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우(真愚)
【정견망】
(5) 생명이 있는 과정
개인 층차의 깨달음은 만약 한 과정이 결국에 종결로 나가면 그럼 이 과정은 생명이 없어져서 더는 스스로 자신을 주재할 방법이 없다. 시간은 단지 과정의 눈금일 뿐이며 그것은 과정의 ‘변화’ 요소가 아니다. 전반 과정은 사실 일체(一體)이고, 하나의 ‘생명체(生命體)’로, 연대되어 동시에 생성되는 것으로 만약 생명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럼 이 과정은 곧 죽음의 과정이다. 마치 원신(元神)이 주재하지 않으면 인체가 죽어서 생명력이 없고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과 같다.
탄생할 때 곧 전체 과정이 동시에 생성되고 또한 종결 역시 동시에 생겨난다. 즉, 이 과정은 탄생하자마자 동시에 종결하며, 시간은 단지 이 과정의 시작부터 종결까지 고정된 눈금에 불과할 뿐, 이 과정은 고정된 것으로 스스로는 그 어떤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스스로 지속할 수 없기 때문에 생명이 없는 하나의 과정이다.
만약 외부에서 강제로 개입해 그것을 변화시키면 그것은 상응해서 연대하며 동시에 또 다른 과정으로 변하는데, 마찬가지로 고정적이고 죽은 것이며 마찬가지로 종결하는데 자주적으로 변화하거나 자주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
만약 한 과정이 자주적으로 연속될 수 있고, 변화가 무궁하며, 원용불파(圓容不破)하다면 그럼 종결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과정은 ‘살아있는(活)’ 것으로, 생명을 지닌 과정이다. 오직 시작만 있고 결속은 없으며 무궁하게 변화하면서 끊임없이 이어진다.
개인 층차에서 깨달은 것은 대법이야말로 우주 과정 생명의 근원이며 우주 과정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구우주는 대법이 창조한 것이라 탄생 초기에는 법속에 있었기 때문에 초기 생명력을 구비하고 있었고, 이 초기 생명력의 추동하에 운행을 지속해 과정이 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발전 과정 속에서 구우주는 서서히 대법에서 벗어나, 생명의 근원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서서히 생명력을 잃고 성주괴멸(成住壞滅)로 나아가는 죽음의 과정으로 변했다.
사존께서 우주에 들어가 정법하시면서 처음으로 우주 대법을 우주 중생들에게 전해 주셨으며, 대법제자들은 조사정법(助師正法) 과정에서 우주 중에서 대법의 한 입자로 용련(熔煉)되어 신우주를 대법과 연계시켜 진정한 생명력을 얻었다. 이 과정은 자주적인 운행이고 변화가 무궁해서 끊임없이 지속되는데, 생기가 충만하고, 생명을 구비해 자신의 진정한 주재자가 된다.
사존께서는 이 모든 것을 부활시키셨고 또 이 일체 진정한 생명을 부여하셨으며, 생명이 이후부터 자신을 진정으로 주재할 수 있게 하셨다.
(6) 역사를 고쳐 쓰다
대법제자는 장차 신우주에서 가장 수승(殊勝)하고 특별한 생명이 될 것이다. 사존께서는 우리에게 다른 그 어떤 생명도 갖출 수 없는 특수한 능력과 영광을 주셨다. 우리는 장차 신우주와 함께 존재할 것이며 우주는 불멸하고 우리는 불멸한다. 우리는 신우주의 수호신이며, 신우주와 대법이 소통하는 다리로, 신우주를 유지하는 생명력이다. 대법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이 얼마나 큰 행운이자 영광인가!
사존께서는 우주에서 층층 내려가는 과정 중에 층층의 생명과 인연을 맺고 대법을 설파하셨다. 우리는 사존의 무량한 지혜와 자비에 감화되어 자발적으로 대법제자가 될 것을 선택했고 사존과 서약을 맺고 세상에 내려가 사부님을 도와 법을 바로잡기로 했다.
겉으로 보면 우리가 최후 시각에 나와 대법제자가 되어 세상에 내려가 조사정법(助師正法)을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또 다른 층면에서 보자면, 개인 층차에서 이해하기에, 전반 과정 중에서 대법제자를 선택하고 육성하신 것은 오히려 사존이시다.
