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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노트 4 (상): 새로 고쳐 쓴 역사

진우(真愚)

【정견망】

(1) 들어가는 말

몇 년 전, 내 머릿속에 갑자기 한 가지 장면이 펼쳐진 적이 있다. 최근 심혈을 기울여 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이 이야기의 단편들이 다시 떠올랐고 전에는 분명하지 않거나 모호했던 일부 줄거리들이 명확해졌다. 법 공부 중에 사유(思惟) 역시 끊임없이 터져 열린 것처럼, 이전에 분명치 않았던 많은 것들이 끊임없이 명백해졌다.

먼저 이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이렇게 하지 않으면 뒤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을 표현하기가 아주 어렵다.

어느 시대인지는 모르겠고 그저 옛날이라는 것만 안다. 장면은 어느 한 사람을 둘러싸고 펼쳐졌는데, 나도 이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 일단 그를 A라 부르자. A가 아주 어릴 때 그의 사부가 줄곧 그를 따라다녔다. 자상한 노도인(老道人)이었는데 그와 함께 놀아줄 수도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의 존재를 몰랐다. 나중에 노도인은 그를 떠났다. 떠나기 전에 노도인이 그에게 알려주었다.

“나는 곧 너를 떠날 것이다, 너는 어느 해가 되면 어느 산에 가서 나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라, 나는 네 사부다.”

후에 이 노도인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A는 혜근(慧根)이 아주 좋아서 점차 성장한 후 인간세간의 것들을 담담하게 보았고 한마음으로 도(道)를 추구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도를 구하고 수련하려는 마음이 갈수록 더욱 강렬해졌다. 그는 늘 어릴 때 만났던 그 노도인과 그 도인이 떠나면서 들려준 말을 떠올리곤 했다.

“너는 어느 해가 되면 어느 산에 가서 나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라, 나는 네 사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부가 말했던 그 해가 되자 A는 가족과 헤어졌다. 어떻게 헤어졌는가에 대해서는 나도 모르지만 어쨌든 A는 집을 떠나 사부가 말한 산에 들어가 도(道)를 찾았다.

산기슭에 이르러 그곳에 사는 촌부(村夫)에게 물어보니 이 산 속에 그런 노도인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A 스스로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도인을 찾아야 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찾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깊은 산속에 이르자 도관(道觀)이 하나 나타났다.

A는 흥분해서 얼른 뛰어 들어갔다. 안에는 황모(黃毛)라는 노도(老道)가 있었는데, 거기에 앉아 그에게 물었다.

“혼자 깊은 산속에 무엇 하러 왔는가?”

A는 사부님을 찾아 도를 구하러 왔노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황모 노도가 말했다.

“그럼 나를 보거라, 네가 찾던 사부와 닮지 않았느냐?”

A가 회상해보니 어릴 적 그 단락의 기억이 점점 더 선명해졌다. 어릴 때부터 자신을 따라다녔던 그 노도인이 바로 자기 눈앞에 있는 이 황모 노도의 모습과 같았다. 보면 볼수록 더 닮았고 조금도 차이가 없었다. 이에 급히 큰 절을 올리고 사부로 모셨다.

이어 황모 노도는 A에게 도(道)를 말해 주었다. 얼마나 오래 말했는지 모르지만 A는 갈수록 더 맞지 않는 것을 느꼈다. 황모 노도가 들려준 도는 그가 마음속으로 갈구했던 도와는 차이가 아주 멀었고, 그야말로 정반대였다. A는 갈수록 더 실망했고 결국 이곳을 떠나 다른 곳에 가서 자기 마음속의 도를 구하고자 했다.

바로 A가 떠나기로 결정했을 때, 황모 노도는 몹시 화를 내며 왜 떠나는지 물었다.

A는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 이곳은 내가 구하던 도가 아니오. 이런 도라면 나는 차라리 닦지 않겠소!”

그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본 황모 노도는 갑자기 흉악한 모습을 드러내더니, A에게 막 손을 쓰려 했다. 바로 이때 갑자기 번개가 내리쳐 황모 노도를 두 동강 냈다. 그는 땅에 쓰러지더니 한 마리 족제비로 변했고, 도관 역시 음산한 동굴로 변했다.

이때 하늘에서 한 노도인(老道人)이 내려왔는데 용모가 비범했고 아주 자상(慈祥)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막 어리둥절해하는 A를 바라보았다.

“어째서 사부가 앞에 있는데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냐?”

A는 거기에 멍하니 서서 반응하지 못했다. 그는 눈앞에 있는 이 도인이 누구인지 몰랐다. 왜냐하면 그가 어렸을 때 기억 속이 있던 그 도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릴 때 본 것은 분명히 족제비로 변신한 황모 노도였다.

