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가소도(呵呵笑道 허허 웃음)
【정견망】
올해 운 좋게 션윈(神韻) 공연을 현장에서 직관(直觀)했다. 처음으로 전체 공연에 담긴 함의를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음을 느꼈다. 여기에서 일부 심득을 정리해 사부님과 공연단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동시에 부족한 글을 통해 보다 좋은 의견들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션윈은 사람을 구하는 것으로 이 점에 대해 대법제자들은 다 알고 있다. 첫 번째 프로그램에서는 창세주께서 우주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세상에 내려오시는 것을 묘사했고 마지막 프로그램에서는 정사대전(正邪大戰)의 최후 시각에 창주께서 큰 파룬(法輪)을 돌리시며 힘껏 국면을 만회하고 건곤(乾坤)과 인간세상을 바로잡는 모습을 표현했다. 모든 프로그램에서 대법제자들이 박해받는 것과 그들의 정신(正信 바른 신앙)을 비교적 쉽게 직접적으로 보여주었다.
어떤 동수들은 무용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할 때는 대부분 파룬궁 진상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무용, 특히 스토리가 없는 무용 프로그램을 가리킨 것이다.
필자가 이해하기에 션윈 전체 무대는 하나의 연극으로 인류에서 보다 고층의 시공(時空)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축소판이다. 여기에는 과거, 현재, 미래를 포함한다. 역사란 쓰는 사람마다 모두 각자 자신의 경계(境界)와 각도가 있다.
일반적인 역사 저작은 사람의 기점에서 이전(以前) 인물들을 기록하고 평가한 것으로 일부 저자들은 자신의 주관적인 기호를 반영하기도 한다.
또 일부 신선지(神仙志) 저자는 보다 높은 경계에서 출세(出世)의 각도에서 구체적인 역사인물을 기록하지만 큰 사회 환경과 역사가 변천하는 의미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다루지 않았다.
《서유기》 등의 저작은 수련자의 각도에서 우주와 인류의 초기 역사 중 일부를 다루고 있지만, 그 층면이 여전히 아주 좁고 추상적이며 제한적이다.
션윈(神韻)은 최초이자 유일하게 신(神)의 시각에서 전반 인류 역사의 유래와 의미를 펼쳐보였다.
션윈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전반 삼계(三界)와 인류 역사, 특히 이번 5천년 전통 문명의 역사 역시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것이다. 내가 전체 션윈 무대가 바로 인류 역사의 축소판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션윈이 여러 방면에서 역사상 사람을 구하는 수많은 요소들과 일치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모든 정(正)의 요소는 모두 반복적이고 다양한 형식으로 사람의 본성 즉 신성(神性)을 깨닫게 하고, 인생의 궁극적인 가치와 의미를 생각하고 단단히 기억하도록 일깨워주는 동시에 사람이 최후에 법을 얻을 수 있도록 길을 깔아주었다. 또한 사람이 일종 평형을 이루고 극단으로 가지 않는 성격 및 고상한 수양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이 세상에 온 것은 구도되기 위함이고, 창세주가 천국세계로 구도해 줌을 기다리기 위해 사람이 된 것이다. 기다리는 중에서 생생세세 모두 공덕(功德)을 쌓고 있는 이것이 또한 사람이 윤회전생(輪迴轉生) 하는 목적이고, 난세(亂世)는 중생을 성취케 하려 함이다.”(《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
나는 션윈 가곡은 마치 역사상의 대덕성현(大德聖賢)이 솔직하고 큰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세속을 초월하는 진리와 진상을 직접 알려주고 사람들에게 신(神)을 믿고 덕(德)을 소중히 여기라고 알려주는 것임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한 이치는 인류 이 층면 세속의 이치를 뛰어넘는 것이라 반드시 하늘과 통할 수 있는 위덕(威德)을 지닌 고덕대사(高德大士)만이 사람들에게 말해줄 수 있고 아울러 세속의 이치로 변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응해 션윈 가곡은 진정한 미성(美聲 벨칸토)창법으로 표현하는데 성악가의 신체가 시공을 관통하는 높은 경계를 지닐 것을 요구한다. 즉 성악가의 수행(修行)에 대해 높은 요구가 있다. 비록 가사의 이치는 누구나 받아들이고 널리 전할 수 있지만, 이런 가창법(歌唱法)은 오히려 대중이 장악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들 가곡이 통속적인 가곡으로 변할 수 없게 보장한다.
