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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언양어: ‘진아’와 ‘가아’를 말하다

점백(漸白)

【정견망】

교류문장 중에서 많은 동수들이 늘 ‘가아(假我)’란 이 단어를 언급한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개인적인 깨달음을 말해보고자 한다.

사부님께서는 두 편의 문장에서 ‘진아(真我)’라는 이 단어를 언급하신 적이 있지만 ‘가아’는 지금껏 사용하신 적이 없다. 좀 극단적으로 말해서 나는 심지어 장래 경문에서도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실 것이라 확신한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진(真)’이 꼭 반드시 ‘가(假)’와 대응하는 것은 아니며 ‘진’과 ‘가’가 함께 대응해서 나타날 때 진(真)의 함의가 ‘가(假)’에 의해 제한되거나 심지어 변조될 수 있으며, 자칫하면 ‘수진(修真)’의 함의에 인위적으로 불순한 요소가 끼어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수련에 대해 말하자면 그다지 엄숙하지 못한 것으로 수련자가 장차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 문제가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경문에서 미리 경고하셨다.

“내가 사용하지 않는 것을 당신들은 사용하지 말며, 내가 수련 중에서 어떻게 말했다면 당신들은 곧 그렇게 말하도록 하라.”(《정진요지》〈불성무루〉)

여기서는 개인수련의 문제에 관계되지만 또한 미래 수련자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가 ‘가아’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인지 아니면 누가 말한 것인지 똑똑히 가려내지 못한다면 대법 속에서 한 말로 여길 것이다. 이렇게 되면 법의 유전(流傳)에도 교란을 가져올 수 있다. 우리는 ‘수진(修真)’하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어찌하여 후인(後人)이 법을 얻는 기점에 서서 일을 고려하지 않을 수 있는가!

개인적으로 보기에 ‘가아’라는 단어는 수련 중에 직면하는 각 층차의 복잡한 상태를 개괄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가아’라는 이 단어가 두루뭉술하고 또한 개괄적인 정확성이 없고 모두 인터넷에서 종교 신도들이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개인의 깨달음은 이렇다. ‘가아’라는 이 단어는 철저하지 못하고 너무 두루뭉술하고 너무 어중간해서 진정한 수련을 지도하기에는 부족하다. 만약 신수련생이 당신이 사용하는 ‘가아’란 이 단어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잘 모른다면 당신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책에 나오는가? 그저 인터넷에서 다른 법문에서 정의한 것만 볼 수 있을 뿐인데 그럼 당신이 다른 사람을 잘못 이끄는 게 아닌가? 불이법문(不二法門)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내가 이해하기에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와 《전법륜 2》에서 이미 우리에게 ‘관념’에 관한 경문을 말씀하셨고 또 관념과 사상업(思想業)이 어떻게 사람을 통제하는지, 통제하는 시간이 아주 길어지면 심지어 후천적인 관념을 제거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말씀하셨다. 관련 논술이 아주 많다.

창세주(創世主)께서는 이 일을 2억 년간 하셨고 또 1억년을 사용해 한 차례 실험을 하셨다. 법(法)속의 일체는 다 원용(圓容 일체를 다 갖춤)한 것이고 또한 불파(不破 절대적인 순정)한 것으로 수련자는 오직 이 원용한 완벽성을 실증할 수 있을 뿐 이런 불파(不破)에 반면적인 사례를 제공해선 안 된다. 그것은 우리가 본래 바라던 것이 아니며 또한 정신(正信 바른 믿음)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경문에서 사용한 단어의 정확한 정도는 경사경법(敬師敬法)의 끊임없는 수행 중에서 끊임없이 깨달아낼 수 있는 것으로 수련자의 혜오(慧悟)의 기초이자 안정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그 정확성의 근원은 창세주의 지혜에서 온 것으로 그 누락 없는 정확성은 법(法)에 동화하는 생명들이 더없이 공경하고 탄복하게 만든다.

개인적인 깨달음으로 오류를 피하기 어려우니 부디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3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