이 노도인이 A를 향해 손을 흔들더니 말했다.

“다시 보거라, 내가 네 사부가 아니냐?”

A는 이때 문득 어릴 때 만났던 노도인이 분명 자기 눈앞에 있는 이 자상한 도인이고 황모 노도가 전혀 아님을 생각해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노도인은 A에게 황모 노도는 요괴가 된 족제비가 사람 형상을 만들어낸 것으로 그것이 A가 산에 처음 올라올 때부터 줄곧 그를 노렸다고 알려주었다. A의 몸에는 태어날 때부터 아주 특별한 것이 있었기 때문에 족제비가 A 몸에 있는 것을 얻으려고 요술(妖術 요괴의 술법)로 A의 기억을 고쳐 그의 머릿속에 남아 있던 어릴 적 도인의 모습을 지우고 그것의 형상으로 바꾼 것이다. 이렇게 해서 A로 하여금 그가 찾는 스승이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하게 했고 그것을 따라 요술을 배우게 한 것이다.

이것은 또 A가 도를 구하는 과정의 고험으로 그가 정(正)과 사(邪)를 구별할 수 있는지, 도심(道心)이 순정(純正)한지 여부를 보고자 한 것이다. 노도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지켜봤지만 그 족제비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다 A가 고험을 통과하고 나서야 도인이 손을 써서 족제비를 제거한 것이다.

A는 일시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았다.

‘기억도 고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의 절실한 기억조차 믿을 수 없단 말인가? 설마 내가 이 한 평생 했던 일, 걸어온 길, 내가 겪은 모든 일들이 내가 아는 그런 게 아닐 수 있단 말인가?’

A가 여전히 어리둥절한 것을 본 노도인이 그에게 물었다.

“내가 가져오라고 한 신물(信物 증표)은 가져 왔느냐?”

신물이라고? A는 깜짝 놀라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신물과 관련해서는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노도인은 웃으면서 그에게 허리춤을 만져 보라고 했다. A가 허리춤을 만져보자 작은 옥패(玉佩) 하나가 만져졌다. 옥패를 보자 문득 어릴 때 노도인이 자신을 떠날 때, 옥패 하나를 선물하면서 보관하고 있다가 산에 가서 자신을 찾을 때 옥패를 가져 오라고 한 것이 생각났다.

A는 이번에 생각해보았다.

‘나는 이렇게 오랫동안 이 옥패를 몸에 지니고 있었는데 왜 지금에 와서야 생각이 났는가? 전에는 왜 이런 기억조차 없었는가?’

설마 자신의 기억이 또 고쳐졌단 말인가? A는 의혹의 눈초리로 도인을 바라보았다.

노도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네 기억은 단지 영상(影象)일 뿐이며 나는 네 기억을 고치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사람의 이목을 가로막는 요술(妖術)일 뿐이다. 나는 지금 네 눈앞에 서 있지만, 네 일생은 동시에 내 눈앞에 있다. 나는 동시에 네 생명 속 그 어느 순간이라도 들어가서, 네 눈앞에 나타날 수 있고, 동시에 네 생명의 그 어느 순간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고 떠날 수 있다. 지금, 나는 네 눈앞에 서 있는데 이것은 너에 대해 말하자면 ‘현재(現在)’다. 하지만 네 과거와 미래도, 나에게는 모두 ‘현재’다.

나는 방금 너와 이야기하는 동시의 네 과거로 들어가, 네게 옥패 하나를 주었고, 지금은 바로 네 눈앞에 돌아왔다. 그래서 그 이후 네 생명 과정 중에 곧 이 옥패가 있었고 지금은 바로 네 몸에 있는 것이다. 네 기억은 틀리지 않았고 내가 네게 옥패를 준 것을 생각하지 못한 것은, 전에 내가 네게 옥패를 준 적이 확실히 없었고 네 인생에 이런 옥패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네 과거로 들어가 네게 옥패를 주었으니, 그 이후 네 생명 과정에 이 옥패가 생겼으니, 네가 지금 갑자기 생각난 것이다. 네 기억이 고쳐진 게 아니라 네 생명의 과정이 고쳐진 것이다. 나는 줄곧 네 눈앞에 있었다.”