마치 사람들이 세상보다 높은 법리를 담론하려면 내심에 경의와 경건으로 충만할 것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일상적인 농담이나 우스갯소리로 되어선 안 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전민종교(全民宗敎)’ 역시 안 된다. 첫째, 종교의 교의(敎義)를 개변하여 속인사회의 이론으로 만들기 쉽다.”(《정진요지》〈대법(大法)은 금강처럼 영원히 순수하리라〉)
나는 션윈 사회자는 마치 역사상의 예언자와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예언자들은 대부분 빛과 어둠을 결합해 개괄적이고 은유적인 방식으로 세인들에게 장차 발생할 큰일과 역사의 주제를 알려왔다. 여기에는 일부 주요한 역사인물의 특징을 포함한다.
션윈 사회자들은 첫 번째 공연이 끝난 후 또 마지막 공연 직전 공연의 주제에 대해 좀 명확히 설명하고 예술단을 소개할 때 예술가들의 독특하고 탁월한 점에 대해 개괄적으로 언급한다. 또 각 프로그램을 예고할 때는 아주 예술적인 표현으로 관객들에게 곧 공연할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지만 미혹(迷)을 깨진 않는다. 관객들은 오직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야 앞에서 사회자가 한 대사의 의미를 되돌아보고 그 진정한 뜻을 더욱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 나는 2023년 션윈 공연 구체적인 프로그램들을 내용과 순서에 대해 간략히 분석해 보겠다.
션윈 두 번째 프로그램은 남성 고전무용이다. 내가 깨달은 것은 인류 역사의 시작은 천지(天地)가 개벽한 것과 같은 개창(開創)이라 필연적으로 기세가 웅장할 수밖에 없으니 남성의 강인하고 양강(陽剛)함으로 이 단락 역사과정을 표현하는 것이 더욱 적합하다.
세 번째 프로그램은 여성 고전무용 ‘수수(水袖)–흐르는 소매’다. 천지가 개벽된 후 필연적으로 풍부한 디테일과 장식(裝飾)이 필요하다. 마치 집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조물을 세우고 나면 안팎으로 진행할 세부적인 작업이 아주 많은 것과 같다. 행운유수(行雲流水)와도 같은 여성들의 무용 동작은 바로 이 과정의 특징을 체현한 것이다. 인류 사회의 각종 관계준칙과 예의규범, 사회 각 방면의 규범들이 바로 이 단계에 기본적으로 확립된다. 이 과정은 서두르거나 조급해서는 안 되며 아주 세밀해야 한다. 연기자들의 수수는 마치 천수관음(千手觀音)의 천 개의 손처럼 아주 멀리 떨어진 지방까지 자비와 교화의 손길이 닿게 한다.
네 번째 프로그램은 《서유기》 이야기다. 사람의 주원신(主元神)은 너무나도 미혹되어 있다. 우주 고층에서 보자면 이번 시기 인류 역사는 아직 시작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이미 자신이 온 곳과 자신이 세상에 온 목적을 망각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윤회 속에서 업력을 쌓아 각종 재앙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에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당승사도(唐僧師徒)로 대표되는 수행인들이 자연스럽게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다. 그들은 직접 모범을 보여 사람에게 반본귀진(返本歸真)하는 본성을 일깨우는 동시에 요괴를 제압해 일방(一方) 중생을 구하고 수행의 공덕을 쌓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팔계는 국왕이 주는 선물을 받으려 하지만 오공에게 저지당한다. 이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수행인은 세간의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지 말아야 하며 선행에 대한 보답을 구하지 않는데, 그렇다면 그들은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수행이란 무엇인가? 대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등등.
다섯 번째 프로그램은 만주족 무용이다. 이 작품은 후반부 세 번째 프로그램 ‘물동이 인 여인들(頂水姑娘)’ 및 여섯 번째 여자 고전무용과 공통점이 있다. 즉 ‘평형(平衡)’의 중요성을 매우 두드러지게 보여주었다. 내가 보기에 매 프로그램마다 다 평형을 체현하고 있지만 오직 이 몇 프로그램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표현되었다.
사람이 아득히 먼 원고(遠古)시기부터 대법이 전해질 때까지 걸어오기란 쉽지 않았다.
