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관념(觀念)이란 진아(真我)의 군더더기로, 인체 외부에 붙은 불필요한 물건이다. 관념은 또 수련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며, 오직 관념을 전변(轉變)해야만 비로소 군더더기를 없앨 수 있고 짐을 벗어던지고, 걸림돌을 제거할 수 있다.
관념은 사(私)의 기초 위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이 관념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은 필연적으로 사(私)의 그림자가 붙도록 운명 지어져 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수련의 법보(法寶)를 알려주셨는데 “어떠한 문제에 부딪혔더라도 첫 생각에 우선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바, 이것을 “안으로 찾는다.”고 한다.”[1]
그러나 관념에 가로막히면 안으로 자신이 어디서 잘못했는지 찾기란 아주 어렵다. 왜냐하면 관념은 위사위아(爲私爲我)한 것이기 때문에 모순이 나타났을 때, 혹은 자신이 불공평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할 때, 이럴 때면 곧 관념이 폭로되어 나와 수면 위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때 마땅히 법의 기점에 서서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종종 강렬한 관념이 당신의 명백한 그 일면이 법에 동화(同化)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이런 상태는 바로 자신을 찾지 않거나 또는 자신을 찾아야 함을 뻔히 알면서도 창끝이 자신을 향하지 않고 남을 향하게 하려 하면서 밖으로 보는 것이다. 왜 이럴 수 있는가?
나의 깨달음은 당신이 모순 속에서 법에 대조해 자신을 찾을 수 있을 때, 당신이 바로 대법 속에서 자신을 깨끗이 씻는 과정이고 당신은 상승(上昇)하는 상태에 있다. 마치 우리가 계단을 올라가는 것처럼 위로 올라갈수록, 더 힘겹게 느껴지는데, 겉으로 드러나는 상태는 체력이 따라가지 못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높을수록 춥기 마련”이 된다. 수련 역시 마찬가지다.
당신이 진정으로 법의 기점에 서 있을 때, 당신이 진정으로 승화할 때면 당신 우주체계 역시 주체(主體 당신)를 따라 동시에 대법에 의해 씻긴다. 우주 중에는 또 법(法)으로 바로잡아야 할 중생들이 그 안에 있기 때문에 겉으로 보면 당신은 소위 모순 속에서 매우 고통스럽고 힘들어 보인다. 사실 세간에서 당신의 육신(肉身)이 감수하는 것은 단지 아주 작은 반응에 불과할 뿐이며 다른 공간에서는 그야말로 천지가 뒤집히는 큰 변화다. 그렇다면 다른 공간에서 어떻게 변화하든 당신 이쪽의 육신이 느끼는 것은 같지 않다. 이렇게 본다면 사람 세간의 일체는 다 우연히 나타나는 것이 아니며 모두 당신을 성취시키는 것으로 당신이 집에 돌아갈 수 있도록 계단을 깔아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밖으로 보는 것은 바로 내리막길을 가는 것으로 아래로 미끄러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주에는 정(正)의 요소와 부(負)의 물질이 서로 대립하기 때문이다. 안으로 찾음은 법(法) 위에 서 있기에 승화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밖으로 보는 것은 분명히 아래로 미끄러지고 후퇴하는 것이다. 아래로 미끄러짐은 위로 계단을 올라가는 것과는 다르다.
아래로 미끄러짐에는 관성이 존재하는데 이 관성은 인간 세상에서 각종 좋지 않은 물질로 형성된 변이 물질이다. 그것의 밀도가 높을수록 당신을 더욱 통제하는데, 그것은 우주 진선인(真善忍)과 반대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밖을 향함을 선택할 때, 당신은 우주의 특성과 반대로 가는 것이다. 이 변이 물질의 기점은 위사위아(爲私爲我)하기 때문에 강렬한 소유욕은 지체 없이 당신을 단번에 아래로 밀어낼 수 있다. 때문에 당신이 밖으로 찾을 때, 당신이 다른 사람의 부족을 찾을 때, 당신은 곧 아주 순조롭다고 느끼며 한계선이 없고 단속하는 제한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야말로 제멋대로 하면서 아무런 구속도 없어진다.
승화와 하강, 두 가지 선택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법보(法寶)는 우리를 집으로 돌아가게 할 수 있는 보장이다. 사부님의 자비가 우리를 구도하고 있는데 우리로 하여금 생생세세 형성한 관념을 제거하고 법 속에서 깨끗히 씻게 만든다. 이렇게 해야만 신우주의 생명이 될 자격이 있다.
자신이 밖으로 보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되돌아보면 바로 다른 사람을 개변시키고 강요하려는 것으로 이 역시 강렬한 ‘자아(自我)’다. 남을 무시하는 마음과 남보다 높다고 여기는 과시심,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에 딸린 쟁투심, 원한심, 이런 변이된 관념들이 연속으로 연기하는데 바로 마성(魔性)이 크게 폭로된 것이다.