(2)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 때문에 당신 스스로 수련하라고 하는가? 만약 내가 정말로 대법으로 당신을 다시 만들고 당신이 수련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면 생명의 미시적인 것에서 표면에 이르기까지 미래에 영원히 모두 더는 당신이 아니다. 당신의 일체 기억, 일체 사상, 존재 방식도 모두 다 개변될 것이며 당신은 당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므로 그것을 일러 새롭게 다시 만든다고 한다. 그것은 아주 무서운 일이며 그것은 사람을 제도하는 문제가 아니다.”(《캐나다법회설법》)

“그러나 새로 생긴 것에는, 유일한 그런 원시적인 생명과 긴긴 세월 속에서 걸어지나온 그런 정화(精華)가 모두 없어진다. 무엇이든 모두 없어져 새로이 다시 만드는데, 일체가 다시 그런 하나의 과정을 향해 나아갈지라도 꼭 그런 모양이 아닐 수 있는데, 잃으면 늘 애석하다고 느낀다.”(《2019년 뉴욕법회설법》)

개인 층차에서 이해하자면 한 생명을 다시 만드는 것은 아마 그 생명을 처음 상태로 되돌리는 것에 해당하며 그가 처음 태어났을 때 그 시점으로 되돌리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 이 생명이 태어난 이후의 모든 과정을 다 지운 것과 같다.

한 생명이 다시 만들어진 후에는 아마 형상(形像)・특성 등의 방면은 원래 생명과 같을 수 있겠지만, 이미 더는 원래의 그 생명이 아니라 완전히 별개의 생명이다.

한 생명은 단지 탄생했을 때만 그인 것이 아니라 그 후 전반 삶의 과정이 모두 그다. 완전히 다른 과정을 걸었다면 그는 다른 생명이 될 것이다.

생명이 처음 태어났을 때 한 장의 백지였고, 태어났을 때의 부분은 단지 하나의 운반체에 불과할 뿐이며, 태어난 후 전반 과정이 이 생명을 만든다. 이 과정이 바로 그이고 그가 바로 이 과정이다. 그의 모든 사상, 모든 기억, 내함(內涵) 및 존재 방식 등은 모두 이 과정이 쌓여서 이뤄진 것이다.

설사 완전히 똑같은 두 생명이 동시에 태어나더라도 그들이 발전한 과정이 다르다면 그럼 그들은 서로 다른 두 생명이 될 것이다. 설사 그들을 애초 완전히 동일한 초기 환경 속에 두더라도 그들은 전혀 다른 생명으로 발전하고 서로 다른 과정으로 발전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이 천고(千古)의 의문에 대해 개인 층차에서 전반 과정이라고 본다.

생명이 태어날 때 존재하는 이 모든 것을 가칭 생명의 구조(構造)라 한다면, 그것은 단지 생명 과정 중에서 최초의 시작점에 불과할 뿐이다. 만약 그 이후의 생명 과정이 없다면 그럼 그것은 이 생명을 대표할 수 없다. 생명의 구조에 그것이 발전한 전 과정을 더해야만 비로소 이 생명을 대표한다.

(3) 과거-현재-미래

과거, 현재, 미래는 인류가 인간세상이란 시간장(時間場)의 제약 하에서 정의해 낸 개념이다. 그것은 시간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만약 이 시간장 속에서 시간을 따라 처음 시작부터 마지막 끝까지 따라간다면 이를 하나의 과정이라 한다.

그렇다면 ‘현재’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 과정 중의 한 점으로,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유동(遊動)하는 점이다. 우리가 ‘현재’라는 단어를 말했을 때, 시간이 흘러가기 때문에 그것은 이미 ‘과거’가 되었다. ‘미래’는 또 끊임없이 ‘현재’로 변하고 있고, ‘현재’는 끊임없이 ‘과거’로 변하고 있는데, ‘과거’는 예전에 ‘현재’였다.

말하자면 이 전반 과정속의 매 하나의 점이 모두 전에 ‘현재’였거나 또는 앞으로의 ‘현재’일 수 있다.

만약 시간장의 제약을 벗어나게 되면 그럼 이 과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동시에 눈앞에 펼쳐지며 일체로서 동시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 과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현재’일 뿐 과거, 미래 등의 개념이 아예 없다.

마치 처음에 했던 이야기처럼 노도인은 A 생명의 그 어떤 순간이든 동시에 들어가서 그의 눈앞에 나타날 수 있고, 또한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언제든지 그의 생명 속 어느 시점에서 물러날 수 있다. 왜냐하면 A의 생명은, 처음부터 끝까지 과거・미래가 모두 그의 눈앞에 동시에 있는데, 그에 대해 말하자면 모두 ‘현재’라서 그가 이 시간장의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적 인식은 ‘현재’란 바로 주의식(主意識)이 있는 곳이다. 시간장의 제약 하에서 주의식이 있는 과정중의 그 한 점이 바로 ‘현재’라면, 시간장의 제약을 벗어나면 전반 과정이 다 ‘현재’가 된다.

