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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업마난을 극복하는 새로운 인식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어느 날 우리는 다른 한 동수와 교류하자는 동수의 긴급 연락을 받았다. 이 동수는 이미 7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다. 이 말을 듣고 우리 몇몇 동수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모(某) 동수가 이틀 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 역시 15일 연속 음식을 먹지 못했다. 당시 우리는 따로 시간을 배치해 그와 교류하려 했지만, 그렇게 빨리 떠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모두 큰 유감이었고 마음이 불편했다. 이에 소식을 듣자마자 유감을 남기지 않기 위해 즉시 이 동수를 만나러 갔다.

이 동수는 증상이 비교적 심각했다. 7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먹기만 하면 토했고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두 다리에 힘이 없었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리는 그녀에게 자기 신체 상태에 대한 상상을 내려놓기를 희망했다. 당시 그녀는 이미 고통이 너무 심해서 죽고 싶어 했고, 죽음은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는 만약 그녀의 생각이 옳다면 신체와 사상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자신이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싶다고 했다. 그런 다음 나는 자신이 박해받는 과정에서 어떻게 박해 속에서 자신의 집착을 찾고 어떻게 집착이 가져온 교란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이야기했다.

그녀는 당시 충격을 받아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안으로 찾아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렇다는 답변을 받은 후, 그녀 역시 자신의 집착을 찾기 시작했다. 그녀는 박해받던 기간에 정념이 아주 강했기 때문에 수많은 사악의 박해를 타파 했지만 안으로 집착을 찾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녀는 더욱 강경해졌고 자신의 성격을 바꾸려 하지 않게 되었다.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찾음에 따라 다른 동수들이 그녀가 자신의 생각을 바르게 닦도록 도와주었다. 나는 그녀의 몸이 사악한 물질에 둘러싸여 있는데 그녀의 정수리에 위치한 포위망이 뚫려 사악의 포위를 돌파한 것을 보았다. 저녁 6시 전 세계 동시 발정념 시간에 우리 5, 6명이 함께 그녀를 위해 발정념을 했다. 어디서 온 영감(靈感)인지 모르겠지만,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의 에너지를 모아 이 동수의 신체 안을 충관(沖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차적으로 그녀의 식도를 움켜잡고 있던 것이 청리(淸理)되었고, 그녀가 음식을 먹지 못하게 막던 악령(惡靈)도 제거되었다. 그녀의 에너지가 증가함에 따라 그녀의 신체(神體 다른 공간의 신의 몸)는 점점 더 커졌고 마침내 원래 신체(身體)의 2~3배 크기가 되었다. 동수가 느낀 것은 본래 냉골처럼 차가웠던 몸이 발정념을 하면서 아주 열이 났고 열이 차면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땀이 갈수록 많이 나와 물티슈가 흠뻑 젖을 정도가 되었다. 모두가 그녀를 위해 기뻐했고 그녀가 반드시 좋아질 것이라고 격려했다. 그녀도 신심이 있었다.

나는 진실한 상황을 보았기 때문에 그녀에게 이미 좋아졌다고 알려주었지만 그녀는 또 개의치 않았다. 우리는 잠시 교류한 후 떠났다. 며칠 후 그 동수가 다시 식사를 할 수 있지만 50퍼센트만 좋아졌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나는 마음이 무거웠는데 상황이 좋지 않았다. 본래 이미 좋아졌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생각이 있어서 50퍼센트만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즉 그 좋지 않은 50%를 다시 구해온 것이다. 또 며칠 후 동수들은 그 동수가 다시 심각해져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며 전보다 몸이 더 싸늘해졌으니 다시 가봐야 한다고 말했다.

