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네 번째 두 가지 다른 길
구세력은 그들의 요구에 어떤 편차도 생기지 않게 하려고 우리의 일사일념(一思一念), 일언일행(一言一行)을 배치했다.
사부님께서는 장계취계하여 대법제자가 대법으로 일체를 가늠하고 우리의 일사일념을 가늠하라고 요구하셨다. 장차 대법에 부합하지 않는 일체를 대법의 표준으로 바로 잡게 하셨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구세력은 대법제자의 사람 마음을 배치했고 사람 마음에서 우주의 검은 기가 가져온 거대한 관과 난을 감당하게 했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를 배치하시어 정념정행(正念正行) 속에서 세 가지 일을 잘하라고 하셨다. 단지 심성 제고를 위해 약간의 검은 기만 감당하게 하셨다. 심성을 제고하는 중에 이 중생을 구도하게 하셨다.
우리가 사람 마음을 선택했을 때 우리는 구세력에게 관할당하는데 얼마나 많은 마난을 겪든 모두 위덕이 없다. 정념을 선택했을 때 우리는 사부님께서 관할하시는데 그 어떤 사람이나 신도 관여할 권한이 없다. 자신이 선택한 것은 다른 사람이 간섭할 수 없다. 우리가 사람 마음을 선택했을 때 우리는 구세력을 선택했으니 사부님께서도 우리를 보호하실 방법이 없다.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하고 자신의 책임을 알아야 한다. 정념정행 속에서 우리는 대법과 같이 있고 구세력의 박해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더욱이 중생을 구도하고 있다. 그러므로 어떠한 정황 하에서든 우리는 늘 정념이 일어나야 하고 아울러 정념에 따라 행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업력과 명리정에 대한 집착심은 모두 우리가 구도해야 할 중생에게서 온 것이다. 우리가 한 가지 집착심을 제거하면 거기에 담긴 내함은 바로 대응된 구우주 생명의 변이된 사상을 바로 잡는 것이다. 그것을 신우주의 법리에 부합되도록 바로 잡은 것이며 그것이 미래로 진입하게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사상 속에서는 구우주 생명에게 내원한 변이사상이 있고 신우주 왕에서 내원한 정념(正念)이 있다. 이런 반응은 우리 사상 속에서 모순의 충돌로 체현되는데 바로 신우주와 구우주 법리의 충돌이다.
만약 우리가 사람 마음을 싸워 이기지 못하면 사람 마음 뒷면의 구우주 생명의 업력과 변이된 사상에 의해 교란당한다. 시간이 길어지면 우리에게 구도받을 중생이 박해받거나 감옥에 들어가거나 혹은 병업이다. 때문에 우리를 박해하는 것은 우리가 구도해야 하지만 또 구도하지 못한 중생들이다. 그렇다면 심성을 제고하고 중생을 구하면 박해도 사라진다. 박해당한 실질이 바로 마땅히 구도해야 할 중생이 구도 되지 않은 것이다.
잘하지 못할 때 중생은 구도 받을 수 없고 우리는 곧 도태될 우주 생명이 가져다 준 거대한 업력을 감당해야 한다. 사람 속에서 표현되는 것은 바로 각종 박해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법제자들 마난(魔難)을 겪지만 훼멸되는 것은 중생이라네”(《홍음 3》세세생생 금생을 위해>) 잘하지 못할 때는 양측이 모두 다친다.
여기서 한 가지 일을 똑똑히 분간해야 한다. 바로 사부님께서는 모든 대법제자를 동일시하고 계시는데 우리가 몇 기 대법제자인지, 얼마나 많은 업력이 있든지 막론한다. 중생을 구도하는 과정 중에 사부님께서는 오로지 우리더러 심성을 제고할 때 약간의 업력만 감당하게 하셨다. 우리를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것은 구세력이고 길을 잘못 갔을 때, 세 번째 부류 대법제자들은 역사적인 업력, 첫 번째와 두 번째 부류의 대법제자들은 세상을 살면서 지은 업력이 구세력에게 이용당해 박해받는다.
