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북(河北) 대법제자
【정견망】
토요일 학부모 회의에 갔는데 남편이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친정엄마가 귀가 어두워 전화를 받지 않자 남편은 위챗에 우리 가족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올려놓았다. 내가 그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남편은 별일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또 계속해서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회의 도중이라 남편과 따지기가 곤란했다.
학부모 회의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남편에 전화를 걸어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그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했다.
내가 말했다.
“기왕 아무 일도 없으면 전화를 좀 줄이고 돈을 더 벌어와. 지금 당신 수입만 가지곤 주택대출도 못 갚아서 벌써 은행에 집을 뺏겼을 거야.(주택대출을 줄곧 내가 갚아 왔고 남편은 지난 2년간 수입이 없었음)”
결국 그가 말했다.
“설사 돈을 번다해도 당신한테 주진 않아! 집은 다 당신 가족들이 차지해서 나는 집에 와도 소파에서 잠을 잔단 말야.”
나는 비록 전화로 그의 말을 반박하긴 했지만 마음속으로 정말 화를 내진 않았다. 이때 나는 이것이 쟁투심, 원한심, 당문화(黨文化 공산당 문화)가 장난치는 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서둘러 스스로에게 말했다.
“화 내지 말자, 이런 마음들은 모두 내가 아니야.”
그때 친정 엄마가 갑자기 한 가지 사소한 일을 빌미로 아버지를 원망하면서 케케묵은 옛날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전문적으로 나의 원한심(怨恨心)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이것은 나의 원한심이 초래한 것이 아닌가?
나는 이에 엄마에게 말했다.
“어디 아무 이유 없는 일이 있겠어요? 인간 세상의 이치는 반대로 된 것으로 고생을 많이 겪고 더 힘든 것은 좋은 일이며 업을 없앨 수 있잖아요.”
그러자 엄마는 곧 말을 그만 중단했다.
결과적으로 이 하나의 관(關)은 지나간 것 같았지만 난(難)이 또 더 커졌다. 방금 전 일에 내가 말려들지 않자 남편이 갑자기 다시 위챗에 “나쁜 년”이라며 나를 욕했다. 나는 단번에 참을 수 없어서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이런 모욕을 받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그의 이 말을 물고 늘어지며 증거를 대보라고 했다. 다른 것은 말할 필요 없고, 증거를 제시하든가 아니면 사람을 비방했으니 끝장을 보자고 했다. 그가 말을 하지 않게 된 후 나도 더는 말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이 뒤집어져서 그가 한 말이 자꾸만 밖으로 튀어나왔다.
나는 사실 이것이 자신의 심성제고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일은 나의 원한심, 쟁투심, 당 문화를 반영한 것 외에도 또 수모를 참지 못하고 복수하려는 마음이 있는 것으로 주로 수모를 참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 마음이 너무 강해서 법리(法理)를 분명히 알면서도 내려놓지 못했다. 지난 수년간 내가 당신을 어떻게 대했는데 당신이 어찌 이렇게 나를 대한단 말인가?
남편이 준 상처를 마음에 담아두고 내가 차마 당신을 욕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절대 당신을 용서할 수 없다. 이번에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반드시 복수하겠다.
오후에 동수 집에 가서 법을 공부했는데, 제3강을 공부했다.
“당신의 공이 자랄 때, 층차가 높은 사람은 당신이 그 집착심, 그 물질을 제거하면 정수리에 척도가 생기는 것을 볼 수 있다.”[1]
여기서 ‘물질’이란 두 글자가 머릿속으로 깊이 들어왔다. 나는 이런 집착심이 다 물질존재임을 깨달았다. 층차를 제고하려면 반드시 이런 물질들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 대법 힘의 가지 하에, 나는 정념이 강해졌고 이렇게 미워하는 염두가 나타나면 나는 곧 발정념으로 그것을 제거했고 나타나기만 하면 바로 제거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서 법에서 떠나자 이런 사람 마음과 사람의 생각이 내 공간장(空間場)을 뚫고 들어와 다시 대뇌를 장악했다. 이런 사람 마음이 너무나 강했다. 나는 사부님의 법을 생각해보았다.
“속인이라서 그건 당연하다. 당신이 날 욕하면 나도 당신을 욕하고, 당신이 날 때리면 나도 당신을 때리겠다. 그러면 곧 속인인데 그를 연공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1]
나는 자신과 속인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또 한신(韓信)의 대인지심(大忍之心)을 생각해보니 나는 차이가 너무 멀었다. 이렇게 잠시 사람 마음이다 잠시 신의 마음이 되었는데 끊임없이 하늘과 사람이 서로 싸웠다.
결국 나는 자신에게 말했다.
“사람마음은 그래도 제거할 수 있지만 남편에 대한 자비심은 낼 수 없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깨닫지 못하고 너무 집착하는 것을 보시고 또 점화해주셨다.
저녁에 소조 법공부에서 또 3강을 공부했다.
“우리 예를 들어 말해 보자. 당신의 금후 인생행로 중의 각종 업력(業力)을 모두 집중시켜 그것의 일부분을 없애버리는데, 절반을 없애버린다. 나머지 절반도 당신은 넘지 못하는데, 산보다도 더 높다.”[1]
이 단락 법을 공부할 때 히말라야 산만큼 거대한 산이 내 머릿속에 선명히 떠올랐다.