생생세세 얼마나 많은 심령의 극렬한 충격을 거치고 또 얼마나 많은 뼈에 사무치는 극단적인 감정기복이 있었겠는가? 사람에게 일단 감정의 기복이 크게 나타나 과격하고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곧 남을 해치고 자신을 훼멸할 수 있다. 때문에 최후까지 버텨내기란 아주 어렵다. 설령 대법이 널리 전해질 때가 되어도 너무 고집스럽고 과격하며 편협하면 또 “기회와 인연을 잃을 수 있다.”(《정진요지》〈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그러므로 ‘평형’이란 단순히 신체 동작의 평형뿐만 아니라 특히나 감정, 심태, 사유 방면의 평형을 말한다.
여섯 번째 프로그램은 “홀로 적진에 들다(單騎救主)”다. 여기서 표현한 것은 너무나 많은 숭고한 도덕정서인데, 사람을 구하기 위해 위험도 두려워하지 않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희생한다. 동시에 또 사람들에게 인생무상과 어떻게 관건적인 시각에 무사(無私)한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유한한 인생이 어떻게 해야 시공을 초월한 위대함을 갖출 수 있는가? 하는 방법을 일깨워준다. 유비의 부인 역할을 맡은 배우는 비록 강보속의 아이를 제아무리 사랑하고 애틋하게 여기든, 제아무리 고통스럽든 우물에 뛰어든 직후(무대를 떠난 직후) 반드시 이 모든 것을 즉시 내려놓고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극중에서 다음 역할을 준비해야 한다.
전반부 일곱 번째 작품은 ‘서생의 감회’다. 우리는 학식(學識), 학식을 말하는데 학문이 있는 선비라면 당연히 유식한 선비다. 그러나 사람은 미혹 속에 있어 역사의 오랜 흐름 속에서 독서인(讀書人)들도 수많은 좋지 않은 것들에 오염되었다. 가령 “모든 것이 다 하찮고 오직 독서만이 고상하다”거나 “문인들끼리 서로를 무시하거나, “문무(文武)의 기예를 배워 제왕(帝王)의 집에 가서 팔아라” 등이다.
특히 근대에 들어와 일부 지식을 장악하고 약간의 명성을 얻은 많은 사람들이 특히 자신이 진리를 장악하고 있다고 여기면서 신불(神佛)을 폄하하고 인류의 구세주를 자처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이 바로 공산사령(共產邪靈) 운동이다.
‘서생의 감회’란 춤은 진정으로 학식이 있고 자신의 사명을 아는 겸손한 사람들을 상징한다. 그들은 자신의 재능은 바로 하늘이 부여한 것으로 성현(聖賢)과 신령(神靈)에서부터 내원한 것으로 그 목적인 사적인 이익이나 가문의 영광 내지는 어용문인 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것”임을 겸손하게 안다. 션윈 프로그램 안무는 또한 진정한 문인(文人)은 마땅히 문화계 더 나아가 사회 전반의 기풍에 대해 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체현한다.
전반부 여덟 번째 프로그램은 ‘전대미문의 죄악’이다. 이 이야기는 대법을 박해하는 사악과 대법제자들의 굳센 믿음 및 최종적으로 천국의 진상을 얻게 되는 과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전반부 아홉 번째 프로그램은 대법가곡이다.
전반부 열 번째 프로그램은 장족(藏族 티베트) 무용 ‘설산환가(雪山歡歌–설산의 기쁜 노래)’다. 화면에 나타는 우뚝 솟은 설산과 파란 하늘은 보는 이들에게 일종의 경외와 신성(神聖)한 느낌을 준다.
“높은 산은 마땅히 우러러보게 되고 좋은 행실은 마땅히 따라야 한다(高山仰止,景行行止)” 사람은 자연 앞에서 마땅히 겸손해야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사람은 자연스럽게 물질에 대한 욕망과 잡념을 내려놓고 인생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무용수들의 춤 동작도 이 점을 드러낸다. 그들은 설산을 비추는 태양을 우러러 보며 얼굴에 행복하고 환한 미소를 짓는다. 그 의미는 조물주(造物主)의 위대함을 발견하고 인생의 의미를 깨달은 것이다. 이어지는 신명나는 춤은 자연히 은혜에 감사드리며 신(神)을 위해 추는 것이다.
(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27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