전반 우주 과정이 다 사존의 눈앞에 놓여 있으니 어떤 생명이 장차 대법제자가 될지 사존께서는 한눈에 다 아신다. 개인 층차의 인식으로 대법제자가 되려면 단지 이번 차례 인류 역사 과정 속에서 기초를 다져야 했을 뿐만 아니라 아마도 우주가 탄생한 초기나 심지어 탄생하기 이전부터 이미 기초를 다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사존께서는 우리가 장차 대법제자가 되기 위해 갖출 필요가 있는 모든 능력과 요소를 전반 우주 과정 속에서 우리가 영원히 건드릴 수 없는 생명의 가장 깊은 층면에 이르기까지 육성하셨다.
이렇게 해서 우주 과정의 최후 시각에 우리는 비로소 조사정법(助師正法)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고 비로소 대법제자가 될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 사존께서는 전반 과정과 심지어 과정 전에 이 모든 능력과 영광을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는 우주 속에서 사존과 대법의 한 입자로 우주 과정이 최후에 결속되는 특수한 시각에 우리의 사명을 완수하고 조사정법하러 왔으며 최후에 신우주와 대법이 소통하는 다리가 될 것이다.
우리 매 하나의 대법제자는 거대한 우주 체계와 대응하는데 모든 대법제자는 공동으로 전체 우주에 대응하며, 일체 요소와 능력은 모두 사존께서 과정 중에서 우리를 위해 일찌감치 잘 배치해 주신 것이다. 개인적으로 보자면 지금 사부님께서 정법하시는 것과 우리가 조사정법하는 과정은 사실 바로 전반 우주의 역사 과정을 고쳐 쓰고 바로잡아 이 과정을 부활시켜 진정한 생명을 갖추게 하는 것이다.
구우주는 아주 오랜 역사과정 속에서 서서히 법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성주괴멸에 들어가 최후에 종결로 나아갔다. 이 전반 과정 속에서 대법에서 벗어난 부분은 전부 바로잡아서 좋은 것은 남기고 나쁜 것은 제거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이 전반 과정이 모두 수정되고 깨끗해져서 완전히 법속으로 돌아갔을 때 이 과정은 곧 신우주의 과정이 되고 또 대법과 연결되어 생명을 갖추며 영원불멸하게 된다.
개인 인식: 현재 사존의 정법과 우리가 잠시 조사정법(助師正法)하는 단계는 장차 구우주 과정을 갱신해서 신우주의 과정으로 고쳐 쓰는 관건적인 과도단계다. 이 단계는 전반 인류 역사 과정 및 심지어 전반 우주 과정과 대응한다. 현재 사부님의 정법과 우리가 조사정법 중에서 걷는 매 한걸음은 사실 모두 동시에 인류와 우주 역사를 갱신하는 동시에 고쳐 쓰는 것이다. 즉 구우주의 과정을 ‘부활(復活)’시켜 진정한 생명의 관건적인 점을 갖추게 하는 것이다. 구우주의 과정이 신우주의 과정으로 고쳐 써지면 장차 신우주의 기점이자 운반체가 될 것이며 아울러 이 관건적인 점이 생명력을 얻게 된다.
(7) 성숙의 과정
여러 해 전, 일찍이 한 동수가 이해하지 못해 내게 물었다.
“사부님께서는 구세력이 생겨나지 않도록 할 충분히 능력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셨으면 대도태도 없었을 것이고, 오늘날 대법제자들이 잔혹하게 박해받는 일도 없었을 텐데 사부님께서는 왜 구세력이 생겨나게 하셨을까요?”
나는 앞에서 개인 층차에서 간단히 교류한 바 있다. 개인적으로 보기에 이 전반 우주 과정은 하나의 정체(整體)이고, 사존의 눈에는 탄생에서 종결까지 같이 존재하며 사존께서는 이 전반 과정에서 그 어떤 지점이든 언제든 수정하실 수 있다.
일체 요소와 내함은 반드시 이런 완전한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완성될 수 있으며, 일체 생명은 오직 이 완전한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최후의 성숙에 도달할 수 있다.
개인 층차에서 이해하기에 사존께서는 이 과정이 최후 완성되고 종결되는 시각을 선택해, 세상에 내려와 법을 바로잡을 것을 선택하셨다. 왜냐하면 오직 이 시기에 도달해야만 모든 것이 비로소 성숙되고 완비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 과정의 중간에 정법을 선택한다면, 그럼 이 과정은 불완전하고 생명의 내함 등 요소 역시 불완전해지기 때문에 이런 조건에서는 영원불멸하는 신우주를 만들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구우주 및 그것의 완전한 과정이 고쳐져서 신우주의 운반체가 되어야 하는데 만약 이 과정이 불완전하다면 이 운반체는 불완전해서 생명력을 얻을 수 없고 진정한 생명을 갖출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막 열리자마자 딴 열매처럼 그것은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울 수 없다.