평소 이 단락 법을 공부할 때 사람의 업이 모두 매우 크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큰 산이 나타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내게 자신의 업력이 산처럼 크며 모두 자신이 전생에 지은 업력임을 알려주셨다.
법 공부를 마치고 발정념을 하는데 발정념할 때 나는 또 하나의 장면을 보았다. 한 남자가 목에 4~5개의 화살을 맞았는데 뒤에서 앞으로 목을 관통 당했다. 그 남자의 등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이 장면은 잠시 스쳐 지나갔지만 내게는 오히려 기억이 아주 또렷했다. 나는 발정념을 하면서 깊이 생각해보았다.
‘설마 내가 전에 그에게 상처를 줬단 말인가?’
좀 믿고 싶진 않았지만 이는 내가 상상한 게 아니었고 또 드라마 장면도 아니었다. 사실 이는 사부님의 점화였으며 나더러 속인의 거짓 현실에 미혹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움켜쥐고 내려놓지 못해서는 안 되며 모든 것에 다 원인이 있다고 알려주신 것이다.
이런 물질을 제거하지 않고 심성을 제고하지 않자 뜻밖에도 다른 공간의 사악(邪惡)이 내 신체를 교란하기 시작했다. 그 이틀 동안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머리가 어지러워 법을 공부하고 싶지 않았고 그냥 잠만 자고 싶었다. 위층에 올라가는데 온몸이 시큰거리며 아팠다. 이는 평소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나는 평소 늘 활기가 넘쳤고 걸음걸이도 경쾌했다. 나중에야 나는 뭔가 잘못된 것을 알았고 발정념으로 교란을 깨끗이 제거했으며 이틀 후에야 정상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가 이 일을 꽉 붙잡고 있었던 이유는 그가 내게 잘하지 못했다고 여겼기 때문이 아닌가? 자신이 상처 받았다고 느꼈기 때문이 아닌가? 말하자면 역시 정(情)이다. 남편에게 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준 상처를 견딜 수 없었던 것이고, 정이 있었기 때문에 미워했던 것이고, 또한 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해 자비심을 낼 수 없었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이 이 정에서 뛰쳐나왔다면 누구도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며, 속인의 마음은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는데, 그것을 대체하는 것은 慈悲(츠뻬이)이며, 더욱 고상한 것이다.”[1]
나는 마땅히 남편에 대한 정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만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그가 무엇을 말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점점 더 마음을 더 담담하게 내려놓을 수 있게 되자 원망이 그렇게 강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남편에게 잘해주는 것은 아직 해내지 못했다. 일이 있으면 남편에게 말을 했지만 일이 없으면 그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실 아직 완전히 내려놓지 못한 것이다.
동수에게 이 일을 말하자 동수가 말했다.
“당신 이건 얼마나 명백한 인연관계입니까!”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결혼한 후 몇 년간 나는 정말 남의 빚을 갚고 있었다.
집안일도 내가 했고 아이도 내가 돌봤으며 살림도 내가 책임졌으며 주택대출도 내가 갚았다. 남편도 돈을 벌긴 했지만 집에 가져오는 것은 많지 않았다. 그는 또 집에 오면 늘 내게 불만이 있었다. 집을 살 때도 내가 대부분(남편은 겨우 2만여 위안만 가져옴) 부담했고 월급을 가져오지 못해도 늘 내가 남편을 위해 생각하며 구멍을 메꿨다.
결혼한 후 6년간 남편은 3차례나 병원에 입원했고 늘 내가 돌봐야 했다. 3번째 입원에서 나는 문득 “목을 관통한 4~5개의 화살”이 떠올랐다. 그래서 남편이 3차례나 입원한 걸까? 나는 사부님께서 이미 나의 업력을 아주 많이 없애주셨고 이 난이 이미 아주 작아졌음을 알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이미 당신에게서 아주 많이 없애주었으며 당신의 그 번거로움은 아주 적어졌다. 만약 당신에게 없애주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 번거로움과 마주쳐서 단번에 목숨을 잃을 수 있으며, 또 그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당신이 조그마한 번거로움과 마주쳐도 당신은 견디기 어려워하는데, 그렇게 편안한 일이 어디 있는가?”[1]
보아하니 내가 전에 남편을 아주 깊은 상처를 주었거나 또는 여러 차례 해친 적이 있을 것이다. 지금 수련을 하니 내가 진 빚은 갚아야 하며,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모두 갚아야 한다. 때문에 금생에 남편은 이익에서나 감정에서 이렇게 나를 대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이 한 관(關)을 지나갈 수 있도록 이미 아주 많은 난(難)을 없애주셨지만 나는 아직 넘어가지 못했다. 그러면서 또 속인 속에 미혹되어 자아에 집착했으니 사부님의 기대에 어찌 부응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런 것들을 이해한 후 자신에게 말했다.
“그는 조금도 잘못이 없다. 그는 단지 네가 그에게 진 빚을 받아가는 동시에 네 심성을 제고하도록 돕는 것이다. 수련인은 누구에게나 선(善)해야 하는데, 빚을 받으러 온 채권자에게는 마땅히 더욱 선해야 한다. 나는 마땅히 낮은 층차의 명, 이, 정을 내려놓고 직접 우주 최고 특성 진선인(真善忍)으로 자신을 지도해야 한다.”
제자가 사부님의 속을 끓였습니다! 이 우둔한 제자를 내치지 않으신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개인 층차에 한계가 있으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서 《전법륜》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3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