매 한 관을 잘 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가장 넘기 어려운 관 또한 우리가 회피할 수 없는 관이고 바로 생사관이다. 어떤 동수들은 말한다. 나는 죽는 것이 두렵지 않고 나는 고생이 두렵고 두려운 것이 살면서 고생하는 것이다고 한다. 이는 생사관을 내려놓지 못한 구실이다. 생사관이란 반드시 죽어야 하는 결과를 마주하고 빠져나갈 수 없을 때 심성의 표현이다. 그러나 정법수련에서 생사관은 한 번 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넘는다. 왜냐하면 수많은 지극히 높은 신들은 오로지 우리가 생사를 내려놓을 수 있을 때라야만 그들이 비로소 굴복하기 때문이다. 비로소 그들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지극히 높은 생명들은 매우 많은데 법 공부를 잘 하고 사람 마음을 제거해서 명리정을 담담히 본 후 다시 생사관을 보면 생사관을 넘기란 조금도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심성을 제고하고 반드시 안을 향해 찾아야 하는데, 즉 진정하게 수련하고 착실히 수련해야 한다. 대법을 지식으로 여기지 말고 알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대법에 동화해야 한다. 즉 우리가 해내야 한다. 일부 동수들은 자신의 법리에 대한 깨달음이 높지 않음에 대해 고뇌하는데 사실 깨달은 법리를 실천하지 않았고 동화하지 않은 것이다. 때문에 고층의 이치는 하얀 종이에 검은 글자로 법 속에 써넣어도 보지 못하고 기억하지도 못한다. 이에 일부 동수들은 법 밖의 것, 비슷하지만 다른 것을 가져다가 수련의 표준으로 삼고 자신과 환경을 어지럽힌다. 혹은 사오자(邪悟者)가 되거나 혹은 사오자의 추종자가 되거나 혹은 장기간 박해 속에 처해있다.
어떠한 모순도 모두 우리가 안을 향해 찾고 중생을 구도해야 하는 것이지 누가 맞고 누가 틀리는 문제가 존재하지 않으며 누가 맞고 누가 틀리고를 쟁론할 때면 이미 속인 속에 떨어졌으며 시간이 길어지면 서로 원한이 생긴다. 모순 쌍방은 누가 맞고 누가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제고하고 제고하지 못하는 문제다. 내부 모순 대다수는 상대방이 수련인이니 대법으로 상대방을 요구하면서 자신에게는 이렇게 요구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의 길은 아주 좁은데 너무 좁아서 오직 사부님과 법의 요구에 따라서 행해야 한다. 우리의 길은 아주 올발라서 어떠한 일에 부딪치고 어떠한 어려움과 위험에 부딪쳐도 늘 안을 향해 찾을 수밖에 없다. 어떤 환경과 어떤 사람도 원망하지 말아야 하는데 여기에는 구세력을 포함한다. 그것은 모두 밖으로 찾는 것이다. 밖으로 찾음은 진정한 삿된 길이다. 수련에서 도달해야 할 표준은 어디에서나 다 같은 것이다. 대륙에서 우리 앞을 가로막는 것은 주로 공포였다. 해외에서 우리의 뒷다리를 붙잡는 것은 주요하게 안일이다. 모두 우리가 집착을 내려놓고 생사를 내려놓아야 비로소 마주할 수 있다.
우리가 법 실증, 중생구도, 서약 실현을 수련의 목적으로 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한 신우주에 동화한 정각(正覺)이 될 수 있다.
오늘날 대법제자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모두 신우주의 왕(王)이다. 우리 사람 표면의 사상이 여전히 개인 원만에 머물러 있다면 우리의 표면은 구우주 위사위아(爲私爲我)한 근본 속성 속에서 해탈해 나올 수 없고 구세력의 세력 범위 내에 있어 구법리의 제약을 받게 된다. 위사위아한 환경 속에서 무사무아(無私無我)의 일을 하는 이것이 바로 신우주의 왕과 구우주 생명 사이의 가장 근본적인 충돌이자 우리 수련의 가장 큰 어려움이다.
다섯 번째 성취의 차이
개인수련은 우주 어느 한 경계에서 자신의 신위(神位)를 성취하는 것이다. 그 경계 속의 한 신(神)이 되는 것이다. 신구(新舊) 우주가 교차하는 시기에 구우주는 해체되고 신우주가 탄생되는 과정이다. 구우주에서는 개인이 아무리 높이 수련했어도 모두 구우주와 함께 곧 해체될 것이다. 때문에 이 역사적 시기에 개인 원만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신우주가 만들어지기를 기다린 후 미래 신우주의 사람이 수련해야만 비로소 개인의 해탈을 위해 수련할 기회가 있다.