가기 전에 우리는 또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의 힘이 부족해서 이런 상황을 초래한 것은 아닌지 찾아보았다. 나는 한 가지 아주 심각한 문제를 발견했는데 우리는 바로 자신을 실증하고 있었다. 매번 동수에게 문제가 나타나서 교류하러 갈 때마다 생각한 것은 어떻게 동수를 도울 것인가였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준 것은 대법과 사부님임을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가 수련을 얼마나 잘해야만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때문에 우리 한 동수는 자신이 수련을 잘하지 못해 사악의 교란을 받을까 두려워했다. 전에 확실히 이런 사례가 있었는데 병업 동수를 도와 발정념을 하던 동수 자신이 다친 적이 있다.

다년간의 경험을 종합해 보니 우리는 한 가지 관념을 전변(轉變)할 필요가 있었다. 즉 우리 자신을 누구누구의 동수로 여기기보다는 법(法) 속의 한 입자로 여겨야 한다. 동수와 교류하고 토론할 때 우리가 하는 게 아니라 사부님께서 동수의 수련을 도와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마치 속인 속에 있는 사부님의 손이나 발과 같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손이나 발을 사용하지 않고도 수련인의 병을 치료하실 수 있지만, 단지 사람이 쉽게 믿지 않기 때문에 손과 발을 움직이신다.

《사부님 은혜》에 이런 사례가 있었다. 한 중풍 환자가 병 치료를 위해 사부님을 찾아왔다. 사부님께서 그녀에게 일어나라고 하자 그녀는 일어섰고 앞으로 걸어가라고 하자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바로 이렇게 중풍이 치료되었다. 그런데 지금 동수와 교류하는데 왜 이런 기적이 나타나지 않는가? 서로 간에 모두 동수로 여겼기 때문이다. 당사자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동수들을 배치하신 것으로 사부님께서 ‘나’를 돕기 위해 오셨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동수가 만약 사부님의 배치라고 여겼더라면 효과가 달라졌을 것이다.

우리는 동수를 만나 다시 깊이 있는 교류를 했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동수의 생각이 마땅히 전변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시에 우리는 사부님을 백분의 오십이 아니라 백분의 백으로 믿어야 한다. 특히 교류의 한 가지 전제를 강조했는데 그것은 바로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걷고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걷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만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확고히 걸어갈 수 있는가?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만약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확고히 걸어간다면 그럼 사부님의 모든 배치를 인정해야만 한다. 오늘 만약 사부님께서 우리더러 병업(病業)의 방식으로 이 신체를 벗으라고 하시면 사부님의 배치이기 때문에 우리는 승인하고 곧 이 신체를 포기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만약 사부님 배치가 아니라면 우리는 절대 승인할 수 없다. 만약 우리가 이런 기초 위에서 교류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교류도 신사신법(信師信法)에 에누리가 될 것이다! 교류하면서 그녀의 신체가 다시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어서 그녀에게 신체 변화가 다른 공간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말해 주었다. 또 사부님께서 그녀의 업을 없애주시는 것이지 우리가 하는 게 아니라고 알려주었다. 비록 우리에게 약간의 에너지가 있지만 수련인의 신체(神體)가 커지는 것은 수련 중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하는가? 분명 사부님께서 하신다. 아울러 2~3배나 커졌는데, 사부님이 아니시라면 또 누가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이 말을 들은 동수는 두 손을 허스하고 사존께 감사드렸다. 한동안 소통하고 발정념을 한 후 동수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들은 소식에 따르면 그녀는 정상적으로 먹고 배설할 수 있다고 했다. 이번에는 백분의 백 좋아졌다. 모두 그녀를 위해 기뻐했다.

나는 다년간 이런 일들을 많이 겪었는데 효과가 좋을 때도 있고 좋지 않을 때도 있었다. 나는 이에 여러 방법들을 정리해 봤지만 효과는 여전히 뚜렷하지 않았다. 《사부님 은혜》에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분명히 사부님께서 병을 잘 고쳐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수련생들은 여전히 ​​사부님께서 병을 고쳐 주셨는지 묻는다. 이것은 바로 그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사부님께서 점화해주어 그들의 오성을 제고하실 때까지 그랬다. 다시 학습반에 참가해서야 신체가 비로소 좋아지는데 이것은 우리 지금의 상황과 대단히 유사하다.

