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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언양어: ‘자아(自我)’

해외 대법제자

【정견망】

다년간 수련해오면서 나의 가장 큰 문제는 자아(自我)에 대한 집착임을 느낀다. 왜냐하면 이것은 이미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어 알아차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안으로 찾을 때에야 비로소 없는 곳이 없는[無所不在] 그 자아를 의식할 수 있다. 나는 무엇을 하는데 이 일은 잘 했고 저 일은 잘하지 못했다거나, 이 동수는 말투가 너무 강하고 저 동수는 꽤 좋다거나, 나는 이것을 하고 싶고 저것은 하기 싫다거나, 나는 이것이 좋고 저것은 나쁘다는 등등.

출발점은 완전히 그 ‘나(我)’였고 사부님께서 내가 어떻게 하도록 원하신 것이 아니다. 대법의 요구에 따른다면 나는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만 습관이 되어 일상이 되어버린 그 ‘자아’를 찾아내 그것을 제거할 수 있는가?

법 공부를 통해 나는 마음을 일으키고 염두를 움직이는 것[起心動念]이 바로 자아임을 깨달았다. 염두를 움직일 때면 곧 자신의 인식 범위를 이용해 사물을 가늠하는 것이다. 자신의 認知 범위는 하나의 원과 같은데, 마치 한 동수가 문장에서 말한 것처럼 그 원이 제아무리 커도 여전히 한계가 있고 원 밖의 범위야말로 무한하고 끝이 없는 영원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인지 범위 안에는 모두 어떤 것이 있는가? 사람의 관념, 업력, 집착이 있는데 물론 정면(正面)적인 것, 즉 수련 중에서 법(法)에 대한 인식이 있다. 그러나 나와 층차가 다른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법에 대한 나의 인식은 다 틀린 것이다. 내가 그것으로 사물을 가늠하고 다른 사람을 가늠한다면 어떻게 가능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마치 원 속에 갇혀서 출로를 찾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급적 그 어떤 경우에도 염두를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공(空)’과 ‘무(無)’의 상태를 지키면 자아의 속박을 벗어나 자아에서 해탈할 수 있다. 염두를 움직이지 않고 자신을 안에 가두는 인위적인 원을 그리지 않는다면 자신을 대법(大法)과 하나로 연결해 법(法) 속에 녹아들어갈 수 있다. 법에는 무한한 지혜가 있고 각 층차가 모두 원용(圓容)하게 관통(貫通)되어 있기에 어떤 일을 하든 모두 가장 잘 할 수 있다.

개인 층차에서 깨달은 것으로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6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