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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 안으로 찾은 경험

해외 대법제자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당신에게 한 가지 진리를 알려주겠다.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전법륜》)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20년 넘게 수련하면서 몇 차례나 마음을 닦고 집착을 제거했는지 모르는데, 과거에 아주 뼈를 깎는 듯 아팠던 것들이 지금은 오히려 더 영광이다. 아래에서 두 가지를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1. 안으로 찾아 노병사(老病死)의 상태에서 걸어 나오다

지금까지 수련하면서 몇 차례 병업(病業)상태에 있었지만, 정념이 일어나면 순식간에 지나갔다. 2018년 하반기 나는 우리 지역에서 두 동수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는데 즉시 내 신체에 교란을 가져다주었다. 우리가 함께 했던 교류와 그들의 목소리가 종종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수시로 생명이란 이렇게 취약한 것임을 느꼈다. 수련은 또 이렇게 엄숙한 것으로 무심코 구세력에 끌려갈 수 있다.

두 동수는 대륙에서 조사정법하며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는데, 내가 보기에 그들은 이미 금강(金剛)과 같았다. 해외로 나온 후에도 지금까지 세 가지 일을 줄곧 해왔지만, 장기간 자신의 집착을 깨닫지 못했다. 내가 보기에 사부님께서 이미 그들이 법에서 깨달아 올라오기를 바라시며 아주 긴 시간을 주셨다. 만약 장기간 한 층차에 머무르게 되면 곧 법에 대해 의심이 생기는데 사부님께서 여전히 나를 관할하시는지 의심한다. 그것은 마치 한 발은 문 안에 있지만 다른 한 발은 문밖에 있는 것과 같아서 사부님께서 관할하실 수 없다. 그럼 구세력이 곧 손을 댈 것이다.

때문에 나는 한 가지를 확고히 했다.

“내 생명은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고, 내 일체는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니, 사부님께서 사람을 구하라고 하면 나는 곧 사람을 구할 것이다. 나는 사부님께서 주신 것을 사부님께 바쳐야 한다. 다른 것은 모두 원하지 않으며 다 승인하지 않는다.”

정념이 확고해진 후에도 또 수시로 넘길 관이 있었다. 때때로 어지럼증이 나타나면 나는 곧 조용히 발정념을 했다. 명혜 라디오를 들으니 어떤 동수가 늘 다른 공간을 보다보니 다른 공간의 아름다운 장면을 보고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돌아갈 수 없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사부님께 더 이상 다른 공간의 장면을 보지 않게 해달라고 청했다.

이것을 듣고 나서 나도 사부님께 청했다.

“사부님, 제가 어지럽지 않도록 해주세요. 제 주의식(主意識)이 반드시 강해야 하고 마음은 반드시 올발라야 합니다.”

이런 일념이 있으면 나의 뿌리는 영원히 사부님 그곳에 있게 된다. 그 누구도 나를 흔들 수 없다.

가끔 몸이 피로해서 하고 싶어도 힘이 달릴 때가 있다. 그럼 나는 곧 법 공부와 발정념을 하면서 사람 구하는 일을 견지한다. 그럼 어느새 신체가 정상으로 회복된다. 때때로 다시 반복되면 나는 안으로 찾는다.

‘왜 병업 교란이 나타날 수 있는가, 내게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는가?’

이 일념이 나오자마자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왜 마음이 흔들리는가? 죽음을 생각하기만 하면 나는 왜 긴장하는가? 이것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아직 법리가 명확하지 않고 정념이 부족한 것이다. 수련이 곧 끝나가고 수련을 잘한 동수들은 이미 귀위(歸位)했는데 나는 아직도 속인의 노병사(老病死) 속에서 배회하고 있다. 나는 사람인가 아니면 신(神)인가? 신이 죽을 수 있는가?’

생각하면 너무 가련한데 지금까지 수련했음에도 아직도 자신을 사람으로 간주한 것이다. 나는 이에 발정념으로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제거하고, 병마의 교란을 깨끗이 제거해 노병사 이런 상태에서 걸어 나왔다.

2019년 6월 말과 7월 초, 네덜란드 페이넨달 다문화 축제 개막식과 폐막식에 우리 요고대가 초청 받았고 아울러 공법 시연을 하게 되었다. 참가할까? 일념이 스쳐 가는 순간 나는 단번에 안정 되었다. 사람을 구하는 일은 가장 신성한 것이다.

요고대는 정기적인 활동이 없고, 또 북을 치려면 단번에 운동량을 늘려야 하는데 내가 할 수 있을까? 사부님이 계시고 대법이 있지 않은가? 사부님께서 된다고 하시면 되는 것이다. 요고를 연주할 때 나는 중생들이 활짝 웃는 얼굴과 기대 어린 눈빛을 보았다. 열렬한 박수소리와 함께 북을 칠수록 더 활력이 넘쳤다. 고음의 연주 소리와 빠른 비트에 나는 마치 공중에 뜬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는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마치 독립된 생명체 같았다. 생각해 보니 이는 사부님께서 줄곧 나를 가지해 주신 것이다. 이번 요고대 활동에서 나는 대법 항목에는 무슨 안 되는 일이란 없고, 신사신법(信師信法)하면 다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2. 안으로 찾아 사람을 구하는 사부님의 어려움을 깨닫다

2019년 3월 초, 나는 새로운 항목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항목의 진행이 아주 순조로웠는데 모두 조화롭게 협력했고 항목 역시 일정한 효과를 얻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협조인 A 동수가 이의를 제기했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합의한 것이고 그 부분을 완성하는 것은 내 책임이었다. 게다가 너무 맹렬해서 나는 뭔지 몰라 좀 당황스러웠다. 나는 단번에 참을 수 없었다. 속으로 억울함을 느꼈고 이전까지 한 작업이 부정당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모든 것이 다 헛수고처럼 보였다. 나는 한동안 좀 침체되었다.