사부님께서는 진수자(真修者)들을 위해 병업을 제거해 주셨지만 어떤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마치 사부님을 뵙지 않으면 진정하게 믿을 수 없는 것 같다. 사실은 그가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병업이 다시 나타났을 때, 정말 신사신법 했다면 곧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동수들은 아무리 교류해도 쌍방이 만약 정확하게 대법의 위력과 사부님의 배치를 인식할 수 없다면 효과가 뚜렷하지 않을 수 있다.

만약 모두 법에서 법을 인식할 수 있고, 도와주러 온 동수를 사부님 배치로 여기고, 법에서 깨달은 것을 들려주는 것을 사부님의 점화로 여긴다면, 그럼 곧 진정으로 사부님의 조정과 가지로 여길 수 있을 것이며 분명히 효과가 있을 것이다. 동시에 도와주러 온 동수도 사람 생각을 내려놓고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한정하지 말고 사부님께서 파견한 법의 입자로 여겨 대법의 위력을 드러내야 한다.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 누가 감히 도와주러 온 동수를 박해할 수 있겠는가? 쌍방이 모두 법 속에 있을 때면 그 어떤 병업 그 어떤 사악이든 모두 가뭇없이 사라질 것이며 또한 즉각적으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예를 들어 표현상에서 단지 깨닫기만 해서는 안 되고 정념정행 해야만 비로소 된다. 수련 중에 정념이 강하지 못하면 고비를 잘 넘지 못하고 지속될 것이다. 아울러 정념이 강함에 도달하지 못하면 또 신심(信心)이 좌절될 수 있는데”[1]

이번 경험을 통해 나는 사부님의 법(法)은 정말로 글자마다 진기(真機)임을 깊이 깨달았다. 수련인이 병업마난을 마주할 때, 안으로 자신의 집착을 찾을 때 효과가 뚜렷하지 않다면 우리가 정념정행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겨냥해 주로 강조해야 할 것은 바로 정념정행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정념(正念)인가? 오랫동안 병마에 시달리거나 극심한 고통을 겪을 때 발정념을 하는 것은 가장 간단하고 가장 쉽지만 오랜 시간 견지해야만 가능하다. 한두 시간에 되는 것이 아니며 하루 종일, 한 달 내내 발정념을 해야만 가능하다. 오직 깨어 있기만 하면 발정념을 해야 하는데 행주좌와(行住坐臥 걷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거나)를 막론하고 깨어 있기만 하면 발정념을 해야 한다. 그럼 반드시 효과가 있다.

그렇다면 정행(正行)이란 무엇인가? 가장 간단한 표현이 연공이다. 깨달을 필요도 없고 그냥 연공하면 된다.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연마해야 한다. 전에 반신불수에 걸린 수련생이 있었는데, 제3장 공법을 81번 연마한 후 신체가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게으르지 말고 더 많이 연마해야 한다. 이것은 또 수련인의 의지를 강화한다.

그렇다면 정념정행하면 충분한가? 아직 부족한데 또 한 가지 아주 중요한 사상적인 기초가 있다. 그것은 바로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걷는 것이다.

“바라는 것도 없고 집착도 없이 떠나든 남든 사부의 배치에 따르는 것인데, 이 한 점을 해낼 수 있다면 바로 신이다.”[1]

이것은 단지 우리가 병업마난을 마주한 쌍방이 마땅히 어떤 방법을 해야 하는지 깨달은 것이다. 부동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는 또 다른 대응 방식이 있고 그속에는 또 세부 사항도 많다. 신체가 회복된 후 병업마난을 조성한 원인을 깊이 분석해서 모두 법에서 법을 인식해야 한다. 쌍방이 모두 법 속에 있을 때라야만 비로소 명백히 소통할 수 있고 비로소 교란 요소와 구세력의 배치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다.

이상은 단지 개인적인 인식에 불과하며 참고로 제공한다.

주:
[1] 《로스앤젤레스 시 법회 설법》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77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