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청(雨清)
【정견망】
고인은 “군자의 사귐은 물처럼 담담하다”라고 했다. 의미는 도덕 품성이 고상한 사람들 사이의 사귐은 담담하게 보이지만, 시간과 이익의 변화에 따라 영향을 받지 않기에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수련을 통해 나는 군자 사이의 우정이 물처럼 담담하다는 것은 ‘정(情)’이 물처럼 담담한 것임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정이란 언제든 변하지만 은의(恩義 은혜와 의리)는 오히려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기 때문이다.
오늘날 문화적인 내함이 사라진 현대 변이관념 아래 사람들에게 남은 것이라곤 ‘정’이란 글자로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정이란 사(私)에서 기원한 것으로 자신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기 때문에 당신에게 정이 있는데 자신이 좋아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것으로 버려졌을 것이다. 여러분들은 부부 사이에 금슬이 아주 좋아 보이는 부부들이 오히려 한 차례 질병을 넘어가지 못하고 결국 각자 헤어지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요새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사랑하지 않으면 그만이니 이유는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은의(恩義)와 비교하면 정은 너무나도 낮고 저급하며 간단한데 그야말로 일격(一擊 한 차례 타격)도 감당하지 못한다. 은혜와 의리는 책임이고 감당이며, 사회에 대해서나 남에 대한 책임감으로 무사(無私)하고 위대하며 정의로운 힘이 가득하다. 그러나 정(情)이란 개인의 사(私)로 본질상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기적이고 협애하며 쉽게 변하기에 오래가지 못하며 고통과 미망이 가득하다. 현대인은 이미 더 이상 은혜와 의리란 개념이 없으며 우연히 이 방면의 이야기나 전설을 보아도 고인(古人)이 생사를 내려놓고 자신을 희생해 의리를 취하고 의리를 중시하고 이익을 가볍게 본 정신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수련인으로 마땅히 전통으로 돌아가서 정을 가볍게 보고 내려 놓아야 한다.
《홍음 2》〈사도은〉>에서 사존께서는 “사제는 정을 따지지 않나니 부처의 은혜 천지를 녹이네”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이해하기에 사존께서는 단지 우리 제자들의 사존일 뿐만 아니라 중생에게 은전(恩典)을 베푸시는 위대하고 자비하신 창세주(創世主)시다. 우리는 속인의 정으로 사존을 대할 수 없는데 사존께서는 제자에 대해 책임지시고 더욱이 우주 중생에 대해 책임지신다.
사존의 법에서 나는 또 깨달았는데 우리 동수 사이에 가급적 동수 정을 내지 말아야 한다. 단체 법 공부와 바른 일을 하는 것을 제외하고, 일이 있든 없든 만나 수다를 떨거나 속인의 말을 하거나 속인의 정을 말하지 말아야 한다. 너무 속인 식의 감정접촉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가급적 담담한 물처럼 대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동수 사이에는 또 은혜(恩)가 있다. 무슨 은혜인가? 함께 세상에 내려가 법을 얻고 같은 사부님 문하에 있는 은혜인데 법(法)에서 공동으로 손을 맞잡고 정진하며 은혜를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일체는 모두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과 대법에서 유래한다.
작은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으면 동수들이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8709