이 과정이 최후까지 가면서 자연히 구세력이 생겨났다. 개인적인 이해에 따르면 우주는 탄생하면서부터 전반 과정이 이미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과거 구우주의 과정이 사존의 눈앞에 동시에 펼쳐진 것이다. 사존께서 우주 밖에서 구우주 과정 중의 어느 한 시점을 선택해 그것을 바로잡는 것을 선택하지 않으신 것은 이렇게 하면 다시 만드는 것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사존께서는 일체 생명을 구도하고, 일체 생명 과정의 정화(精華)를 보존하기 위해 전반 우주 과정이 완성된 후, 직접 우주로 들어가 우주 중생에게 대법을 전하고, 중생이 자원적으로 대법을 선택하고 대법에 동화하게 하신 것이다. 아울러 대법제자들을 이끌고, 세상에 내려와 정법하시며 이 가장 특수한 시각에 이 전반 과정을 다시 돌이켜 수정하고, 바로잡아, 이 과정을 더없이 순정하게 변화시켜 넘어가 신우주의 과정이 되게 하셨다.
(8) 진상(真象)과 영상(影象)
인류와 우주의 전반적인 역사 과정은 지금 한창 정법노정이 진행됨에 따라 끊임없이 바로잡히고 갱신되고 있으며 이는 정화하고 수정하는 것과 같다. 이는 구우주를 신우주로 고쳐 쓰는 과정이다.
기왕에 현재 인류와 우주의 역사 과정이 사부님의 정법과 우리의 조사정법에 따라 동시에 새로 고쳐지고 있다면 우리는 왜 아무것도 모르는가? 개인적으로 보기에 우리는 현재 아직 신우주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기 때문에 고쳐 쓰고 갱신된 후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개인 층차의 인식은 일체 과정은 모두 하나의 진상(真象 진짜 이미지)이 있고 아울러 그에 상응하는 영상을 남긴다.
사람의 일생으로 비유하자면, 이 사람이 일생동안 실제로 경험한 일체, 그가 걸어온 길, 그가 한 일 등, 실제로 일어난 이 일체는 진상에 해당하고, 그의 기억과 추억은 바로 영상에 해당한다.
다시 인류역사로 비유하자면 역사 속에서 실제로 발생한 일체는 진상에 해당하고, 남겨진 사서(史書)나 전설 등의 역사 기록은 영상이다.
영상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일반적으로 말해 그것은 실상의 변화에 따라 변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 차이가 있을 수도 있고 또한 인위적으로 뜯어 고칠 수 있다.
그러므로 영상이 꼭 진상과 같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며 꼭 진상을 진실로 펼쳐낸 것이 아닐 수 있다. 첫머리에 언급한 이야기처럼 A의 기억은 요도(妖道 요괴의 도)에 의해 멋대로 고쳐질 수 있는데, 이는 인위적인 조작으로 진상과는 차이가 난다. 이외에 노도인이 A의 생명과정을 수정했는데, 진상을 수정한 후 A의 기억에 곧바로 대응되지 않았고, 그의 기억속에는 낡은 영상이 남아 있었다. 즉 시간차가 있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현재 한창 고쳐 쓰고 있지만 우리는 지금 수정된 후의 역사를 모른다. 사서, 전설 등 인류의 역사 기록이 드러내는 것은 여전히 낡은 역사 영상으로 이것이 우리가 아는 것이다.
(9) 과정의 전환
“우리는 구세력 자체의 출현과 그것들의 배치한 일체마저 모두 부정하는 것으로, 그것들의 존재마저 승인하지 않는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그것의 이 일체를 부정하며, 그것들을 부정하고 배제하는 중에서 당신들이 행한 일체야말로 위덕이다. 그것들이 조성한 마난 속에서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승인하지 않는 가운데서 자신의 길을 잘 걷는 것이며, 그것들 자체를 제거하는 마난의 표현마저도 승인하지 않는다. (박수) 그럼 이 각도에서 볼 때, 우리가 마주한 일은 바로 구세력에 대한 전반적인 부정이다. 그것들이 최후로 발악하는 표현을 나와 대법제자들은 모두 승인하지 않는다.”(《2004년 시카고법회설법》)
개인적인 이해로 구우주의 전반 과정이 고쳐 써지고 정화된 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신우주의 과정으로 변환되어 신우주의 운반체이자 기점이 된다. 신우주는 생명력을 갖췄기에 이 과정에서 이 운반체 위에서 지속되며 변화가 무궁하고 영원히 멈추진 않는다. 정법 노정이 최후의 한 걸음까지 걸어갔을 때, 전반 구우주의 과정이 수정되고 갱신되어 신우주의 과정이 된다. 이 과정에서 대법에서 벗어난 것 및 변이된 것들은 모두 바로잡히고 정화되거나 제거되어 더없이 순정(純淨)하게 변한다. 때문에 구세력이 존재한 일체 요소와 흔적은 모두 이 과정에서 깨끗이 제거될 것이다.