(4) 영원한 과정

우리는 모두 이 우주에서 생겨난 생명으로, 모두 우주의 부동한 층차 시간의 제약을 받는데, 오직 사존만이 우주 밖에 계시기에 일체 시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개인 층차의 이해에 따르면 우리 이 우주의 처음부터 끝까지, 성주괴멸(成住壞滅)의 전반 과정은 모두 동시에 사존의 눈앞에 있다.

우주는 사존과 대법이 만들었기 때문에 탄생 시기 전반 우주는 다 대법 속에 있었고 대법에 동화했다. 그러나 과거 우주의 그 어떤 생명도 대법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에 아주 오랜 과정 중에 우주간의 모든 생명들이 다 서서히 대법에서 벗어나 성주괴멸의 과정에 들어갔고 최후에는 종결(終結)로 향했다.

우주 탄생에서부터 종결에 이르기까지 전반 과정이 사존 앞에서는 일체로 동시에 존재한다. 개인적 이해로 사존께서는 우주가 탄생함과 동시에 그 종결을 보셨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 과정이 탄생했을 때 이미 동시에 종결이 나타났고, 그것에 종결이 나타났기 때문에 이 과정이 결속되어 계속 남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만약 영원히 지속해서 남을 수 있다면, 그럼 곧 영원할 것이고, 그럼 이 과정은 반드시 종결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결속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 과정은 오직 시작만 있고 종결이 없다. 오직 대법만이 영원(永恒)한 것으로 영원히 원용불파(圓容不破)하다. 만약 우주가 영원하려면 반드시 과정 속에서 줄곧 대법에 동화해야 하며, 설사 대법에서 어긋난다 해도 또 제때에 바로 잡아 법속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우주는 영원불멸할 수 있고, 과정이 영원히 종결되지 않을 것이다.

사존께서는 일체 능력이 있으시며 불가능이란 없다. 개인적인 이해로 사존께서는 우주 밖에서 대법으로 우주과정 중의 그 어떤 편차든 바로잡아 그것이 완전히 대법에 동화하게 하실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외재적인 방식으로 이 과정 중에서 그 어떤 한 점이라도 우주의 편차를 바로잡게 되면 아마도 이 한 점 이전의 전 과정을 다 지워버리고 그것을 초기 상태로 되돌리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만드는 것에 해당한다.

다시 만들어진 우주는 완전히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 새로운 과정을 만들어내며 예전 생명들은 모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 새로운 과정에서 모든 생명은 여전히 우주대법의 존재를 모르기에 여전히 대법에서 벗어나게 되는데 그런 후 다시 성주괴멸(成住壞滅)의 과정을 걸어가 다시 종말로 향하게 될 것이다.

“거대한 우주의 역사과정 중에 우주 중에는 얼마나 많은 휘황함이 있었던가! 인류의 이 작디작은 성구(星球)도 이러한데, 그 우주 중의 헤아릴 수 없는 성구는 크고 작은 입자가 모두 다르며 그 위에는 무량무계한 중생이 있는데 신도 얼마나 되는 생명과 얼마나 되는 휘황함을 창조해 냈는지를 헤아려낼 수 없다. 매 사람이 모두 역사책과 같으며 사람마다 모두 생동하는 장편역사 이야기와 같은 것으로 생생세세에 겪은 일들을 보면 역시 아주 재미가 있다. 이처럼 거대한 우주와 무량무계한 중생 그리고 일체를 모두 훼멸시킨다는 그것은 아주 안타까운 일이다.”(《무엇이 대법제자인가》)

우주 일체 생명의 영원・행복을 위해 사존께서는 우주에 들어오셨고, 우주 일체 생명이 성주괴멸의 과정에서 대법에서 벗어남으로써 생긴 일체 업채(業債 업의 빚)를 짊어지시고 층층 아래로 내려와 최초로 우주대법을 우주 중생에게 전하셨다. 사존께서는 모든 생명에게 자신의 미래를 선택해 자원(自願)해서 대법에 동화할 수 있는 기회를 공평하게 주셨다. 자원적으로 대법에 동화해 자원적으로 개변하기 때문에 생명 과정 중의 모든 편차는 다 대법 속에서 자동으로 바로잡히고 정화되어 좋은 것은 남고 나쁜 것은 제거된다.

이렇게 전반 생명 과정이 모두 보존되기에 초기상태로 되돌아가지 않고 생명을 구도하는데 여전히 원래의 생명이다. 다만 과정이 정화되어, 더는 원래의 종말을 향해 나아가지 않고, 새로운 우주로 들어가 영원과 행복을 얻는다! 대법을 거절하는 것은, 그의 생명과정이 구우주에 속하므로 반드시 원래의 종말을 향해 나아가고 미래는 존재하지 않기에 신우주 속에 그것들의 흔적을 남기지 않을 것이다.

(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56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