일상의 수련이나 마난(魔難)을 만났을 때 비록 안으로 찾고 있고 또한 일부 후천적으로 형성된 사람마음・집착심・관념이 내가 아님을 인식하고 또 그것을 부정하고 배척하며 해체하긴 하지만 지나고 나면 마음속으로 여전히 나는 수련해야 한다거나 나는 제고해야 한다거나 내게 무슨 집착이 있다고 한다. 이는 근본적으로 부동한 층차의 근본 집착인 ‘사(私)’와 ‘나(我)’에서 뛰쳐나오지 못한 것으로, 구우주의 테두리에서 뛰쳐나오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 그것들의 배치 속에서 수련하고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박해 속에서 반박해(反迫害)하는 것으로 구세력의 일체 배치를 전반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구세력은 이것을 그것들에 대한 승인으로 간주하기에 일단 사람마음이 나오기면 하면 그것들은 나를 관할하려 한다.

어떤 동수는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안으로 찾았는데 나는 어찌하여 여전히 마난 속에 있는가!”

우리 역시 일찍이 이렇게 고민한 적이 있을 것이다. 즉, 수련 중에 누가 누락이 없을 수 있겠는가? 누락이 있다면 사악이 곧 우리를 박해하기 때문에 우리는 또 늘 누락이 있어도 박해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크고 작은 박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사실 그때 대법제자는 여전히 소위 누락과 집착을 ‘나’에게 누락이 있고 ‘나’에게 집착이 있는 것 등으로 간주한 것이다. 또 주의식이 강하지 않아 집착과 사람마음을 ‘나’로 착각한 것이다.

개인적인 이해는 정법시기 대법제자는 주의식이 강해야 하는데 사존께서는 《전법륜》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진정한 지령, 진정한 사유는 사람의 元神(왠선)이 내보내는 것이다.”

우리의 법 공부는 바로 자신의 주의식을 강화하는 것으로 주원신 즉 주의식이 시시각각 대뇌를 주재해 자기 공간장 속에 남아 있는 일체 구우주의 이런 집착과 이런 이치들을 똑똑히 구별하고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 대법제자의 심태는 마땅히 순정한 것으로 자비롭고 상화하며 이지적이고 지혜롭게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

어떤 동수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녀는 7차례 불법적인 박해를 받았는데 간수소든 정신병원이든 교양원이든 매번 단식이란 이런 방법으로 뛰쳐나왔다. 그녀는 매번 구세력이 강요한 생(生)과 사(死)의 관건적인 시각이 되면 마음속에 곧 일념이 맹렬하게 떠올랐다.

“사부님, 이곳은 대법제자가 있을 곳이 아닙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서 사람을 구하고 사명을 완수하겠습니다!”

그럼 곧장 어떤 사람이 와서 관을 삽입하는데 아울러 아주 빨리 집에 돌아갔다. 그렇다면 왜 그녀는 또 나중에 반복해서 박해를 받게 되었는가? 왜냐하면 그녀는 그때 자신이 이미 신우주(新宇宙)의 신(神)임을 똑똑히 깨닫지 못하고 구우주 사의 테두리에서 뛰쳐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후 일상적인 업무와 생활, 수련과 사람을 구하는 중에서 사유관념마저 자신도 모르게 구우주 ‘사(私)’로 돌아가 구세력의 배치 속으로 돌아간 것이다.

즉 ‘나’는 이렇게 할 것이고 ‘나’는 저렇게 할 것이며 ‘내’게는 이런 마음이 있고 ‘내’게는 그런 마음이 있다는 등등이다. 이것이 바로 반복적으로 박해받게 된 원인이다.

사존께서는 말씀하셨다.

“현재 소업이든, 사악한 요소가 교란하든, 모두 구세력이 한 것이고, 모두 같은 것이며, 부르는 방법이 다르다. 구세력이 한 일을 나는 모두 부정하고, 나는 모두 승인하지 않으며, 대법제자가 이런 고통을 감당하게 하는 일은 더욱 마땅히 있어서는 안 된다.” [1]

사존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나는 리훙쯔(李洪志)의 제자이다. 다른 배치는 다 필요 없고, 모두 승인하지 않겠다. 그러면 그것들은 감히 하지 못하므로 모두 해결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정말 할 수 있다면,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할 수 있다면 사부는 반드시 당신을 위해 처리해 줄 것이다. 게다가 사부 주위에는 또 많은 호법(護法)이 있고 많은 불(佛), 도(道), 신(神)이 있으며 또한 더욱 큰 생명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 참여할 것이다. 왜냐하면 승인 받지 못하고 강제로 박해하는 것은 법을 범하는 것으로 우주의 구 이치 역시 허용하지 않으며 무리한 박해는 절대로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세력도 감히 하지 못한다. 가능한 한 여러분들이 올바르게 걷도록 하라.