그러므로 신우주의 과정 속에 구세력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신우주의 과정 속에서 그것은 아예 생겨난 적도 없다.
과거 구세력이 존재한 과정의 낡은 영상(影象)은 아마 줄곧 남겨져 신우주 생명의 영원한 교훈으로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신우주에서 구세력은 지금껏 생겨난 적이 없으며, 구세력의 존재는 단지 영상에 불과할 뿐, 진상(真象)이 아니다.
개인 인식으로 구우주를 신우주로 고쳐 쓰는 과정에서 진상과 영상 역시 상호 전환될 수 있는데, 관건적인 전환점은 바로 현재 사부님의 정법과 우리가 조사정법하는 단계다.
전에 어떤 동수가 나와 교류하면서 말했다.
“구우주에서 신(神)은 일정한 시기가 되면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다시 태어난 후에는 이전의 기억들은 모두 망각됩니다. 최후의 생명은 모두 멸(滅) 시기에 생겨난 것으로 그 누구도 이전의 일을 모르며 그 누구도 이전에 우주가 아름다웠던 시기의 상태를 모르며, 우주가 빗나가고 패괴(敗壞)된 것임을 아는 생명이 없습니다. 신우주는 마땅히 이렇지 않을 것인데 적어도 대법제자의 기억은 줄곧 남아 망각되지 않을 겁니다.”
개인 층차에서 나는 이 동수의 관점에 찬성한다. 개인적으로 보자면 신우주에서 대법제자는 영원히 다시 태어나지 않고 우주와 함께 존재할 것이며, 신우주의 영원한 가장 원시 생명(물론 구우주 생명처럼 만장한 생명과정 속에서 사는 게 지겨워지기란 불가능하며 영원히 자재하고 비할 바 없이 행복할 것이다. 왜냐하면 신우주 과정은 생명을 갖췄기 때문이다)은 영원히 기억을 남기고 영원히 우주정법 과정의 기억을 남길 것인데 심지어 구우주 전반 과정의 영상까지도 영원히 남겨질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신우주와 대법을 연결하는 다리가 될 수 있으며, 신우주의 불멸(不滅) 과정에서 그 어떤 시기, 그 어떤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모두 근거와 참조가 있게 되어 제때에 바로 잡고 원용불파(圓容不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5천 년 중화(中華)역사는 사존께서 모든 대법제자들을 이끌고 공동으로 연기하신 것으로, 오늘날의 정법을 위한 포석이자 전반 우주의 정화가 인간세상에서 대응해 펼쳐진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션윈(神韻)이 연출한 적지 않은 프로그램들은 이미 역사・전설에 기록된 것과 다르며, 일부 줄거리나 결말이 수정되고 새롭게 써졌다. 개인적인 이해로 션윈이 연출한 것은 아마도 현재 정법노정 중에서 이미 수정된 역사의 진상(真象)을 사존께서 이런 형식으로 세인들에게 보여주신 것이다.
현재 대법제자들 중 역사 항목을 하는 소조가 있는데, 대법 속에서 바로잡은 순정(純正)한 사관(史觀)으로 이 오천 년 중화 역사를 새로 써서 인류의 변이된 관념을 바로잡고, 이 일체를 밝고 정면(正面)적으로 드러내 인류의 미래에 남겨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것 역시 현재 인류 층면(層面)에서 역사의 영상(影象)을 바로잡는 것으로, 미래 인류에게 영원한 참조이자 정면적인 교훈으로 남겨질 것이다.
결론
대법은 현묘(玄妙)하기 그지없는 것으로 나처럼 보잘것없는 생명은 대법에서 하나나 둘조차 이해할 수 없다. 이상은 단지 협애하고 얕은 개인 층차에서 아주 작은 인식에 불과할 뿐이다. 관련 항목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하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또 법을 스승으로 삼고 필자 개인의 천박한 층차의 인식에 오도되거나 장애되지 말았으면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563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