대법제자 사람 표면이 인식하든 못하든 그 실질은 모두 사부님께서 제 위치로 밀어주신 왕이다. 대법제자는 정법수련 속에서 바로 자신이 구도해야 할 중생을 자기 신우주의 천국세계 속으로 수련하게 하여 우리의 우주를 충실하게 하여 우리 우주가 갈수록 커지게 한다. 우리의 제고가 바로 신우주 용량의 확대이며, 우리 모든 대법제자의 우주를 하나로 합치면 신우주의 전부가 구성된다. 한 층 중생이 구도되지 못하면 신우주는 그 한 층이 부족하다. 대법제자 한 명이 도태되면 신우주는 그만큼 작아진다. 이는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내가 깨달은 것은 우리 대법제자가 닦는 것은 우주이고 우리가 성취하는 것은 우주이다. 미래의 개인 수련은 미래인이 우리의 우주 속에서 자신의 과위를 증오(證悟)하는 것이다. 대법제자는 사부님과 서약한 그날부터 개인수련을 벗어났으며 아무 상관이 없다. 대법제자는 우주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칭호다. 신구 우주가 교체되는 시기에 구우주 생명을 신우주 속으로 구도해야 할 거대한 책임이 있다. 우리가 이러한 책임을 감당할 유일한 원인이 바로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기 때문이다. 언제든 우리는 늘 사부님과 법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사부님과 법이야말로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근본이고 우리가 조사정법할 수 있고 중생을 구도할 수 있는 유일한 보장이기 때문이다. 대법제자는 예전의 모든 생명과 다른데 우리는 조사정법에 참여한 생명이고 정법 증에서 만들어졌고 법과 한데 연결된 특수한 생명이다. 구우주에서는 지금껏 있어 본 적이 없는 형태다.
미래 신우주에서 중생이 법을 이탈했을 때 우리는 우주 최초시기의 가장 아름다운 표준을 우주 중의 중생들에게 펼쳐 보여주고 아울러 우리가 오늘날 사부님을 따라 개창한 회귀(回歸)의 길을 중생들에게 남겨주어야 한다. 그들이 우리가 개창한 회귀의 길을 따라서 우주 최초의 아름다운 시기로 되돌아가게 해야 한다. 우리가 이러한 책임을 짊어질 수 있는데 필요한 위덕이 바로 오늘날 수련해 낸 것이다.
우리가 성취하는 것이 이렇게 크고 이렇게 높고 이렇게 특수하다. 하지만 짧디 짧은 시간의 단련을 거친다. 나는 구세력이 왜 우리를 질투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것들이 왜 마음속으로 넘어가지 못하는지 이해하는데 가련한 구세력이다. 그것들의 일체 파괴는 모두 우리가 세 가지 일을 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서약을 실현하지 못하게 하고 우리가 서약을 실현하지 못하게 한 후 도태시키려 한다. 그러나 바로 이런 환경 속에서 교란받지 않거나 교란을 적게 받고 정념으로 걸어 나와야 비로소 미래 우주의 원용불파(圓容不破)를 보장할 수 있는 위덕을 수련해 낼 수 있다. 때문에 수련 중에 나쁜 일이란 없고 모두 좋은 일이다.
대법제자는 무슨 덕과 능력이 있기에 이렇게 행운이 있어서 사부님을 따라 조사정법할 수 있는가. 사부님께 보답할 길이 없다. 오로지 이 행운을 우주 대궁 속의 모든 생명과 세간의 모든 사람들에게 최대한 많이 전달해서 진정으로 조사정법의 작용을 일으키게 해야 한다.
그럼, 우리가 조사정법하려면 사부님 정법 중에서 마주친 가장 크고 유일한 장애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사부님을 도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천지는 정법(正法)의 길을 막지 못하는데 다만 제자들의 사람 마음이 가로막고 있네”(《홍음 3》<번거로움>)
사람 마음을 제거하는 것은 사부님 정법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사람 마음을 제거하는 것이 우리 수련에 시종 관통되어 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우리에게 본래 속하지 않는 사람 마음을 제거하는 것이 우리가 조사정법 중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잘라버리는 것은 자신이 아니요 모두 미혹 속의 어리석음이로다” (《홍음 2》<집착을 버려라>)
개인의 작은 깨달음이니 부족한 곳이 있다면 자비롭게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8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