내가 바르게 걸었고 나 역시 잘했으므로 지금부터 시작하여 어떤 마난(魔難)도 있을 수 없다고 한다면, 아마 당신의 이 마음이, 또 그것들로 하여금 당신에게 마난(魔難)을 만들어 주도록 부추길 것이다. 왜냐하면 구세력은 이것 역시 그것들에 대한 일종의 승인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 그는, 그런 것이 아니고, 다만 마난이 없이 자재(自在)하기를 바랄 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건 안 된다. 이 마음을 제거해야만 한다. 그럼 또 그것에게 빈틈을 타게 한 것이 아닌가? 사실 여러분이 평소에 아주 바른 심태를 유지한다면 기본적으로 할 수가 있다.”[2]

이 층의 이치를 깨닫고 나서 이틀 전 평소처럼 직접 사람을 만나며 진상을 알리다 한 중년 남성을 만났다. 그는 자전거를 천천히 타고 있었는데 내가 웃으며 그에게 다다가서 말했다.

“형제, 호신부를 하나 드릴까요?”

그는 자전거에서 내리더니 내게 다가와서는 말했다.

“당신들은 집에서 그렇게 할 일이 없어? 시간을 때우자는 것인가!”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생명은 가장 소중한 것으로 신앙은 개인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단지 당신이 평안하길 바랄 뿐입니다.”

그는 또 아주 사납게 말했다.

“무슨 신앙!”

나는 곧 그가 좋은 뜻을 품지 않았고 무슨 일이든 저지를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바로 이와 동시에 머릿속에서 한 가닥 염두가 나왔다.

“이미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구우주의 일체 사악한 요소는 이미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의미]

그러자 이 공간에서 거의 동시에 그 사람이 마치 위에서 명령을 받은 것처럼 자전거를 곧장 앞으로 밀더니 빨리 현장을 떠나는 것을 보았다!

한동안 가부좌를 하면 사유가 비교적 혼란해 조용해지거나 입정(入定)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 층의 법리를 깨달은 후 가부좌를 하면 기본적으로 늘 아주 빨리 입정(入靜)에 들었고 심지어 입정(入定)에 들어간다. 아울러 자세도 아주 바르고 곧아졌다.(전에 가부좌하면 늘 고개를 떨구곤 했다)

입정(入定)할 때면 온 몸이 모두 가장 편안한 상태에 도달했으며 때로는 마치 계란껍질 속에 앉아 있는 것처럼 아주 미묘(美妙)했다. 때로는 또 다른 공간의 그런 섬세함마저 진실하게 느낄 수 있었는데 심지어 공기마저도 아주 섬세하고 또 빛이 났다. 조명에서 나오는 그런 빛이 아니라 아주 편안한 느낌이었고 정말로 뭐라 형용할 방법이 없다. 이는 사존께서 제자를 가지(加持)하고 정념(正念)을 견정하게 해주신 것임을 안다. 사존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사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생으로서, 당신이 사부의 요구에 따라 하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간단한 일이 아니다. 구세력은 모든 대법제자에 대하여 그것들의 것을 한 세트 배치하였는데, 만약 대법제자가 사부의 요구에 따라 하지 않는다면, 바로 틀림없이 구세력의 배치에 따라 하고 있는 것이다. 구세력은 실제로는 바로 정법 중에서 대법제자가 능히 걸어 나올 수 있는지에 대해서와 시시각각 당신들을 동반하는 거대한 관(巨關), 거대한 난(巨難)을 겨냥한 것이다.

이번 마난(魔難)을 겪고 나서, 어떤 수련생이 아직도 청성(淸醒)하지 못하다면, 당신은 이 일체를 곧 잃게 될 것이다. 사부의 요구에 따라 하는 것만이 비로소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고 있으며 자신을 수련하고 있는 것으로, 비로소 진정한 대법제자이다.”[3]

모든 대법제자들이 모두 청성하게 이번 마난을 지나갈 수 있고 모두 순정(純淨)하고 자비로우며 상화(祥和)로운 심태로 무사무아(無私無我)의 정각(正覺)이 되어 정정당당하게 중생을 구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대법제자의 법 공부, 연공, 발정념은 마찬가지로 법을 원용하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한 것이다! 대법제자의 일체는 모두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한 것이다!

이 글은 동수들과 교류한 후 정리한 것으로 여러분들이 법을 스승으로 삼길 바라며 바르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작:《2013년 대뉴욕지역법회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2003년 정월대보름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정진요지 3》〈청성〉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3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