나는 생각해보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나는 모순 쌍방이 다 닦아야 할 것이 있음을 안다. 하지만 마음을 조용히 하고 한번 생각해 보니 여전히 ​​상대방의 잘못이었다. 상대방의 잘못은 어디에 있는가? 상대방의 형상은 나의 형상이고, 상대방의 잘못은 나의 잘못이며, 상대방에게 어떤 마음이 있으면 내게 그런 마음이 있다. 왜냐하면 나는 종종 다른 사람은 아주 작은 흠도 놓치지 않고 아주 똑똑히 볼 수 있지만 자신을 보면 자신이 그래도 남보다 잘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상대방에게 미미한 질투심과 쟁투심, 강한 승부욕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왜 동수 A가 의견이 다르다고 내가 견디기 힘든가? 이전까지 모든 노력이 헛수고라 여기는가? 표면적으로는 남이 말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닌가? 좋은 말을 들으려는 마음이 아닌가? 더 깊이 파보면 역시 질투심과 쟁투심, 강한 승부욕이 아닌가?”

생각해 보면 항목에서 자신이 맡은 부문에서 동수들의 인정을 받자 마치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여긴 것 같다. 이 얼마나 강한 쟁투심, 과시심, 강한 승부욕인가? 남이 내 단점을 지적하는 것을 따지려 드는 것은 분명히 질투심이 아닌가? 안으로 찾아보니 이렇게 오랫동안 수련했지만 마치 표면만 수련한 것 같다.

이런 마음들을 찾아낸 후 나는 자신이 너무나도 미미한 것을 발견했다. 반면 A동수는 법에서 수련해 낸 많은 장점들이 있음을 발견했다. 항목 운영을 위해 협력을 잘했고, 항목 동수들의 제고를 위해 많은 감당을 했다. 나는 동수 A가 무거운 짐을 지고 앞으로 가는 팽이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짐 속에는 동수 A가 착실하게 자신을 수련하면서 닦아버려야 할 것이 있고 또한 항목 동수들에게 필요한 제고에 대한 걱정이 있고, 또한 항목을 잘 해서 보다 많은 중생을 구도하려는 바람이 있다.

나는 동수 A가 정말 고생을 많이 했고 법에서 닦은 것도 아주 견정함을 느꼈다. 그렇다면 동수가 표현한 그런 작은 사람 마음은 바로 나더러 수련하라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속에 있으면서 이것은 싫고 저것은 안된다고 했다. 비교해 보면 자아에 집착하는 마음이 얼마나 강한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자신이 해놓은 조그마한 성적에도 매우 득의양양해하는데, 당신은 주역이 되었는가? 당신은 조연조차도 맡지 못했으며, 어떤 사람은 못난이 역을 하고 있다! 이것이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인가? 사부가 당신에게 하라고 한 것인가?”(《2013년 대뉴욕지역법회설법》)

사부님의 이 단락 법을 읽으면서 내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무거운 망치로 나를 치신 게 아닌가. 나는 묵묵히 사부님께 참회했다.

“사부님, 저는 주역은커녕 조연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반드시 우리 정체를 잘 원용하겠습니다. 반드시 자신을 내려놓고 동수들과 잘 협력하겠습니다.”

나는 자신이 잘하지 못해서 이 층차에서 너무 오랫동안 머물렀음을 깨달았다. 나는 다시 한번 사부님께서 사람을 제도하시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어떠한 문제에 부딪혔더라도 첫 생각에 우선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바, 이것을 “안으로 찾는다.”고 한다.”(《무엇이 대법제자인가》)

그러나 나의 일념은 안으로 찾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면(正面)으로 문제를 보지 못했고 동수의 좋은 면을 보지 못했다. 자신의 집착심을 찾는 과정은 또한 속인 중에서 우회한 과정도 포함하는데, 동수 A를 버팀목으로 삼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부족을 진정으로 발견하게 되었다. 오성 역시 너무 차(差)했다.

여기까지 쓰고 나자 나는 일시적으로 나를 불쾌하게 했던 동수들에게 감사드리는데 그들은 정말로 나를 도와 나를 제고하게 했다. 마음을 닦고 집착을 제거한 이 단락 과정에서 나는 비록 빨리 제고하진 못했지만 사람을 구하는 항목을 지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줄곧 묵묵히 동수들과 협력해 왔다.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잘했다. 그러자 동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마음이 점차 약해진 것 같았는데 진정한 원인은 동수들이 나를 돕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우리는 모두 법을 위해 왔고, 모두 사부님께서 원하는 것을 성취해 자기 세계를 원만하기 위해 왔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마음이 가벼워졌고, 주동적으로 동수들과 협력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이는 마치 우리가 말하고, 먹고, 걸어가는 것과 같다. 이 기간에 당신도 좋고 나도 좋은 일은 없었고 오직 문제에 부딪치면 자신을 찾았다. 이것이 마땅히 대법의 기제가 작용한 것이다.

이상은 내가 안으로 찾은 작은 깨달음이다. 안으로 찾는 중에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내려놓기 어렵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욱 영광임을 느꼈다. 왜냐하면 내게는 사부임의 자비하신 가호가 있고 동수들의 끊임없는 도움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부님의 자비하신 고도(苦度)를 소중히 여기고, 동수들의 감당을 소중히 여기며, 자신을 잘 수련해서 세 가지 일을 잘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타당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76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