이 마성의 장(場)에 이끌리면 이 인간세상의 신체가 조종 당하면 이지(理智)가 분명치 않고 주의식(主意識)이 강하지 않으며 마성이 매우 커진다. 이럴 때 살짝만 건드려도 마치 묻어둔 폭약에 불을 붙인 것처럼 모순이 나타나고, 분위기가 긴장되는데 심성을 지키지 못하고 수련상태가 아래로 미끄러진다. 이것이 바로 자신을 찾지 않고 자신을 닦지 않으며 밖으로 본 결과다.
관념의 전변(轉變)이란 이 관념의 속박이란 족쇄를 부수는 것이다. 관념에 이끌려 이지가 또렷하지 않고 주의식이 강하지 않을 때, 만약 당신에게 정념(正念)이 나오게 할 수 있고, 사부님을 생각할 수 있고 법을 생각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일종 강대한 무형의 힘에 이끌려 나올 수 있다. 당신은 관념의 속박에서 벗어나 사부님께서 당신에게 배치하신 수련의 길로 되돌아갈 수 있다.
인간 세상의 이 주체(主體)는 마치 총사령부와 같다. 당신의 머릿속, 사상 속 어느 하나의 염두, 어느 하나의 생각이든 다른 공간에서는 모두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다른 공간의 모든 것은 당신 주체의 통제를 받는다. 당신에게 법에 부합하지 않는 하나의 염두가 나타나자마자, 다른 공간의 물질은 모두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패괴(敗壞)된 생명들이 지령을 받는다. 그러면 그것들은 공공연하게 나쁜 짓을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이 당신의 빈틈을 탔기 때문이다. 이는 당신 주체가 인정한 것이고 원한 것으로 마치 부체와 유사하다. 당신이 그것을 구하면 그것이 곧 당신 몸에 올라붙어 당신을 통제한다.
사람의 사상(思想) 역시 마찬가지로 법에 따라 자신을 바로잡고 단속하지 않으면 사상 중에서 나오는 것은 모두 사람 마음, 사람 생각이다. 그렇다면 대응하는 공간장에서는 당신 사상에 존재하는 그 한 층 변이된 물질을 작동하게 하는데 이는 당신이 이런 변이된 물질들에게 소란을 피울 수 있는 영패(令牌 명령을 전달하는 패)를 주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당신 앞에서 연기하며 가상(假相)을 만들어 내어 당신이 거기에 함몰되어 길을 잃게 만들고 선과 악 좋고 나쁨을 구별하지 못하게 만들어 최후에 당신을 끌어내린다.
지난 며칠간 겪은 것이 내게 큰 감촉을 주었다. 자신이 모순 속에 빠져 헤어나기 힘들 때, 그때 정말 안으로 찾지 않았고, 머릿속에 가득 찬 것은 온통 상대방의 잘못이며,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났고, 생각하면 할수록 자신이 너무 억울했다. 때문에 비록 겉으로는 잘못을 아는 것처럼 보였지만 뼛속에서는 진정으로 자신을 법(法)속에 두지 않았고, 창끝이 여전히 남을 향하게 했다. 수련이란 엄숙한 것으로 법에 있지 않은 이런 상태는 아무런 위력(威力)도 없다. 때문에 모순이 곧 대치하면서 해결하지 못했고 고통과 어쩔 수 없음이 나를 짜증나게 한다.
나는 이렇게 소모해 내려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을 한번 찾아보았다. 먼저 자신의 사상을 통제해서 그것이 나쁜 것을 생각하지 못하게 했고 머릿속으로는 사부님의 법을 외웠다. 이렇게 해서 나쁜 물질이 내원하는 통로를 차단했다. 이때 사상이 훨씬 청정(淸淨)해짐을 느꼈는데 또한 짜증도 그리 심하게 나지 않았다. 나쁜 물질이 억제되면 정(正)의 요소가 강화되기 시작하며 선(善)의 요소가 조금씩 충실해지기 시작한다.
이때 상대방의 좋은 점을 생각할 수 있는데 우리는 다 동수이고 온갖 비바람을 겪어왔음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 관념이 선(善)의 힘에 충격을 받아 원래의 변이된 사고(思考) 궤도를 개변하게 된다. 따라서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이 되는데 서로 간격이 사라지고 모순이 해소된다. 한 집안의 사람들이 이 허환(虛幻) 속에서 미망에서 걸어 나와 사악의 교란에서 벗어나면 우리는 또 하나의 정체(整體)를 형성하게 되며 사부님의 가호하에 집으로 가는 길을 걸을 수 있다.
작은 수련 깨달음이니 부당한 점이 있다면 자비로 바로잡아 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무엇이 대법제자인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5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